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헤이리마을의 아고라 정치박물관에 한번들려보세요~

. 2010.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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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고라 정치 박물관을 한번 들러보세요!!

 

아고라 박물관은 연세대학교 신명순 교수님에 의해 설립된 한국 최초의 정치 박물관이라고 한다. 한국 및 세계 50여 개국의 정치자료 2000여 점과 우표 7000여 점, 영화포스터 등 다양한 볼거리를 5개 전시실에 상설 전시하고 있다. 이는 세계 각국의 정치를 접하게 함으로써 정치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주고 민주정치 발전 과정에 대한 관심과 흥미를 유발할 것이다. 아고라 박물관은 파주 헤이리 마을에 위치해 있으며 "법흥 3리" 정류장에서 30m만 길을 따라 내려가면 흰색의 AGORA박물관을 발견할 수 있다.

 

1층 세계정치관

- 제임스 딘의 <이유 없는 반항>을 패러디한 고르바초프의 포스터를 볼 수 있다.

고르바초프는 러시아의 정치인으로 공산주의 국가들의 개혁, 개방, 민주화를 추진했던 인물이다.

- 로버트 케네디의 포스터도 있었다. 로버트 케네디는 미국 존.F 케네디의 동생으로 형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후, 법무장관을 지낸다. 그러나 1968년 대통령 후보에 나왔다가 암살당하게 된다.

- 모택동의 문화혁명 당시 포스터도 기억에 남는다. 마오쩌둥은 급진적인 문화대혁명으로 중국의 문화, 사회, 경제, 외교관계에 대한 피해를 입혔고 광대한 인명피해는 비판받기도 했다. 포스터에는 ‘위대한 우리의 지도자 만세’라고 쓰여 있었다.

- 영국 보수당이 만든 포스터도 있었다. ‘socialism in our time’이 모토인 이 포스터는 난로에 촛불을 둔 그림으로 1950년대 사회주의는 우리 시대에 말이 안 되는 사상이라는 뜻이 내포하고 있었다.

- 아르헨티나 ‘후앙 페론’이 1953년 당시 대통령 후보로 나왔던 포스터도 있다. 후앙 페론은 1946년부터 1955년까지 아르헨티나의 대통령을 역임하다가 1955년 군부쿠데타로 축출되어 브라질로 망명하게 된다. 1973년 군부정권이 무너지면서 귀국한 페론은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하게 된다.

- register/vote 용지도 있었다. 미국에서는 선거 때마다 투표를 하겠다고 등록하지 않으면 투표권이 주어지지 않는다. 항상 선거에 앞서 register해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투표율이 50-60%밖에 되지 않는다.

- 중국에서 문화혁명 당시 찼던 완장과 모택동 빼찌도 있었다. 문화혁명 당시 홍위병이 ‘모택동 주석만세, 전투’ 등이라고 쓰인 완장을 차고 다녔다. 이는 젊은이들을 앞장서 파괴를 일삼았던 당시 모습을 보여준다. ‘베트남 호치민, 김일성’ 빼찌, 훈장증 등도 전시되어 있다.

- 2000년도 조지 부시와 엘 고어의 대선 때 사용된 투표기계가 기억에 남는다. 이 기계는 실제로 플로리다에서 사용했던 것으로, 투표용지는 컴퓨터 카드로 되어있었다. 핀으로 투표용지를 찌르면 용지에 구멍이 뽕 뚫어지고 컴퓨터가 인식하게 된다. 그런데 당시 투표용지의 문제로 대선 결과에 대해 한 달 반 동안 결정이 나지 않게 되었다. 핀으로 눌러도 투표용지에 완전히 구멍이 뚫리지 않아, 실제로는 득표했는데 계산되지 않는 불량이 계속 발견된 것이다. 손으로 하나하나 이런 불량을 분류하다보니 한 달 반이 지연되었다. 결국 대법원은 더 이상 미뤄질 수 없다고 판단하여 기간을 정해놓고 그때까지 발견되는 불량 투표용지만 개표해서, 그 결과로 당선을 결정 하겠다고 판결 내린다. 엘 고어는 그 결과를 받아들였고 결과적으로는 부시가 대통령으로 당선되게 된다. 그러나 마지막 불량투표용지까지 개표를 하였더라면 선거 결과는 달라졌을 수도 있었다.

