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아름다운 세상에서 아름다운 시가 나온다.

EAST-TIGER2010.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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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깐느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한 영화 <시>를,

토요일 오후 4시 25분에 CGV신도림 2관에서 보았다.

주말이라서 각 관마다 만원관객인 듯 했고,

<시>를 보러온 관객들 중에는 중년층이 꽤 많았다.

문득 이창동 감독이 참여정부시절에 문화관광부장관을 했던 기억을 떠올랐다.

문화계 인물들이 이창동 감독을 장관으로 추천했는데,

취임사에서 그는 스스로 잘못 캐스팅되었다고 말하는 겸손함도 가지고 있었고,

출퇴근 시 스스로 운전하면서 업무파악을 위해

밤을 새우는 성실한 자세와 노력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여러번 야당 의원들은 그의 자질과 업무능력을 비판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퇴임 후 영화감독으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걷는 이창동 감독.

그는 자신이 가장 잘하는 영화를 통해 우리 사회와 소통하고 있다.

이창동 감독은 관객들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내가 웃으면 할아버지도 뿅가요."

 

이혼한 딸은 부산에 살면서 손자와 함께 작은 아파트에서 사는 미자.

외출할 때는 화려한 차림으로 다니지만,

간병인과 파출부, 그리고 생활보호대상자 보조금으로 간신히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동네 문화원에서 '시' 강좌를 수강하게 되고,

시의 매력 속에 빠져들면서 멋진 시를 쓰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손자가 불의의 사건에 연루되면서 미자는 혼란에 빠진다. 

 

 

"야 이년아! 그럼 혼자왔지, 함께 올 사람이 누가 있냐?" 

 

<오아시스>, <밀양>의 이창동 감독은 깐느 영화제와 인연이 많은데,

국내에서는 호불호가 분명한 것 같다.

그 이유로 그의 영화들은 공통점이 있는데, 항상 결론이 명확하지 않다.

다르게 말하면, 영화의 결론이 관객들의 상상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한편의 '시' 같은 영화를 만들어 내는 그의 영화는 곳곳에 함축적인 의미가 숨어있다.

그것을 하나하나 풀어간다면, 그의 영화를 보는 재미가 있다.

그런 면에서 이번 영화는 그의 영화의 진수를 보여준 '작품' 이었다.

특히 배경음악 없이 순수 자연음을 사용한 것은 또다른 '의미' 가 있다.

 

미자역의 윤정희는 이 영화에서 인상적인 연기력을 보여줬다.

개인적으로 깐느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아도 좋았을 것 같았다.

요새 젊은 배우들이 많이 등장하지만, 왕년의 명배우들의 연기와는 비교할 수 없다.

명배우들은 그들만의 매력과 느낌이 영화 속에 진하게 배어있다. 

 

<사생결단>의 김희라는 영화배역상 어쩔 수 없었겠지만,

수척해진 모습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우리 영화의 산 증인인 그의 투혼이 영화를 보면서 강하게 느껴졌다.

 

드라마 전문 배우인 안내상은 영화에서도 그 이미지가 고정된 것 같다.

배우로서 여러가지 배역을 맡을 수 있겠지만 

수준급 연기력을 바탕으로 고정된 이미지만 바꾸면 좋을 듯 싶다.

 

김용탁역의 김용택 시인이 직접 출연해서 흥미로웠다.

 

 

"선생님, 시상은 어떻게 찾죠?"

 

인생 말년에 배우게 된 시의 아름다움에 감격하는 미자는,

누구나 시를 쓸 수 있고, 시상은 어디에든 있다는 김용탁 시인의 말을 듣지만,

시를 쓰는 것보다 시를 쓰려는 마음을 갖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게 된다.

아름다운 시를 쓰기 위해 주변을 돌아보지만 그녀의 주변은 아름답지 않다.

간병 받는 노인이 성적 욕망을 해결하려 미자에게 접근하고,

하나 밖에 없는 손자는 중학교에서 친구들과 같은 학교 여학생을 상대로, 

집단 성폭력을 저지르고 그 충격에 여학생은 자살하지만, 

손자는 큰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더구나 가해자 학부모들도 죄책감보다는 합의금으로 그 일을 무마하려한다.

그리고 우연히 참석한 시 낭송회 회원들과의 교제 속에서,

세상은 아름답지 않고 그러기에 시를 쓴다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결국 미자 스스로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시로 승화한다.

어릴 적 미자의 언니가 자신을 보고 이쁘다고 말해주었을때,

자신이 정말 이쁘다는 것을 알았던 것처럼

미자는 자신이 처한 상황 속에서 아름다운 것들을 찾아나가고,

그것들이 이쁘다고 말해준다.

 

영화에 배경음악이 없이 자연음만 있었던 것은,

시에는 인위적인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시는 그 자체로 의미가 전달되고 소리가 담겨져 있다.

이창동 감독은 이 영화를 한편의 시처럼 만들어,

관객들에게 물어본다.

 

"누구나 시를 쓸 수 있는 아름다운 세상이란 무엇인가?"

 

 

 

"보기와는 다르네요."

 

있는 그 자체를 제대로 알 수 없는 세상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사람에 대한 오해와 의심은 당연한 것이다.

겉보기에는 실없는 사람처럼 보여도 속이 깊은 사람이 있고,

그 반대이지만 무감각하고 형편없는 사람도 있다.

서로 속고 속이는 상황 속에 있지만, 누구도 그것에 대해 큰 문제삼지 않는다.

문제를 지적하고 해결하기 보다는, 빨리 넘어가거나 상황을 모면하길 바란다.

 

우리 주변의 착한 사람이든 나쁜 사람이든

전부 자신의 이익과 만족을 위해 살아간다.

누구도 사회와 상황 속에서 고결한 희생이나 사과내지 용서를 하지 않는다.

그러니 낭만과 순수를 말하는 시를 비롯한 문학들이 설 곳이 없다.

시를 써도 사람들이 느끼지 못하고, 글을 써도 사람들이 읽지 않는다.

그리고 이제 시를 쓰거나, 글을 쓰는 사람도 사라져간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시의 아름다움 속에 죽어갔는가.

시를 가장 시답게 만드는 것은 인간 스스로에게 달려 있다.

깨끗한 몸에서 깨끗한 마음이 나오듯이, 

아름다운 세상에서 아름다운 시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