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의 향은 지독하다

201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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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의 내 얘기는 아니고, 다 지난 일이다. 그런데 여기에 남겨 두는 건 앞으로 이성과의 사이에서 감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하릴없이 남사스럽게 구는 게 아니라 나름 주관적인 의미가 있다는 거다. 

 

< '쿨' 한 애들은 붙잡기 어렵다. 떠나지 말라는 부탁은 메아리만 될 뿐이다. 과거 청승만 세 번 떨어본 경험담 >  

 

그녀와의 지독한 인연은 내 나이 열 아홉에 남루한 학원복도 지나가는 찰나 시작됐다. 당시 좀 조숙했다면 테이프도 끊지 않았겠지만, 때는 멋도 모를 시절이니 마음 이끌리는 대로 그렇게 함께했던 듯하다. 그러나 아쉽게도 당시의 사랑은 조루였다. 잠깐 부풀었다가 금새 주저앉았다. 나는 대학에 진학하고 그는 수험생였으니 우리 사이에는 점차 벽이 생겼는데 그의 어머니와 학원의 원장이 문제였다. 혹자는 말한다. 진정 원한다면 그까짓 장벽이야 뛰어 넘으라고, 그러나 그게 쉽지 않았다. 완고했던 그의 부모님은 가시나무와 같았기에 극복하려 할 때마다 내게는 많은 고통이 동반됐다. 그리고, 그렇게 춘삼월이 왔을 때, 그는 떠나갔다. 연락도 되지 않았고 다시는 만날 수 없었다.

 

대학 마지막 겨울방학 즘의 어느날, <싸이월드>로 쪽지 한 통이 도착됐다. 이름이 꽤 익숙했다. 기억에서 지워져 가던 그 이름이었다. 내용인 즉슨, 미안하지만 한 번즘 볼 수 있겠느냐는 거였다.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몇일 밤을 고민하다가 연락을 했다. 그리고 그렇게 7년여 만에 다시 상종했다. 사실, 만나지 말았어야할 가벼운 인연인데, 거부할 수 없는 그 감정이 쉽게 꺼지지않았다. 당시 그와 나는 각자 짝이 있었다. 그러한 와중에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는데 내 인생에 가장 큰 실수 중 하나일 게다. 아무튼, 우리의 가벼운 두 번째 인연은 이렇게 지나갔다. 그리고 그는 얼마 있다가 런던으로 떠나갔다. 그 어떤 인사도 없이.

 

간혹 온라인으로 소식을 받았다. 잘 지낸다는 내용의 짧은 글들. 그래, 당신은 그곳에서 열심히 살아. 난 이곳에서 내 삶을 살거야. 그렇게 지내다가 우리가 질긴 인연이라면 언젠가는 다시 만나게 되겠지. 내게는 이게 믿음아닌 믿음이었다. 한편, 과거에 내 친구와 교제했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마음 편치않은 사실였지만 그래도 지난 일이니 모든 걸 덮어줄 수 있었다. 어차피 누구나 여럿 가벼운 인연을 거치며 성장하는 거니까. 이처럼 마음을 다독이며 열심히 사는 내 자신이 때로는 대견하기도 했다. 어쩌면 자신을 위로하며 힘을 얻기위한 일말의 수단였을 지도 모른다. 나는 매우 미련했다.

 

사람의 마음이란 게 참 정에 약하다. 연락이 꾸준할 수록 가슴에 차오르는 횟수가 많아졌고 그 정도는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와중에 그 사람이 내게 필요한 이유와 존재의 가치에 대해 고찰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한 결론은 확고했다. 감정은 애뜻했으며 인맥의 분류는 단짝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메일을 통해 질문을 던졌다. 그에게 있어 이경빈의 존재가치를 물었다. 회신된 내용은 절망적이었다. 편안함과 부담을 동시에 제공하는 정도. 그날 이후, 그에게서 오는 소식을 일방적으로 차단하기 시작했다. 스스로에게 쉽지않은 방식였지만 그게 최선의 선택이라 자신했다. 그러나 그의 지속적인 메일에 내가 공들여 쌓던 벽은 허물어졌다. 두 번째로 이놈에 정이란 게 사람 약하게 만든 거다. 그리고 그의 확고함과 의지를 전달받으며 마음을 열게 됐다. 아니, 던졌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게다.

 

그는 런던에서 나는 서울에서 문명의 혜택을 받으며 소통할 수 있었다. 사랑한다는 말과 함께 일맥상통한 답변은 생활의 활력소였다. 정리되지 못한 사무실의 눈치밥과 그에 따른 노곤한 일상, 와중에 꿈을 꾸며 웃고 지낼 수 있던 이유는 다름아닌 '그'였다. 아무리 사랑이 뭔지는 모르지만, "뛰는 가슴이 향한 곳은 당신입니다"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었다. 우리가 서울에서 만날 날을 학수고대하며 매일을 보냈다. 기다림의 시간은 지루하고 힘들었지만 그것조차 그와 내게 같은 마음이라 생각했기에 견뎌낼 수 있었다.

