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스피런시에 빠진 사람들

초록물고기2010.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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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론’은 매혹적이다. 겉으로는 ‘독버섯’이라며 외면하지만, 속으로는 ‘혹시…’ 하게 마련이다. 수많은 정보가 초고속 인터넷을 통해 시시각각으로 공개되는데도 음모론이 사라지기는커녕 번성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특히 남다른 지적능력과 정보를 과시하기 좋아하는 지식인과 전문 네티즌들은 고도의 지적 능력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터무니 없는 음모론에 잘 빠지곤 한다.

 

★ 미국의 5대 음모

1) 9·11에 미국 정부가 개입했다
구글에서 ‘9·11’과 ‘conspiracy(음모)’를 묶어 검색한 횟수는 2월 19일 현재 60만3000회. 압도적 1위다. ‘음모론의 제왕’으로 부를 만하다. 미 정부가 2001년 알 카에다의 9·11 테러 계획을 알고 있었음에도 이를 묵인했다는 게 골자다. 한발 더 나아가 미 정부가 테러를 직접 계획했거나 집행했다는 주장도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 ‘루스 체인지(Loose Change)’는 이 음모론에 기름을 붓는 역할을 했다. 루스 체인지에 담긴 주요 음모론은 이렇다. ▲미국방부 건물(펜타곤)을 공격한 것은 민간 비행기가 아니라 미사일이다 ▲세계무역센터 붕괴는 항공기 충돌 탓이 아니라 누군가 폭탄을 장착했기 때문이다 ▲납치범과 승객들의 격투 끝에 추락한 것으로 알려진 플라이트93은 클리블랜드에 착륙했고, 미국 정부는 탑승객들을 폐쇄된 미 항공우주국(NASA) 기지로 보냈다. 이후 그들의 행방은 모른다….

 

2) ‘Area 51’에 외계인이 산다
민간인의 출입이 철저히 통제되는 미국 네바다 주의 공군기지 ‘에어리어 51’에 외계인의 존재와 미확인비행물체(UFO)와 관련한 정보들이 숨겨져 있다는 설이다. 심지어 미국 정부가 이 기지에 한해 외계인들의 자유로운 출입을 허용했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UFO를 신봉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기지를 찾는 것이 일종의 ‘성지 순례’가 됐다고 한다.

 

3) 엘비스는 살아 있다
‘로큰롤의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1935~1977)가 대중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죽음을 가장해 사라졌으며, 지금도 어딘가에 은거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엘비스 생존설은 1988년 미국에서 관련 서적이 나온 뒤로 끊이지 않고 있다. 살을 붙인 메뉴로는 ▲엘비스가 마약조직에 대한 증언을 했다가 보복이 두려워 숨진 것으로 꾸몄다 ▲엘비스의 사망진단서에 있는 서명이 엘비스 본인의 필체와 비슷하다 ▲엘비스가 세상을 뜬 다음 날, 멤피스 공항에 엘비스와 닮은 남자가 나타났다 등이 있다.

 

4) 아폴로 11호는 달에 가지 않았다
미·소 냉전의 절정기에 소련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호에 한방 맞고 충격에 빠진 미국이 세트장에서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을 연출했다는 음모론이다. 이 같은 조작설을 지지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NASA의 우주비행사 출신 전문가도 포함돼 있다. 이들은 달 사진의 배경에 별이 보이지 않고, 공기가 없는 달에서 성조기가 휘날렸으며, 달 사진에 나타난 그림자 각도가 제각각이라는 점 등을 근거로 내세운다.

 

5) 존 F 케네디 전 미 대통령 암살은 단독 범행이 아니다
케네디는 1963년 텍사스 주 댈러스에서 총격을 받고 숨졌다. 연방정부 공식조사기구인 워런위원회는 이 사건을 리 하비 오스왈드의 단독 범행이라고 결론지었지만, 오스왈드가 잭 루비에게 살해되면서 배후를 둘러싼 음모론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배후에 대해선 미국과 소련의 정보기관인 CIA, KGB, 그리고 마피아가 단골로 등장한다. CIA 개입설은 반공의식에 투철한 CIA가 자유주의 성향의 케네디를 용납하지 못했다는 것이고, KGB 배후설은 쿠바 사태로 ‘열받은’ 소련이 KGB에 암살을 지시했다는 내용이다. 마피아가 케네디 당선 전 마릴린 먼로와 관련한 스캔들을 무마해줬는데도 취임 후 조폭 단속을 감행하자 거사에 나섰다거나, 최근 권좌에서 내려온 쿠바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가 개입했다는 설도 빠지지 않는다.

 

★ 한국의 2대 음모: KAL기 폭파, 천안함 침몰

 

지금 천안함 사건을 둘러싼 한국 사회의 논란, 남남분열을 보면서, 지식인, 네티즌들이 얼마나 음모론에 취약한지를 깨닫게 된다.

