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사상과 풍수지리 과제 - 소요산 자재암 답사

. 2010.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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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양사상과 풍수지리 과제>

학과 : 경영학과(경희대 학점교류생)

학번 : K2006101060

이름  : 박준현



소요산 자재암

 소요산

-높이는 587m이고, 주봉(主峰)은 의상대(義湘臺)이다. 서울특별시에서 북쪽으로 44km, 동두천 시청에서 동북쪽으로 약 5km 지점에 있다.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산세가 수려하고 아름다워서 경기의 소금강(小金剛)이라고도 한다.

 645년 신라의 원효대사(元曉大師)가 개산(開山)하여 자재암(自在庵)을 세운 이후, 974년(고려 광종 25) 소요산이라 부르게 되었고, 중대암(中臺庵)소운암(小雲庵)소요암(逍遙岩)영원사(靈源寺) 등의 사찰과 암자가 있었다고 한다.

1981년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었다. 자재암은 봉선사(奉先寺)의 말사(末寺)로서, 원효대사가 수행 도중 관세음보살과 친견하고 자재무애의 수행을 쌓았다고 하는 데서 그 이름이 유래하였다. 소요산에는 청량폭포(淸凉瀑布)와 원효폭포가 있는데, 이 지대를 하백운대(下白雲臺, 500m)라고 한다. 그 오른쪽에 원효대(元曉臺)가 솟아 있고 원효대사가 수도한 곳이라고 전하는 옥로봉(玉露峰)을 넘어 북동쪽으로 나한대(羅漢臺, 510m)의상대비룡폭포가 나온다. 또 원효대에서 약 30m쯤 되는 절벽 위를 상(上)백운대라고 하며, 그 밑으로 선녀탕(仙女湯)을 볼 수 있다. 자연석굴인 나한전과 산중턱의 금송굴도 유명하다. 산 입구에는 구한말에 독립 만세운동을 이끌었던 홍덕문의 추모비가 있다

 

 

 


자재암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의 말사이다. 654년(무열왕 1) 원효가 창건하여 자재암이라고 했다. 고려시대 974년(광종 25) 각규(覺圭)가 태조의 명으로 중건하여 소요사로 바꾸고, 1153년(의종 7) 화재로 소실된 것을 이듬해 각령(覺玲)이 대웅전과 요사채만을 복구하여 명맥만 이어왔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1872년(고종 9) 원공(元空)과 제암(濟庵)이 퇴락한 이 절 44칸을 모두 중창하고 영원사(靈源寺)라 하였다. 이때 영산전· 만월보전(滿月寶殿)·독성각·산신각·별원(別院) 등의 건물이 있었으나 1907년 화재로 만월보전을 제외하고 모두 소실되었다. 1909년 성파(性坡)와 제암이 다시 중창하고 절 이름을 자재암으로 고쳤다.

 6·25전쟁 때 다시 소실되어 1961년 진정(眞精)이 대웅전을, 1968년 성각(性覺)이 요사채를, 1977년에는 삼성각을, 1982년에는 일주문을 각각 지었다. 이어 1984년에는 부설 유치원이 개원하였고, 1983~1985년에 오래된 건물이 헐리고 새로운 중창이 이루어지면서 오늘날의 면모를 갖추었다.

 이 절에는 여러 가지 설화가 전한다. 원효가 요석공주와 세속의 인연을 맺은 뒤, 이곳에 초막을 짓고 수행에 정진하고 있을 때, 관세음보살이 변신한 아름다운 여인이 유혹을 하였다. 설법으로 유혹을 물리친 원효는 이내 그 여인이 관세음보살이었음을 깨닫고 더욱 수행에 정진하는 한편 관세음보살을 친견하고 자재무애의 수행을 쌓았다는 뜻에서 절을 짓고 자재암이라 했다고 전한다. 또한 수락산 흥국사(興國寺)의 승려이던 제암과 자재암의 주지인 원공이 서로 다른 꿈을 꾸고 우연히 만나 절을 중창했다는 영험담도 전한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삼성각·나한전·일주문·백운암·요사채가 있는데 전부 1961년 이후의 중창 때 세운 것이다. 경내 및 주위에는 1980년에 세운 속리교와 세심교가 있다. 1909년 중창 때 그린 불화도 많이 남아 있었는데 6·25전쟁 중에 대부분 소실되었고, 1914년 무렵에 그린 칠성탱화만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 삼성각에 봉안되어 있다.

 

소요산 지도

 소요산은 백두대간에서 갈라져 나온 한북정맥의 기맥으로, 언뜻 보면 바로 포천으로 이어져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소요산 뒤로는 포천천이 흘러서 막혀 있기 때문에, 산줄기는 남쪽의 왕방산 방향으로 향하다 포천과 가평 사이에 있는 운악산으로 이어져 백두대간으로 올라간다.

 위에 있는 자재암의 설명에 나와 있듯이, 자재암은 고려시대에 화재소실로 명맥만 잇다 1800년대가 돼서야 중창된 절이다. 그래서 옛 지도와 자료를 알아봤는데 참고할만한 사항이 그리고 많지 않았다. 소요산 자재암이 속해있는 동두천 역시 조선시대에는 경기도 양주목의 일부로 이담면에 불과하여 역사적인 자료가 부족했다.

 오로지 직접 가서 풍수강의에서 배운 것을 기반으로 확인하는 것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였다.