 

서울에서 만났다. 전화기는 아침부터 문자수신음으로 진동했고 내 가슴은 장단맞춰 요동을 쳤다. 해낙낙한 표정을 본 주변인은 뭐 좋은 일이냐 연신 물어봤다. 난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고 마냥 행복했다. 오후 여섯 시 즘, 한티역에서 만난 그는 여전했다. 가꾸지 않은 그 모습에 이목구비는 열 아홉 소녀 때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와 내가 변한 거라면 좀 늙어버린 피부나이와 시간을 견디는 체력의 수준이었다. 우리는 매우 오랜만에 저녁식사를 함께했다. 정자의 그 집은 맛집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의 눈을 보며 대화를 나누고 그가 챙겨주는 야채를 먹는 것 만으로도, 내게 그곳은 일품 레스토랑였다. 식사를 마치고 꽤 오랜만에 길을 걸었다. 분당의 냇가둔치에서 손을 꼭 잡고 거닐며 많이 웃고 많이 떠들었다. 그가 들려주는 런던에서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은 그 어떤 드라마보다 흥미롭기에 머리에 쏙쏙 박혔다. 나중에 함께 그곳으로 여행가자는 말과 함께 상상도 하며 해낙낙했다. 늦은 밤 열 시즘 집으로 데려다 줬고 수요일을 기약했다.

 

즐겁기만했던 그날의 밤, 나는 악몽을 꿨다. 원래 이별할 적에는 아무 말 없었던 그가 다시는 만나지 말자며 소리치는 꿈이었다. 그때 난 그의 손을 꼭 잡으며 울고불고, 아무런 말도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독한 이별의 내음이 느껴지기 시작한 건 화요일의 늦은 오후 즘이다. 오전부터 어렵던 통화가 해질녘 즘 닿았는데, 수화기로 건내오는 그의 목소리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오전에 잠시 했던 MSN메신져, 그때만 해도 힘들어보이지 않았는데 오후의 통화에서 그가 피곤한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저녁 늦게 연락주겠다는 말과 함께 수시간을 기다렸지만 전화는 없었다. 기다림이 부족한 나는 수차례 연락을 했지만 그는 받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하루가 갔다.

 

수요일 오전부터 연락을 취했지만 받지를 않았다. 그래서 문자를 남기고 별 짓을 다했다. 정오가 지나서 연락이 왔다. 조부모 그리고 어머니와 함께있어 통화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이것마저도 MSN으로 가능했다. 그리고 이날 오후, 사장의 호출이 있었다. 나에 대한 정리해고를 알리는 면담이었다. 사회생활하며 내 발로 나간 적은 있어도 퇴출된 건 없었기에 조금 놀라웠고 화가났다. 그러나 곧 무덤덤해졌다. 한 시간에 걸쳐 짐을 정리하고 책상을 청소했다. 함께했던 권기자와 김기자의 표정이 어두웠다. 그래서 표현이 솔찍한 나는 같이 어두울 수 없었다. 그냥, 나 좀 쉴 때라고만 말할 뿐이었다. 이날, 몹시 그의 목소리가 그리웠다. 그가 런던에 있던 때처럼 약간 힘빠진 듯하지만 충분히 부드럽고 사랑스런 목소리만으로 활력을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전화기를 붙잡고 연신 통화버튼을 눌러댔다. 물론, 이건 내 입장일 거다. 아마도 그에게는 조급해보이는 한 남자밖에 떠오르지 않았을 거다. 마치 무엇에 환장해 할딱대는 동네 개처럼.

 

팔 월의 징크스인건지, 작년과 마찬가지로 밤새도록 눈물만 쏟아냈다. 물론 감흥이란, 큰외삼촌이 떠나가시던 그때와는 다르지만 슬픈 감정을 감출수는 없었다. 지금의 기억에 어젯밤 난 숨이 막혀 헐떡거렸고 그러다가 잠들었다. 그리고 아침이 됐다. 침대에서 눈을 뜨고 마치 조립공장의 기계팔마냥 전화기의 통화버튼을 눌렀다. 한 참을 시도하고 또 시도했다. 하다 안돼 문자를 보냈다. 결국 궁상맞게 '제발'이라는 단어도 사용했다. 그리고 잠시 후 통화를 할 수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지쳐있었다. 무엇이 그를 힘들게 했는 지는 명확하게 모른다. 또한 내가 무엇을 물어보고 어떤 대답을 들었건 그것조차 중요하지 않다. 확실한 건, 그의 가슴에 나는 이미 없었다. 좁은 방이라 여럿이 들어찰 수 없든 혹은, 내가 출입제한에 걸려있든 간에 이미 나는 퇴장조치된 손님이었다. 마지막으로 내가 그에게 할 수 있는 말은 별게 없었다. 앞날에 불행만 가득하길 바란다는, 소신아닌 소심한 바램이 전부였고 원망섞인 목소리로 팔 월의 오늘을 언제나 기억하겠다는 멍청하고 나약한 다짐이었다.

 

그는 열 아홉 소년시절에도, 대학의 마지막 겨울 즘에도 그리고, 그 이후의 만남에서도 늘 한결같았다. 언제나 시원하게 찾아왔다가 시원스레 떠났다. 곧 서른을 맞을 내게 이별의 향은 오래 남아있을 듯하다. 지독한 이 흔적을 억지로 없앨 노력은 않을 거다. 오감을 감춘 채 그렇게 살아갈 거다. 그리고 다시는 미련하거나 나약하지 않을 거다. 계속됐던 이별을 곱씹으며 내린 결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