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무섭고 무뚝뚝한 아버지께서 (21살때, 훈련소들어가기전에 한번만 안아달라고했을때 안 안아주셨던분입니다) 심지어 저에게 사랑한단말 한번 안하셨던 아버지께서 하필 불과 며칠전에 "아버지, 전화끊기전에 멀리서 고생하는 아들한테 사랑한다 아들아 한번만 해주세요" 안해주실거 알면서, 25년동안 한번도 안해주셨다 할지라도, 혹시나 하는마음에 그렇게 말씀드렸더니, 하필이면, 왜 그일이 있기 며칠전에, "허허..사랑한다 아들아"라고 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렇게 말씀하셨는지,
이런저런 과거들이 주마등처럼 스치며, 대구로 내려가던 내내 고속도로위에서 운전대 잡고 그렇게 쉬지도않고 눈물이 나왔습니다. 그렇게 큰소리내면서 펑펑 울었던적도 없었던것같습니다.
그렇게 3시간동안 울며 계시다던 병원으로 갔습니다. 다행히 생각보다는 위독해보이시지 않았습니다.
근데 무엇보다 의문인점은 제가 오기까지 세시간이나 걸렸는데 병명을 모르고있고, 아무런 처방이 되지않고 있다는것입니다. 병원에 사람이 너무많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갔던병원에서 촬영했던것과 똑같은 CT촬영을 한번더 줄서서 하느라 시간이 지체된것입니다.분명히 CT사진을 첨부하고 여기로 옮겼는데도 말이죠.(혹시 법조계, 의료계 종사하시는분은 이게 의료사고로 소송이 가능한지 자문부탁드립니다)
MRI를 찍고나서야 비로소 '뇌경색(뇌 혈관이 막히는 병, 주로 고혈압환자에게 겨울에 자주 일어나는병)'판정이 났고, 혈전약을 투여해 혈전용해술을 시도했습니다. 아시는분은 아시겠지만 발병후 3시간 이내에 해야 효과가 있는 시술입니다.
하지만 3시간30분? 4시간이 지난상태였죠.
그이유 때문인지, 며칠이지나도 상태가 악화될뿐 진전이 없었습니다.
처음부터 주치의가 너무 예의가없었고 아버지 반응속도 가늠할때 너무 무지막지하게하는것같아 마음에 들지않았었는데, 며칠동안 진전이없자 결국 누그러지고 예의바른어조로 의사는 저에게 최선을 다했지만 혈전용해술은 실패했다는것, 하지만 돌아가시지는 않으실거라는것, 그리고...........
평생 회복이 불가능하실것이라는것을 얘기해주더군요.
정말 욕과 주먹이 나올정도로 화가났지만, 한편으로는 의사잘못이 아니라 병원잘못이리라, 이게 아버지 운명이리라 스스로 위로하고 달랬습니다.
저는 그런사람의 말은 믿지않습니다. 잘못진단 내린것일겁니다.희망을 잃지않고, 아버지 몫을 내가 하면서 아버지를 기다리라(아버지께서는 주로 등산과 텃밭을 꾸미는 취미를 갖고계셨고, 2명정도에게 돈을 빌려주셨다는것을 알고있었습니다). 그리고 틈틈히 아버지곁에서 팔다리를 주물러드리고(혈액순환에 도움이 된다고합니다), 땀을 닦아드리며, 기저귀를 갈아드렸습니다.
저는 몰랐습니다. 어릴때 그 거대한 아버지께서 이렇게 가벼워 지셨는줄.
저는 몰랐습니다. 아버지께서 이렇게 채무자들에게 돈을 못받고 계시면서 스트레스 받고 계셨는줄.(한명은 파산신청까지 해놨더군요)
제가 너무 신경을 못써준 탓일까요. 엎친데 덮친격으로 1년 반동안 사귄 여자친구와도 이별하게되었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후회와 함께 여자친구에게 너무 무신경했다는 잘못과 후회.
두가지 후회가 밀려오는데다가 아버지의 불어나는 병원비와 수술비, 아버지의 돈을 돌려받기위해 뛰어다니는 지금 너무 힘이듭니다.
