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지방자치단체마다 스토리텔링으로 ‘지역 띄우기’ 날개를 달기 위해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다. 스토리텔링이란 ’스토리(story)+ 텔링(telling)’의 합성어로 상대방에게 설명하고자 하는 내용을 이야기로 재미있게 각색하여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것을 말한다. 문학용어에서 비롯된 Storytelling은 현대에 와서는 기업과 지자체의 문화 마케팅 수단으로 폭넓게 쓰이고 있다.
사람들은 ‘이야기’를 좋아한다. 지방의 설화와 구비전승에 입각한 전설은 스토리텔링에 적합한 재료이다. 특별한 전설이나 민담이 없는 지역에서는 전국적인 공모를 통해서 스스로의 이미지를 만들어가려 하고 있다.
이순신 장군 임진왜란 첫승지 옥포만의 산책로
아름다운 바닷가를 산책하는데 이곳에서 구국의 명장이 임진왜란 최초의 첫 승리를 거둔 곳이라면? 동백꽃이 무리지어 피는 고요한 섬이 유명한 소설가의 사랑이 태동한 곳이었다면? 심금을 울렸던 소설을 탄생시킨 무대였다면?
그 자체에 상상력과 꿈을 만족하게 해주는 창조적인 이야기로 포장한다면 훌륭한 관광지 및 유적지가 되어 사람들이 입소문을 타고 발품을 팔아 찾아들 것이다. 이는 곧 도시 브랜드의 이미지 상승과 지역 주민들의 자긍심 고취와 함께 ‘문화라는 다양성’을 포용한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문화관광지, 나아가서는 글로벌한 명승지로 발돋움하는 것이다.
이야기로 먹고사는 도시
한 지역이 독특한 아이디어로 덕분에 을씨년스러운 패잔병 같은 쇠락한 도시에서 세계적인 관심을 받는 화려한 스타처럼 재기하는 도시를 자주 보았다. 필자가 세계의 문화도시를 연재하며 다루었던 사례 중에 재생도시 영국 게이츠헤드, 중국 북경 따산쯔 798 예술특구, 스코틀랜드의 하이랜드 등이 그 예다.
그 중 ‘하이랜드’가 스토리텔링으로 눈먼 효자 돈을 만지는 대표적인 경우다. 몇 년 전 에든버러 프린지 축제의 문화기행을 위해 스코틀랜드를 다녀온 적이 있었다. 당시 한국 프린지 참가작품이었던 댄스컬 ‘사랑하면 춤을 춰라’의 대표를 만났는데 스코틀랜드의 전설인 ‘네스호의 괴물’을 보러 ‘하이랜드’라는 곳에 꼭 다녀오라고 적극 추천을 하였다.
어린 시절 동화책에서 만나던 전설 속의 괴물 ‘네시’가 산다는 네스호. 스코틀랜드까지 왔는데 이를 안 볼 수가 없었다. 일정 중에 시간을 쪼개 일행들과 일인당 한화 8만 원 가량을 추렴하여 노란 머리, 빨간 머리의 외국인들과 뒤섞여 하이랜드로 가는 투어에 올랐다. 결과는 ‘쉣’이었다. 왕복 8시간을 달려 폐허가 된 성터와 괴물이 있다는 전설의 호수를 둘러보고 돌아오는 코스가 전부였다. 점심은 시어빠진 빵조각 하나도 지급되지 않았고 추위에 떨고 차멀미에 시달리며 피폐해진 일행들의 회색빛 얼굴을 바라보고는 8만 원으로 먹을 수 있었던 맛있는 음식들을 이야기하며 이빨을 꽉 깨물었다.
여행이라는 추억의 실루엣은 그리움이 된다. 당시의 웃지 못할 고생담도 지나고 나니 추억이 되어 여행을 좋아하는 지인들을 만나면 그때 이야기를 하며 요절복통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되었다.
