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는 아무것도 모르지만 아는척 하면서 무조건 '너의 말이 맞다' 동감하며 사랑을 싹틔워갔다.
그 순수했던 사랑 속에서 친구의 내면에 스물스물 피어올라오던 욕망.
그 남자애 할아버지는 문방구 아저씨였다.
모든 옷입히기와 색종이들은 다 자기것이 될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그때부터 문방구 며느라가 된듯 문방구의 옷입히기와 색종이를 누리려 하다보니
집안의 반대가 심해 헤어졌다 한다.
그렇다고 물질적 사랑을 한건 아니라고 한다.
이렇게 친구의 첫사랑은 떠나갔다...
친구의 두번째 사랑
친구는 바이올린을 아주 잘 키는 남자아이를 사랑했다.
그 아이의 바이올린을 사랑했고 그 아이의 음악을 사랑했더랬다.
칭찬이 한마디씩 오가며 서로는 가까워 졌다.
메신저를 통해 서로 대화를 하면서 어느덧 고백도 없이 연인으로 접어 들고있었다.
소심한 내 친구, 오타가 심한건 초등학생때도 변함 없었다한다.
한날은 애정표현이라 쓸것을 '야정표현'라 쓰고 머릿속에 19금용어 같다는 인식이 되기전에 이미 엔터는 눌러져 있었더랬다.
아.......?
이렇게 또 사랑은 떠나가는가?
서로 민망해서 공백기를 가졌다. 그래 그때는 순수했으니 충분히 이해하자.
친구는 그 아이의 음악을 너무 사랑해서 (친구는 음악이야 말로 세상의 구속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라 했다.) 학교가 마치고 그 소년의 바이올린을 자주 듣곤 했는데 한날은 그 아이와 왠일인지 이야기가 술술 잘 풀리고 잘 받아쳐주고 해서 이야기를 하는 내내 웃으며 그 아이와 대화를 나누는데....
거울을 보니
이빨에 고춧가루.
왕고춧가루.
큰거.
자긴 그렇게 큰 고춧가루는 태어나서 처음 봤다고 한다.
그렇게... 친구의 사랑은 또다시 떠나갔다...
이제부턴 글쓴이의 첫사랑에 대해 논해보겠다.
난 한국에서 쭈욱 살았지만 어렸을때부터 어머니가 언제나 결혼은 위선이라며 결혼에 대한 부정적인 개념을 주입시켜 주셨다. 그래서인지 내가 15살이 되던해까지 사랑따윈 내 인생에 기록되지 못하였다.
내 첫사랑은 내가 16살때, 2년간 외국에 유학생활을 하면서 찾아왔다.
그렇다, 내 첫사랑은 외국인이다.
꽤 인기도 많고 좀 적당한 근육에 정말 남성미 폴폴 넘치는 녀석이었다.
내 존자 자체도 몰라줄것같던 녀석은 사회시간 내 뒷자리였다.
내 머릿카락을 한올, 두올 뽑으며 장난을 치던 장난끼 많던 녀석에게 사랑의 감정이 조금 조금 피어났더랬다.
원형탈모가 스믈스믈 그 영역을 넓혀가고 내 사랑도 그 영역을 넓혀 갔더랬다.
한날은 그 아이에게 말을 걸고 싶어졌었다. 머리카락이 또 한올 뽑히고 떨리는 오장육부를 부여잡고 뒤돌면서 소심하게 웃으며 'Hi' 라 조심스레 건냈다.
아 참 그놈 너무 잘생겼다.
난 떨고있었다.
그래... 심장도 떨리고 위도 위액분비를 열심히 하며 웨이브를 하고 오장육부가 흔들렸다.
나... 떨고있었다...
손도 떨고
다리도 떨고
눈까지 떨었다.
덜덜덜덜...
그놈이 볼때 난
웃고있고
손도 떨고
다리도 떨고
눈은 경련에
얼굴은 창백했다.
장애인 인상만 남겨주고
나는 그렇게 떠나갔다...
이렇게 내 첫사랑도 떠나갔다...
나의 첫번째 남자
한국에 와서 첫번째 남자친구를 사겼다.
그놈은 드라마킹이였다. 그리고 나이도 어린 '연하'였다.
이놈을 사랑이라 말하진 않으리. 그저 비극적 결말이였다.
친구를 많이 사귀고 지내지 않던 나는 속칭 '어 장 관 리'에 대해서 빠싹하지 않았더랬다.
어쨋거나 난 낚인거다. 사귄지 2달쯤 넘어서 이 새낀 남의 대사를 빌린건진 몰라도
'놓치긴 아깝고 정때문에 사귄다'라는 명언을 남겨주시고
자기를 절친이라 말하며 그 놈 옆에 늘 붙어다니는 놈은 내게 쪼르르 달려와 그 말을 바쳤더랬다.
고춧가루와 눈경련으로 떠나간 우리들의 첫사랑
친구와 한날은 얘기를 하는데 첫사랑 얘기가 나왔다
첫사랑?ㅋㅋ 첫사랑 보단 풋사랑에 가까운 초등학생때를 떠올려 봤다
자 그럼 이제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다.
먼저 내 친구의 첫사랑이다
초등학교 5학년때 친구에게 찾아온 낯선 감정은 그때는 아주 진지했더랬다.
우리는 그 소년을 '곤충왕자'라 부른다. 별명에서 부터 곤충에 대한 사랑이 느껴진다.
맨날 벌레를 키우고 벌레연구하고 항상 '골룸퇴치'를 외치던 지적이고 CREAT한 모습에
그 소년에게 빠졌다한다.
친구는 그 아이를 사랑했다. 아니 좋아했다고 하자.
