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스러운 저희아빠를 소개합니다.

스탈간쥐 2010.05.21
조회1,264

전 26살 조금은 일찍결혼한 한 주부입니다. 두딸아이를 키우면서

정말 미웠던 아빠도 이해가지않던엄마도 이해가 되더군요..

이이야기는 저희아빠의 이야기를 한번해보려고합니다.

 

많이힘들어하는 저희아빠에게 조금이나마 제가 할수있는 글쓰는 재주로

저보다 잘쓰시는분들은 많곘지만 한번 써볼려고합니다.

 

저희아빠는 57년생으로 이제 만 52세가되셨습니다. 저도 항상 애기키운다는

핑계로 공부를 하고싶지만 못하는데 저희아빠는 지금도 꾸준히 공부를

하십니다. 아빠는 항상 말하시는게 난 공부밖에 할줄아는게없다고..

 

저희아빠도 전에는 그래도 유명한 모기업의 경리회계팀장으로 들어가

한 7년인가 그정도동안에 부장자리까지 오르실정도로 잘나가셨던분입니다.

저희아빠는 엄마도 일찍여의고 경제적인여건도 힘든채 아빠는 같은

배다른 형제밑에서 대접한번 받지못하고 공부도 모든것이 아빠가 더 월등하셨는데도

불구하고 전혀 빛을 발휘하지못하고 못배우셨습니다. 돈때문에 어쩔수없이

상고를 나와서 농협중앙회에 은행일을배우다가 끌리신 경리일을 기초로

경리회계팀장으로  들어갔습니다.운이좋았죠 그것도 가장힘든 IMF때 들어가셨으니까요

 

자랑스러웠습니다. 솔직히 집안형편도 좋지않았고 했기떄문에 제가 중학교는

들어갈수있을지 의문까지 들었을때였는데 하늘이 도와주셨는지 그렇게

회사에 들어가셨습니다. 여태까지 수작업으로 진행되던 경리일을

자체제작한 프로그램에 의해많은분들이 나가게되었고 저희아빠도 그회사의

사촌이신분을 대신해 명예퇴직을 하게되었습니다. 전 이일을 몇년이 지난

지금이에서 첨 알게되었습니다. 몸도별로안좋으신 저희엄마가 심장병이 있으십니다

 

그러신분이 아빠를 대신해 이것저것 일을하게되셨고 지금도 아빠를 대신하여

일을 하시고계십니다. 저희아빠는  아무것도없이 빈손으로 시작하신뒤

차츰 집도마련하시고 그래도 나름 전 클때 괜찮게컸습니다 부모님의 사랑도받으면서

그런데 왜그땐.. 그렇게 철이없었는지 아빠는 친구도없잖아 하면서 상처주고

나쁜말도 왜그렇게 했었는지 다 절위해 그러셨던건데 지금 두딸을 키우는

입장에 이제야 아빠의맘을 헤아리게된것입니다

.

아빠가 그렇게 퇴직을하시고 저희집은 몇년은 살만 했습니다 퇴직금으로

그렇지만 쉽사리 일자리는 나이도그렇고 구하기 힘들게되었고 갈수록

집안은 힘이들었습니다 그래도 저희아빠는 희망을 포기하지않으시고 늦었지만

컴터에대해서 두려움이 컸지만 2004년 5월부터 9월까지 공부하여

직업능력 개발훈련을 마스터 하시고 컴터정비자격증과 인터넷 정보검색사

자격증을 취득하시게되었습니다. 피시방을 차려보고싶었지만 여건이되지않았던

아빠는 인터넷 싸이트인 xx에서 골동품과 보이차를 팔데되셨는데 그또한도

잘되고나니 식품위생허가를 건재 장사를 접게되었습니다

.

