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이라크는 다시 미국과 전쟁을 벌였다. 여기서 미국은 이라크 참전의 명분을 유엔 안보리 회의를 통해서 사담 후세인이 대량살상무기를 다량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듣고 이를 곧 또 다시 쿠르드족의 대량 살상에 사용 할 것이라는 첩보를 입수했음을 밝혔다. 때문에 악의 축인 이라크의 후세인정권을 정의의 이름으로 처벌하기 위해 미국은 전쟁을 일으켰다. 다시 말하면 말 그대로 미국판 출사표라 할 수 있을까?
하지만 결국 이라크전쟁에서 미국이 말한 결정적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미 이라크 전쟁은 끝났고 사담 후세인을 실각했으며, 미군정이 실시되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미국이 석유를 차지하기 위해 벌인 더러운 전쟁이란 말까지 돌았을 정도다.
즉 설령 명분에 부합하는 실제적인 증거가 없다고 하더라도, 단순히 명분만을 가지고 한 나라를 칠 수도 있고, 때로는 그 명분을 앞세워 시민을 무차별 사살할 수도 있다. 그런 측면에서 5.18과 관련된 치열한 문제점에 대한 고찰을 하고자 한다.
흔히 이른바 5.18을 광주폭동이라 말하며, 배후에 북한공작원이 개입했다는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들의 주장에 대해 좀더 논리적인 검증이 필요 할 것 같다. 즉 북한공작원이 단순가담을 넘어서 실제적인 폭동을 일으킨 주체세력이 되는 결정적 증거가 발견되어야 한다. 또한 이 증거는 보수와 진보 모두가 수긍하는 매우 객관적인 증거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여기에 대한 어떤 증거도 남아 있지 않다. 또한 몇몇 북한 공작원 침투에 대한 증언이 있긴 하지만 만약 그것이 사실이었다면 왜? 광주청문회에서라든지 후일 수사과정에서 한번도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았는지 궁금하다. 솔직히 말해서 이것이 진실이라면 왜? 굳이 1988년에 이 일을 제기하지 않고 지금에 와서야 이런 논지를 내세우는 것일까? 노태우가 비록 직선재개헌을 통해 대통령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반은 신군부에 속해 있던 사람이다. 즉 그가 적극적으로 광주문제를 청산할 의지는 애초부터 기대하기조차 어려웠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 이 문제를 제기했다면 노태우에겐 정국전환용으로도 유용했을 텐데 왜 정작 유리한 시점에선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는지 궁금하다. 그것도 광주문제가 20년이 지난 이후에야 비로서 본격적으로 광주폭동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는 점이다. 이것이야 말로 희대의 미스테리가 아닌가?
즉 다시 말하면 정작 그 시대의 당사자들은 여기에 대해 별다른 해명이나 언급이 있는 직접적인 물증이 없다. 게다가 인터넷이 주로 1980년대 이후의 태생이 자주 이용하는 곳임을 생각해 본다면, 그리고 이런 논의가 주로 책이 아닌 인터넷으로 부터 발생했다면 충분히 이 논의자체가 사실성을 가지고 있는지 조차 의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 그 시대의 당사자도 아니며, 구체적인 정식 수사기록에서 조차도 없는 내용을 도데체 어디서 찾았으며 그 소스는 어디에 있는가? 그들이 진정 광주를 폭동이라 말하고 싶다면 여기에 대한 정확한 소스를 공개해야 한다. 정확한 펙트가 없는 추측성 주장을 우리는 전문용어로 이미 다 알고 있다. 즉 그들의 말은 선동 밖에는 냉정하게 볼 수 밖에 없다.
게다가 더 희한한 것은, 그들의 주장이 당시 신군부의 주장과 거의 일치한다는 점이다. 즉 신군부가 광주에 게엄군을 보낸 이유가 바로, 북한의 사주를 받고 체제정복을 일으키려는 남한내의 빨갱이 세력의 조직적인 선동이며, 따라서 진압과정에서 불미스런 무고한 시민이 희생되었다는 점이다. 또한 신군부는 이 사건의 배후로 고 김대중 전대통령을 지목하였다. 신군부는 그를 내란죄로 규정하고 사형까지 시키려 했다. 이미 지난 시간에서 이 사건은 매우 많은 조작이 있었다는 것을 공식수사기록과 관련 문건을 통해 충분히 물증이 확증되어 있다.
