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혁의 전화를 받고 아직 할 일이 남아 있는데도 그대로 사무실을 나와 주차장으로 간다. 차에 탑승 해 시동을 걸려고 하는데 잘 걸리지 않는다. 요란한 소리만 계속 될 뿐 시동이 걸리지 않아 다급한 민준은 차에 내린다. 그러다 문득 어떤 장면이 스치듯 지나간다. 낮에 있었던 작은 소란. 선미가 찾아와 자신에게 그리고 지수에게 무례한 행동을 서슴치 않고 하는 것이 견딜 수 없어 강하게 반응했었다. 그리고 사무실을 나왔고 엘리베이터를 내려가다 우연히 지수를 본다. 한참을 지수를 보고 있는 모습을 뒤 쫒아 오던 선미에게 들키고는 아무렇지 않는 척 하며 엘리베이터 문을 닫는다. 그리고 조금 시간이 지난 뒤 기자재 창고 실이 모여 있는 별관 지하에 일이 있어 지나가다 기자재 창고 문을 잠그고 나오는 선미를 우연히 본다. 무언가 이상한 생각이 들면서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뛰어가기 시작한다. 뭔가 이상했다. 그 여자가 그 곳에 있는 것이. 평소 백화점매장 안이나 회장실, 자신의 사무실밖에 돌아다니지 않던 사람이다. 장선미라는 여자는. 그런데 그 여자가 기자재창고실이 모여 있는 지하를 다녀간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지만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이니까.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왠지 불안하다. 좀 전에 자신의 핸드폰으로 온 선미의 메시지도 의미심장하다. 그 모든 것이 마음에 걸린다. 불안한 마음으로 지하로 내려가는 민준.
다급하게 달려와 창고 앞에 도착한 민준은 문고리를 잡아 보지만 자물쇠로 닫혀 있다. 문을 손으로 친다.
“ 거기 누구 있습니까? 혹시 누구 있어요? ”
아무런 반응이 없다. 다시 한 번 두드린다.
“ 지수야. 지수야. 혹시 너 여기 있어? 있으면 대답 해 봐.. 지수야. ”
그러나 여전히 아무런 반응이 없자, 자신이 잘못 생각한 거라고 판단하고 힘없이 몸을 돌려 걸어가려는 순 창고 안에서 무슨 소리가 들린다. 쿵. 쿵. 쿵
그 소리에 다시 문을 더 쎄게 두드리기 시작한다.
“ 지수야. 지수니? 지수야?”
쿵. 쿵. 쿵. 쿵.
큰 소리는 아니었지만 분명 안에서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자물쇠를 열어야겠다는 생각에 주변에서 자물쇠를 깰 수 있을 만한 물건을 찾다가 문득 또 한 장면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선미가 이 창고 문을 지나면서 쓰레기통 속으로 무엇인가 던졌던 것을 말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옆에 있던 쓰레기통을 뒤지기 시작한다.
“ 지수야. 조금만 기다려. 곧 .. 곧 꺼내 줄게. ”
한참을 뒤진 뒤 열쇠가 보이고 재빠르게 그 열쇠를 자물쇠에 넣어 본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딱 맞아떨어지고 마침 자물쇠가 열린다. 열린 자물쇠를 바닥에 버리고 문을 열어 들어가 보니 지수가 힘없이 쓰러져 있다.
“ 지수야!!! 정신 차려 지수야!”
반쯤 눈을 감은 상태로 힘없이 쓰러져 있는 지수의 몸을 일으켜 흔들어본다. 그래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 지수야. 지수야.. 정신 좀 차려봐..”
지수의 몸은 이미 너무 열을 빼앗긴 상태였다. 온 몸이 차갑고 많이 떨고 있었다. 그 작고 여린 몸을 자신의 넒은 품안으로 끌어안아 열기를 전한다. 그리고 지수를 안아들고 일어나 주차장으로 향한다. 민준의 품안에 안겨 있던 지수의 정신이 돌아오면서 잠시 눈을 뜬다. 눈을 떴을 때 보이는 모습을 보고 지수는 놀란다. 그리고 이내 꿈이라고 생각해 편안해 진다.
