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노동하기 위해 태어난다. 갓난아기때의 울음도 노동이고 학생때의 공부는 노동을 위한 노동이다. 2~60대에 직접적인 노동을 하게 되는데 과연 왜 노동을 해야 하는가? 자신의 의식주를 위해?, 가족을 위해?, 누구를 위해 인간의 노동이 당연시 되는가?결구구, 기득권층의 부를 쌓아주기 위해 노동을 한다.꼭 개미의 일생과 비슷하지 않는가.여왕개미를 위해 태어나서 노동, 살면서 노동, 죽을 때까지 노동,우리의 주위를 둘러보면 우리는 노동 '되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왜 공산주의의 대두가 일어났던 것인지 알 수있는 대목이다.똑같이 태어나서 똑같이 노동하며 같은 세상을 살다가는 '우리'들인데, 누구는 호화스러운.누구는 지리리 궁상맞제 살다 비참하게 죽는가?꼭 일개미와 여왕개미의 일생을 떠올리게 괸다.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토익,토플 따위가 나를 지위 상승시켜 줄 수 없다.다만, 일개미의 상류층이 되게 도와둘 뿐이지.7,80 살다 죽을텐데 2~30년 공부하는게 사치라는 생각,50년의 노동이 허사라는 생각이 든다.이상사회라는건 별게 아니다.'원시공산제'죽으면 천국?지랄을 한다.교회 같은거 목사 먹여살리기지 뭐 있나?하느님,예수님이 있다면 80년 고생만 하다 죽이진 않을 것이다.데카르트가 그랬지,생각하고 있는 '나'말고는 믿을게 없다는, 맞다.모든게 허구고 짜여진 각본속에 학습하고 노동하고, 노동한돈의 1/10을 목사 쳐먹이기 위해 갖다 바친다.워렌 버핏,이건희가 1/10만 교회에 내도 노동자들이 교회를 먹여 살릴일도, 교회가 노동자에게 잘 보이려고 할 일도 없다.왜, 면죄부가 나왔나?A:돈하느님이 모든 사람을 다 사랑하나?A:기득권층만or하느님이 없거나.교회의 구라, 사회의 악의 틀속에 노동자들은 되도 않는 희망을 품고 기득권이 되기 위해 쳐 달린다.하느님이 자신을 도와 줄 거라는 가엾은 믿음을 갖고.행복이란 빨리 죽는 것이다.행복이란 오직 몇백년 전부터 현대판의 귀족인 부자와 성직자 두 계급의 소유물이다.시대,제도가 변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근래 법정의 죽음으로 무소유라는 책이 불티나게 팔렸는데, 무소유-법정은 "무소유가 행복이다"라고 했지만 소유한 기득권층과 '레알'무소유인 거지들을 보라.둘을 비교해도 법정이 '무소유가(거지가)행복이다"라는 말이 나올까?법정 자신은 밥-생계 걱정은 없지 않았는가. 그냥 불공하고 차려주는 밥 쳐묵하고,방에서 디비자고-진짜 어떤게 무소유인가?법정이 거지들 앞에서 "무소유 하거라"라고 지껄였다면 우리는 법정의 다비식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마음속에서 소유욕을 버릴 수 있는건 자신의 가족이 없는,밥 걱정이 없는 스(님)이나 가능 한 것이지, 자신의 가족을 부양해야 할 가장이 무소유 할거야 하고 백수 생활하면 이혼 밖에 더 당할까.법정은 현실을 외면한 이상주의자 일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모든 행복은 경제적 토대위에 존재한다.오직 맑스만이 이시대를 위한 진정한 사상가이다.
개미같은 삶을 사는 그대들에게
인간은 노동하기 위해 태어난다. 갓난아기때의 울음도 노동이고 학생때의 공부는 노동을 위한 노동이다. 2~60대에 직접적인 노동을 하게 되는데 과연 왜 노동을 해야 하는가? 자신의 의식주를 위해?, 가족을 위해?, 누구를 위해 인간의 노동이 당연시 되는가?
결구구, 기득권층의 부를 쌓아주기 위해 노동을 한다.
꼭 개미의 일생과 비슷하지 않는가.
여왕개미를 위해 태어나서 노동, 살면서 노동, 죽을 때까지 노동,우리의 주위를 둘러보면 우리는 노동 '되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왜 공산주의의 대두가 일어났던 것인지 알 수있는 대목이다.
똑같이 태어나서 똑같이 노동하며 같은 세상을 살다가는 '우리'들인데, 누구는 호화스러운.누구는 지리리 궁상맞제 살다 비참하게 죽는가?
꼭 일개미와 여왕개미의 일생을 떠올리게 괸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토익,토플 따위가 나를 지위 상승시켜 줄 수 없다.
다만, 일개미의 상류층이 되게 도와둘 뿐이지.
7,80 살다 죽을텐데 2~30년 공부하는게 사치라는 생각,50년의 노동이 허사라는 생각이 든다.
이상사회라는건 별게 아니다.
'원시공산제'
죽으면 천국?
지랄을 한다.
교회 같은거 목사 먹여살리기지 뭐 있나?
하느님,예수님이 있다면 80년 고생만 하다 죽이진 않을 것이다.
데카르트가 그랬지,생각하고 있는 '나'말고는 믿을게 없다는, 맞다.
모든게 허구고 짜여진 각본속에 학습하고 노동하고, 노동한돈의 1/10을 목사 쳐먹이기 위해 갖다 바친다.
워렌 버핏,이건희가 1/10만 교회에 내도 노동자들이 교회를 먹여 살릴일도, 교회가 노동자에게 잘 보이려고 할 일도 없다.
왜, 면죄부가 나왔나?A:돈
하느님이 모든 사람을 다 사랑하나?A:기득권층만or하느님이 없거나.
교회의 구라, 사회의 악의 틀속에 노동자들은 되도 않는 희망을 품고 기득권이 되기 위해 쳐 달린다.
하느님이 자신을 도와 줄 거라는 가엾은 믿음을 갖고.
행복이란 빨리 죽는 것이다.
행복이란 오직 몇백년 전부터 현대판의 귀족인 부자와 성직자 두 계급의 소유물이다.
시대,제도가 변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근래 법정의 죽음으로 무소유라는 책이 불티나게 팔렸는데,
무소유-법정은 "무소유가 행복이다"라고 했지만 소유한 기득권층과 '레알'무소유인 거지들을 보라.
둘을 비교해도 법정이 '무소유가(거지가)행복이다"라는 말이 나올까?
법정 자신은 밥-생계 걱정은 없지 않았는가. 그냥 불공하고 차려주는 밥 쳐묵하고,방에서 디비자고-진짜 어떤게 무소유인가?
법정이 거지들 앞에서 "무소유 하거라"라고 지껄였다면 우리는 법정의 다비식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마음속에서 소유욕을 버릴 수 있는건 자신의 가족이 없는,밥 걱정이 없는 스(님)이나 가능 한 것이지, 자신의 가족을 부양해야 할 가장이 무소유 할거야 하고 백수 생활하면 이혼 밖에 더 당할까.
법정은 현실을 외면한 이상주의자 일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모든 행복은 경제적 토대위에 존재한다.
오직 맑스만이 이시대를 위한 진정한 사상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