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장이 정치인들 선거 유세하는 곳인가?

조의선인201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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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트 스포츠 PUP 2010-06-01]

 

지난달 26일 인천문학경기장에서 열린 인천과 대구의 경기는 시작 전부터 다소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경기 시작 한 시간 반 전부터 파란 점퍼를 입고 선거 홍보용 띠를 두른 채 관중석을 도는 남성 때문이었다. 이 남성은 기자석까지 와 나에게도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이번 6·2 지방선거에 한나라당 인천시장 후보로 나선 안상수 후보였다.

순간 ‘이거 선거법 위반 아닌가’라는 생각이 스쳤다. 현 인천시장으로서 인천유나이티드 구단주이기도 한 안상수 시장은 이번 선거에 입후보하면서 일시적으로 인천시장의 권한이 정지됐기 때문이다. 구단주이기 이전에 시장 후보로 출마한 사람이 지위를 남용해 축구장에서 선거 운동을 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안상수 후보는 경기 시작 전 관중석을 수차례 돌며 선거 운동을 이어갔다. 그의 뒤에는 한 무리의 선거 운동원들이 따라다녔다. 선거법 위반이 아니더라도 이건 축구팬들을 무척 우습게 보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마이크를 잡고 2만여 관중 앞에서 연설을 한 안상수 후보는 경기 시작을 앞두고는 더 기가 막힌 일을 했다. 안상수 후보는 기념 촬영을 한 뒤 경기장 한복판에 둥글게 서 관중들에게 큰 절을 올리자고 선수들에게 제안했다. 물론 구단주의 제안을 거절할 수 있는 선수는 없었다. 마치 코스닥 상장 도전을 축하하기 위해 자리한 이들과 인천 선수단 모두 안상수 시장을 지지하는 듯한 모습이 연출됐다.

안상수 후보는 가장 많은 관중이 몰린 E석 중앙에 자리를 잡고 절을 했다. 외국인 선수 브루노와 푸마 아시아 지부장도 어설프게 큰 절을 올렸다. 머나먼 이국 땅에서 이들은 뭔 죄인가. 컵대회를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정규리그에 비해 관심을 덜 받는 경기에 구단주가 나와 직접 경기 직전 큰절을 올린다는 게 불순한 의도가 아니라면 설명하기 어렵다. 내가 너무 안상수 구단주의 큰 뜻을 이해 못하는 건가. 인천 구단을 위해 많은 일을 한 안상수 구단주는 오히려 이런 행동으로 자신의 업적에 먹칠을 했다.

오후 7시 30분에 시작하기로 했던 경기는 결국 7시 39분이 돼 시작했다. 구단에 문의해보니 “원래 경기 전 다같이 큰 절을 올리는 일은 계획에 없었다. 우리도 갑작스런 안상수 후보의 행동을 제지할 길이 없었다”고 밝혔다. 인천 구단은 지난 해에도 안상수 후보의 사전 선거 운동이 문제가 돼 검찰 조사를 받기도 했다. 당시 결국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K-리그 구단이 검찰의 조사 대상이 된다는 것 자체가 무척 기분 나쁜 일이다. 구단주가 이러니 딱히 이를 제지할 방법이 없다.

 

이건 누가 봐도 명백한 선거 운동이다. 그의 공식 홈페이지에는 버젓이 이날 경기에서의 행동을 ‘유세’라고 표현하며 사진까지 올려놓았다. 더군다나 안상수 후보는 경기가 시작되고도 한 동안 관중석을 돌며 지지를 호소했다. 선거 홍보용 띠를 두르고 자신의 정당을 상징하는 점퍼를 입고 구단주라는 명함을 내세우는 건 세상에 어디서도 보지 못했다. 2만 명 앞에서 편하게(?) 선거 운동 하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이건 축구팬과 인천 구단을 대놓고 무시하는 행동이다. 더군다나 구단주를 맡고 있다면 더욱 조심해야 하는 거 아닌가. 내가 보고 싶은 건 축구와 티아라였지 선거 운동이 아니었다.

수원에서도 황당한 일이 있었다. 선거유세차량에 오른 남경필 의원(경기 수원팔달)은 어제(31일) 심재인 한나라당 수원시장 후보 지지 유세에서 “대한민국의 자랑이 삼성인데 오늘 아침 삼성 블루윙즈의 응원팀이 심재인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고 밝혔다. 이는 곧 기사화 돼 각종 매체로 전달됐다. 이거 꽤나 문제가 될 일이었다. 서포터스 단체가 정치적인 단체로 변질됐다면 이만한 충격이 없다. 적어도 내가 아는 어떤 K-리그 서포터스도 정치색을 갖길 원하진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사자인 수원 서포터스 그랑블루는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그랑블루 김일두 회장은 “여러 정당에서 연락을 받았다. 우리를 홍보 수단으로 사용하려는 속셈 같아 모두 거절했다. 그런데 ‘정책에 관한 의견을 주면 반영하겠다. 악용하지 않을 테니 한 번만 와 달라’고 해 가서 구단에 도움이 될 부분 의견 개진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이후 우리가 특정 후보의 지지 선언을 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누차 말하지만 우리는 어떤 후보도 지지를 선언한 적이 없다.”

그냥 정치인들이 선거 유세에서 자신들의 세력을 과시하기 위해 내뱉은 한마디였지만 이 말 한마디로 K-리그 최대의 서포터스는 졸지에 정치적인 단체로 오해를 받았다. 자기네 정당 시장 후보를 위해서라면 정치에는 관계도 없는 사람들도 다 자기네 지지자로 만드는 게 선거 운동인가. 사람 가지고 장난치지 말라. 축구 가지고 장난치지 말라. 당신들에게 권력이 중요한 것처럼 우리에게는 그 이상으로 축구가 신성하다.

 

위와 비교할 상황까지는 아니지만 <비바! K-리그> 촬영 도중에는 한 선거 운동원이 불쑥 그라운드에 앉아 선수와 인터뷰 중인 상황에 카메라 앞으로 끼어들어 악수를 요구해 촬영이 중단되기도 했다. 그러고도 미안한 표정 하나 없이 악수만 하고 또 다시 유유히 사라졌다. 제발 적당히 좀 하자. 당신네들 하는 것만 일인가. 우리가 하는 건 일도 아닌가. 왜 남의 일까지 방해해 가면서 지지를 부탁하는가.

선거 운동하는 데 제발 축구가 이용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당신들 선거 운동하라고 사람들이 축구장에 모이는 거 아니다. 만약 당신들 선거 운동 사무실에 가서 내가 먼지 나게 공 차면 기분 좋겠나. 똑같은 거다. 만약 당선된다고 해도 그런 이기주의로 계속 정치할 건가. 부탁하건데 제발 선거 운동을 목적으로 축구장에 얼씬도 하지 말라. 축구장은 당신들 선거 유세하라고 있는 곳이 아니다.

 

〔네이트 스포츠PUP 김현회 전 스포츠서울닷컴 기자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