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떼를 쓰지 않으면 사람답게 살 수가 없는 나라입니까? 고임금을 쟁취하기 위해 집단으로 떼를 쓰고, 보상금을 현 시가보다 몇 배 더 많이 받기 위해 떼를 쓰고, 편법으로 복지혜택을 받기 위해, 장애인이 되기 위해, 유공자가 되기 위해 떼를 쓰는 사회 곳곳의 병리적 행태가 정말 싫습니다.
십 수 년 전 우리는 열심히 일하고 땀 흘린 보람을 즐기며 이웃과 함께 더불어 살았습니다. 이제 좀 살만하니 다양한 욕구가 무분별하게 폭발하여 전투적 집단행동 때문에 국가적 폐해는 전쟁처럼 엄청납니다. 비생산적인 떼 문화 후유증으로 나라 경제는 침체되고, 그로 인한 양극화로 힘없는 농어민과 자영업자, 영세 기업 노동자 등 서민들만 5년 전이나 10년 전보다 생활이 더 고달픕니다. 저는 갈등과 분열, 국력 낭비 그리고 사회 불안을 조장하는 떼쓰는 집단이 싫습니다.
저는 떼 문화가 싫지만, 이제 떼를 쓰고 싶어집니다. 떼를 쓰지 않으면 살 수가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선 떼를 쓰지 않으면 개인이 아무리 억울함을 당해도 하소연 할 데가 없고, 해당 기관에 호소해도 관심이 없습니다. 법에 정답이 없는 경우, 그 절차가 확실하지 않은 경우는 아예 상대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저는 저 같이 억울한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 그 사람들은 그 고통을 어떻게 견디는지 알고 싶습니다.
떼를 쓰지 않으면 희망이 없는 현실을 고하고자 이 글을 올립니다.
그럼 저의 억울한 사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4년 전 2006년 6월 20일, 경북대학 병원 호흡기 내과 김00 교수님의 결핵이란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이 결핵이란 병은 최초 6개월간 단 하루도 빠짐없이 약을 복용해야 완치된답니다. 하루라도 약을 거르면 약의 내성으로 치료기간이 1년 이상 더 늘어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정성껏 5개월을 복용했는데 약의 독성이 강해 약물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발바닥이 붓지도 않았는데 퉁퉁 부운 것처럼 통증이 심하고, 발바닥에 무언가 붙은 것처럼 중심이 안 잡혀 잘 넘어지고 걷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의사에게 고통을 호소하니 처방전을 바꿔 계속 복용했습니다. 이 때 의사는 세 번째 바뀐 의사였습니다. 6개월간 의사가 3번이나 바뀌었습니다.
약을 바꿔도 다리는 계속 아팠지만 그렇다고 결핵약을 하루도 안 먹을 수도 없고 해서 아파도 계속 복용했습니다. 6개월 후엔 담당 교수님께서 결핵이 완치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결핵은 완치 됐지만 더 치명적인 병을 얻었습니다. 다리뿐만 아니라 눈에 부작용이 온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앞이 보이지 않아 그리운 사람 얼굴을 알아 볼 수도 없고, 밥을 먹을 땐 가시가 있는지 반찬 색깔이 노란지 빨간지 구별이 안 된다면, 컴퓨터나 신문을 전혀 볼 수도 없고, 글도 쓸 수도 없다면 어떠하겠습니까? 눈이 보이지 않아 사물을 분간 못하는 이 고통을 무어라 표현하겠습니까.
병원 내 안과 의사가 여러 가지 검사를 해봤지만 발병원인을 알지 못했고, 안경도 착용 못하고, 치료 방법도 없답니다. 큰일 났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눈앞이 캄캄하니… 불행의 시작입니다.
내과 의사는 결핵약이 독성이 강한 약물이라 부작용이 있으나 시간이 지나면 해독이 되어 괜찮아진다고, 치료약이 없다고 했습니다. 저는 약도 없이 그저 고통을 참고 견딜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 낫는다는 병이 만 4년이 지나도 낫지 않고 있습니다. 내과에서는 약이 없다고 했고, 안과에서는 4년 동안 매일 눈이 좋아지는 약을 받아먹고 치료를 받았지만, 아직 김치와 깍두기를 구별 못합니다.
4년 동안 발을 헛디뎌 넘어지기가 일상이었고, 그렇게 넘어져 다쳐 입원한 것이 2번이었습니다. 계단에서 넘어져 골절로 한 달간 입원하고, 화장실에서 넘어져 입원하여 병원비가 140만원이 들었습니다.