더 중요한 점은 이런 사건의 전말이 드러나게 된 1995년은 보수주의적인 정권인 김영삼 대통령시절이 있었다는 점이다. 사실 그는 이른바 1990년 삼당통합을 통해 지금의 한나라당의 전신인 민자당에 들어갔기 때문에 아무래도 역사청산이 껄끄러울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결국 5.18특별법을 제정해서 이 사건을 다시 재수사 했기 때문에 이 수사에 대한 물증은 상당히 객관적이다. 만약 그때 이 이야기가 나왔고 그래서 논의가 진행되었다면 어쩌면 당시 북한과의 관계가 악화되었다는 것을 상기해 볼 때, 충분히 전환요으로 사용 할 수도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 때도 그들은 조용하였다.
그렇다면 결국 전문가도 아니고, 당대 당사자들도 아닌, 1980년대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이 주로 많이 사용하는 인터넷에서 도데체 누가 최초로 이런 주장을 했을까? 그 당사자는 지금이라도 비겁하게 숨지 말고 당당히 그 증거를 명백히 밝혀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는다면 이는 틀림없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국민을 선동하는 꼴 밖에 더 되겠는가? 그리고 이거야 말로 국론을 분열시키는 책동을 갖고 있는 내란죄가 아닌가? 아니! 어쩌면 이 배후에 북한이 있을지도 모른다. 북한이 인터넷을 통해서도 이런 여론몰이를 한다고 말하지 않던가? 그렇다면 이 주장을 북한이 흘러내서 그대로 누군가가 전했을지 누가 알겠는가?
1980년 5월 18일 광주는 끔찍했다. 시민들이 죽어갔다. 하기사 폭동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결정적인 펙트는 유일하게 무기고를 탈취하고 게엄군에 저항한 시민군을 자주 인용한다. 하지만 더 이상한건 시민군의 출현이다. 만약 이것이 사전에 조직적으로 계획된 폭동이라면 왜 애시당초 처음부터 시민군이 나오지 않았을까? 사실 광주 옛 전남도청 앞에서의 첫 발포때, 대부분 시민들은 총을 들지 않은 비무장 상태였다. 뭐 무장이라면 앞선 학생운동권들이지. 그나마도 화염병 정도였다. 이들이 폭도라면 왜 처음부터 총을 탈취하지 않았는가? 오히려 시민군의 출현시기가 늦은 이유가 이들이 폭도가 아니라는 가장 결정적인 증거가 되진 않을까? 즉 전남도청에서의 발포 이후에 통상적인 군인들의 진압 이상의 생존자체의 위협을 그것도 국가의 공권력의 핵심인 군대에 의해 유린당하자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본능적으로 무기고를 탈취하고 무장을 한 것이 아닐까? 우리가 이 당시에 그 자리에 있었다면 과연 순순히 게엄군의 행위에 순종했을지...........
아직도 광주 일곽에서는 유골이 나온다고 한다. 도데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숫자가 가매장되었는지! 광주는 이후로 그나마 분단이 한국전쟁으로 고착화 되었듯이 개념적으로 있던 지역감정을 영원이 돌릴 수 없는 갈등으로 고착시키게 한 사건이다. 이것이 이제 이념과 결합하여 지금 현재 대한민국에 끼치는 해악은 이로 말할 수가 없을 정도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표현의 자유는 누구나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민주주의 시민은 책임도 따른다는 사실을 분명히 명심해야 한다. 즉 확실하지도 않은 이야기를 가지고 거짓말을 하거나 선동적인 말을 한다면 그에 대한 엄격한 법의 처벌을 받아야 한다. 이 말이 고깝게 들리거든 광주를 폭동이라 하는 자들이여! 제발 지금 내가 올린 논지를 뒤엎을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분명한 펙트를 인터넷이 아닌 다른 매체를 통해서 밝혀라! 그렇지 않는한 난 당신들의 의도를 불순하게 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광주를 폭동이라고 말한다면 그 명백한 펙트를 밝혀라!!!
