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호]어른 아이의 혼재:어른아이 부모

inane2010.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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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째다. 감성과 이성의 경계에서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을 바라보는것은.

그리고 상처받은 아이들을, 갈피를 못잡는 아이들을, 방향을 잃은 아이들을 수도 없이 만나게 된다.

말썽을 일으키는 학생이 생기면 처음엔 어떻게 감당해야하나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대부분의 원인은 "부모로 부터의 애정결핍, 또는 잘못된 애정표현" 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한 가정을 꾸리게 되면 시간이 흘러 자녀가 태어난다.

"어른" 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정의와 실제 의미의 관계가 모호하지만, 우리는 법적으로 미성년자의 나이를 넘긴 일개의 사람들을 성인, 또는 어른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모든 어른이 어른다움을 습득하며 성장한것은 아니다. 진정한 의미의 어른이 되려면 한해, 두해 시간이 흐름에 따라 개인이 가진 사소하고 미묘하거나, 때로는 짓눌릴만큼 잔혹한 상처를 스스로 치유해 나가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

 

겉으로 보이지 않는 마음의 상처는, 아이러니하게도, 가족관계에서 생기는 경우가 가장 많다.

가장 사랑하고, 존중하고, 이해하고, 아껴야 할 가족은 가장 가깝기때문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존재이다.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는 어른들 조차 스스로가 성숙한 자아를 가진 어른의 모습을 하고 준비된 상태로 자녀를 맞아들이는것이 아니기 때문에, 만약 부모가 어린시절 상처를 가진 채, 그 상처를 덮어두기만 하고, 치유하지 못하고 성장한 경우, 자녀가 태어나게 되면 부모는 어른아이가 되어 자녀에게 자신이 받았던 상처보다 더 큰 상처를 주게 된다.

 

문제가 있는 아이에게는 분명 문제가 있는 부모가 있다.

하지만 어른 아이인 부모는, 자녀의 문제가, 자녀의 모습이 자기자신을 비추는 거울이라는것을 알지 못한다.

어린시절부터, 혹은 어떤 계기로 만들어진 부모의 상처가 채 치유되지 못한 채 부모가 되고나면,

자녀는 부모의 미숙한 감정과 생활을 그대로 보고 배우고, 영향받을 수 밖에 없다.

 

내가 만났던, 처음에는 이해가 안가고 포용하기 힘들었던 대다수의 학생들 뒤에는,

분명 그런 어른아이의 모습을 한 부모가 있었다.

 

부모는 착각한다.

우리가 자라던 시절 처럼 경제적으로 힘든게 아닌데,

학원도 보내주고, 사달라는 옷도 사주고, 당장 먹을것 걱정 할 일도 없이

나는 고생한다한들, 내 자녀들은 호강시켜주고 있는데

왜 내 아이는 문제를 일으키는것일까.

 

사랑을 충만하게 받은 아이들은 보통 마음이 안정되어 있다.

때로는 애정 과잉이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 문제는 애정결핍으로부터 비롯된다.

 

부모의 잦은 싸움,

맞벌이를 하는 부모의 어쩔 수 없는 무관심.

삶에 대한 진지한 대화와 고찰없이 무조건적으로 공부만 하라는 잔소리.

자라면서 알게 되는 부모의 나약함.

 

성숙하지 못한 어른아이인 부모가 자녀에게 끼치는 영향은

그들이 걱정하는 가정 밖의 해악보다 더욱 심각하다.

 

스스로 누에고치를 깨고 나와 불행하고 아팠던 어린시절을 희미한 미소로 추억하며 현재를 안정되게 살아가는 어른들이 있는가 하면,

 

스스로는 어른이라고 굳게 믿고 있지만, 하는 행위는 차마 어른이라고 할 수 없는 모습을 한 어른들도 많이 있다.

 

우리는 알아야 한다.

요즘애들 참 버릇없다고 혀를 차기 전에, 버릇없게 아이들을 키운 자기자신을 되돌아 봐야 할 것이며,

요즘애들 참 편하다고 치부하기 전에, 마음이 공허하고 텅 빈 자녀의 슬픔을 느껴야 할것이다.

 

이 세상에, 자신이 낳은 자녀가 잘못되길 바라는 부모가 어디있겠냐마는,

자녀가 잘못된 길로 빠지게 되는 근본적인 원인은 대부분 가정이 제공한다.

 

참된 행복과, 보람과, 자아실현의 이유를 찾아주기 이전에,

본인이 이루지 못한 성공의 대체품으로,

혹 자녀가 공부를 잘하거나 똑똑하다면 일종의 자랑거리로,

명문대에 들어가야 하며, 출세해야 하고, 성공해야 하고,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고 세뇌시키며,

아이의 마음을 병들게 만드는것은 부모이다.