매일 밤 발의 통증으로 잠을 설치며 차라리 발가락이나 발바닥을 자르고 싶었던 4년간의 고통, 눈은 캄캄하고……. 이 몸으로 이 세상에서 무엇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육체적 고통은 낫겠지 하는 희망이나 갖고 참고 견디지만, 경제적 고통은 어떠하겠습니까.
4년 동안 가장이 일은 못하고, 병원만 찾아다니니 빚덩이가 눈덩이가 되고, 집안 대소 행사나 친척집이나 친구집 그 어떤 모임도 갈 수 없고, 가족끼리 밝게 한 번 웃지도 못하고, 또한 웃을 일도 없으니 사람 사는 게 아니지요.
저는 오직 공부 잘하는 딸아이에게 희망을 걸고, 자신이 원하는 대학 어디든지 보내고 싶었는데 병든 아버지의 무능 때문에, 딸아이는 열심히 했지만 자신이 원하는 대학을 가지 못했습니다. 슬퍼하는 딸아이의 눈물을 보며 저는 피눈물이 쏟았습니다.
내일에 대한 희망이 없고 하루하루 사는 것이 고달파서 눈물 밖에 나지 않습니다. 산등성이에 때늦은 하얀 눈꽃이 피어도, 화창한 봄날 강나루에 벚꽃이 만발해도, 아무 감정이 없습니다. 오늘 하루도 피 말리며 살아가는 저는 대체 어떤 선택을 해야 합니까.
결핵 치료약은 정부(식약청)에서 지정하는 처방이라 합니다. 의사는 정부의 지정대로 처방하는데, 그 중 한 알에서 극소수의 부작용이 있다고 의사들은 다 압니다. 안과와 내과에서 검사할 때 검사하는 분들이 그렇다고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정부 관계 기관에 찾아가 호소해 봤습니다. 과천 청사나 식약청, 복지부 다 갔지만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하는 간판만 있지 정작 아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기관에 호소하기 위해서는, 규정에 맞는 증거가 될 만한 서류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저의 후유증은 신경성이라, 경북대학병원․영남대학병원 등 큰 대학병원에서 전신 MRI를 찍어도 원인이 무엇인지, 증상이 무엇인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뚜렷한 외상이 없으니 진단서나 발병기록 등의 서류도 없고, 그리하여 4년간 고통 속에서 투병한 기록 뿐 법적으로 항변할 자료가 없습니다.
그동안 안과치료비용만 300만원 이상 들었고, 다리는 유명한 한방 병원을 찾아다니며 치료했지만 통증만 점점 더 심해질 뿐 전혀 낫지 않았고 한약 값만 600만원이 들었습니다. 또 대학 병원에서 정밀 검사비용만 250만원이 들었으니, 비용과 시간과 그 고통이 얼마나 큽니까.
그래서 혼자서는 아무리 억울하다고 소리쳐도 허공뿐이란 절박함에 노무현 대통령 방북 전 날 청계천에서 분신을 시도했습니다. 이 때 저는 너무 순진한 생각을 한 것입니다. 떼쓰는 모습이 싫어 단체가 아닌 순수 개인으로서 억울함을 호소하였으나, 주변에 그 많은 언론 기자나 시위 하는 각 단체 담당자가 있었음에도 누구 한 사람 관심 가져 준 사람이 없었습니다. 조선일보에 난 조그마한 사진 한 장이 전부였습니다.
결국 저는 1개월 간 120만원의 화상 수술비용만 잃었습니다. 저는 이 분신 사건 이후 가족의 앞날을 위해 여러 가지 선택과 결심을 해 봤습니다.
분신 사건 이전에 경북대 병원장에게 신체 고통을 호소하며 억울해서 못 살겠다고, 죽고 싶다고 편지를 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죽으면 장기를 기증하겠다고 했습니다. 행정실장의 답장이 걸작입니다. ‘장기 기증은 여기로 연락하세요. 420-0000’
아! 무정한 세상
복지국가인 대한민국의 국민이 국립병원에서 치료 중 약물 후유증으로 폐인이 되어 고통을 외치는데 아무 대답이 없고, 4년간 치료했는데도 증세는 전혀 호전되지 않고, 언제 낫는다는 기약도 없습니다. 살아갈 길은 막막하고 억울함을 하소연 할 데도 없으니, 저는 떼를 써서라도 문을 열고 싶습니다. 문을 열지 못하면 살 수가 없습니다.