2003년 이라크는 다시 미국과 전쟁을 벌였다. 여기서 미국은 이라크 참전의 명분을 유엔 안보리 회의를 통해서 사담 후세인이 대량살상무기를 다량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듣고 이를 곧 또 다시 쿠르드족의 대량 살상에 사용 할 것이라는 첩보를 입수했음을 밝혔다. 때문에 악의 축인 이라크의 후세인정권을 정의의 이름으로 처벌하기 위해 미국은 전쟁을 일으켰다. 다시 말하면 말 그대로 미국판 출사표라 할 수 있을까?
하지만 결국 이라크전쟁에서 미국이 말한 결정적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미 이라크 전쟁은 끝났고 사담 후세인을 실각했으며, 미군정이 실시되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미국이 석유를 차지하기 위해 벌인 더러운 전쟁이란 말까지 돌았을 정도다.
즉 설령 명분에 부합하는 실제적인 증거가 없다고 하더라도, 단순히 명분만을 가지고 한 나라를 칠 수도 있고, 때로는 그 명분을 앞세워 시민을 무차별 사살할 수도 있다. 그런 측면에서 5.18과 관련된 치열한 문제점에 대한 고찰을 하고자 한다.
흔히 이른바 5.18을 광주폭동이라 말하며, 배후에 북한공작원이 개입했다는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들의 주장에 대해 좀더 논리적인 검증이 필요 할 것 같다. 즉 북한공작원이 단순가담을 넘어서 실제적인 폭동을 일으킨 주체세력이 되는 결정적 증거가 발견되어야 한다. 또한 이 증거는 보수와 진보 모두가 수긍하는 매우 객관적인 증거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여기에 대한 어떤 증거도 남아 있지 않다. 또한 몇몇 북한 공작원 침투에 대한 증언이 있긴 하지만 만약 그것이 사실이었다면 왜? 광주청문회에서라든지 후일 수사과정에서 한번도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았는지 궁금하다. 솔직히 말해서 이것이 진실이라면 왜? 굳이 1988년에 이 일을 제기하지 않고 지금에 와서야 이런 논지를 내세우는 것일까? 노태우가 비록 직선재개헌을 통해 대통령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반은 신군부에 속해 있던 사람이다. 즉 그가 적극적으로 광주문제를 청산할 의지는 애초부터 기대하기조차 어려웠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 이 문제를 제기했다면 노태우에겐 정국전환용으로도 유용했을 텐데 왜 정작 유리한 시점에선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는지 궁금하다. 그것도 광주문제가 20년이 지난 이후에야 비로서 본격적으로 광주폭동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는 점이다. 이것이야 말로 희대의 미스테리가 아닌가?
즉 다시 말하면 정작 그 시대의 당사자들은 여기에 대해 별다른 해명이나 언급이 있는 직접적인 물증이 없다. 게다가 인터넷이 주로 1980년대 이후의 태생이 자주 이용하는 곳임을 생각해 본다면, 그리고 이런 논의가 주로 책이 아닌 인터넷으로 부터 발생했다면 충분히 이 논의자체가 사실성을 가지고 있는지 조차 의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 그 시대의 당사자도 아니며, 구체적인 정식 수사기록에서 조차도 없는 내용을 도데체 어디서 찾았으며 그 소스는 어디에 있는가? 그들이 진정 광주를 폭동이라 말하고 싶다면 여기에 대한 정확한 소스를 공개해야 한다. 정확한 펙트가 없는 추측성 주장을 우리는 전문용어로 이미 다 알고 있다. 즉 그들의 말은 선동 밖에는 냉정하게 볼 수 밖에 없다.
게다가 더 희한한 것은, 그들의 주장이 당시 신군부의 주장과 거의 일치한다는 점이다. 즉 신군부가 광주에 게엄군을 보낸 이유가 바로, 북한의 사주를 받고 체제정복을 일으키려는 남한내의 빨갱이 세력의 조직적인 선동이며, 따라서 진압과정에서 불미스런 무고한 시민이 희생되었다는 점이다. 또한 신군부는 이 사건의 배후로 고 김대중 전대통령을 지목하였다. 신군부는 그를 내란죄로 규정하고 사형까지 시키려 했다. 이미 지난 시간에서 이 사건은 매우 많은 조작이 있었다는 것을 공식수사기록과 관련 문건을 통해 충분히 물증이 확증되어 있다.