 현재 지도로 보면, 소요산의 자재암에서 물줄기가 시작하여 신천으로 흐르고 있다. 자재암에서 시작하는 계곡물이 명당수라면 신천은 이곳의 수구로서 북쪽으로 뻗어 한탄강에 합류하고 나중에 임진강으로 포함되어서 서해바다로 흘러간다. 소요산은 동쪽을 등지고 서쪽으로 향하여 있고, 앞에는 조산이라 할 수 있는 마차산이 있다.

 본인이 바로 앞에 있는 마차산을 안산이 아닌 조산으로 정의한 이유는 자재암을 기준으로 할 때 소요산의 좌청룡, 우백호이 자재암 쪽으로 살짝 감싸안아주는데, 이것이 그 자체로 안산 역할을 하는 것이라 여겼다. 그리고 마차산이 소요산과 규모가 비슷해서(둘 모두 500m 후반 높이의 산.) 안산으로 여기기에는 너무 커보인다.

 가서보고 느낀 여담이지만, 소요산 뒤편으로도 산줄기가 계속 남쪽으로 뻗어있고, 중간에 동두천(여기서는 동두천시 지명의 유래가 된 하천.)이 흐르는 미군부대가 있는 곳에도 전형적인 명당이 생성된다. 대전광역시에서 살다 대학교와서 통학하기 위해 이곳 할머니댁에서 살게 되었는데, 여기 어른들하고 얘기하다보면 동두천의 좋은 땅은 미군이 다 가져갔다라는 말을 자주 들었음. 그래서 동두천이 좋은 땅을 가지고도 발전할 수 없다는 말도 종종 듣긴 하지만.



소요산의 구조 및 자재암의 위치

 자재암을 중심으로 보면, 좌청룡과 우백호가 자재암 뒤의 정상인 상백운대에서 갈라져서 각자 뻗어나가 있는 겸혈로 되어 있다. 그 벌어진 틈 사이에 자재암과 소요산 일주문 그리고 더 밑으로 가면 신천과 소요산역까지 평평한 땅이 좁고 길게 이어져 있다. 겸혈 중에서 직경 혹은 장경에 속하지 않나 생각된다. 산고 언덕이 가득한 곳에서 길쭉한 평지와 계곡물의 발원이 있는 자재암도 원효대사가 선택한 명당이 아닐까.

 상백운대를 중심으로 하여 좌청룡은 나한대, 의상대, 공주봉으로 구성되어 있고, 우백호는 중백운대, 하백운대로 이어져있다. 우백호가 좌청룡이 비해 높이나 규모에서 약간 작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엄청 밀리는 것은 아니다.

 본인은 답사한 날, 자재암을 살피고 청량폭포->금송굴->나한대->의상대->구절터로 해서 등산도 하였음. 자재암->하백운대로 향하는 길은 등산로 공사로 인해 올해 말까지 이용할 수 없다. 그리고 의상대->구절터 가는길은 알고보니 지금은 폐쇄된 길로 유의해야할 필요가 있다.(올라가는 길에는 출입금지 안내판이 있지만, 내려가는 길에는 없다.) 지름길이긴 하나, 길이 중간에 끊기고 아무 인적없이 혼자 내려올 수 있을 것이다. 고독을 즐기며 등산하고 싶다면 괜찮을 수도 있겠지만, 잘못하면 길을 잃기 정말 쉽다.





사진으로 보는 소요산 자재암

 

 

 소요산 자재암에 들어가기 앞서 소요산역 앞에 있는 개울다리에서 마차산과 신천을 찍음. 평화로운 휴일의 하루이다.

 

 가까이서 본 신천. 멀리서 봤을 때에는 유유히 흐르는 작은 개천이지만, 자세히 보면 물살이 세다. 좋은 느낌을 주지 못한다.

 

  이 사진은 신천이 북쪽으로 흘러 합류된 연천의 한탄강이다. 여기는 평지에서 흐르는 엄연한 강인데도, 물은 얕고 규모가 작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살은 세다. 피서철이 되면 이 주변에서 물놀이하다 익사사고가 났다는 뉴스를 예외없이 자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큰 여울이라는 뜻이 담긴 한탄漢灘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이 아닐까. 결국 많은 이들의 한탄을 일게 한 곳이다.

 자재암에서 시작하는 계곡물.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다른 곳보다 유독 벌레가 너무 많았다.


소요산역에서 30분 걸어 올라가면 자재암이 나온다.

 

 

 등산로뿐만 아니라, 자재암도 공사중이다.

 

 

 자재암 바로 옆에 나한전이라고 하는 데 어떤 기능을 하는 곳인지는 모르겠다.

 

 

 소요산 좌청룡의 나한대와 의상대.



 의상대에서 바라본 동두천시 전경. 가운데의 개울 신천 밑에 있는 노란 땅들이 미군부대.

 

 나한대 뒤에서 바라본 포천 경계 지역. 이곳은 어디를 둘러봐도 물줄기 하나 없이 답답하기만 하다. 아무리 이 틈에 평평한 땅이 있다 한들 명당이 될 수 없을 것이다.


본인 인증 사진

 

 2010년 6월 2일, 선거공휴일에 소요산 자재암에 홀로 들림.

동네 근처에 있는 산이라 자주 들락날락했지만, 이번에 풍수지리를 배우고 나서 가보니 다르게 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음. 앞으로도 어딜 갈 때 마다 좌청룡, 우백호와 명당 혈하고 명당수가 어딨을까 찾게 될 것 같음. 모처럼 답사와 함께 등산도 하여 제대로 기분전환이 된 휴일이 되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