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크의 마돈나 그리고 性

이정숙2010.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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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 의 마돈나

 

삶에 있어 性으로 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분명 무엇보다 아름다운것이 性이지만 가장 추악한 늪도 性이라는것이었다.

그래서 난 그렇게 빨리 늙고 싶었나 보다.

세상에서 규정 되어진 관념에서 자유롭고 싶어서 그 무엇도 문제가 될 수 없는 세월을 택했나보다.

 

그림의 드러난 단면은 sexuality와 죽음을 주제로 한 그림.

자의식은 서양역사상 가장 성스러운 여인 마돈나를 타락한 여성으로 보이게도 하지만 역설적으로 사방으로 가로막힌 액자와 같은 빨간 테두리에선 sperm을 연상시킴으로써 결국 여자는 절대 자유로울 수 없는 테두리에 갖혀있음을 느낄 수 있다.

내가 인지하는 남과 여는 이렇다.

둘 사이의 사랑은 至高至順이란 일컬을 수 있다.

그러므로 둘사이에서의 性은 맑고 순수한것이어서 그 어떤 것으로도 비난하거나 옳고 그름으로 표현할 수 없다. 다만 그 이면에 내안에서 나를 바라보는 이기적 사고의 형태에서 그 아름다운 性이 뒤틀리고 색이 바라게 되어 결코 순수치 않은 상태가 되어버린다.

결국 사랑안에서의 性이란 그지 없이 아름답지만 그로 인해 전개되어지는것은 결코 아름답지 않을 수 있다는것이다.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그 모든것은 내가 아닌 나와 함께 나눈 상대를 위해 전개되어져야 한다.진정으로 사랑해본적이 있는가? 내가 사랑하는 상대때문에 기꺼이 곤두박질 쳐져 본 적이 있는가? 늘 그래야 한다지만 그런마음이고 싶겠지만 순간 순간 어쩌면 내가 믿는 사랑이 허상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갖게 되는것은 인간이 가지는 어찌할 수 없는 나약함 아닐까?

그림을 보며 생각했다.

참 슬프다. 그녀가 정말 관능적일까? 그녀는 좌측하단의 유령과 같은 모습으로 웅크린 태아형태의 性의 뒷면을 온전히 혼자 감당할 수 있을까? 현실이라는 테두리에서 그렇게 온전히 책임이란 이름으로 사랑하고 그로인해 파생되어지는 그 모든것을 감당할 수 있을까?

그러므로 겁쟁이는 사방에 바리케이트를 치고 사랑이란 외부침입을 가로 막아버리고 병신처럼 모니터를 통해 아바타와 사랑을 나누는건 아닌지...

에덴에선 그 무엇도 부끄럽지 않았었다.

어느날 누군가 내민 공짜 과일에 눈이 멀기 시작하면서 그 모든 고통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