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보다 두살위의 형은 올해로 28살 입니다. 고등학교 당시 일본어를 특출나게 잘해서 결국 대학도 일본어 관광통역학부로 들어갔습니다. 여름방학당시 열정이 있었기에 남보다 특출났던 일본어 실력을 인정받아서 후쿠오카로 호텔 견습을 나갔었지요. 군미필신분이라 비자를 낼순 없었고, 3개월 관광비자로 들어갔습니다.
형은 일본어 공부에는 굉장한 열정이 있었기에 호텔의 사장님께 다음에 들어와도 숙식만 제공해달라며 여러번 일본으로 들어갔었습니다. 그러길 수차례, 한국에 있었던 형에게 국제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제가 일본어를 알아듣진 못했지만 굉장히 심각한 내용이었던 것 같습니다. 나중에 알게되었지만 그건 형수가 아이를 가졌다는 것이었습니다.
우여곡절끝에 형수는 조카를 안고 한국에 들어와서 저희 부모님을 뵙고 결국에 결혼을 승낙받았습니다. 일본에서 한국으로 넘어온것이지요. 시간이 조금 흐르고 형은 해군 부사관을 지원하였고, 입대 1주일만에 시력이상으로 다시 나왔습니다. 일반병으로 오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먼저 군대를 갔습니다. 군 생활중에 형은 둘째 조카를 출산했지요. 군대 문제가 걸려있었고, 형은 대학을 자퇴한 상태여서 더이상의 연기는 불가능했지만. 외국인과 국제결혼에, 자식이 두명있어서 조건이 맞는다면 면제가 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형이 가버리면 형수와 조카는 생계가 어려워지기 때문이죠. 처음 창원지방병무청에서는 교대로 군대를 가라더군요. 제가 먼저갔으니, 제가 나오면 형이가라고, 그 말은 뭡니까. 저보고 형수와 조카를 책임지라는 거 아닙니까 ? 하도어이가 없었지만 군에서 정기휴가를 두번 잘라서 병무청 서류를 해넣고 결국에 형은 면제를 받고 저도 건강하게 군에서 전역을 했습니다.
형은 한국에서 버는 돈으로 집에 있는 형수와 조카들을 먹여살리기에 너무 벅찼나 봅니다. 저의 집안 형편도 형을 그렇게 도와줄수 있는 형편은 아니라서 중과부적이었지요. 형은 결국 가족들과 일본에 들어가는 것을 결정하여 일본으로 가서 철도청에 근무를 하게 되었습니다. 선로를 점검하고 전선을 보강하고 설치하는 그런 일이 었기에 철도가 다니지 않는 야심한 밤에 일을 하였습니다. 평소 술을 좋아하던 형은 야간에 일을 하고 피로가 누적되어 힘들어 하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그러다가 작년 말 그러니깐 2009년 12월 중으로 생각됩니다.
형이 전화가 와서 인터넷에 접속하라고 하더군요. 접속을 했더니만 형이 간에 문제가 생겼다며, 저보고 너도 술을 줄이라고 하더군요. 네 형과 저는 선천적으로 B형간염 보균자입니다. 형은 저보고 급성간염이 왔다고 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2010년 4월 말 형이 한 10여일간 가족들과 함께 한국으로 왔습니다. 아뿔사. 저는 너무 낙천적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누가봐도 건장해보일정도로 체격이 좋았던 형은 살이 너무 많이 빠지고 덩치가 홀쭉해진겁니다. 이건 확실히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3시간정도 외출을 다녀오더니 하루종일 엎어가도 모를 정도로 잠에 취해있었습니다. 그리고 털어놓은 말이 간경화 진단을 받은 것입니다.
그때서야 저는 심각성을 깨달았습니다. 형은 결국 회사에서 퇴직하게 되었습니다. 형은 건강을 이유로 한국에 들어오고 싶어 하지만 형수가 자신은 한국에 가면 죽는 다고 혼자가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형이 설득을 해도 되지 않고 그럼 자신이 건강만 좀 챙겨놓고 다시 오겠다해도 막무가내로 버티고 있습니다.