네스호는 전설 하나로 스코틀랜드의 대표적인 스토리텔링 문화상품이 되었다. 이야기 하나로도 먹고 살 수 있다. 이제는 산업사회가 아니라 문화산업을 연구하고 생산해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거제포로수용소에 조성된 함흥철수작전기념탑에서 김주영 소설가와 작가들
명품문화관광도시를 지향하는 블루시티 거제시에서도 이와 같은 문화마케팅을 시도하기 위해 예술을 활용한 독창적인 스토리텔링을 추진하고 있다.
상상력은 최대의 경쟁력
지난 4월 29일 거제문화예술회관에서는 국내의 유명 화가들과 소설가들을 초청하여 2박 3일 동안 문화답사와 강연회, 세미나 등의 행사를 통해 함께 연구하고 고민하며 시간을 가졌다. 베스트셀러 '객주', '멸치', '홍어' 등과 은관문화훈장에 빛나는 소설가 김주영, ‘한국일보 문학상’, ‘이효석 문학상’을 수상한 성석제, 현대문학계 최고의 권위 ‘이상 문학상’을 수상한 전경린, 권지예, 박상우, 정미경, 지난해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MBC 드라마 선덕여왕의 원작인 '미실'의 작가인 김별아 등 이름만으로도 한국 현대문학의 저력을 실감할 수 있는 소설가들과 국내 유명 화가들과 함께 거제도를 탐방하였다.
거제는 클 巨, 구할 濟를 쓴다. ‘크게 구한다’는 뜻으로 한때 21만 명의 포로를 수용한 역사의 상흔이 있는 곳이다. 지금도 고현에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이 있어 지난 시대의 아픔을 기억하는 노인들과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들이 관광코스로 즐겨 찾는 곳이다.
김주영 소설가의 특강 ‘한국전쟁 60주년 기념, 문화산업과 스토리텔링’
행사 첫날, 거제포로수용소 유적공원에서 ‘거제목요문화예술대학’ 학생들과 함께 김주영 소설가의 특별초청강연회 ‘한국전쟁 60주년 기념, 문화산업과 스토리텔링’이 있었다. 작가 본인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예로 들며 ‘상상력이 곧 경쟁력’이라는 주제가 가슴에 와 닿았다. 뒤이어 작가들과 함께 지역 정체성이 녹아 있는 옥포대첩기념공원, 대우조선해양, 청마생가, 폐왕성 등을 둘러보았다.
지심도를 이야기하다
필자는 ‘태어난 모든 것은 살아 있는 동안 사랑이 과정이자 목적이다’라는 문장을 좋아한다. 소설가 윤후명 선생의 책 중에 나오는 대목이다. 특히 소설의 배경지인 동백섬 지심도가 좋았다. 하늘에서 보면 섬의 모양이 마음 心자를 닮아 이름하였다는 지심도는 소설가 윤후명의 ‘팔색조’라는 소설의 배경이며 TV문학관에 ‘새의 초상’이라는 드라마로도 방영되었다. 천연기념물로 깨끗한 환경에서만 살아간다는 여덟 가지의 색깔을 가진 팔색조가 살고 있다고 한다.
‘바다 위의 정원’이라 일컫는 외도는 사람의 인공적인 손길로 얄밉도록 예쁘게 꾸며져 있는데 이곳은 아직 개발되지 않은 미지의 땅이라 그 느낌이 세상물정을 모르는 시골 머슴아 같은 순박함이 느껴진다. 선착장에서 10여 분을 걸어 섬의 끝인 ‘마끝’에 닿으면 맑고도 투명하여 바다 속까지 환하게 보이는 물속과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의 장관이 정체 모를 그리움을 부른다. 바다는 사파이어와 비취색의 황홀한 색감으로 태양빛에 반사되며 아름답게 일렁인다.