그때 아빠는 모르셨죠 식품허가증같은걸 받아야한다는걸.. 정말 공부만하시던분이

이것저것 다해볼려고 하셨던겁니다 이뿐이아니라. 육지거북사이트를

개설하여 인터넷으로 판매를 하다 밀수범으로 몰려 좋아하시던 거북이로

재판까지받으시고 사랑하던 동생도 잃고 대인기피증까지 걸려서 무언가 해볼려고

하셨는데도 언제나 나이제한에 면접조차 보실수없어서 저희집은 빛만늘어가면서

집안은 점점 힘들어가게되었습니다 첨으로 한번도 해보지않았던 직업소개소에서

소개를 받아 첨으로 막노동같은일을 하게되셨죠 직업엔 귀천이없으니까

하시면서 알선받았던 곳에서도 직업이나 없는날 아시죠 본래 그런일은 비오면

안하고 날씨나쁘면안하고하는거.. 거의일을 안하는날이많았고 알아보시던중

공공근로 라는직업아시죠 한마디로말해서 청소부입니다. 그렇게

쓰레기치우는사람으로 뜨거운날씨속에 아줌마와 아저씨사이에서 리어카

샵 집게등을들고 해수욕장을 치우셨는데 그것도 우리 부모님이 사는동네인만큼

얼굴을 들키고 하면서 모자를 눌러쓰고 해도 어쩔수없이 얼굴들키면서

사람들 입에서 오르락내리락하기도하였고 두달이지난뒤 한 근처 아줌마가

소개해주신 곳에서일자리를 구하게되었습니다 가장 힘든 3d열처리 작업이었던것이죠..

 

힘든일만 줄곳하고 650도 열처리속에서 철박스 20k~40k달하는 철물까지 담고

나르던일도하였고 여름에는 시원한 아이스크림 수박같은게없으면 살수없을정도로

땀이많으신 아버지인데 이런일까지 하시면서 저희를 먹여살릴려고하셨습니다.

철없던 전 지금의 남편을 만나 밖에나와서 있었기에 부모님이 힘든데도 전

아무것도 해드릴수가없었습니다. 딸이라면서 배웠던 스타일리스트 일자체도

하지못하고 혼전임신을하여 애기만키우면서 부모님의 전화만으로 부모님의

소식을알고하였던거죠.. 그리고 그 열처리 작업장에도 이젠 한국사람들보다는

해외의 필리핀사람들 중국사람들이 일자리를 매꿔서 그마저도 일자리가없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그래도 열심히 일하던아빠는 돌진하던 지게차에 받혀서

3달간 산재환자로 입원하게되어 일자리도 잃어버리고 산재처리란게

완쾌처리되지않았는데도 종료처리를 하여 돈도 받지못하고 어깨 다리 손가락등

휴우증을 남기고 퇴원하고도 치료하는데 1년넘게 시간이 걸렸다고 하더군요.

엄마가 일은 하셨지만 그로써는 물가는 올라가고 생활을 힘들어졌고 결국은

집까지 팔아야할위기인데 아빠가 부모님없이 혼자 자라면서 그만큼노력해서

마지막 댓가인 집까지는 팔지못한채 대출을 받아서 생활을 하셨고 빛만 늘어갔습니다.

 

그러던 한날

한통의 전화를 받았죠 아빠가 회사에 취직하였다고.. 제가 정말 바라고 바랬던게

할수있는게 아무것도 없었기에 기도하고 또 기도하면서 엄마아빠뿐아니라

저에겐 정말 9살밖에안된동생이있었기에 정말 아빠의 취직을 정말바라며

있던중 반가운 전화가왔었어요 아빠가 취업을 하셨다고 근데 이또한도.. 무슨

잘못인건지 대체 우리부모님에게 무슨시련인건지 같은 나이였고 배운것도

아는것도많은 아빠를 시기하신건지 미워하셨고 나중엔 별일아닌이유로

자르셨다고하더라구요........ 엄마또한도 부동산 비슷한 업종에 일하셨는데

말은안하셨지만 마니힘드셨나봅니다. 엄마가 또한 그만두셨다고 연락이오셨는데

거기 부장이란 분이그랬답니다. "너거는 이런일하면서 그나이먹도록 브랜드

안입고 머하냐고"그렇겠죠.. 꾹 참고 참았던 저희엄마는 눈물에

참아왔던 거 다 토해내고 그자리를 박차고 나오셨다고합니다.