- 곰 인형이 전시되어있다. ‘테디베어’가 루즈벨트 대통령과 관련해 탄생했다는 재밌는 일화가 담겨 있었다.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이 사냥을 좋아해서 종종 즐겼는데, 어느 날은 곰과 딱 마주치고 만다. 그러나 곰은 루즈벨트 대통령을 헤치지 않고 살려주었는데 이 이야기가 퍼지자, 어떤 사람이 곰 인형을 만들어 루즈벨트 대통령의 애칭이었던 ‘테디’라는 이름을 붙여 팔기 시작했다. 후에 ‘테디베어’는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게 된다.

- 조지 웰레스는 1966년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과 민주당 이외의 제 3당 후보로 선거인단의 득표를 얻은 미국 역사상 최초의 인물이다. 그는 “흑인은 절대로 차별받아야 한다”는 극단적인 인종주의자였다. 조지아 주에서 흑인과 백인의 학교를 통합하자는 주장이 일어났을 때, 자신이 주지사로 있는 한 흑인이 백인 학교에 입학하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주장한 일화가 있다. 그러나 결국 반대 세력에 의해 총을 맞아 하반신이 마비되었으나, 여전히 알라바마주에서 압도적 지지를 얻었었다.

- 미국은 선거운동이 매우 자유로우며, 선거포스터 규제도 없었다. 예비선거는 2월부터 시작하므로 거의 1년 내내 홍보와 선거운동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자기 당의 버튼을 달고 다니며 홍보하기도 한다.

- ‘wake up and vote'라고 쓰인 시계도 있었다. 빨리 깨서 공화당을 찍으라는 의미의 소품으로 매우 흥미로웠다.

- 독특한 일본 선거 포스터가 많이 걸려있다. 자민당, 민주당, 종교단체에서 만든 공명당 등의 특이한 포스터를 많이 감상할 수 있다.

- 독일의 여러 정당 포스터가 걸려있다. 독일에는 사회민주당(SPD), 기독민주연합(CDU), 기독사회연합(CSU), 자유민주당(FDP), 녹색당 등이 있다. CDU와 CSU 정당은 다른 정당이지만 서로를 ‘자매 정당’이라 부르며 협조한다. CSU는 바이에른 주에만 있는 지역정당이다. FDP는 제 3당으로 이 당이 어느 쪽으로 합치느냐에 따라 정권이 바뀐다고 한다. CDU는 아기 얼굴로 정당을 선전한 포스터가 기억에 남는다. 녹색당은 ‘우리는 동성애를 지지한다’는 것을 표방하기 위해 각각의 남자 커플과 여자 커플이 춤을 추는 포스터를 사용했다.

- 여러 나라의 다양한 투표용지가 전시되어 있다. 일본에서는 후보 이름을 직접 쓰도록 되어 있다. 나치 시대 히틀러에게 찍은 투표용지도 있었다. 우리나라를 제외한 모든 나라가 찬성하는 경우 X표시를 한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 공산당 당원 수첩도 있다. 공산당 당원은 굉장한 특권을 가지며 아무나 시켜주지 않는다고 한다. 당원은 매달 당비는 내는데 언제 냈는지 확인하고 sign해주는 당비 납부 영수증도 전시되어 있다.