약물치료 부작용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떼를 쓰지 않으면 사람답게 살 수가 없는 나라입니까? 고임금을 쟁취하기 위해 집단으로 떼를 쓰고, 보상금을 현 시가보다 몇 배 더 많이 받기 위해 떼를 쓰고, 편법으로 복지혜택을 받기 위해, 장애인이 되기 위해, 유공자가 되기 위해 떼를 쓰는 사회 곳곳의 병리적 행태가 정말 싫습니다.
십 수 년 전 우리는 열심히 일하고 땀 흘린 보람을 즐기며 이웃과 함께 더불어 살았습니다. 이제 좀 살만하니 다양한 욕구가 무분별하게 폭발하여 전투적 집단행동 때문에 국가적 폐해는 전쟁처럼 엄청납니다. 비생산적인 떼 문화 후유증으로 나라 경제는 침체되고, 그로 인한 양극화로 힘없는 농어민과 자영업자, 영세 기업 노동자 등 서민들만 5년 전이나 10년 전보다 생활이 더 고달픕니다. 저는 갈등과 분열, 국력 낭비 그리고 사회 불안을 조장하는 떼쓰는 집단이 싫습니다.
저는 떼 문화가 싫지만, 이제 떼를 쓰고 싶어집니다. 떼를 쓰지 않으면 살 수가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선 떼를 쓰지 않으면 개인이 아무리 억울함을 당해도 하소연 할 데가 없고, 해당 기관에 호소해도 관심이 없습니다. 법에 정답이 없는 경우, 그 절차가 확실하지 않은 경우는 아예 상대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저는 저 같이 억울한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 그 사람들은 그 고통을 어떻게 견디는지 알고 싶습니다.
떼를 쓰지 않으면 희망이 없는 현실을 고하고자 이 글을 올립니다.
그럼 저의 억울한 사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4년 전 2006년 6월 20일, 경북대학 병원 호흡기 내과 김00 교수님의 결핵이란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이 결핵이란 병은 최초 6개월간 단 하루도 빠짐없이 약을 복용해야 완치된답니다. 하루라도 약을 거르면 약의 내성으로 치료기간이 1년 이상 더 늘어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정성껏 5개월을 복용했는데 약의 독성이 강해 약물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발바닥이 붓지도 않았는데 퉁퉁 부운 것처럼 통증이 심하고, 발바닥에 무언가 붙은 것처럼 중심이 안 잡혀 잘 넘어지고 걷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의사에게 고통을 호소하니 처방전을 바꿔 계속 복용했습니다. 이 때 의사는 세 번째 바뀐 의사였습니다. 6개월간 의사가 3번이나 바뀌었습니다.
약을 바꿔도 다리는 계속 아팠지만 그렇다고 결핵약을 하루도 안 먹을 수도 없고 해서 아파도 계속 복용했습니다. 6개월 후엔 담당 교수님께서 결핵이 완치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결핵은 완치 됐지만 더 치명적인 병을 얻었습니다. 다리뿐만 아니라 눈에 부작용이 온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앞이 보이지 않아 그리운 사람 얼굴을 알아 볼 수도 없고, 밥을 먹을 땐 가시가 있는지 반찬 색깔이 노란지 빨간지 구별이 안 된다면, 컴퓨터나 신문을 전혀 볼 수도 없고, 글도 쓸 수도 없다면 어떠하겠습니까? 눈이 보이지 않아 사물을 분간 못하는 이 고통을 무어라 표현하겠습니까.
병원 내 안과 의사가 여러 가지 검사를 해봤지만 발병원인을 알지 못했고, 안경도 착용 못하고, 치료 방법도 없답니다. 큰일 났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눈앞이 캄캄하니… 불행의 시작입니다.
내과 의사는 결핵약이 독성이 강한 약물이라 부작용이 있으나 시간이 지나면 해독이 되어 괜찮아진다고, 치료약이 없다고 했습니다. 저는 약도 없이 그저 고통을 참고 견딜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 낫는다는 병이 만 4년이 지나도 낫지 않고 있습니다. 내과에서는 약이 없다고 했고, 안과에서는 4년 동안 매일 눈이 좋아지는 약을 받아먹고 치료를 받았지만, 아직 김치와 깍두기를 구별 못합니다.
4년 동안 발을 헛디뎌 넘어지기가 일상이었고, 그렇게 넘어져 다쳐 입원한 것이 2번이었습니다. 계단에서 넘어져 골절로 한 달간 입원하고, 화장실에서 넘어져 입원하여 병원비가 140만원이 들었습니다.