그 소년은 친구에게 수학 올림피아드 문제를 가르쳐 주었지.
수학 25점 받던 내친구에게.
친구는 아무것도 모르지만 아는척 하면서 무조건 '너의 말이 맞다' 동감하며 사랑을 싹틔워갔다.
그 순수했던 사랑 속에서 친구의 내면에 스물스물 피어올라오던 욕망.
그 남자애 할아버지는 문방구 아저씨였다.
모든 옷입히기와 색종이들은 다 자기것이 될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그때부터 문방구 며느라가 된듯 문방구의 옷입히기와 색종이를 누리려 하다보니
집안의 반대가 심해 헤어졌다 한다.
그렇다고 물질적 사랑을 한건 아니라고 한다.
이렇게 친구의 첫사랑은 떠나갔다...
친구의 두번째 사랑
친구는 바이올린을 아주 잘 키는 남자아이를 사랑했다.
그 아이의 바이올린을 사랑했고 그 아이의 음악을 사랑했더랬다.
칭찬이 한마디씩 오가며 서로는 가까워 졌다.
메신저를 통해 서로 대화를 하면서 어느덧 고백도 없이 연인으로 접어 들고있었다.
소심한 내 친구, 오타가 심한건 초등학생때도 변함 없었다한다.
한날은 애정표현이라 쓸것을 '야정표현'라 쓰고 머릿속에 19금용어 같다는 인식이 되기전에 이미 엔터는 눌러져 있었더랬다.
아.......?
이렇게 또 사랑은 떠나가는가?
서로 민망해서 공백기를 가졌다. 그래 그때는 순수했으니 충분히 이해하자.
친구는 그 아이의 음악을 너무 사랑해서 (친구는 음악이야 말로 세상의 구속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라 했다.) 학교가 마치고 그 소년의 바이올린을 자주 듣곤 했는데 한날은 그 아이와 왠일인지 이야기가 술술 잘 풀리고 잘 받아쳐주고 해서 이야기를 하는 내내 웃으며 그 아이와 대화를 나누는데....
거울을 보니
이빨에 고춧가루.
왕고춧가루.
큰거.
자긴 그렇게 큰 고춧가루는 태어나서 처음 봤다고 한다.
그렇게... 친구의 사랑은 또다시 떠나갔다...
이제부턴 글쓴이의 첫사랑에 대해 논해보겠다.
난 한국에서 쭈욱 살았지만 어렸을때부터 어머니가 언제나 결혼은 위선이라며 결혼에 대한 부정적인 개념을 주입시켜 주셨다. 그래서인지 내가 15살이 되던해까지 사랑따윈 내 인생에 기록되지 못하였다.
내 첫사랑은 내가 16살때, 2년간 외국에 유학생활을 하면서 찾아왔다.
그렇다, 내 첫사랑은 외국인이다.
꽤 인기도 많고 좀 적당한 근육에 정말 남성미 폴폴 넘치는 녀석이었다.
내 존자 자체도 몰라줄것같던 녀석은 사회시간 내 뒷자리였다.
내 머릿카락을 한올, 두올 뽑으며 장난을 치던 장난끼 많던 녀석에게 사랑의 감정이 조금 조금 피어났더랬다.
원형탈모가 스믈스믈 그 영역을 넓혀가고 내 사랑도 그 영역을 넓혀 갔더랬다.
한날은 그 아이에게 말을 걸고 싶어졌었다. 머리카락이 또 한올 뽑히고 떨리는 오장육부를 부여잡고 뒤돌면서 소심하게 웃으며 'Hi' 라 조심스레 건냈다.
아 참 그놈 너무 잘생겼다.
난 떨고있었다.
그래... 심장도 떨리고 위도 위액분비를 열심히 하며 웨이브를 하고 오장육부가 흔들렸다.
나... 떨고있었다...
손도 떨고
다리도 떨고
눈까지 떨었다.
덜덜덜덜...
그놈이 볼때 난
웃고있고
손도 떨고
다리도 떨고
눈은 경련에
얼굴은 창백했다.
장애인 인상만 남겨주고
나는 그렇게 떠나갔다...
이렇게 내 첫사랑도 떠나갔다...
나의 첫번째 남자
한국에 와서 첫번째 남자친구를 사겼다.
그놈은 드라마킹이였다. 그리고 나이도 어린 '연하'였다.
이놈을 사랑이라 말하진 않으리. 그저 비극적 결말이였다.
친구를 많이 사귀고 지내지 않던 나는 속칭 '어 장 관 리'에 대해서 빠싹하지 않았더랬다.
어쨋거나 난 낚인거다. 사귄지 2달쯤 넘어서 이 새낀 남의 대사를 빌린건진 몰라도
'놓치긴 아깝고 정때문에 사귄다'라는 명언을 남겨주시고
자기를 절친이라 말하며 그 놈 옆에 늘 붙어다니는 놈은 내게 쪼르르 달려와 그 말을 바쳤더랬다.
그런데 우리의 해피앤딩?
fuck.
정신 못차리고 헤어진 후에도 괴롭히질 않나 심지어 헤어진 이유 마저도 모른다.
여간 진득이같은 녀석이 아니였다.
드라마킹. 정말 드라마는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치기엔 충분했다.
우린 그 후에도 우리를 웃고 울게 만들던 남자들을 만났고
여전히 솔로로 지내고 있고
싱글족으로의 인생길을 걷고 있다.
웃으면서 기억할수 있는 사랑의 기억들이 초등학생때의 기억이라니...
그때는 세상이 무너질것같이 슬프고 씁쓸했던 나의 성장기를 되돌아보며 지금은 웃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