지심도의 ‘스토리로 문화 만들기’의 시작은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우중 회장의 대우조선 시절, 1983년 윤후명 소설가를 불러 거제도에 대한 소설을 몇 편 쓰라고 하셨다고 한다. 그때 몇 달간 체류하며 거제도를 집필실로 창작의 나래를 폈고 그 인연은 지속되어 지심도에서 사랑도 이루어졌다. 작년에 거제문화예술회관의 주최로 윤후명 작가와 거제도 문화탐방과 전시회, 낭독회, 도서출판 등을 통해 지심도를 전국적 홍보를 하였다.
거제도의 소요유(逍遙遊)
섬을 떠나는 마지막 배에 올라 다시 섬에서 섬으로 이동한다. 포구 장승포로 되돌아오는 길, 저 멀리 언덕 위에 커다란 범선의 형상이 보인다. 문화예술로의 항해를 하는 ‘거제문화예술회관’의 위용이다. 아름다운 조형미로 한국건축가대상을 받은 이 건축물은 거제시의 자부심이다. 세계 1위 조선도시라는 경제적 위상에 걸맞은 창의적인 기획력으로 관광도시의 고정적 이미지에서 탈피하여 예술적인 명품도시 거제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블루시티 거제’의 랜드마크이다. 밤이 되어 불을 밝히면 검은 바다 위를 항해하는 돛단배 같다.
거제도에서 느긋하게 뒷짐을 지고 아름다운 풍경 속을 유람하고 있노라면 장자의 ‘소요유’가 떠오르며 영화제목으로도 쓰인 문장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라는 생각이 든다. 거제도의 빼어난 비경은 너무 많아 나열하기도 숨 가쁠 정도이다. 진시황의 특명으로 서불이 불로초를 구하러왔다가 들린 ‘우제봉’, 신선이 노닌다는 ‘신선대’와 ‘바람의 언덕’, 홍포, 여차 가는 길의 ‘대소병대도’ 등. 이 풍광들은 영화 ‘종려나무 숲, 파랑주의보, 흑수선, 은행나무 침대’ 등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해금강 입구 신선대의 소설가들. 김별아, 하성란, 이현수, 전경린, 권지예, 정미경(오른쪽부터)
최상의 아름다움을 발견했을 때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다” 쪽빛 남해바다 정답게 출렁이는 한려해상 국립공원. 올망졸망 섬 들 중 하나인 수려한 거제도를 수식하는 말로 중국의 대학자 이택후의 화하미학(華夏美學)에 나오는 ‘천지는 크게 아름다우나 말하지 않는다’를 인용하고 싶다.
작가들은 거제도에 몇 번 오기는 했지만 이렇게 구석구석 가보지는 못했는데 아름다운 곳이 너무 많아 여러 번 감탄하였다고 말하며 섬의 진면목을 보았기에 창작에 많은 도움이 되겠다고 하였다.
행사 이틀째 날인 4월의 마지막 밤, 거제시 고현항 뉴거제크루즈해양관광(주)의 후원으로 크루즈 선상에서 '선상 문화 세미나'를 개최하여 문화거제를 만들기 위해 ‘폐교를 활용한 복합창작스튜디오의 필요성’에 대해 소설가 박상우, 화가 최석운, 박병춘 교수의 발제로 토론을 열었다.
폐교를 둘러보는 작가들
사흘째 날은 고려 의종의 역사적 회한이 남아있는 폐왕성과 생명파 시인 청마 유치환 생가를 둘러보는 것을 마지막으로 2박 3일의 행사가 막을 내렸다. 기행 후 소설가는 거제도 관련 산문을 집필하고, 화가는 그림을 그려서 문학그림집 단행본 출간과 전시회를 연다. 그들의 예술적 시각에 의해 표현된 거제도는 어떤 감동과 메시지를 선사할지 자못 궁금하다.