“ 민준씨? 민.. 준씨..에요? ”
품안에 안겨 있던 지수가 말을 한다. 분명 얼마 전에 봤을 때와는 다르게 말을 한다. 실어증이라는 증상을 앓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지수가 말을 한다.
" 지수야? 너 ...지금.. 말을..“
“ 보..고 싶었...어요..”
“ 지..수야.”
“ 어디..가지 말고... 내 옆에..있기에요... 꿈에서 안 깨도록.. 나 붙잡아 주기..에요..?...알았죠? 민..준씨..”
“ 그래..”
지수는 지금 꿈을 꾼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마음이 아파온다. 저려온다. 그 동안 얼마나 힘들어 했을지 보지 않아도 눈에 선하다. 눈에는 얼마나 울었는지 눈물 흘린 자국이 여러 군데 있다. 혼자서 이렇게 컴컴한 창고 안에서 얼마나 두렵고 무서웠을지 상상하기 싫다. 너무 안쓰럽고 화가 나고 속상하다. 지수가 다시 민준의 품안에서 잠이 들고 어느 덧 지수의 몸이 안정이 되찾아 열기가 돌아오기 시작한다. 차에 태운 민준은 지수를 편안하게 눕히고 벨트를 맨 후 핸드폰을 꺼내 준혁에게 전화를 건다.
“ 차민준입니다. 지수는 제가 찾았습니다. 지금 지수 집으로 데리고 가죠. ”
#지수의 방
날이 밝아 창문으로 빛이 조금씩 들어온다. 조금은 편안해져 안정감있는 표정으로 침대에 누워 있는 지수를 바라보는 준혁의 표정은 그리 밝지만은 않다. 앞으로 다시는 지수에게 무슨 일이 생긴데도 그 사람에게는 알리고 싶지 않았는데 도움을 청했다. 막상 사건이 일어나고 나서는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미 오래전에 무너져버린 자신의 자존심 따윈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보다 지수를 안전하게 찾는 일이 준혁에게는 더 시급한 일이었고 더 깊이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기에 마음보다 몸이 먼저 앞서 행동한 것이다. 지수의 이마위에 머리카락을 어루만진다.
‘아무 일 없이 다시 돌아 와줘서 고맙다. 지수야. ’
그리고 한 시간쯤 지나고 준혁이 침대 옆 테이블에서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고 있다. 안경을 쓰고 노트북의 자판을 두드리는 준혁의 모습은 왠지 모르게 슬퍼 보인다. 무언가 우수의 젖어 눈망울이 촉촉하게 젖어 있다. 울고 있지도 않고 웃고 있지도 않은 준혁의 모습은 분위기 있어 보이고 매력적이다.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며 열심히 작업하고 있을 때 지수의 신음소리가 들려온다. 걱정스런 마음에 일어나 지수에게도 다가간다. 몸을 뒤척이며 땀을 흘리는 지수를 보고 놀라 옆에 있던 티슈를 뽑아 지수 이마의 맺힌 땀방울을 천천히 닦아낸다.
‘아....아....으....’
고개를 흔들며 무언가 괴로운 표정을 짓는 지수가 걱정된다. 땀을 닦아주던 준혁은 이대로 두었다간 지수가 꿈속에서 너무도 힘들 것 같다는 생각에 지수의 몸을 흔들기 시작한다.
“ 지수야... 지수야.. 정신 좀 차려봐... 지수야.. ”
“ 아................아...악!~~~”
그 순간 지수는 잠에서 깨어 벌떡 일어나고 바로 앞에 있는 준혁에게 안긴다. 악몽을 꾸고 나서 두려움에 온 몸을 떨고 있는 지수의 몸을 부드럽게 감싸 안은 준혁의 팔은 지수가 한 말 한마디에 힘없이 풀린다.
