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룸에 사는 학생분들께 한 말씀 드리고 싶어요.

생쥐스트2010.06.27
조회919

안녕하세요.

저는 지방에 소도시에 살고있는 프린랜서 삽화가입니다.

원래는 서울에서 홀로 자취를 했었지만 직장일이 재택으로 바뀐 까닭으로

홀로 서울살이 하기보다는 고향에 내려와서 사는게 더 낫겠다는 결정하에 내려왔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원래 방송국 기자로 일하시다 IMF때 명예퇴직을 하셨습니다.

그 퇴직금을 자본삼아 대학가에 원룸 한 건물을 매입해 수년째 경영 중이십니다.

워낙에 철야가 많은 제 직업적 특성 탓에 부모님은 저에게 원룸 방 중 하나를 내주셨고

비상시 원룸 관리도 겸사겸사하며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제 일에도 몰두할 수 있게되었답니다. 집세도 안받고 공과금도 안 나가고...부모님께서 원룸을 경영하시는 덕분에 개인 작업실도 생겼고 정말 호강이 아니지 싶습니다.^^

 

이런 얘기 저런 얘기로 본론을 흐릴거 없이 거두절미하자면....

요즘 여러분 월드컵에 모두 열광 중이시지요??

광장이나 공개적인 거리에 나가 응원하시는 분들도 많으시고

아무튼 요즘 월드컵 본 경기만 그런게 아니라 매스컴 모두가 월드컵 얘기로 들끓고 있지요.

그런데 가끔씩 시사 뉴스란에 거리 응원 이후 자신이 가져온 물건들조차 회수하지 않고 버리고 간 까닭으로 쓰레기로 더럽혀진 시내 곳곳을 촬영한 영상과 사진들을 많이 보셨을거예요.

그런걸 보면 진짜 차라리 밖으로 기어나오지 말고 너네집 안방에서 보라며 혀 차시는 분들 많으실거라 생각됩니다. 저 역시 공감하고요.

그런데 그런 부끄러운 시민들의 모습이 비단 광장,시내 길거리 등 밖에서의 모습으로만 국한 된 것일까요?

 

어제 밤새 원룸 방에서 친구와 16강 전을 응원하고 아침에 일어나 현관문을 열어봤더니 맞은편 원룸방 앞에 재활용품을 모아둔 듯한 일반 비닐 봉투가 하나 놓여있었습니다.

원래는 쓰레기를 갖다놓는 장소는 따로 있습니다.

원룸 건물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큰 주택의 담벼락 아래쪽에 쓰레기를 모아두는 장소가 있는데 저희 지역은 모든 요일 배출 가능하지만 꼭 일몰후에 가져다 둬야 합니다.

 

하지만 저희 원룸은 학생들이 쓰레기를 지정장소에 가져다두지 않고 원룸건물 앞이나 현관문 앞에 둬도 특별히 뭐라고 하지않고 저희 부모님이 직접 처리를 해줍니다.

원래 원칙상 다른 건물주들은 세입자들이 직접 처리하길 권장하지만 사람 좋으신 저희 부모님들은 아이들이 귀찮아하고 번거로워 할까봐 싫은 소리 한마디 말씀하시지 않고 아이들이 문밖에 내다놓은 쓰레기를 기꺼이 직접 치워 주시지요.

제가 학생때까지만해도 그런 부모님의 태도가 무척  답답하고 세들어 살고 있는 학생들이 얄미웠지만 나이가 들고 어느정도 세상 물정을 알게 되고나니 부모님의 그런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타지에 홀로 나와 자취하는 어린 학생들이 그저 남의 자식같지 않은 부모맘에 작은거라도 맘을 써주시는 거겠지요.

요즘은 저도 쓰레기가 보일때마다 치우고 있는 중입니다.

재택이래도 밤낮없이 일하다보니 부모님께 큰 도움은 못드리지만

바닥도 쓸고 공동 쓰레기가 차면 모아서 갖다버리기도 하지요.

재활용품 같은 경우엔 제 방에 따로 모아 분량이 꽤 되면 한꺼번에 갖다 버리고 있습니다.

 

어쨌든 얘기는 다시 제 맞은편 방 현관 앞에 놓였던 재활용품 봉투로 돌아가서....

평상시와 다름없이 저는 봉투를 방안으로 갖고가 다른 재활용품이랑 묶어 버릴려고 했습니다. 헌데....

봉투를 뒤져보니 그냥 재활용품들만 들어 있는게 아니라 일반 생활쓰레기를 비롯....

손으로 만져도 물기가 홍건한 음식물 쓰레기까지 들어있었습니다.

이런일이 한두번은 아니었지만 오늘은 무척이나 화가 나더라고요.

더군다나 건물밖도 아니고 다른 사람들도 오고가는 복도에다가 썩으면 냄새도 날 수 있는 쓰레기를 내놓다니요. 요즘은 날씨가 더워져 벌레도 잘 생기는데 말이죠

쓰레기 속에는 빼고 박고도 할 수 없는 증거인,쓰레기를 버린 사람의 주소와 이름이 적힌 고지서도 있더라고요. 제 맞은편 방 학생이 확실했습니다. 

기분이 나빠 봉투를 다시 추스르고 아예 쓰레기를 내놓은 학생 방 현관문 앞에 쓰레기를 세워두고 방안에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수분이 지나 다시 나가보니...

자기 방 현관문 앞에 있던 봉투를 살며시 옆으로 다시 치워둔거 아니겠습니까??