멋진 작품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우선 상상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예술적 지성이 반드시 뒤따라야 하는데 ‘예술적 지성’이란 현실과 상상력 사이의 점들을 연결할 수 있는 능력이다. 상상력은 가능성을 파악하고, 지성은 그 가능성을 머릿속에서 가공하는데 그 전문가들이 예술가들이다. 여행의 본질은 '발견'인데 범인들은 느끼지 못한 거제도 속살을 그려낼 '프로선수‘들에 대한 기대가 크다.
예술은 힘이 세다.
‘스토리텔링을 통한 경쟁력 있는 문화도시 만들기’의 일환으로 창의적이고 개성 있는 소설가와 화가들이 함께 특정 도시를 집중적으로 탐방하여 문학 작품과 그림을 그리는 기획은 전국에서 최초로 시행되었다. 또한, 미술과 문학의 만남을 통한 ‘복합창작스튜디오’ 추진도 대한민국 최초의 시도이다.
거제도 아트투어에 참가한 소설가들의 단행본
여행 가방이 가득 차 있으면 다른 것을 담을 공간이 없다. 새로운 것을 담으려면 구질구질하고 무거운 짐들은 버려야 한다. 그래야 여행길도 편하다. 거제도에 대한 타성에 젖은 이미지가 아니라 매력적이며 감동적인 체험을 공감하게 만들어 수많은 사람의 선택을 받았으면 한다.
이번 기획을 함께하며 공공성과 전문성을 갖춘 문화재단의 사명감으로 앞으로도 독창적인 문화도시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지속적, 체계적으로 진행했으면 한다고 생각했다. 해양생태 문화관광도시, 체류형 휴양도시 거제시는 대한민국 일류, 나아가 지구촌의 문화적 명품도시가 되기 위해 지역 정체성과 역사, 거제도의 오늘을 잘 버무려 창조적인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을 가열차게 추진했으면 좋겠다.
거제도, 예술로 스토리텔링한다
거제도, 예술로 스토리텔링한다
문화칼럼니스트 윤혜영 geo0511@hanmail.net
우리나라 지방자치단체마다 스토리텔링으로 ‘지역 띄우기’ 날개를 달기 위해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다. 스토리텔링이란 ’스토리(story)+ 텔링(telling)’의 합성어로 상대방에게 설명하고자 하는 내용을 이야기로 재미있게 각색하여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것을 말한다. 문학용어에서 비롯된 Storytelling은 현대에 와서는 기업과 지자체의 문화 마케팅 수단으로 폭넓게 쓰이고 있다.
사람들은 ‘이야기’를 좋아한다. 지방의 설화와 구비전승에 입각한 전설은 스토리텔링에 적합한 재료이다. 특별한 전설이나 민담이 없는 지역에서는 전국적인 공모를 통해서 스스로의 이미지를 만들어가려 하고 있다.
이순신 장군 임진왜란 첫승지 옥포만의 산책로
아름다운 바닷가를 산책하는데 이곳에서 구국의 명장이 임진왜란 최초의 첫 승리를 거둔 곳이라면? 동백꽃이 무리지어 피는 고요한 섬이 유명한 소설가의 사랑이 태동한 곳이었다면? 심금을 울렸던 소설을 탄생시킨 무대였다면?
그 자체에 상상력과 꿈을 만족하게 해주는 창조적인 이야기로 포장한다면 훌륭한 관광지 및 유적지가 되어 사람들이 입소문을 타고 발품을 팔아 찾아들 것이다. 이는 곧 도시 브랜드의 이미지 상승과 지역 주민들의 자긍심 고취와 함께 ‘문화라는 다양성’을 포용한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문화관광지, 나아가서는 글로벌한 명승지로 발돋움하는 것이다.
이야기로 먹고사는 도시
한 지역이 독특한 아이디어로 덕분에 을씨년스러운 패잔병 같은 쇠락한 도시에서 세계적인 관심을 받는 화려한 스타처럼 재기하는 도시를 자주 보았다. 필자가 세계의 문화도시를 연재하며 다루었던 사례 중에 재생도시 영국 게이츠헤드, 중국 북경 따산쯔 798 예술특구, 스코틀랜드의 하이랜드 등이 그 예다.