“ 민준씨.... ? 민준씨 맞죠? 이제... 어디 가면 안되요..? 알았죠? ”
그 말을 하고는 준혁의 품 안에서 다시 잠이 든 지수. 한 동안 준혁은 멍한 표정을 짓는다. 방금 전 지수가 한 말을 듣고 놀랐다. 실어증 증상을 앓고 있던 지수였다. 어제 오후 까지만 해도 지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여자였는데 지수가 말을 했다. 그런데. 그런데 처음 한 말이 “민준” 이라는 말이다.
지수를 다시 침대에 눕히고 힘없이 창문 쪽으로 다가와 커튼을 걷는다. 햇살이 창문을 비춘다. 온 방안이 환해져 그 빛을 받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질 것 같이 아름다운 햇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한 남자에게만은 제외였다. 준혁의 마음은 시베리아에 온 것처럼 차갑고 외롭고 쓸쓸하기만 하다.
그렇다. 지수에게는 언제나 그랬다. 차민준이라는 남자밖에는 없었다. 지수를 기점으로 모든 생활패턴이 돌아가는 자신과는 달리 지수는 차민준이라는 남자를 기점으로 모든 생활패턴이 돌아간다. 지수의 모든 사람이 그렇지는 않지만 적어도 그 남자를 알게 된 후부터는 말이다. 2년 전에 기억을 잃었을 때도 매일 밤 무서운 악몽에 시달렸고 언제나 준혁은 지수의 곁을 지켜주었다. 그리고 지금도 심한 충격에 휩싸여 실어증이라는 병명이 생겼을 때도 지수 곁엔 항상 준혁이 있었다. 차민준이 아니라. 그런데 그 모든 악몽과 아픔을 이겨낼 때는 항상 그 남자가 있어야 했다. 인정하긴 싫지만 사실이다. 그 만큼 지수에게는 그 남자가 전부인 것이다.
연애소설-사랑더하시(27)
#주차장 & 기자재 창고
준혁의 전화를 받고 아직 할 일이 남아 있는데도 그대로 사무실을 나와 주차장으로 간다. 차에 탑승 해 시동을 걸려고 하는데 잘 걸리지 않는다. 요란한 소리만 계속 될 뿐 시동이 걸리지 않아 다급한 민준은 차에 내린다. 그러다 문득 어떤 장면이 스치듯 지나간다. 낮에 있었던 작은 소란. 선미가 찾아와 자신에게 그리고 지수에게 무례한 행동을 서슴치 않고 하는 것이 견딜 수 없어 강하게 반응했었다. 그리고 사무실을 나왔고 엘리베이터를 내려가다 우연히 지수를 본다. 한참을 지수를 보고 있는 모습을 뒤 쫒아 오던 선미에게 들키고는 아무렇지 않는 척 하며 엘리베이터 문을 닫는다. 그리고 조금 시간이 지난 뒤 기자재 창고 실이 모여 있는 별관 지하에 일이 있어 지나가다 기자재 창고 문을 잠그고 나오는 선미를 우연히 본다. 무언가 이상한 생각이 들면서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뛰어가기 시작한다. 뭔가 이상했다. 그 여자가 그 곳에 있는 것이. 평소 백화점매장 안이나 회장실, 자신의 사무실밖에 돌아다니지 않던 사람이다. 장선미라는 여자는. 그런데 그 여자가 기자재창고실이 모여 있는 지하를 다녀간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지만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이니까.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왠지 불안하다. 좀 전에 자신의 핸드폰으로 온 선미의 메시지도 의미심장하다. 그 모든 것이 마음에 걸린다. 불안한 마음으로 지하로 내려가는 민준.
다급하게 달려와 창고 앞에 도착한 민준은 문고리를 잡아 보지만 자물쇠로 닫혀 있다. 문을 손으로 친다.
“ 거기 누구 있습니까? 혹시 누구 있어요? ”
아무런 반응이 없다. 다시 한 번 두드린다.