 

그분같은경우는 애기도없고 애도없으니까혼자 쓰실수있겠지만 저희엄마는

 제동생도있고 빛도많기에 나이가 드셔서 꼭

필요한 브랜드 옷이라든지 명품이라던지 남의애기니까요... 한번도 그렇게

힘들다 내색  안하시던 엄마 아빠의전화를 요세 부쩍많이받습니다. 정말 아빠는

이젠 난 쓸모없나보다하면서 그리고 돈이없으시니까 엄마아빠도 많이 싸우시구요

제동생에게도 참미안합니다 저런모습보여줄때마다.. 싸우는게 정말

이젠 하루일상이되어버렸으니까요.

 

출가외인이된제가할수있는 다만 부모님의 애기를 들어주는 것밖에 안되니까요..

저또한 시댁 형편조차좋지않고 저희 힘으로 남편 전역하고 이제 얼마되지않아서

부모님 도와드릴 형편조차좋지않답니다. 돈없어도 힘든일이있어도 내색안하던

아빠와엄마가 저렇게까지 힘드신가봅니다하면서 전 눈물흘리면서도 남편에게도

내색못했구요  부당해고로 그만두시고난뒤 그래도 희망은 버리시지않았던

저희아빠는 마지막 이라 생각하고 83기 직업능력 개발훈련교사 공부를

하게되었고 교직과정을 마치시고 무사히 돌아와 직업능력개발 훈련 교사

자격증까지 취득하시게되셨습니다. 정말 저희아빠 항상 공부하실땐 엄마한테

화내면서까지 열심히하시고 하셨는데 지금 54세인나이로 전 아빠가 너무나 자랑스럽습니다. 그렇게 그만두시고 6개의 자격증을 따시면서 젊은나이인 저희도 노력조차

첫 스타트도 끊지못한 분들도많은데 희망을 버리지않고 이번년도에는 이렇게

또 교사자격증을 따셨습니다. 아직은 이력서넣어도 연락오는곳도없고

자격증은있지만 경력  또 나이가 있기때문에 쉽지않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 파란만장하면서 롤러코스터 같은 아빠의 인생도 언젠간 평안한 호수같은

마지막이 될꺼라고 전 믿습니다. 그리고 저희 아빠 희망이있기에 포기하지않으시겠죠

남들보다 늦게시작했고 했지만 여기저기 뉴스같은데서도봐도 정말

밑바닥에서 다시올라가시는분도많이봤습니다. 엄마도 다시 다른곳에서 처음처럼

그런사람밑이아닌 곳에서 지금나이같으면 정말 집한채 떳떳하게 가지고

그렇게 편히 살아야 할나이 이시겠지만 분명 끝까지 포기하지않는한 저희부모님은

다시 일어날꺼라 믿구요 빛도많고 있는것도없이 첨부터 시작하시겠지만

잘될꺼라 믿음을 가집니다. 울 네이트 판여러분도 저희부모님 응원해주실꺼죠?

그리고 자식들 먹여살리느라 고생하시는 대한민국의 서민 부모님들 화이팅입니다.

 

지금까지 제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하구요 아빠한테 한마디하고싶네요

"아빠 아빠딸 xx야 지금까지 나란 아이는 언제나 잘되라고 때렸던 거였는데

아빠맘 한번몰라주고 상처주고 집나가고 이렇게 나쁜아이였어 결혼까지도

부모님이원하지않는 결혼도했고 한번도 전화하면서도 아빠가 사랑해

할때 마다 사랑한다는 말한번 해본적없다 그지 응 '나도 이런말밖에못했는데

항상 아빠 사랑하고 응원하는 멀리있지만 아빠는 혼자가아냐 아빠에겐

아빠손녀들도있고 아빠 날데려간게아니라 내가 아들하나 더데려온거라구

아빠 지금처럼만 노력해주고 말년에는 더욱더 좋아질꺼라믿어 울아빠는

언제나 노력하고 멋진 사람이니까.. 아빠 마지막으로 사랑해요 그리고

지금까지 키워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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