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격하면 바보?´ 극단적 수비축구로 빛바랜 월드컵

조의선인2010.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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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안 2010-06-17]

 

프로선수들이 '축구 상품가치' 낮췄다?

'2010 남아공월드컵' 조별리그가 한창인 가운데 지금까지 드러난 공통된 특징은 약팀들의 극단적인 수비축구와 예측불허 자블라니의 농락으로 요약된다.

 

스위스는 16일(이하 한국시간) 더반 모저스 마비다 스타디움서 열린 조별리그 H조 1차전에서 페르난데스 결승골을 앞세워 '무적함대' 스페인을 1-0으로 제압했다.

 

상대전적 3무15패로 절대열세였던 스위스가 세계최강 스페인을 이긴 배경 역시 극단적인 수비전술이었다. 10명이 자기 진영에서 진을 쳐 철옹성을 구축, 스페인의 예술적인 쇼트 패스 전개를 불가능하게 만든 것.

 

약이 바짝 오른 스페인은 후반 들어 발 빠른 헤수스 나바스를 투입해 측면 돌파와 크로스에 집중했다. 중원의 사비 에르난데스와 사비 알론소가 계속해서 측면의 헤수스 나바스에게 공을 몰아줬고, 나바스는 크로스를 반복했다.

 

그러나 스위스의 장신 수비진을 상대로 스페인 선수들은 제공권을 장악하지 못했다. 스페인 선수들은 스위스 선수들보다 상대적으로 키가 작았고, 체격마저 왜소해 몸싸움을 동반한 공중볼 경합에서 스위스를 이겨내지 못했다.

 

사실 단조로운 측면 러닝 크로스-고공 축구는 스페인에게 가장 어색한 전략이기도 했다. 스페인의 장기는 정교한 쇼트 패스로 공격을 풀어가는 전술이기 때문이다. 정밀한 땅볼 패스로 중원을 점령한 뒤, 전방의 공격진이 공간을 창출해 이대일 패스로 상대 수비진 배후를 노린다.

 

하지만, 스위스의 신장 190cm대 장신 선수들이 이미 자기 진영에서 공간을 메운 상태였고, 긴 팔과 다리를 앞세운 우월한 체격 조건으로 스페인의 공격 전개 길목을 사전에 차단했다. 결국, 스페인은 고공축구로 일관할 수밖에 없었다.

 

얌체 공 자블라니도 스페인 선수들을 화나게 했다. 페르난도 토레스는 후반 종반 결정적인 단독돌파 장면에서 자블라니의 얌체짓(?)에 고개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볼 키핑 순간 공이 불규칙하게 튀어 나가면서 득점기회를 놓친 것.

 

프리킥 기회에서도 자블라니의 정도를 벗어난 탄성 때문에 회전 감아 차기가 전혀 되지 않았다. 공에 회전을 줄 수 없으니 스페인 선수들의 섬세한 축구도 무용지물이었다.

 

사비 알론소의 발등에 정확히 맞은 중거리 슈팅 역시 자블라니의 탄성 때문에 골대 상단을 맞고 나왔다. 카메룬-일본전 장 마쿤의 중거리 슈팅과 포르투갈-코트디부아르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중거리 슈팅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공격하는 팀이 바보?

 

중국과의 평가전에서 0-1로 패한 프랑스, 일본에 격침당한 카메룬, 그리고 스위스에 패한 스페인까지 모두 극단적인 수비축구에 무너졌다. 이쯤 되니, 남아공월드컵에서 '공격하는 팀은 바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스위스의 경우 성격의 극단적인 수비축구 전술을 구사한 일본, 중국보다 모든 면에서 레벨이 높다. 키가 크고 체격이 좋으며, 체력도 준수하다. 전방엔 일본과 달리 확실한 골잡이를 보유하고 있다. 주축들 대부분 유럽 빅리그에서 뛰고 있어 스페인과 같은 강팀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는다.

 

이러한 수준 높은 팀마저 극단적인 10백 수비축구를 구사한다면, 쇼트 패스의 달인 스페인은 물론, 세계 최강 브라질도 골을 넣기 어렵다.

 

이것이 축구라는 스포츠의 또 다른 매력일까. 아니면 축구의 치명적인 단점을 노출한 것일까. 물론 수비축구가 잘못됐다는 말은 아니다. 남아공월드컵에서 '선 수비-후 공격' 전술을 시도하는 팀 중에도 '개념을 갖춘 팀'은 있다. 미지의 팀 북한이다.

 

브라질을 상대로 극단적인 10-0-0 축구가 아닌 5-4-1로 허리에도 선수들을 많이 두면서 수비위주의 압박축구를 펼쳤다. 역습할 때는 최후방 수비진까지 공격에 동참하는 용감한 자세를 보여줬다. 스위스와 일본의 최후방 중앙 수비수들이 전후반 90분 내내 세트플레이를 제외하고 자기 진영 패널티 박스 부근에서 머문 것과 대조를 이룬다.

 

월드컵은 축구선수들에게 영광스런 무대다. 국가를 대표해서 나선 만큼 당연히 승리가 목표다. 때문에 수단은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경기의 내용이 비겁하더라도 이기는 자가 강하고 역사는 승자들의 것이다.

 

그러나 4년을 기다려온 세계 축구팬들로선 결코 달갑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상업성의 결정판' 월드컵 무대에서 정작 프로축구선수들이 '축구의 상품가치'를 낮추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방어축구도 방어축구 나름이다. 일본과 스위스 같은 극단적인 10백 축구와 그에 따른 지루한 공방전은 확실히 월드컵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다. 반면 북한과 한국 같은 전율적인 카운터 어택, 즉 역습에도 충실한 전면 압박형 수비축구는 월드컵 대회 수준을 높여준다.

 

효율축구라고 주장하는 일본과 스위스의 극단적인 10백 수비축구 전술에 마냥 박수 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리고 언제까지나 극단적인 수비축구로 성공할 수는 없다. 이는 결국 자신들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길을 스스로 막는 것이며 언젠가는 비참한 최후로 이어질 수 있다. '유로 2004' 우승팀 그리스처럼 말이다.

 

〈데일리안 이충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