매일 밤 발의 통증으로 잠을 설치며 차라리 발가락이나 발바닥을 자르고 싶었던 4년간의 고통, 눈은 캄캄하고……. 이 몸으로 이 세상에서 무엇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육체적 고통은 낫겠지 하는 희망이나 갖고 참고 견디지만, 경제적 고통은 어떠하겠습니까.
4년 동안 가장이 일은 못하고, 병원만 찾아다니니 빚덩이가 눈덩이가 되고, 집안 대소 행사나 친척집이나 친구집 그 어떤 모임도 갈 수 없고, 가족끼리 밝게 한 번 웃지도 못하고, 또한 웃을 일도 없으니 사람 사는 게 아니지요.
저는 오직 공부 잘하는 딸아이에게 희망을 걸고, 자신이 원하는 대학 어디든지 보내고 싶었는데 병든 아버지의 무능 때문에, 딸아이는 열심히 했지만 자신이 원하는 대학을 가지 못했습니다. 슬퍼하는 딸아이의 눈물을 보며 저는 피눈물이 쏟았습니다.
내일에 대한 희망이 없고 하루하루 사는 것이 고달파서 눈물 밖에 나지 않습니다. 산등성이에 때늦은 하얀 눈꽃이 피어도, 화창한 봄날 강나루에 벚꽃이 만발해도, 아무 감정이 없습니다. 오늘 하루도 피 말리며 살아가는 저는 대체 어떤 선택을 해야 합니까.
결핵 치료약은 정부(식약청)에서 지정하는 처방이라 합니다. 의사는 정부의 지정대로 처방하는데, 그 중 한 알에서 극소수의 부작용이 있다고 의사들은 다 압니다. 안과와 내과에서 검사할 때 검사하는 분들이 그렇다고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정부 관계 기관에 찾아가 호소해 봤습니다. 과천 청사나 식약청, 복지부 다 갔지만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하는 간판만 있지 정작 아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기관에 호소하기 위해서는, 규정에 맞는 증거가 될 만한 서류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저의 후유증은 신경성이라, 경북대학병원․영남대학병원 등 큰 대학병원에서 전신 MRI를 찍어도 원인이 무엇인지, 증상이 무엇인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뚜렷한 외상이 없으니 진단서나 발병기록 등의 서류도 없고, 그리하여 4년간 고통 속에서 투병한 기록 뿐 법적으로 항변할 자료가 없습니다.
그동안 안과치료비용만 300만원 이상 들었고, 다리는 유명한 한방 병원을 찾아다니며 치료했지만 통증만 점점 더 심해질 뿐 전혀 낫지 않았고 한약 값만 600만원이 들었습니다. 또 대학 병원에서 정밀 검사비용만 250만원이 들었으니, 비용과 시간과 그 고통이 얼마나 큽니까.
그래서 혼자서는 아무리 억울하다고 소리쳐도 허공뿐이란 절박함에 노무현 대통령 방북 전 날 청계천에서 분신을 시도했습니다. 이 때 저는 너무 순진한 생각을 한 것입니다. 떼쓰는 모습이 싫어 단체가 아닌 순수 개인으로서 억울함을 호소하였으나, 주변에 그 많은 언론 기자나 시위 하는 각 단체 담당자가 있었음에도 누구 한 사람 관심 가져 준 사람이 없었습니다. 조선일보에 난 조그마한 사진 한 장이 전부였습니다.
결국 저는 1개월 간 120만원의 화상 수술비용만 잃었습니다. 저는 이 분신 사건 이후 가족의 앞날을 위해 여러 가지 선택과 결심을 해 봤습니다.
분신 사건 이전에 경북대 병원장에게 신체 고통을 호소하며 억울해서 못 살겠다고, 죽고 싶다고 편지를 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죽으면 장기를 기증하겠다고 했습니다. 행정실장의 답장이 걸작입니다. ‘장기 기증은 여기로 연락하세요. 420-0000’
아! 무정한 세상
복지국가인 대한민국의 국민이 국립병원에서 치료 중 약물 후유증으로 폐인이 되어 고통을 외치는데 아무 대답이 없고, 4년간 치료했는데도 증세는 전혀 호전되지 않고, 언제 낫는다는 기약도 없습니다. 살아갈 길은 막막하고 억울함을 하소연 할 데도 없으니, 저는 떼를 써서라도 문을 열고 싶습니다. 문을 열지 못하면 살 수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