 

지난 6년간, 이길에 들어서면서부터 지금까지, 나는 정말 가슴아픈 아이들의 사연에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마주칠 수 밖에 없었고,

지금도 동영상 처럼 생생하게 지나가는 몇명의 아이들이 있다.

 

어머니가 막내동생을 낳고 얼마 되지 않아 집을 나갔던 한 여자아이는,

집안이 부유함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공허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아픈 마음을 숨기고 언제나 활달한 모습을 보이는 한살 터울의 언니와는 달리,

그 아이는 초등학교 3학년인 나이가 무색하게 냉소적이고, 새침하고, 성숙했다.

그러던 어느날, 다른 아이들이 모두 점심먹으러 내려간 사이, 우연히 나와 그 아이 둘만 교실에 남게 되었다.

나와 그 아이 둘만 교실에 남게 된것은 우연이 아닌, 그 아이의 선택이었다.

그아이는 크고 동그란 눈망울을 한참 반짝이며 나를 쳐다보다가 갑자기 와락 안기며 엉엉 울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3학년짜리 아이가 우는 것 치고는 너무도 서럽고 가슴아픈 울음이었다. 조그만 어깨를 들썩이며 한참을 울다가 그 아이가 나를 쳐다보며 한 말을 나는 지금까지 잊을 수 없다.

 

"선생님, 한번만 엄마라고 불러봐도 돼요? 선생님을 보면 엄마 생각이 나서 너무 슬퍼요."

 

당시 처음 영어를 가르치기 시작하던 나는, 겨우 대학 1학년이었던 나는, 그렇게 교실 창가에서 3학년짜리 여자아이를 안고 부둥켜 울었다.

 

"당연히 불러도 되지. 부르고 싶은만큼 불러."

 

한살 터울의 언니, 본인, 그리고 5살짜리 남동생.

어머니는 태어난지 3달밖에 안되는 막내 남동생을 두고 떠날 수 밖에 없는 사연을 가지고 있었고,

그 아이는 아버지를 미워하고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10살의 나이에 지독한 마음의 열병을 앓고 있었던것이다.

 

이후 4년이 흘러 나는 그아이의 아버지가 하는 약국에 찾아간 적이 있다.

워낙 기억에 남는 학생이라고, 잘지내고 있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아이가 공부도 안하고, 말도 안듣는다고 손사래를 쳤다.

나는 4년전에 나에게 아이가 보였던 에피소드를 4년이 지나서야 말씀드렸다.

그분은, 잠시 상념에 잠기시더니, 쓴웃음을 지으시며, 다 내잘못이지요. 라고 말했다.

 

이 아이 뿐 아니라,

영어강사 생활 6년간 아이들을 가르치며 참 많은것을 느끼게 된다.

그나마 위의 아버지 처럼 자신이 자녀에게 뭔가 잘못했다는것을 인지하고 있는 경우에는 좀 낫다.

 

안타까움을 느끼며 마음을 수도 없이 써야했던 다른 학생들의 사례는 셀 수 도 없을만큼 많다.

부모 세대는, 경제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자신들도 이렇게 살아왔는데, 경제적으로 힘든게 하나도 없는 자녀들이 왜 힘들어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아무리 부모 자식간이라도, 마음을 담은 진심어린 애정을 주지않은 관계는 병들게 마련이다.

자녀의 눈이 맑은지, 어떻게 생활 하는지 관찰하는 눈과,

자녀의 생각을 통찰하는 가슴과,

자녀의 말을 들어주는 귀와,

자녀의 길을 열어주는 열린 생각이

 

외식과, 메이커 신발과, MP3와, 게임기보다 중요하다는것을 부모들은 차마 인지하지 못한다.

 

돈으로 이성의 사랑을 살 수 없듯,

돈으로 자녀의 마음을 살 수 는 없다.

 

최근들어 가슴이 답답할 만큼, 마음아픈 학생들을 많이 만나면서,

경제적으로는 분명 예전보다 풍족해진 사회가 됐을지언정,

화목한 가정의 모습을 찾기가 너무 힘들어진 세상이 되어감에 비탄하게 된다.

 

 

그리고 소망한다.

내가 8년전의 열정과, 사랑과, 감성을 잊지 않고,

세상에 물들지 않고,

영어만 가르치는 기계적인 강사가 아닌, 삶의 방향과 진정성을 설정해 줄 수 있는 멘토로서,

학생들을 사랑으로 보듬어 줄 수 있는 강사가 되기를.

 

진심은 반드시 통한다는것을 믿고 있으니까.

그리고 지금까지 그 진심을 통해 아주 조금씩 변화하는 아이들을 지켜봤으니까.

설사 부모가 포기했다 하더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말자.

나와 약속한다.

 

나중에, 나는 어른아이같은 부모가 되지않고,

나를 먼저 되돌아보고, 무한한 사랑으로 아이를 품어줄 수 있기를,

나는 지금 학원에서 언젠가 부모가 되기위한 연습을 수백번 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