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한 접시에 커피로 쉬어갈 만한 곳

2010.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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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그에게 전화가 왔다. 늘 그랬듯이, 그냥 한 것 같았다. 근데 이상하게도 반가웠다. 남자가 반갑다니, 내 죽을 날도 얼마 남지 않았나보다.

 

성북동 지하철역 앞에서 그의 애마를 발견했다. 역시나 간만에 보는 트레비스였지만 주인을 닮아서인지 여전히 깨끗했고, 정말 주인을 닮아서인지 후미등 주변이 움푹 먹은 상태였다. 어쩌다 이 비싼 녀석을 다치게했냐 물었더니 음주운전을 좀 했다더라. 교양있는 양반이 왜 그랬을까.

내가 함께하지 않아도 될, 그가 혼자 맡기면 그만일 카센터에 같이 들렀다가 카페로 이동했다. 예전부터 간혹, 자기가 꽤 심심할 때면 놀러오라던 그 카페로 향했다. 와중에 내 앞으로 쑥 내미는 게 있었으니, 하.이.바. 참고로 난, 겨울에 얻어타는 바이크가 가장 싫다. 자명하지만 엄청 춥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사내의 뒷 좌석에서, 운전자의 엉덩이와 등짝에 내 하체와 가슴이 밀착되는 느낌은 음, 그만 말하겠다. 그러나 그 날은 별 수 없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당시에 우리가 있던 곳에서 카페까지의 거리는 꽤나 멀었기 때문이다.

 

직업도 번듯하며 게다가 된장남인 그는, 자동차는 일제, 바이크는 이태리제(영국 거였나? 잘 모르겠다. 아무튼 비싼 거다)를 소유했다. 스무살 초반에서 우리 또래까지 누구나 갖고싶어 하는 바이크다. 아, 이런 얘기는 개인의 사적인 정보이니 언급할 건 아니고 여하튼, 그의 라이딩에 이끌려 도착한 곳은 카페 <MASION 179>. 성북동 높은 언덕의 길목에 위치한 그곳은 경치가 좋았다. 겨울 밤의 어둠이 내 무릎까지 내려온 시간이었지만 멀리, 남산의 등선과 우뚝솟은 서울타워가 한 눈에 들어왔다. 뭐 주관적이지만 꽤나 운치를 뽐내던 그곳이었다.

 

들어서자마자 내 마음이 카페에 휘둘리는 느낌이었다. 각기 다른 회사의, 애미 애비가 전부 다를 의자는 대충 여기 저기에 놓여있었고, 천정을 들어내며 노출된 콘크리트에 적당하게 달려있는 백열등이 마치 어렸을 적 내가 놀던 외갓집의 옥탑방을 보는 것 같아 감회가 새로웠다(외갓집도 아닌데 감회까지는...). 또한 그곳에는 카페 주인이 직접 손으로 만들었을 법한 넓직한 책장에 수백권의 서적이 꽂혀있다. 에세이, 디자인 서적, 소설 등등. 아, 가게에 들른 여객이 좋아할 만한 잡지도 꽤 있다. 혹시 내 일기를 훔쳐보는 아낙네 중에 성북동 근방에서 숙식한다면 들러보고 쉬어가며 훑어보시길.

 

거기에 가면 마음씨 곱게생긴 아가씨가 가게를 보는데 와중에 자기가 주인인양 가게를 지키는 고양이가 한 마리 있다. 처음 그와 내가 마주했을 때에는 녀석이 나를 경계하는 듯하여 다가갈 수 없었는데 시간이 흐르며 그것이 느슨해진 것인지 아니면, 나를 경계할 이유가 없다는 걸 깨닳은 것인지, 급힙 친해진 우리 사이에 약간의 스킨십도 오갔다. 말이 길어지는데 아무튼, 바로크 양식의 오래된 의자에 떡 하니 자리잡고 누워있던 녀석은 알 수 없는 동질감이 느껴져서 좋았다. 이상하게 난 포유류가 좋더라. 아, 참고로 녀석의 이름은 '우주'다. 왠지는 모른다. 주인 맘이겠지.

노랗고 따스한 백열등 아래에서, 나는 친구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대략 이 험난한 세상을 어찌 살아가야할 것인지, 이십대 후반까지 얼마를 모아서 집을 어떻게 살 것인지 따위의 고리타분한 이야기 말고, 그냥 어제 뭐했어, 오늘은 뭐했어 정도. 와중에 약 4천원 정도했던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2천5백원 정도였던 빵조각을 씹어 먹었다. 빵에는 베이컨이 없어서 그냥 그랬는데 커피는 괜찮았다. 바리스타 여인네가 은근히 정성껏 잘 뽑아 내어준 것 같았다. 그곳의 바리스타는, 평범한 아메리카노부터 시작하여 달콤한 마키아또는 기본이며, 이외에도 다양한 커피를 손수 뽑아낼 줄 안다. 그러니, 성북동의 작은 카페라하여 메뉴에 관한 걱정은 오버다. 아무튼 성북동의 카페 <MASION 179>는 나와 같은 성향의 인간이라면 한번 즘 가봐도 좋을 곳이다. 참고로 리필은 1천 원이다. 

 

빵 한 접시에 커피로 쉬어갈 만한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