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을 키운 이웃집 토토로

유동경2010.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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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토토로는 전체적으로 아이들의 순수함이 가득 묻어나는 만화이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그 순수함을 느낄 수 있었다. 어렸을 적에 이 만화를 본 적이 있었는데, 다시 보게 되어서 감회가 새로웠다. 예전에는 단순히 아이들이 토토로를 만나 겪는 모험에서 즐거움을 느꼈었는데, 근래에는 그 안에 담긴 자연주의와 순수성에서 크나큰 희열을 느낄 수 있었다.

이 만화영화는 11살의 사츠키와 4살의 장난꾸러기 메이 자매는 병원에서 곧 퇴원할 어머니의 건강을 위해 아버지와 함께 시골로 이사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이사한 집에서 아이들은 빈 집에서 살아가는 까만 요정을 만난다. 메이가 그 요정을 쫓아다니는 모습은 순수하다는 말이 부족할 정도로 순수하기 이를 데 없었다.

사츠키가 학교에 가 있는 동안, 혼자 숲에서 놀던 메이는 숲의 요정 토토로를 만난다. 집 마당에 떨어져 있는 도토리를 줍다가 우연히 꼬마 토토로들을 보게 된다. 놀란 꼬마 토토로는 투명인간처럼 자신을 숨기려고 했지만, 순수한 메이의 시야를 가릴 수는 없었다. 메이는 도망치는 토토로들을 쫓아 신비하고 거대한 나무 숲 속으로 들어가 거대한 토토로를 만났고, 그 따뜻한 품에 안겨 잠이 든다.

메이가 찾아 들어간 나무는 그 외양이 너무나도 기이하고 신비스러웠다. 아마도 일본인들이 추구하는 이상적인 자연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러한 자연이 현실이 된다면 만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사람을 품어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일본인들의 내면에 있는 자연은 그것이 가지고 있는 포용력에도 불구하고 그 형상이 기이하고 낯설어서 가까이 하기 힘들지만, 현실의 자연은 그 모습이 어머니의 따뜻한 마음씨처럼 편안하고 친근하기 때문에 사람은 그 품에 쉽게 안길 수 있다. 결국 가장 이상적인 자연은 역설적이게도 현실의 자연인 것이다.

메이는 사츠키에게 토토로를 만난 이야기를 하지만 사츠키는 메이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다. 어느 비오는 날, 사츠키는 메이와 함께 우산을 들고 아버지를 마중나갔다가 토토로를 만난다. 사츠키가 비를 맞고 있는 토토로에게 우산을 빌려 주었다.

우산을 쓴 토토로는 우산에 떨어지는 빗소리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더 많은 빗물이 떨어지게 하기 위해 어린 아이처럼 쿵쿵 뛰었다. 이는 토토로의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었지만 이 작품 전체에 흐르고 있는 순수함을 생각하면 충분히 어울리는 것이었다.

토토로는 사츠키에게 우산을 빌려준 답례로 도토리 씨앗을 준다. 그리고 사츠키와 메이를 위해 도토리의 싹을 틔워주는 데 그 과정에서 보여준 아이들과 토토로들의 천진난만한 율동이 인상적이었다. 그것은 자연의 생명력과 어린 아이들의 순수함을 상징하는 듯 했고, 내 가슴속에서 꿈을 일깨워내어 새싹처럼 쑥쑥 키웠다. 마치 희망을 품은 몽상가가 된 기분이었다.

어머니의 퇴원을 하루 앞둔 날, 병원으로부터 어머니의 병세가 갑자기 악화되어 퇴원이 연기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신경이 날카로워진 사츠키는 메이를 야단치고, 메이는 밭에서 딴 옥수수가 몸에 좋다는 말이 떠올라 옥수수를 따 가지고 무작정 어머니가 입원한 병원을 찾아 나섰다가 길을 잃는다.

메이의 실종에 사츠키가 마을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는 모습은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어머니의 병세가 악화된 것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동생이 사라지기까지 했으니 얼마나 심란하고 괴로웠을까. 난 사츠키에게서 크나큰 동정심과 불쌍함을 느꼈다. 또한 그런 장면을 보면서 어릴 적 동생을 잃어버렸다가 찾았던 경험이 떠오르기도 했다.

사츠키는 절실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토토로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다. 토토로는 사츠키에게 고양이버스를 빌려주었고 사츠키는 메이를 찾아내 병원으로 간다. 메이를 찾아냄으로써 사츠키에 대한 안타까움은 안도감으로 바뀌었고, 그 안도감은 곧 유희의 즐거움이 되었다. 고양이버스를 타고 바람같이 달려가는 모습이 그러했다. 그 모습을 거창하게 표현하자면 서늘한 바람이 부는, 비 내린 다음날에 느낄 수 있는 그런 시원함과 깨끗해진 푸른 하늘의 쾌청함이었다.

병실 창문을 통해 어머니의 웃는 모습을 보고 마음을 놓은 사츠키와 메이는 창가에 편지와 옥수수를 올려 놓고 집으로 돌아간다. 그 소박한 편지와 옥수수에서 어머니에 대한 소탈하고 담박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마치 한 권의 그림 동화를 보는 것 같은 설레임과, 한 폭의 파스텔 그림과 같은 따뜻함에 마음이 젖어있었고,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과 토토로의 귀엽고 환상적인 모습 때문에 놀이동산에서 노닐 듯이 행복했다. 오늘날의 현대인들은 명예와 이익에 대한 집착 때문에 이런 마음의 기쁨을 잊고 지내는 듯 하다. 우리가 그런 집착들을 완전히 걷어내 버리고 아이와 같은 깨끗하고 풍부한 감성을 지닌 채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영화가 끝나고 난 뒤, 현실로 되돌아옴을 느끼며, 잊고 살아가는 것에 대한 씁쓸한 감정과 함께, 다시 찾을 수 없을 것 같다는 불안감이 밀려 들었고, 내가 살아가는 현실에 대해 깊은 허무감을 느꼈다. 언제쯤에야 나는 땅에 기어다니는 즘생이 아닌 저 아름다운 창공을 자유롭게 비상하는 새가 될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하는 내 자신을 계속해서 달랬고 어느 순간 마음의 동요를 멈추고 안정을 되찾았다. 나를 다시 평안하게 해준 것은 현실에서 느낄 수 있는 즐거움과 미래에 대한 희망이었다. ‘삶의 희망이 나를 비행기처럼 활주로에 오르게 하고, 끊임없이 내달리게 하여, 결국에는 저 깊고 넓은 하늘에 오르게 하겠지.’라고 생각하며 내 마음의 밭을 갈았다. 토토로와 아이들이 하늘로 뻗어오르는, 크나큰 나무를 키운 것처럼, 나도 내 마음의 씨앗을 희망이라는 생명수와 노력이라는 흙으로 높디높게, 거대하게 길러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