천안함 침몰과 관련하여 북조선의 어뢰공격을 부정하려는 시민단체에 동조하는 지식인이 많다는 기사를 보면서, 프랑스의 세계적 지식인 사르트르가 떠오른다. 그는 6.25.가 북침이라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끈질겼다. 나중에는 북침 대신 유도 남침설을 붙들고 늘여졌다.

한국에는 지금도 6.25. 북침설 내지는 유도 남침설을 믿는 지식인들이 많다. 운동권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한국전쟁의 기원이 주장하는 커밍스의 북침 내지 유도 남침설을 정설로 믿고 있다. 그러나 60여년만에 공개된 구소련의 비밀문서는 6.25. 남침설을 정론화하고 있고 황장엽씨 역시 남침설을 확인하였다.

6.25. 남침설을 부정하는 한국의 지식인, 자칭 전문가 네티즌들은 이제 북한 어뢰에 의한 천안함 침몰을 부정하는데 온 정성을 기울이고 있다. 정부 주장과 조사결과의 사소한 문제점이라도 발견하면 마치 노벨 물리학상이나 네이처지에 실릴 희대의 발견인양 떠들고 언론, 인터넷으로 퍼 나르고 있다.

미국에서도 케네디 대통령 암살, 9.11 테러, 아폴로 11호 등 온갖 음모론이 판치고 있다. 그러나 이는 황색 주간지의 단골 주제이고 이를 실제로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과연 천안함 침몰도 KAL기 폭파와 함께 의미없는 의혹만 제기되는 음모론의 소재가 될 것인가?


★ 음모론의 포로가 된 지식인들

 

출처: http://news.naver.com/main/tool/print.nhn?oid=005&aid=0000415718

 

천안함과 6·25전쟁은 발생 즉시 음모론의 제물이 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소련 붕괴 후 비밀문서들이 공개되자 6·25를 누가 일으켰냐는 논란은 종지부가 찍혔다. 서구에서는 6·25를 북침으로 보는 음모론에 감염됐다가 바보가 된 지식인이 적지 않다. 천안함 조사결과를 ‘진지하게’ 불신하는 우리 지식인 사회가 알아야 할 사실이다.

6·25 당시 국제사회에는 북한의 남침을 믿지 않는 분위기가 작지 않았다. 전쟁 발발 다음날 프랑스 공산당 기관지 위마니테는 남한의 북침이라고 보도했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도 북침을 확신했다가 레이몽 아롱, 메를로 퐁티와 심하게 다퉜다.

낭패한 사르트르는 ‘미국에 의한 남침 유도’로 입장을 바꾸는데 그 근거가 된 게 미국 언론인 이시도어 스톤의 ‘한국전쟁 비사’(1952)라는 책이다. 스톤의 남침유도설은 진실이 명백해진 지금의 눈으로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의심과 억측의 꾸러미에 불과하다. 그러나 당시에는 정황과 사실을 섞은 아리송한 문체로 마치 음모가 개재된 것처럼 몰아감으로써 미국의 전쟁 수행에 다소나마 부정적 영향을 주었다.

“책이 나오자마자 판매금지됐다.” “국무부가 아무런 변명도 못하고 있다.” “체 게바라가 그러는데 멕시코 주재 미국대사관이 스페인어판을 모두 사들여 폐기하고 있다더라.” “사르트르가 직접 불어판을 출판했다.” 인터넷이 없는 시대였지만 사실과 소문이 섞인 속삭임들이 이리저리 퍼졌다.

미국의 마르크스경제학자 폴 스위지와 레오 휴버만이 주재하는 잡지 ‘먼슬리 리뷰’에 실린 ‘콩 이야기’는 똑똑한 지식인의 과잉추론을 잘 보여준다. 6·25 직전 중국인들이 미국 콩 시장에서 콩을 매점했다. 두 달 후 뉴욕 신문이 ‘콩과 달걀 시장의 가격지지를 중지한다’는 기사에서 중국인들이 콩 매점으로 3000만 달러의 순이익을 냈다고 보도했다.

스위지는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세계적인 콩 생산지 만주의 콩 공급이 중단될 것이 분명하다, 남한과 대만 정부의 관계는 밀접하므로 남한이 전쟁 시작을 사전 통보해 주었을 것이고 대만 정부가 이를 이용해 이익을 얻으려 했다는 추측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물론 헛발질이다.

지난 정부에서 문화재청장을 지낸 대학교수는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인다”는 말을 유행시켰다. 그 말을 “싫어하면 진실이 안보이고, 안보이면 대신 헛것이 보인다”고 응용해 본다. 최고의 단계는 “보고 싶은 것만 보이는” 경지일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