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 남녀의 잣대를 분명히 합시다

. 2010.05.11
조회662

아.. 다 날아갔네요.. 열심히 쎴더니 한방에 날아갔습니다.


한글에서 다시 저장해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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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4/26 14:38 시친결 판에 올라온 글

http://pann.nate.com/b201647275

제목 : 시댁제사는 가야하고 친정제사는 안오겠답니다.

내용 : 친정 외할아버지 제사에 신랑이 안간다고 해서 난리가 났네요.

       후기도 있습니다.


두 번째 5/8 14:27 시친결에 올라온 글

http://pann.nate.com/b201736122

제목 : 재혼하신 시어머니의 시외할아버지제사.........윽

내용 : 시외할아버지(남편의 외할아버지) 제사에 시어머니가 오라고 하는데 가기 싫다는 내용.


댓글을 보니 왜 신랑이 친정 제사에 안가느냐 인간이냐..

아래 글은 왜 시외할아버지제사에 가느냐..

동일한 외할아버지 제산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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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하고 싶은 건 2가지입니다.


어떤 사안을 볼땐 제발 동일한 잣대를 가지고 봅시다.


일부 여자분들 상대적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판단하고 지나치게 성대결로 모는 경향을 보입니다. 일반화라 비판하실 수도 있습니다만 두 판의 댓글이나 내용을 보면 딱 그렇습니다.


난 그렇지 않네란 말은 하지 맙시다. 거기에 판 올리고 댓글단 것이 주류가 됩니다. 침묵하는 다수는 의견이 아닙니다. 묵시적 동조하고 하죠.


당신도 남자니 그러할 거란 말은 동의하지 않습니다.


저 손가락 인대가 끊어져 춘제참석을 하지도 못하지만(어머니께서 보시고 걱정하실까 해서) 지난 2주동안 주말마다 장모님 밭에 물고랑내느라 삽질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제사는 원래 그래” 라고 하는 것.


어디서 그러든가요? 주자가례에서도 보지 못했습니다.


차라리 가가례례가 원래라고 합시다.


흔히 큰아들이 제사를 지내는 장자봉사.


장자봉사가 원래가 아니었습니다.

따지면 조선 중기 이전에 자녀윤회봉사(자녀들이 모둔 번갈아 가며 제사를 지냄)가 원칙이었습니다. 상속도 지금처럼 동일했구요.


이는 신사임당의 모친이신 용인 이씨가 자녀들에게 재산을 나눠준 이씨분재기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 자료는 임진왜란 직전의 자료입니다. 한참 성리학이 조선을 지배하던 시기입니다.


책임과 의무가 동일했기에 제사도 남녀없이 돌아가며 지냈습니다.


또한 흔히 4대봉사라 하죠.


부모, 조부, 증조, 고조까지 4대 조상까지의 제사를 지내는 것.

 

제사 많은 집은 1년에 12번이라는 게 여기서 나옵니다.


4대조상 * 2분 = 8번

5대조 이상 조상 함께 모시는 춘제/추제 2번

설/추석 2번 합이 딱 12번입니다.


그런데 이 4대봉사도 기실 조선시대엔 법으로 엄격히 제한되었습니다.


평민들은 부모만을 7품이상 벼슬을 해야 조부모까지 당상관이상 벼슬을 해야 증조 즉 3대봉사할 수 있었고, 사대부만이 4대봉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구한말 갑신정변이후 보첩도 팔고사면서 너도 나도 사대봉사를 하게 되었죠.


집안의 형편에 따라 조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조상을 모신다는 것은 엄격하면서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경건한 마음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개신교식 추모예배를 여기서 예외입니다.


추모예배는 머리는 조아리는 큰절이 없죠. 


제사는 자신을 존재하게 한 조상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아 머리를 땅에 대고 큰 예를 갖추는 것입니다. 추모예배는 그것의 부정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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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좀 하겠습니다.

1. 견해는 동일한 잣대로

2. 제사는 예를 다하되 가족이 합의할 수 있는 방법으로 모두 다함께

3. 남녀의 의견을 원칙과 팩트의 근거하여 서로를 이해하며 합시다.


길어서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