더 중요한 점은 이런 사건의 전말이 드러나게 된 1995년은 보수주의적인 정권인 김영삼 대통령시절이 있었다는 점이다. 사실 그는 이른바 1990년 삼당통합을 통해 지금의 한나라당의 전신인 민자당에 들어갔기 때문에 아무래도 역사청산이 껄끄러울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결국 5.18특별법을 제정해서 이 사건을 다시 재수사 했기 때문에 이 수사에 대한 물증은 상당히 객관적이다. 만약 그때 이 이야기가 나왔고 그래서 논의가 진행되었다면 어쩌면 당시 북한과의 관계가 악화되었다는 것을 상기해 볼 때, 충분히 전환요으로 사용 할 수도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 때도 그들은 조용하였다.
그렇다면 결국 전문가도 아니고, 당대 당사자들도 아닌, 1980년대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이 주로 많이 사용하는 인터넷에서 도데체 누가 최초로 이런 주장을 했을까? 그 당사자는 지금이라도 비겁하게 숨지 말고 당당히 그 증거를 명백히 밝혀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는다면 이는 틀림없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국민을 선동하는 꼴 밖에 더 되겠는가? 그리고 이거야 말로 국론을 분열시키는 책동을 갖고 있는 내란죄가 아닌가? 아니! 어쩌면 이 배후에 북한이 있을지도 모른다. 북한이 인터넷을 통해서도 이런 여론몰이를 한다고 말하지 않던가? 그렇다면 이 주장을 북한이 흘러내서 그대로 누군가가 전했을지 누가 알겠는가?
1980년 5월 18일 광주는 끔찍했다. 시민들이 죽어갔다. 하기사 폭동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결정적인 펙트는 유일하게 무기고를 탈취하고 게엄군에 저항한 시민군을 자주 인용한다. 하지만 더 이상한건 시민군의 출현이다. 만약 이것이 사전에 조직적으로 계획된 폭동이라면 왜 애시당초 처음부터 시민군이 나오지 않았을까? 사실 광주 옛 전남도청 앞에서의 첫 발포때, 대부분 시민들은 총을 들지 않은 비무장 상태였다. 뭐 무장이라면 앞선 학생운동권들이지. 그나마도 화염병 정도였다. 이들이 폭도라면 왜 처음부터 총을 탈취하지 않았는가? 오히려 시민군의 출현시기가 늦은 이유가 이들이 폭도가 아니라는 가장 결정적인 증거가 되진 않을까? 즉 전남도청에서의 발포 이후에 통상적인 군인들의 진압 이상의 생존자체의 위협을 그것도 국가의 공권력의 핵심인 군대에 의해 유린당하자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본능적으로 무기고를 탈취하고 무장을 한 것이 아닐까? 우리가 이 당시에 그 자리에 있었다면 과연 순순히 게엄군의 행위에 순종했을지...........
아직도 광주 일곽에서는 유골이 나온다고 한다. 도데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숫자가 가매장되었는지! 광주는 이후로 그나마 분단이 한국전쟁으로 고착화 되었듯이 개념적으로 있던 지역감정을 영원이 돌릴 수 없는 갈등으로 고착시키게 한 사건이다. 이것이 이제 이념과 결합하여 지금 현재 대한민국에 끼치는 해악은 이로 말할 수가 없을 정도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표현의 자유는 누구나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민주주의 시민은 책임도 따른다는 사실을 분명히 명심해야 한다. 즉 확실하지도 않은 이야기를 가지고 거짓말을 하거나 선동적인 말을 한다면 그에 대한 엄격한 법의 처벌을 받아야 한다. 이 말이 고깝게 들리거든 광주를 폭동이라 하는 자들이여! 제발 지금 내가 올린 논지를 뒤엎을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분명한 펙트를 인터넷이 아닌 다른 매체를 통해서 밝혀라! 그렇지 않는한 난 당신들의 의도를 불순하게 볼 수 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