저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드라마를 즐겨보는 편입니다. 최근 들어 드라마에 나타나는 청년 ‘백수’의 이미지도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많이 느낍니다.
예전의 20대 중반의 ‘백수’의 모습은 비정상적인 사람, 이 사회에서 쓸모없는 인간으로 그려졌습니다. 개인의 능력부족과 대부분 게으름과 나태함에서 생긴 문제였던 것이죠. 또한 개인의 허영심과 사치로 인해 신용불량자가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20대 중반, 대졸의 청년이 ‘백수’상태 인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집안의 걱정거리임은 다를 바가 없지만 개인이 ‘어떻게 할 수 없는 문제’, ‘노력하지만 잘되지 않는 문제’로 그려지기 시작했습니다.
나이가 차더라도 결혼도 하지 못하고 공부하고 있는 수험생으로, 이리저리 취업의 문을 두드리지만 좀처럼 취업이 되지 않아 실의에 빠지거나, 자신의 길을 찾지 못하고 아르바이트 등 비정규직으로 전전하는 모습들로 나오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지금의 청년들 모습이며, 누구의 자식이나 비슷하게 겪고 있는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은 문제시되는 것을 넘어 이제는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저는 부모님과 떨어져 다른 곳에서 공부를 하다가 생활비 등의 어려움으로 인해 지금은 부모님 있는 곳으로 내려와서 임용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몇 년간 고향 친구들을 보지 못했던 터라 이번에 내려온 김에 친구들과 만날 약속을 잡게 되었습니다. 친구들을 만날 생각에 즐거워야 함에도 사실 걱정이 앞섰습니다.
제일 큰 걱정은 아직 취업을 하지 못하고, 공부만 하고 있는 제 자신이 부끄러워서 ‘지금 무엇을 하고 있다고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하나‘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친구들을 만났을 때 부끄럽기는커녕 안도감이 들더군요. 등록금 때문에 졸업을 하지 못한 아이, 대학원을 준비하고 있는 아이, 공무원 시험, 임용고시 준비하는 아이 등 취업을 한 친구가 단 한명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당장에는 내 부끄러움이 감춰지는 것 같아 안도감이 들었지만 역시 씁쓸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임용 공부의 핵심은 ‘합격’
공부는 자신의 성장과 발전을 위한 준비의 과정이지만 지금 제가 하고 있는 공부는 누군가를 뛰어넘고 경쟁자를 이기기 위해 하는 공부입니다.
사실 공부가 이후 선생님이 되기 위한 밑거름이 된다는 것은 부정하지 않습니다. 당연히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을 만큼 자신의 전공분야에 대해 많이 알고 있어야 하겠죠. 하지만 그 공부가 나를 풍부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더 메마르게 만들어 간다는 것이 더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1등이 되려고 하지 말고, 커트라인을 넘을 만큼만 공부해라”
대부분 임용합격생들이 합격수기에 이런 말들을 많이 합니다. 보다 현실적으로 공부하라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임용공부의 중심에 ‘아이들’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시험 커트라인을 넘는 것, 합격’ 이 놓여 있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 같아서입니다. 결국 공부를 하다보면 내가 현장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내가 익힌 것을 적용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 보다는 ‘합격’을 위해 몇 문제를 어디서 더 맞을 수 있고 어디서 더 보충을 해야하는지 밖에 남지 않게 됩니다.
목적을 잃어버리고 방향을 상실한 채로 보이지 않는 사람과 계속해서 싸워야 하는 것이 ‘내가 정말로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낳고 자신감 저하, 주기적인 우울을 반복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나는 홀로 싸워야 한다.
무엇보다 공부를 하면서 힘든 점은 이 모든 것들이 오로지 저 ‘혼자’의 것이라는 겁니다. 모든 공부의 과정, 그것을 조절하는 과정뿐만 아니라 힘듦과 어려움까지 견뎌내는 것조차 개인의 몫이라는 점입니다. 함께 공부하는 스터디 조차도 결국에는 내가 넘어야 할 사람들인 것, 결국 이 임용고사 공부 안에서는 다른 사람과 진정 어려움을 함께 나누고 함께 이겨내는 과정은 없습니다. 곁에 사람이 있더라도 자신을 무한경쟁관계로 홀로 떨어뜨려놓을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언제나 항상 외롭고 답답하다고 느낍니다.
공부와 돈
작년 생활비 등의 문제 때문에 학원, 과외와 병행하면서 공부를 했습니다. 과외와 학원이 임용공부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온전히 공부에 열중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부모님에게 얹혀살면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20대 중반의 다 큰 어른이 부모님께 용돈을 달라고 할 때마다 제 자신이 부끄러워집니다. 넉넉한 집이 아니라 학원에서 진행하는 인터넷 강의를 들을 때에도, 독서실을 다닐 때에도 내가 부모님께 짐이 되는 것 같아 마음이 무척 무겁습니다. 갓 제대해서 자기 등록금을 벌려고 공장을 다니고 있는 동생을 보면서 부럽다는 생각을 무척 많이 했습니다.
