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대 부자였던 우리 아빠, 지금은..

하루를2010.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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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웃긴 얘기만 썼었는데, 어느 날인가 집에 오는 길에

택시 안에서 택시 기사 아저씨랑 얘기 하는데 우리 아빠 생각이 많이 나더라구요.

그래서 두서 없이 글을 썼어요. 쓰고 나서도 너무 길어서 사람들이 지루해 하겠구나 하고

별로 볼 거라는 생각도 안했었는데 많은 분들이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은 평범하게 남들 사는 것처럼 살고 있어요. 남은 빚도 없고, 정말 깨끗하게

우리 가족은 이제 우리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오늘 기분도 좋고, 좋은 일도 있었으니 하루가 즐겁겠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글이 엄청나게 많이 길어요.

재미를 생각하시고 오셨다면 지루할 수 있으니 염두해 두세요 ^^

  

 

제가 이렇게 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혹시라도 제 글을 보시고, 냉했던 부모님과의 사이를 조금이라도

생각하실 수 있는 겨를이 되셨으면 하는 바램도 있고,  

저도 이 글을 쓰면서 다시금 부모님의 소중함을 느껐기 때문입니다.

 

 

 

 

 

 

어렸을 때 까지만 해도 몰랐어요.

제가 88년 생이거든요. 그러니까 현재 스물 세살입니다.

초등학교 때 까진 이른 바 '부자' 였어요. 남들이 말하는 물질적인 부자요.

아파트 68평에 정말 이런말 재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초등학교 때 제가 쓴 돈만 해도 일주일에 10-20만원 정도 했어요.

정말 어마어마 하죠?

 

 

 

아버지가 세탁소 부터 시작하셨대요.

전 그땐 너무 어려서 기억이 나진 않지만.

우리 아버지가 소리를 좀 하셨어요.

그러다 하고 싶었던 판소리를 시작하시면서 학원도 크게 하시고 하셨었죠.

큰아버지 딸들이고 제 동생이고 판소리 배웠고

학원도 정말 잘 됐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 음악 지키자는 사람도 많았고,

어린 아이들도 우리 소리가 좋다고 많이 배우러들 왔죠.

 

 

그때까진 몰랐어요.

그런데 IMF가 터지고 나서 정말 누가 하는 말대로

하루 아침에 쫄딱 망해버렸어요. 학원에 사람이 뚝 끊기고,

학원은 큰데 배우러 오는 사람들이 많지 않으니 돈은 돈대로 빚이 되고,

아버지는 어떻게 해서든 그거 막아보려고 하루 왠 종일.

아니 몇 날 몇 일을 집에 들어 오지 않으시며 사람들에게 구걸 아닌, 구걸을 해야했죠.

 

 

세상 원망 많이 했어요. 그 나이에.

처음에 우리 아빠 소위 잘 나갔을 땐 앞에서 아부 엄청 해가면서

아빠한테 돈 빌려가고, 도움받은 사람들이 아빠가 무너지니까 뒤도 안돌아 보더라구요.

 

 

 

어느 날은 말끔하게 차려 입으신 남자 분이 초인종을 누르길래

문을 열어줬더니, 대뜸 집을 사러 온 사람이다. 하는거 있죠? 너무 놀랬지만,

어느 정도 각오는 했었던 일이라 그 당시 집에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정중하게 사과를 하고 다음에 부모님 계실 때 다시 오라고 말씀 드렸어요.

그리고 혹시나 부모님께서 속상해 할 지 모르니,

딸한테 집을 사러 왔다고 했단 말은 하지 말아 달란 말도 했어요.

근데 알고보니 그 사람이 아빠 20년지기 친구였던거 있죠.

게다가 아빠한테 도움도 제일 많이 받았던...

 

 

집 비우기 몇일 전에 제 동생이 소세지를 되게 좋아하거든요?

근데 TV에서 소세지 요리가 나오는데 제 동생이 그냥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와 맛있겠다." 했는데 엄마가 울먹이시면서

"우리 XX이 엄마가 돈 많이 벌어서 꼭 소세지 사줄게..." 하고 우시는데

그 날 동생이랑 저, 엄마 엄청나게 울었죠.

 

 

 

그렇게 집도 팔리고 하루 아침에 방 한칸짜리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됐는데,

그때가 제가 중학교 3학년이었나? 고등학교 1학년이었나? 그랬을 거예요.

 

 

 

솔직히 처음 집에 딱 들어갔는데, 너무 싫었어요.

원래 살던 집보다 훨씬 작은데다가 우리 집이다 라고 말 하는게 너무 쪽팔린거 있죠?

짐은 많은데 놓을 데가 없어 정리할 틈도 없이 방 안을 가득 채우는 짐들,

발디딜 틈도 없이, 누울 데도 없이 살아야 한다는 게 너무 싫었어요.

그래서 가출을 했어요. 한 일주일 정도.

 

 

 

그러고 나서 아빠에게 집에 한번만 들르라는 문자를 받고

한 2-3일 정도 고민한 후에 집에 들렀는데, 아버지께서 아무 말도 안하고

그냥 TV만 보시더라구요. 한대 때리실 줄 알았어요.

우리 아빠 성격에 가만히 안계실 줄 알았는데 갑자기 흰 봉투를 내밀더라구요.

그리고서 라면 하나 끓여 주시고 밖으로 나가시는데

봉투를 열어보니 3장의 편지가 들어 있더군요.

 

 

 

울 아빠가 어머니랑 나이차이가 좀 나세요. 올해 58이세요.

학교도 초등학교 졸업이시라 한글을 잘 모르시거든요.

근데도 맞춤법 다 틀려가면서도 세장 가득히 너무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너무나 사랑한다는 말, 그리고 아빠 가슴이 너무 아프다는 말이 쓰여 있었어요.