 

 

 

 

 

 

2층 한국정치관

- 1956년 제 3대 대통령 선거, 제 4대 부통령 선거에서 사용했던 자유당 선거 포스터가 전시되어 있다. 이승만, 이기붕 후보가 나왔는데 1950년 전쟁을 겪고, 1인당 GNP가 40불정도 밖에 되지 않았던 상황에서 포스터가 칼라로 인쇄된 점이 매우 흥미로웠다. 기호가 작대기로 표시되어 있었는데 당시는 문맹자가 많아 ‘3’을 읽지 못하는 시민들을 위해 작대기 3개를 그어 3번임을 표시했다.

- 1948년 제헌 국회의원선거 당시 국민들에게 나눠주었던 홍보물이 있었다. 투표를 어떻게 하는지에 대해 알려주며 자신을 찍으라고 홍보하는 내용이었다. 당시 종이가 귀해 어린이가 선거홍보물의 여백에 그림을 그렸다.

- 달력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매우 재미있었다. 1950년부터 1978년 까지는 국회의원들이 자기 이름과 사진을 기재한 달력을 자기 지역구에 집집마다 한 장씩 배포하였다. 웬만한 농촌에서는 달력을 구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아주 귀한 선물이 되었다. 달력에는 날짜 뿐 만 아니라, 춘분· 우수 등 절기를 표시해두어 농민들에게 농사에 관련된 많은 정보를 제공해줄 수 있게끔 하였다. 한 국회의원 얼굴을 365일 동안 4년 내내 보게 되므로, 아주 좋은 선거운동 수단이 되었다.

- 1956년 선거 포스터도 있다. 당시 야당의 선거 캠페인 구호는 ‘못 살겠다 갈아보자’였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8년 동안 독재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는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이에 자유당은 ‘갈아봤자 별 수 없다’, ‘가라내면 더 못 산다’ 등의 구호로 대응했다.

- 1956년 대통령 선거 때 한강 백사장에서 열린 신익희 연설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당시 서울 인구는 150만 명으로 매우 적었는데 거기에 모인 사람만 30만 명으로 어마어마한 인파가 몰려들었다. 이는 20대부터 60대까지를 50-60만 정도로 보았을 때, 반 이상이 연설을 들으러 왔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그 당시 야당 대통령 후보에 대한 지지도와 호응이 얼마나 컸는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그러나 신익희는 심장마비로 사망하게 되고 이승만이 다시 당선하게 된다.

- 당시 선거 포스터를 보면 대통령과 부통령이 각각 따로 출마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은 대통령이 선거에서 이기면 같이 출마한 부통령은 저절로 당선되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았다. 또한 재밌는 점은 당시는 기호를 추첨으로 뽑았다는 것이다. 지금은 제 1당이 1번, 2당이 2번 등의 순으로 기호가 정해진다. 사람들이 1번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으며, 잘 모를 경우 선거에서도 1번을 찍고 나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 1958년부터 규격에 맞추어 선거 포스터를 제작하기 시작한다. ‘이번에는 갈아보자’는 구호의 포스터가 있다. 여전히 당선 후 어떠한 정책을 펴겠다는 정략이나 공약은 없고 감정적인 것에 호소하고자 했다.

- 편지가 전시되어 있다. 1961년 5·16 쿠데타 출전 직전 박정희 소장이 장도영 참모총장에게 보낸 친필 서신이다. 여기에는 우리는 국가를 보호하기 위해 일어섰고, 우리는 만반의 각오를 하고 있으며, 우리를 지지해서 같이 군사 혁명을 일으키자는 내용이 담겨 있다.

 

 

 

 

 

 

 

 

3층 압화전시관, 우표전시관

- 대통령, 총리 등의 정치지도자들과 국회, 선거, 정치적 사건, 여성 정치 지도자 등을 비롯한 다양한 정치 관련 우표가 전시되어 있다.

- 꽃, 크리스마스, 산타클로스, 영화, 음악, 미술, 열대어 등 방대한 양의 다양한 형태의 우표가 전시되어 있다.

- 압화로 장식한 다양한 그릇, 액세서리, 양초, 거울 등 다양한 작품 또한 감상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