그 중 ‘하이랜드’가 스토리텔링으로 눈먼 효자 돈을 만지는 대표적인 경우다. 몇 년 전 에든버러 프린지 축제의 문화기행을 위해 스코틀랜드를 다녀온 적이 있었다. 당시 한국 프린지 참가작품이었던 댄스컬 ‘사랑하면 춤을 춰라’의 대표를 만났는데 스코틀랜드의 전설인 ‘네스호의 괴물’을 보러 ‘하이랜드’라는 곳에 꼭 다녀오라고 적극 추천을 하였다.
어린 시절 동화책에서 만나던 전설 속의 괴물 ‘네시’가 산다는 네스호. 스코틀랜드까지 왔는데 이를 안 볼 수가 없었다. 일정 중에 시간을 쪼개 일행들과 일인당 한화 8만 원 가량을 추렴하여 노란 머리, 빨간 머리의 외국인들과 뒤섞여 하이랜드로 가는 투어에 올랐다. 결과는 ‘쉣’이었다. 왕복 8시간을 달려 폐허가 된 성터와 괴물이 있다는 전설의 호수를 둘러보고 돌아오는 코스가 전부였다. 점심은 시어빠진 빵조각 하나도 지급되지 않았고 추위에 떨고 차멀미에 시달리며 피폐해진 일행들의 회색빛 얼굴을 바라보고는 8만 원으로 먹을 수 있었던 맛있는 음식들을 이야기하며 이빨을 꽉 깨물었다.
여행이라는 추억의 실루엣은 그리움이 된다. 당시의 웃지 못할 고생담도 지나고 나니 추억이 되어 여행을 좋아하는 지인들을 만나면 그때 이야기를 하며 요절복통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되었다.
네스호는 전설 하나로 스코틀랜드의 대표적인 스토리텔링 문화상품이 되었다. 이야기 하나로도 먹고 살 수 있다. 이제는 산업사회가 아니라 문화산업을 연구하고 생산해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거제포로수용소에 조성된 함흥철수작전기념탑에서 김주영 소설가와 작가들
명품문화관광도시를 지향하는 블루시티 거제시에서도 이와 같은 문화마케팅을 시도하기 위해 예술을 활용한 독창적인 스토리텔링을 추진하고 있다.
상상력은 최대의 경쟁력
지난 4월 29일 거제문화예술회관에서는 국내의 유명 화가들과 소설가들을 초청하여 2박 3일 동안 문화답사와 강연회, 세미나 등의 행사를 통해 함께 연구하고 고민하며 시간을 가졌다. 베스트셀러 '객주', '멸치', '홍어' 등과 은관문화훈장에 빛나는 소설가 김주영, ‘한국일보 문학상’, ‘이효석 문학상’을 수상한 성석제, 현대문학계 최고의 권위 ‘이상 문학상’을 수상한 전경린, 권지예, 박상우, 정미경, 지난해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MBC 드라마 선덕여왕의 원작인 '미실'의 작가인 김별아 등 이름만으로도 한국 현대문학의 저력을 실감할 수 있는 소설가들과 국내 유명 화가들과 함께 거제도를 탐방하였다.
거제는 클 巨, 구할 濟를 쓴다. ‘크게 구한다’는 뜻으로 한때 21만 명의 포로를 수용한 역사의 상흔이 있는 곳이다. 지금도 고현에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이 있어 지난 시대의 아픔을 기억하는 노인들과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들이 관광코스로 즐겨 찾는 곳이다.