 

 

저는 다시 방으로 들어와 어떻게할까 골몰하며 열받은 머리를 식혔습니다.

쪽지를 써서 봉투에 붙여둘까?

아님 직접 문을 두들겨 잘 버리라고 주의를 줄까?

하지만 이내 어머니 말씀이 떠오르더군요.

"애들 편하게 해줘라......그래야 엄마가 편해"

저는 복도밖으로 다시 나가 맞은편 방 학생이 내논 봉투를 다시 들고 제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봉투 속 재활용품과 일반쓰레기,음식물쓰레기를 나눠서 따로 묶고

일몰 후에 내다버리려고 보관중에 있지요.

 

 

원래도 저희 원룸 건물 내부에 쓰레기를 내놓는 친구들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었지만 월드컵이나 이런 특별한 행사가 있었던 날 다음날이나 그 다음날에는 쓰레기가 더욱 더 많이 쌓이더라고요.

그냥 잘 분리된 쓰레기를 건물앞에 내놓는거에 대해선 괜찮습니다...

뭐 얼마나 먼 곳이라고 쓰레기 버리는 지정장소까지 잘 정리해둔 쓰레기 들어다 두는거조차 못하겠어요.

하지만 생활쓰레기와 재활용품, 음식쓰레기를 섞어버리는 건 그냥 몰상식하다고 혀를 하고 넘어갈 정도의 태도가 아니라 아니라 과태료가 물리는 범법행위입니다. 

물론 그런 쓰레기를 내다놓으면서 자기 이름과 주소가 적힌 고지서까지 넣어 버리는 치밀하지 못한 모습을 보면 쓰레기를 버린 학생들이 악의를 가지고 그런 짓을 저지른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냥....아직 어리고 세상을 몰라서 그런 거 뿐이겠지요.

 

 

 

부모님께서 원룸 경영한다 하면 모르는 친구들은 "너희 집 좀 사나보다?"하겠지만

지역따라 격차도 심하고 특히나 저희 지역은 원룸 사업이 몹시나 영세합니다.

더군다나 요즘 저희 원룸의 주 세입자들이 다니는 대학에 기숙사까지 증축한다는 소식이 들려 완전 비상이지요. 여기저기서 말도 안되는 싼 가격에 방을 내놓는 실정입니다.

특히나 저희 아버지는 워낙 마음이 약하셔서 그렇게 싸게 책정된 보증금과 월세도 아이들이 사정하면 그냥 깎아주십니다.

저희 방은 공과금(전기세+난방비 포함) 모두 월세포함이고 관리비도 따로 없습니다.

몇년 전에는 그래도 본전치기는 했는데 작년부터 가스비가 살인적으로 오른 뒤로는 솔직히 요즘은 완전 적자사업입니다.

물가는 오르는데 오히려 저희 원룸세는 학생 하나라도 더 받으려는 생각때문에 시작년도에 비해 더 싸게 내려가고 있는 중이지요....

  

그런 사정에 학생들이 조금이나 엇나간 짓을 해도 저희 부모님은 뭐라 잔소리도 못하십니다.

쓰레기는 그저 약소한 문제일 뿐이죠.

월세를 3달 이상 못내던 아이들도 많았지만 저희 부모님은 요즘 너무 경기가 안좋고 모두들 살기 어려운 세상이다보니 크게 독촉도 못하시다 결국 보증금을 다 까먹힌 다음에나 말을 꺼낼 정도입니다.

몇 년전에는 카드빚 때문에 월세 밀린건 물론이거니와 조폭에게 쫓기며 신용불량자까지 된 학생도 있었는데.... 그런 애들도 있는데 쓰레기 좀 함부로 버리는 거까지 잔소리하는건 진짜 팔자 좋은 소리겠지요...저도 압니다.

 

하지만 요즘 월드컵 그릇된 응원 문화로 인해 더러워진 대한민국의 거리들을 보노라면

자기 몫의 쓰레기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건 정말 대한민국 사람들의 고질적인 문제 같습니다.

저희 원룸만 봐도 그렇지 않습니까?

 

큰 거 바라지 않습니다.

고향에서 따로 나와 객지서 학교 다니며 외롭게 고생 중인거 알아요...

저도 대학시절부터 혼자 자취하고 월세 버느라 고생했었기 때문에

자취생들 고충 누구보다 이해 많이 합니다.

 

하지만 지킬 건 지키면서 살아야하지 않을까요?

원룸을 경영중인 저희 부모님도 저에게 있어서는 소중한 분들이십니다.

학생분들 고향에 계시는 부모님들도 본인들에게 있어서 소중한 분들이시겠죠?

어려운 일 아닙니다.

그냥 박스는 박스끼리 종이는 종이끼리....캔은 캔끼리....그런식은 재활용품 모아서

투명한 봉투나 종이 봉투에 잘 담아 버려주시고요

생활쓰레기는 종량제 봉투에, 음식쓰레기는 음식물 쓰레기 봉투에

모아서 버리면 되는겁니다.

조금 귀찮고 손도 더러워진다는 거 압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순간의 약소한 고생을 꺼려하는게 모아지면

원룸을 경영중인 저희 부모님은 손뿐만이 아니라 온 몸이 오물로 더러워진답니다.

 

길거리에서부터 문화시민을 찾지 맙시다.

내 집, 내 방안에서도 문화시민으로서의 규칙을 지키면

자연적으로 우리의 광장을 깨끗해질 것입니다.

 

 

 

끝으로 긴 글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제목처럼 한 말씀...정도가 아니라

긴 글이 되버렸네요;;;;더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