어머니께서 저녁으로 떡볶이를 만들어 주신 날이 있었습니다. 제가 막 먹으려고 하는 찰나, 동생이 들어오더니 공장에서 저녁을 먹었다고 하더군요. 그 말을 들은 어머니께서 ‘그럼 괜히 만들었네.’라고 말씀하시는 순간, 저는 괜히 발끈해서는 ‘돈 안버는 사람은 서러워서 살겠냐’며 떡볶이를 우적우적 입에 넣었습니다. 정말 별 것 아닌 일인데도 어머니께서 공부하며 돈을 버리고 있는 저와 열심히 일하며 돈을 벌고 온 동생을 차별하는 느낌이 들어 서운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방에 들어와 엉엉 울었습니다. 괜한 자괴감에 별 것 아닌 일로 몇 살이나 어린 동생 앞에서 제 자신을 더 초라하게 만든 것 같아, 못난 제 모습에 엉엉 울었습니다.
이제 인터넷 사이트에 가입하면서 ‘무직’을 선택하는 것도 그렇게 서럽진 않습니다. ‘무직’, ‘백수’로 살아가는 제가 제일 하고 싶은 일은 하루 빨리 나의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일, 직업을 갖는 일입니다. 그리고 사회의 한 개인으로 인정받는 당당한 주체로 살아가는 일입니다.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각종 인턴제를 내놓고, 청년들을 어떻게 하면 비정규직으로 여기저기 돌려먹으며 써먹을 수 있을까 고민하고, 공무원・임용고사에 목매다는 청년들이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뽑는 정원을 늘리지 않는 정부의 정책에 화가 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공부하는 것이 너무 어렵고 힘들어도 그것을 함께 나눌 사람이 없는 것과 정부가 잘못된 정책을 내 놓아도 그것을 함께 막아낼 사람들이 없다는 것이 더 안타깝습니다.
좁은 구멍을 뚫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풍요로움을 위해 공부할 수 있다면, 아이들을 위한 좋은 선생님이 되기 위해서 공부할 수 있다면 수험생인 제 삶이 어떻게 달라질까 생각을 해봅니다.
그 동안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잘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나만 힘들어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더 힘들어하고 우울해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혹시 이 글을 읽으시는 분도 그런 적이 있다면 이렇게 함께 힘들어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으로 작은 위안이라도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대학 졸업 후 청년백수가 당연시 되는 사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청년실업문제 해결을 위해 20대~30대가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청년들이 스스로 고용실태를 조사해서 정부에게 당당히 요구해야 변할 수 있습니다. 많은 참여바랍니다^^
대졸, 20대 중반 청년 백수가 당연시 되는 사회
대졸, 20대 중반 청년 백수가 당연시 되는 사회
저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드라마를 즐겨보는 편입니다. 최근 들어 드라마에 나타나는 청년 ‘백수’의 이미지도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많이 느낍니다.
예전의 20대 중반의 ‘백수’의 모습은 비정상적인 사람, 이 사회에서 쓸모없는 인간으로 그려졌습니다. 개인의 능력부족과 대부분 게으름과 나태함에서 생긴 문제였던 것이죠. 또한 개인의 허영심과 사치로 인해 신용불량자가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20대 중반, 대졸의 청년이 ‘백수’상태 인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집안의 걱정거리임은 다를 바가 없지만 개인이 ‘어떻게 할 수 없는 문제’, ‘노력하지만 잘되지 않는 문제’로 그려지기 시작했습니다.
나이가 차더라도 결혼도 하지 못하고 공부하고 있는 수험생으로, 이리저리 취업의 문을 두드리지만 좀처럼 취업이 되지 않아 실의에 빠지거나, 자신의 길을 찾지 못하고 아르바이트 등 비정규직으로 전전하는 모습들로 나오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지금의 청년들 모습이며, 누구의 자식이나 비슷하게 겪고 있는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은 문제시되는 것을 넘어 이제는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저는 부모님과 떨어져 다른 곳에서 공부를 하다가 생활비 등의 어려움으로 인해 지금은 부모님 있는 곳으로 내려와서 임용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몇 년간 고향 친구들을 보지 못했던 터라 이번에 내려온 김에 친구들과 만날 약속을 잡게 되었습니다. 친구들을 만날 생각에 즐거워야 함에도 사실 걱정이 앞섰습니다.
제일 큰 걱정은 아직 취업을 하지 못하고, 공부만 하고 있는 제 자신이 부끄러워서 ‘지금 무엇을 하고 있다고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하나‘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친구들을 만났을 때 부끄럽기는커녕 안도감이 들더군요. 등록금 때문에 졸업을 하지 못한 아이, 대학원을 준비하고 있는 아이, 공무원 시험, 임용고시 준비하는 아이 등 취업을 한 친구가 단 한명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당장에는 내 부끄러움이 감춰지는 것 같아 안도감이 들었지만 역시 씁쓸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임용 공부의 핵심은 ‘합격’
공부는 자신의 성장과 발전을 위한 준비의 과정이지만 지금 제가 하고 있는 공부는 누군가를 뛰어넘고 경쟁자를 이기기 위해 하는 공부입니다.