“ 지수야. 지수야. 혹시 너 여기 있어? 있으면 대답 해 봐.. 지수야. ”
그러나 여전히 아무런 반응이 없자, 자신이 잘못 생각한 거라고 판단하고 힘없이 몸을 돌려 걸어가려는 순 창고 안에서 무슨 소리가 들린다. 쿵. 쿵. 쿵
그 소리에 다시 문을 더 쎄게 두드리기 시작한다.
“ 지수야. 지수니? 지수야?”
쿵. 쿵. 쿵. 쿵.
큰 소리는 아니었지만 분명 안에서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자물쇠를 열어야겠다는 생각에 주변에서 자물쇠를 깰 수 있을 만한 물건을 찾다가 문득 또 한 장면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선미가 이 창고 문을 지나면서 쓰레기통 속으로 무엇인가 던졌던 것을 말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옆에 있던 쓰레기통을 뒤지기 시작한다.
“ 지수야. 조금만 기다려. 곧 .. 곧 꺼내 줄게. ”
한참을 뒤진 뒤 열쇠가 보이고 재빠르게 그 열쇠를 자물쇠에 넣어 본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딱 맞아떨어지고 마침 자물쇠가 열린다. 열린 자물쇠를 바닥에 버리고 문을 열어 들어가 보니 지수가 힘없이 쓰러져 있다.
“ 지수야!!! 정신 차려 지수야!”
반쯤 눈을 감은 상태로 힘없이 쓰러져 있는 지수의 몸을 일으켜 흔들어본다. 그래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 지수야. 지수야.. 정신 좀 차려봐..”
지수의 몸은 이미 너무 열을 빼앗긴 상태였다. 온 몸이 차갑고 많이 떨고 있었다. 그 작고 여린 몸을 자신의 넒은 품안으로 끌어안아 열기를 전한다. 그리고 지수를 안아들고 일어나 주차장으로 향한다. 민준의 품안에 안겨 있던 지수의 정신이 돌아오면서 잠시 눈을 뜬다. 눈을 떴을 때 보이는 모습을 보고 지수는 놀란다. 그리고 이내 꿈이라고 생각해 편안해 진다.
“ 민준씨? 민.. 준씨..에요? ”
품안에 안겨 있던 지수가 말을 한다. 분명 얼마 전에 봤을 때와는 다르게 말을 한다. 실어증이라는 증상을 앓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지수가 말을 한다.
" 지수야? 너 ...지금.. 말을..“
“ 보..고 싶었...어요..”
“ 지..수야.”
“ 어디..가지 말고... 내 옆에..있기에요... 꿈에서 안 깨도록.. 나 붙잡아 주기..에요..?...알았죠? 민..준씨..”
“ 그래..”
지수는 지금 꿈을 꾼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마음이 아파온다. 저려온다. 그 동안 얼마나 힘들어 했을지 보지 않아도 눈에 선하다. 눈에는 얼마나 울었는지 눈물 흘린 자국이 여러 군데 있다. 혼자서 이렇게 컴컴한 창고 안에서 얼마나 두렵고 무서웠을지 상상하기 싫다. 너무 안쓰럽고 화가 나고 속상하다. 지수가 다시 민준의 품안에서 잠이 들고 어느 덧 지수의 몸이 안정이 되찾아 열기가 돌아오기 시작한다. 차에 태운 민준은 지수를 편안하게 눕히고 벨트를 맨 후 핸드폰을 꺼내 준혁에게 전화를 건다.