그리고 천원짜리 두개랑 백원짜리 세개가 들어 있더라구요.

얻어 먹지 말고 라면이라도 사 먹고 다니라고 이만큼밖에 못줘서 미안하다고...

너에게 때려서, 혼내서 집에 강제로 있게 하고 싶지 않다고,

네가 이해 할 수 있을 때 그 때 오더라도 아빠는 기다리겠다구요.

 

 

자리에서 일어 날 힘도 없이 펑펑 울어버렸어요.

그리고 집에 들어 와서 그때부터 저도 죽어라 일만 했어요.

17살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바로 8월에 검정고시를 봐서 합격 했어요.

그렇게 고등학교를 남들보다 일찍 졸업하고, 틈틈히 공부하면서 일하면서

엄마, 나, 아빠 이렇게 셋이 죽어라 일만 하면서 이제 좀 먹고 살만 해졌나 싶더니,

일 마치고 돌아 오는 길에 갑자기 전화가 오는 거예요.

받았더니 엄마가 하시는 말이 아빠가 고혈압으로 쓰러졌다고

빨리 병원으로 오라고.

 

 

너무 놀란 마음에 병원으로 달려 갔는데,

아빠가 애써 웃으시면서 이렇게 말씀을 하시는거예요.

 

 

"이제 내가 이렇게 됐으니 어떡하냐. 아빠가 늘 짐만 되는구나..."

 

 

뭐 그런 말이 다있냐고 화를 버럭 내고 돌아 서서 우는데,

아빠가 잠들고 나서 엄마가 그러는거예요.

 

 

"아빠가 횡당보도에서 쓰러졌대.

근데 혹시나 자기 잘 못되면 남은 식구들한테 큰 짐이 될까봐

정말 있는 힘, 없는 힘 다 쥐어 짜내서 병원으로 기어 왔단다."

 

 

우리 집 바로 앞에 횡단 보도만 건너면 병원이 있었어요.

거기까지 무작정 기어가셨대요. 새벽이라 사람도 없고, 차도 없으니 어떡해요.

 

 

그렇게 병원에 있다 퇴원을 하셨는데,

집에 있기가 너무 싫으셨나봐요. 아니 싫다기 보단 가족들 눈치가 보이셨나봐요.

자긴 아직 젊은데 큰 딸이어도 아직 어린 저

그리고 누구보다 사랑하는 마누라만 일 시키는게 너무 죄스러웠나봐요.

그래서 억지로 그 몸 이끌고 퇴원한 지 일주일 만에 막노동 하러 공사판에 가셔서

또 쓰러지셨어요.

 

 

 

처음엔 그나마 걸음걸이가 괜찮았는데...

두번 쓰러지시니까 걸음걸이가 많이 불편해 지셨더라구요.

그리고 많이 약해지셨고, 많이 아이같아 지셨구요.

전 일 하고 와서 틈틈히 아빠 운동 시켜 주는 겸 산책을 같이 하곤 했는데

좁은 동네 한바퀴 도는 거라도 아빠 걸음걸이에 맞추면 1시간 정도 걸렸어요.

 

 

 

한 날은 아빠가 갑자기 여기 서있으라고 하시길래

가만히 서있었더니,

아빠가 제 손을 놓고 절뚝절뚝 앞으로 막 걸어가시더니 하시는 말씀이.

 

 

 

"아빠 걸음걸이 많이 나아졌지? 미안해.

앞으로 많이 연습해서 꼭 행복하게 살게 해줄게 우리 가족..."

 

 

 

너무 눈물이 나는거예요.

안그래도 되는데, 아빠가 그동안 우리 가족한테 해왔던 거에 비하면

내가 이렇게 공부 포기 하고 일하는 것 쯤은 아무것도 아닌데

그동안 아버지를 원망하고 집을 원망했던 제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어요.

제 자신만 생각해서 말로서 아빠에게 상처주고,

아빠 속이나 썩인게 얼마나 후회가 되던지.

 

 

 

지금 저는 경기도에 나와있고,

가족들은 고향에 남아서 열심히 일 하고 있어요.

엄마와 제가 벌어서 빚도 다 갚고 지금은 방 세칸짜리 집에 오순도순 살고 있어요.

남부러울 것 없이 또한, 미래를 위해 열심히 일하며 모으고 살고 있지만,

그때 아버지께 했던 철없던 행동들, 말들을 생각하면 너무 죄스러워요.

그래서 더 열심히 일해서 보내지 말라고 극구 말리시는데도 꼬박 용돈 드리고 있어요.

 

 

 

거동이 불편하셔서 취직도 하실 수 없고,

어디 써주는데가 없다고 푸념하시는 거 한번 보고는 혹여나

아빠 자신이 자괴감에 빠질까봐 애정표현도 많이 해드리고 있어요.

왜 엄마랑 딸은 애정표현이 그래도 수월한데 아버지랑은 조금 어색하잖아요.

저는 엄청나게 하고 있어요. 혹시나 소외감 느끼시지 않게.

 

 

 

사람들이 절뚝이라고 놀리지만, 괜찮아요.

꾸준히 연습하고 또 연습하다보면 조금씩 나아진다고 믿고 있거든요.

그리고 처음보다는 엄청나게 실로 나아졌구요. 

 

 

지금은 아이같이 투정도 많이 부리시고 힘들어 하시지만,

그래도 우리 가족 예전에 물질적으로 부자였다면,

지금은 마음적으로 풍요로운 부자여서 힘들지 않아요.

가끔 과거가 그립긴 하지만,

현실을 인정하고 열심히 살고 있으니까.

우리 가족에게도 해뜰 날 있겠죠!

 

 

 

아빠, 꼭 힘내고 외로워 말고 힘들다고 하지 말고.

사랑해요. 진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