사실 공부가 이후 선생님이 되기 위한 밑거름이 된다는 것은 부정하지 않습니다. 당연히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을 만큼 자신의 전공분야에 대해 많이 알고 있어야 하겠죠. 하지만 그 공부가 나를 풍부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더 메마르게 만들어 간다는 것이 더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1등이 되려고 하지 말고, 커트라인을 넘을 만큼만 공부해라”
대부분 임용합격생들이 합격수기에 이런 말들을 많이 합니다. 보다 현실적으로 공부하라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임용공부의 중심에 ‘아이들’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시험 커트라인을 넘는 것, 합격’ 이 놓여 있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 같아서입니다. 결국 공부를 하다보면 내가 현장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내가 익힌 것을 적용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 보다는 ‘합격’을 위해 몇 문제를 어디서 더 맞을 수 있고 어디서 더 보충을 해야하는지 밖에 남지 않게 됩니다.
목적을 잃어버리고 방향을 상실한 채로 보이지 않는 사람과 계속해서 싸워야 하는 것이 ‘내가 정말로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낳고 자신감 저하, 주기적인 우울을 반복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나는 홀로 싸워야 한다.
무엇보다 공부를 하면서 힘든 점은 이 모든 것들이 오로지 저 ‘혼자’의 것이라는 겁니다. 모든 공부의 과정, 그것을 조절하는 과정뿐만 아니라 힘듦과 어려움까지 견뎌내는 것조차 개인의 몫이라는 점입니다. 함께 공부하는 스터디 조차도 결국에는 내가 넘어야 할 사람들인 것, 결국 이 임용고사 공부 안에서는 다른 사람과 진정 어려움을 함께 나누고 함께 이겨내는 과정은 없습니다. 곁에 사람이 있더라도 자신을 무한경쟁관계로 홀로 떨어뜨려놓을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언제나 항상 외롭고 답답하다고 느낍니다.
공부와 돈
작년 생활비 등의 문제 때문에 학원, 과외와 병행하면서 공부를 했습니다. 과외와 학원이 임용공부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온전히 공부에 열중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부모님에게 얹혀살면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20대 중반의 다 큰 어른이 부모님께 용돈을 달라고 할 때마다 제 자신이 부끄러워집니다. 넉넉한 집이 아니라 학원에서 진행하는 인터넷 강의를 들을 때에도, 독서실을 다닐 때에도 내가 부모님께 짐이 되는 것 같아 마음이 무척 무겁습니다. 갓 제대해서 자기 등록금을 벌려고 공장을 다니고 있는 동생을 보면서 부럽다는 생각을 무척 많이 했습니다.
어머니께서 저녁으로 떡볶이를 만들어 주신 날이 있었습니다. 제가 막 먹으려고 하는 찰나, 동생이 들어오더니 공장에서 저녁을 먹었다고 하더군요. 그 말을 들은 어머니께서 ‘그럼 괜히 만들었네.’라고 말씀하시는 순간, 저는 괜히 발끈해서는 ‘돈 안버는 사람은 서러워서 살겠냐’며 떡볶이를 우적우적 입에 넣었습니다. 정말 별 것 아닌 일인데도 어머니께서 공부하며 돈을 버리고 있는 저와 열심히 일하며 돈을 벌고 온 동생을 차별하는 느낌이 들어 서운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방에 들어와 엉엉 울었습니다. 괜한 자괴감에 별 것 아닌 일로 몇 살이나 어린 동생 앞에서 제 자신을 더 초라하게 만든 것 같아, 못난 제 모습에 엉엉 울었습니다.
이제 인터넷 사이트에 가입하면서 ‘무직’을 선택하는 것도 그렇게 서럽진 않습니다. ‘무직’, ‘백수’로 살아가는 제가 제일 하고 싶은 일은 하루 빨리 나의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일, 직업을 갖는 일입니다. 그리고 사회의 한 개인으로 인정받는 당당한 주체로 살아가는 일입니다.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각종 인턴제를 내놓고, 청년들을 어떻게 하면 비정규직으로 여기저기 돌려먹으며 써먹을 수 있을까 고민하고, 공무원・임용고사에 목매다는 청년들이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뽑는 정원을 늘리지 않는 정부의 정책에 화가 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공부하는 것이 너무 어렵고 힘들어도 그것을 함께 나눌 사람이 없는 것과 정부가 잘못된 정책을 내 놓아도 그것을 함께 막아낼 사람들이 없다는 것이 더 안타깝습니다.
좁은 구멍을 뚫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풍요로움을 위해 공부할 수 있다면, 아이들을 위한 좋은 선생님이 되기 위해서 공부할 수 있다면 수험생인 제 삶이 어떻게 달라질까 생각을 해봅니다.
그 동안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잘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나만 힘들어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더 힘들어하고 우울해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혹시 이 글을 읽으시는 분도 그런 적이 있다면 이렇게 함께 힘들어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으로 작은 위안이라도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대학 졸업 후 청년백수가 당연시 되는 사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청년실업문제 해결을 위해 20대~30대가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청년들이 스스로 고용실태를 조사해서 정부에게 당당히 요구해야 변할 수 있습니다. 많은 참여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