“ 차민준입니다. 지수는 제가 찾았습니다. 지금 지수 집으로 데리고 가죠. ”
#지수의 방
날이 밝아 창문으로 빛이 조금씩 들어온다. 조금은 편안해져 안정감있는 표정으로 침대에 누워 있는 지수를 바라보는 준혁의 표정은 그리 밝지만은 않다. 앞으로 다시는 지수에게 무슨 일이 생긴데도 그 사람에게는 알리고 싶지 않았는데 도움을 청했다. 막상 사건이 일어나고 나서는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미 오래전에 무너져버린 자신의 자존심 따윈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보다 지수를 안전하게 찾는 일이 준혁에게는 더 시급한 일이었고 더 깊이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기에 마음보다 몸이 먼저 앞서 행동한 것이다. 지수의 이마위에 머리카락을 어루만진다.
‘아무 일 없이 다시 돌아 와줘서 고맙다. 지수야. ’
그리고 한 시간쯤 지나고 준혁이 침대 옆 테이블에서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고 있다. 안경을 쓰고 노트북의 자판을 두드리는 준혁의 모습은 왠지 모르게 슬퍼 보인다. 무언가 우수의 젖어 눈망울이 촉촉하게 젖어 있다. 울고 있지도 않고 웃고 있지도 않은 준혁의 모습은 분위기 있어 보이고 매력적이다.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며 열심히 작업하고 있을 때 지수의 신음소리가 들려온다. 걱정스런 마음에 일어나 지수에게도 다가간다. 몸을 뒤척이며 땀을 흘리는 지수를 보고 놀라 옆에 있던 티슈를 뽑아 지수 이마의 맺힌 땀방울을 천천히 닦아낸다.
‘아....아....으....’
고개를 흔들며 무언가 괴로운 표정을 짓는 지수가 걱정된다. 땀을 닦아주던 준혁은 이대로 두었다간 지수가 꿈속에서 너무도 힘들 것 같다는 생각에 지수의 몸을 흔들기 시작한다.
“ 지수야... 지수야.. 정신 좀 차려봐... 지수야.. ”
“ 아................아...악!~~~”
그 순간 지수는 잠에서 깨어 벌떡 일어나고 바로 앞에 있는 준혁에게 안긴다. 악몽을 꾸고 나서 두려움에 온 몸을 떨고 있는 지수의 몸을 부드럽게 감싸 안은 준혁의 팔은 지수가 한 말 한마디에 힘없이 풀린다.
“ 민준씨.... ? 민준씨 맞죠? 이제... 어디 가면 안되요..? 알았죠? ”
그 말을 하고는 준혁의 품 안에서 다시 잠이 든 지수. 한 동안 준혁은 멍한 표정을 짓는다. 방금 전 지수가 한 말을 듣고 놀랐다. 실어증 증상을 앓고 있던 지수였다. 어제 오후 까지만 해도 지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여자였는데 지수가 말을 했다. 그런데. 그런데 처음 한 말이 “민준” 이라는 말이다.
지수를 다시 침대에 눕히고 힘없이 창문 쪽으로 다가와 커튼을 걷는다. 햇살이 창문을 비춘다. 온 방안이 환해져 그 빛을 받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질 것 같이 아름다운 햇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한 남자에게만은 제외였다. 준혁의 마음은 시베리아에 온 것처럼 차갑고 외롭고 쓸쓸하기만 하다.
그렇다. 지수에게는 언제나 그랬다. 차민준이라는 남자밖에는 없었다. 지수를 기점으로 모든 생활패턴이 돌아가는 자신과는 달리 지수는 차민준이라는 남자를 기점으로 모든 생활패턴이 돌아간다. 지수의 모든 사람이 그렇지는 않지만 적어도 그 남자를 알게 된 후부터는 말이다. 2년 전에 기억을 잃었을 때도 매일 밤 무서운 악몽에 시달렸고 언제나 준혁은 지수의 곁을 지켜주었다. 그리고 지금도 심한 충격에 휩싸여 실어증이라는 병명이 생겼을 때도 지수 곁엔 항상 준혁이 있었다. 차민준이 아니라. 그런데 그 모든 악몽과 아픔을 이겨낼 때는 항상 그 남자가 있어야 했다. 인정하긴 싫지만 사실이다. 그 만큼 지수에게는 그 남자가 전부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