김주영 소설가의 특강 ‘한국전쟁 60주년 기념, 문화산업과 스토리텔링’
행사 첫날, 거제포로수용소 유적공원에서 ‘거제목요문화예술대학’ 학생들과 함께 김주영 소설가의 특별초청강연회 ‘한국전쟁 60주년 기념, 문화산업과 스토리텔링’이 있었다. 작가 본인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예로 들며 ‘상상력이 곧 경쟁력’이라는 주제가 가슴에 와 닿았다. 뒤이어 작가들과 함께 지역 정체성이 녹아 있는 옥포대첩기념공원, 대우조선해양, 청마생가, 폐왕성 등을 둘러보았다.
지심도를 이야기하다
필자는 ‘태어난 모든 것은 살아 있는 동안 사랑이 과정이자 목적이다’라는 문장을 좋아한다. 소설가 윤후명 선생의 책 중에 나오는 대목이다. 특히 소설의 배경지인 동백섬 지심도가 좋았다. 하늘에서 보면 섬의 모양이 마음 心자를 닮아 이름하였다는 지심도는 소설가 윤후명의 ‘팔색조’라는 소설의 배경이며 TV문학관에 ‘새의 초상’이라는 드라마로도 방영되었다. 천연기념물로 깨끗한 환경에서만 살아간다는 여덟 가지의 색깔을 가진 팔색조가 살고 있다고 한다.
‘바다 위의 정원’이라 일컫는 외도는 사람의 인공적인 손길로 얄밉도록 예쁘게 꾸며져 있는데 이곳은 아직 개발되지 않은 미지의 땅이라 그 느낌이 세상물정을 모르는 시골 머슴아 같은 순박함이 느껴진다. 선착장에서 10여 분을 걸어 섬의 끝인 ‘마끝’에 닿으면 맑고도 투명하여 바다 속까지 환하게 보이는 물속과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의 장관이 정체 모를 그리움을 부른다. 바다는 사파이어와 비취색의 황홀한 색감으로 태양빛에 반사되며 아름답게 일렁인다.
지심도의 화가들. 필자,오원배 동국대 교수, 황주리, 박병춘 덕성여대 교수,강경구, 최석운, 이인 화백(오른쪽 부터)
지심도의 ‘스토리로 문화 만들기’의 시작은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우중 회장의 대우조선 시절, 1983년 윤후명 소설가를 불러 거제도에 대한 소설을 몇 편 쓰라고 하셨다고 한다. 그때 몇 달간 체류하며 거제도를 집필실로 창작의 나래를 폈고 그 인연은 지속되어 지심도에서 사랑도 이루어졌다. 작년에 거제문화예술회관의 주최로 윤후명 작가와 거제도 문화탐방과 전시회, 낭독회, 도서출판 등을 통해 지심도를 전국적 홍보를 하였다.
거제도의 소요유(逍遙遊)
섬을 떠나는 마지막 배에 올라 다시 섬에서 섬으로 이동한다. 포구 장승포로 되돌아오는 길, 저 멀리 언덕 위에 커다란 범선의 형상이 보인다. 문화예술로의 항해를 하는 ‘거제문화예술회관’의 위용이다. 아름다운 조형미로 한국건축가대상을 받은 이 건축물은 거제시의 자부심이다. 세계 1위 조선도시라는 경제적 위상에 걸맞은 창의적인 기획력으로 관광도시의 고정적 이미지에서 탈피하여 예술적인 명품도시 거제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블루시티 거제’의 랜드마크이다. 밤이 되어 불을 밝히면 검은 바다 위를 항해하는 돛단배 같다.