형은 결국에는 눈물을 머금고 이혼서류를 작성했습니다. 2년간 고생하였지만 돌아온것은 차디찬 냉대였습니다. 형수는 위자료 500에 매달 양육비 80만원을 요구 했습니다. 그 정도 돈이 있으면 형도 더 나은 치료를 받을수 있겠지요. 현실적으로 불가능 한 일이었습니다. 제 월급은 이미 형에게 조금 보태지고 있었고, 제가 어릴때 부터 몸에 항상 지니고 다니던 금팔찌도 팔아서 형에게 송금한 상태였습니다. 그런상태에서 형수는 인간적으로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형은 왠만하면 이혼은 반대하고 조카들도 놔두고 올수 없었지만 형수는 너무 고집이쎕니다. 형은 자신이 죽어가는 입장에 특단의 조치를 취할수 밖에 없지요. 그저께는 형의 장인어른께서 형을 불렀다고 해서 형이 다녀왔다고 합니다. 장인어른께서 눈물을 흘리시면서 자신의 딸이지만 진정 인간같지 않다며 자신이 조금 돈을 장만해보겠다고 합니다. 자신의 딸과 형의 인연은 여기까지이지만 장인어른께서는 자신이 살아봐야 얼마나 살겠냐며, 자신과는 장인과 사위의 신분으로 계속하자고 하셨답니다.
물론, 형과 장인어른께서는 눈물을 흘리며 부둥켜 안은채 한참을 울었다고 합니다. 타국에가서 가족들과 떨어져 매일같이 고생만 하고 이렇게 버림을 받다니요. 저는 부모님이 결혼을 반대해도 끝까지 믿어줬는데 너무 배신감에 허탈할뿐입니다.
이혼신청을 하고 신변정리를 하면 형수 앞으로 매월 250만원의 정부보조금이 지급됩니다. 이왕 사태가 이렇게 되었으니 어쩔도리가 없지만 형이 다시 건강해질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일본에서 반년 치료를 받았으나 회복이 되질 않습니다. 형의 나이는 28세, 원체 건강했고 운동도 많이 하였으나, 지금은 너무 힘도 없고 쳐저 있습니다.
우리 불쌍한 형 어릴때 가정형편때문에 고등학교 때 부터 알바, 노가다 등으로 고생했던 형이. 결혼하고 자리를 잡아가려 하니 또 이렇게 되네요. 너무 답답하고 짜증도 나서 요즘에는 술도 많이 마셨습니다. 형이 돌아와 꼭 회복할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두서없는 글 여기서 이만 마치겠습니다. 모두 좋은 하루 되시고 웃을수 있는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나는 우리형이 너무 불쌍합니다...
안녕하세요 처음으로 방문해봅니다.
저의 친형이 너무 불쌍해서 정말 냉정하다는 제가 이리도 가슴이 아플줄은 몰랐습니다.
저보다 두살위의 형은 올해로 28살 입니다. 고등학교 당시 일본어를 특출나게 잘해서 결국 대학도 일본어 관광통역학부로 들어갔습니다. 여름방학당시 열정이 있었기에 남보다 특출났던 일본어 실력을 인정받아서 후쿠오카로 호텔 견습을 나갔었지요. 군미필신분이라 비자를 낼순 없었고, 3개월 관광비자로 들어갔습니다.
형은 일본어 공부에는 굉장한 열정이 있었기에 호텔의 사장님께 다음에 들어와도 숙식만 제공해달라며 여러번 일본으로 들어갔었습니다. 그러길 수차례, 한국에 있었던 형에게 국제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제가 일본어를 알아듣진 못했지만 굉장히 심각한 내용이었던 것 같습니다. 나중에 알게되었지만 그건 형수가 아이를 가졌다는 것이었습니다.
우여곡절끝에 형수는 조카를 안고 한국에 들어와서 저희 부모님을 뵙고 결국에 결혼을 승낙받았습니다. 일본에서 한국으로 넘어온것이지요. 시간이 조금 흐르고 형은 해군 부사관을 지원하였고, 입대 1주일만에 시력이상으로 다시 나왔습니다. 일반병으로 오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먼저 군대를 갔습니다. 군 생활중에 형은 둘째 조카를 출산했지요. 군대 문제가 걸려있었고, 형은 대학을 자퇴한 상태여서 더이상의 연기는 불가능했지만. 외국인과 국제결혼에, 자식이 두명있어서 조건이 맞는다면 면제가 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형이 가버리면 형수와 조카는 생계가 어려워지기 때문이죠. 처음 창원지방병무청에서는 교대로 군대를 가라더군요. 제가 먼저갔으니, 제가 나오면 형이가라고, 그 말은 뭡니까. 저보고 형수와 조카를 책임지라는 거 아닙니까 ? 하도어이가 없었지만 군에서 정기휴가를 두번 잘라서 병무청 서류를 해넣고 결국에 형은 면제를 받고 저도 건강하게 군에서 전역을 했습니다.
형은 한국에서 버는 돈으로 집에 있는 형수와 조카들을 먹여살리기에 너무 벅찼나 봅니다. 저의 집안 형편도 형을 그렇게 도와줄수 있는 형편은 아니라서 중과부적이었지요. 형은 결국 가족들과 일본에 들어가는 것을 결정하여 일본으로 가서 철도청에 근무를 하게 되었습니다. 선로를 점검하고 전선을 보강하고 설치하는 그런 일이 었기에 철도가 다니지 않는 야심한 밤에 일을 하였습니다. 평소 술을 좋아하던 형은 야간에 일을 하고 피로가 누적되어 힘들어 하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그러다가 작년 말 그러니깐 2009년 12월 중으로 생각됩니다.
형이 전화가 와서 인터넷에 접속하라고 하더군요. 접속을 했더니만 형이 간에 문제가 생겼다며, 저보고 너도 술을 줄이라고 하더군요. 네 형과 저는 선천적으로 B형간염 보균자입니다. 형은 저보고 급성간염이 왔다고 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2010년 4월 말 형이 한 10여일간 가족들과 함께 한국으로 왔습니다. 아뿔사. 저는 너무 낙천적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누가봐도 건장해보일정도로 체격이 좋았던 형은 살이 너무 많이 빠지고 덩치가 홀쭉해진겁니다. 이건 확실히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3시간정도 외출을 다녀오더니 하루종일 엎어가도 모를 정도로 잠에 취해있었습니다. 그리고 털어놓은 말이 간경화 진단을 받은 것입니다.
그때서야 저는 심각성을 깨달았습니다. 형은 결국 회사에서 퇴직하게 되었습니다. 형은 건강을 이유로 한국에 들어오고 싶어 하지만 형수가 자신은 한국에 가면 죽는 다고 혼자가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형이 설득을 해도 되지 않고 그럼 자신이 건강만 좀 챙겨놓고 다시 오겠다해도 막무가내로 버티고 있습니다.
형은 결국에는 눈물을 머금고 이혼서류를 작성했습니다. 2년간 고생하였지만 돌아온것은 차디찬 냉대였습니다. 형수는 위자료 500에 매달 양육비 80만원을 요구 했습니다. 그 정도 돈이 있으면 형도 더 나은 치료를 받을수 있겠지요. 현실적으로 불가능 한 일이었습니다. 제 월급은 이미 형에게 조금 보태지고 있었고, 제가 어릴때 부터 몸에 항상 지니고 다니던 금팔찌도 팔아서 형에게 송금한 상태였습니다. 그런상태에서 형수는 인간적으로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형은 왠만하면 이혼은 반대하고 조카들도 놔두고 올수 없었지만 형수는 너무 고집이쎕니다. 형은 자신이 죽어가는 입장에 특단의 조치를 취할수 밖에 없지요. 그저께는 형의 장인어른께서 형을 불렀다고 해서 형이 다녀왔다고 합니다. 장인어른께서 눈물을 흘리시면서 자신의 딸이지만 진정 인간같지 않다며 자신이 조금 돈을 장만해보겠다고 합니다. 자신의 딸과 형의 인연은 여기까지이지만 장인어른께서는 자신이 살아봐야 얼마나 살겠냐며, 자신과는 장인과 사위의 신분으로 계속하자고 하셨답니다.
물론, 형과 장인어른께서는 눈물을 흘리며 부둥켜 안은채 한참을 울었다고 합니다. 타국에가서 가족들과 떨어져 매일같이 고생만 하고 이렇게 버림을 받다니요. 저는 부모님이 결혼을 반대해도 끝까지 믿어줬는데 너무 배신감에 허탈할뿐입니다.
이혼신청을 하고 신변정리를 하면 형수 앞으로 매월 250만원의 정부보조금이 지급됩니다. 이왕 사태가 이렇게 되었으니 어쩔도리가 없지만 형이 다시 건강해질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일본에서 반년 치료를 받았으나 회복이 되질 않습니다. 형의 나이는 28세, 원체 건강했고 운동도 많이 하였으나, 지금은 너무 힘도 없고 쳐저 있습니다.
우리 불쌍한 형 어릴때 가정형편때문에 고등학교 때 부터 알바, 노가다 등으로 고생했던 형이. 결혼하고 자리를 잡아가려 하니 또 이렇게 되네요. 너무 답답하고 짜증도 나서 요즘에는 술도 많이 마셨습니다. 형이 돌아와 꼭 회복할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두서없는 글 여기서 이만 마치겠습니다. 모두 좋은 하루 되시고 웃을수 있는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