거제도에서 느긋하게 뒷짐을 지고 아름다운 풍경 속을 유람하고 있노라면 장자의 ‘소요유’가 떠오르며 영화제목으로도 쓰인 문장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라는 생각이 든다. 거제도의 빼어난 비경은 너무 많아 나열하기도 숨 가쁠 정도이다. 진시황의 특명으로 서불이 불로초를 구하러왔다가 들린 ‘우제봉’, 신선이 노닌다는 ‘신선대’와 ‘바람의 언덕’, 홍포, 여차 가는 길의 ‘대소병대도’ 등. 이 풍광들은 영화 ‘종려나무 숲, 파랑주의보, 흑수선, 은행나무 침대’ 등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해금강 입구 신선대의 소설가들. 김별아, 하성란, 이현수, 전경린, 권지예, 정미경(오른쪽부터)
최상의 아름다움을 발견했을 때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다” 쪽빛 남해바다 정답게 출렁이는 한려해상 국립공원. 올망졸망 섬 들 중 하나인 수려한 거제도를 수식하는 말로 중국의 대학자 이택후의 화하미학(華夏美學)에 나오는 ‘천지는 크게 아름다우나 말하지 않는다’를 인용하고 싶다.
작가들은 거제도에 몇 번 오기는 했지만 이렇게 구석구석 가보지는 못했는데 아름다운 곳이 너무 많아 여러 번 감탄하였다고 말하며 섬의 진면목을 보았기에 창작에 많은 도움이 되겠다고 하였다.
행사 이틀째 날인 4월의 마지막 밤, 거제시 고현항 뉴거제크루즈해양관광(주)의 후원으로 크루즈 선상에서 '선상 문화 세미나'를 개최하여 문화거제를 만들기 위해 ‘폐교를 활용한 복합창작스튜디오의 필요성’에 대해 소설가 박상우, 화가 최석운, 박병춘 교수의 발제로 토론을 열었다.
폐교를 둘러보는 작가들
사흘째 날은 고려 의종의 역사적 회한이 남아있는 폐왕성과 생명파 시인 청마 유치환 생가를 둘러보는 것을 마지막으로 2박 3일의 행사가 막을 내렸다. 기행 후 소설가는 거제도 관련 산문을 집필하고, 화가는 그림을 그려서 문학그림집 단행본 출간과 전시회를 연다. 그들의 예술적 시각에 의해 표현된 거제도는 어떤 감동과 메시지를 선사할지 자못 궁금하다.
멋진 작품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우선 상상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예술적 지성이 반드시 뒤따라야 하는데 ‘예술적 지성’이란 현실과 상상력 사이의 점들을 연결할 수 있는 능력이다. 상상력은 가능성을 파악하고, 지성은 그 가능성을 머릿속에서 가공하는데 그 전문가들이 예술가들이다. 여행의 본질은 '발견'인데 범인들은 느끼지 못한 거제도 속살을 그려낼 '프로선수‘들에 대한 기대가 크다.
예술은 힘이 세다.
‘스토리텔링을 통한 경쟁력 있는 문화도시 만들기’의 일환으로 창의적이고 개성 있는 소설가와 화가들이 함께 특정 도시를 집중적으로 탐방하여 문학 작품과 그림을 그리는 기획은 전국에서 최초로 시행되었다. 또한, 미술과 문학의 만남을 통한 ‘복합창작스튜디오’ 추진도 대한민국 최초의 시도이다.
거제도 아트투어에 참가한 소설가들의 단행본
여행 가방이 가득 차 있으면 다른 것을 담을 공간이 없다. 새로운 것을 담으려면 구질구질하고 무거운 짐들은 버려야 한다. 그래야 여행길도 편하다. 거제도에 대한 타성에 젖은 이미지가 아니라 매력적이며 감동적인 체험을 공감하게 만들어 수많은 사람의 선택을 받았으면 한다.
이번 기획을 함께하며 공공성과 전문성을 갖춘 문화재단의 사명감으로 앞으로도 독창적인 문화도시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지속적, 체계적으로 진행했으면 한다고 생각했다. 해양생태 문화관광도시, 체류형 휴양도시 거제시는 대한민국 일류, 나아가 지구촌의 문화적 명품도시가 되기 위해 지역 정체성과 역사, 거제도의 오늘을 잘 버무려 창조적인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을 가열차게 추진했으면 좋겠다.
학동 몽돌해수욕장에서의 작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