어제 박용하씨가 자살했다는 소식이 들리더군요. 얼마나 힘드셨으면...
그래도 자살은 정말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더이상은 없었으면 하는마음에 이렇게 글을 써보았습니다.
괜히 친구들이나 주변사람들에게 말해서 걱정시키기 싫어서 꾹꾹 참고있다가 이렇게 다 속시원히 풀어놨더니 너무 후련하네요.
저처럼 후회하지마시길....
안녕하세요. 톡을 자주하지는 않지만 그냥 답답하고 어디 하소연할곳을 찾다 여기라도 한번 적어볼까합니다
아버지 얘긴데요.... 저희는 무섭고 엄한 아버지, 바보같아보일정도로 착하고 청순하신 어머니, 철없는 동생, 저 이렇게 있습니다.
아버지는 군인이셨어요. 군인아니었던사람이 어딨냐는분들 꽤 계시던데 ^^;; 공군에서 20년넘게 계셨던 자랑스러운 아버지셨습니다.
때문에 아주 엄격하고 까다로우셨으며 보수적이셨고 무서웠습니다. 친척분들 말씀으로는 어릴때부터 그러셨대요. 성격이 급하셔서 항상 혈압이 높으셨습니다.
그러다 제가 아직 학생일때 근무중에 쓰러지셔서 더이상 군인을 못하시게 되셨죠.
나라에서는 오랜근무기간과 근무중 다치신것을 고려해 국가유공자 자격과 매월 연금을 주었습니다.
오랜세월이 지나 아버지의 건강은 점차 회복되어 이젠 건강하셨을때의 모습을 되찾아가시는것과 동시에 저희가족도 점점 행복해졌습니다.
그러던 올해 2010년 1월 겨울, 동생으로부터 전화한통이 왔어요. 아버지께서 자기한테 화를내니까 전화로 풀어달라는것이었습니다. 다혈질이셨던 아버지는 어머니와 동생한테 화를내다가도 제가 풀어드리면 금방 누그러지셨고, 저한테는 안좋은일이 있으셔도 화를 잘 안내셨습니다.
전화를 드렸더니 주무시고 계시더군요.
'좀전까지 화내셨다고 들었는데 금방잠드셨네?'
조금 이상하긴했지만 금방 잠이 드시곤했던 아버지라 이따 전화드리겠다고 하고 대수롭지않게 넘겼습니다.
잠시뒤 아버지께 전화가 왔습니다. 저때문에 깨신줄알고 전화를 받았죠. 또 주무시고 계시더라구요.
"아버지~그냥 전화드렸던 거였어요^^ 신경쓰지마시고 계속 주무세요~^^"
"응"
"그럼 끊을게요?"
"응"
그렇게 전화를 끊었습니다. 여러분도 주무시는분이랑 통화많이해보셔서 알겁니다. 힘없는목소리, 약간 부정확한 발음, 횡성수설함.
또 잠시뒤 아버지께 전화가 왔습니다.
"여보세요?^^;;"
"응"
"사실은요~아까 효정이(동생)한테 전화와서 화나셨다길래 전화해본거였어요^^ 화푸세요^^"
"응"
"이제 됐죠?^^ 마저 주무시고 전화주세요~ 끊을게요~"
"응"
또 1분뒤 전화가 왔습니다.
받고 가만히 있었더니 아무말씀 없으시더군요.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습니다.
"여보세요?"
"응"
'이상하다...대답은 잘하시는데.....
혹시.........!!!!!!????'
그렇습니다. 아버지는 대답을 잘하셨어도 "응"이라는 대답만 하셨었고, 제 질문들도 모두
"응"이라는 말로 대답할수 있는질문들이었습니다.
침착하게 마음을 가다듬고, '아버지 혹시 이름이 뭐죠?'라고 묻는건 너무 이상했고, 혹여나 편찮으신게 아니라면, 아버지께 너무 큰 실례이기때문에 무슨질문을 할까 생각했습니다.
당황하니까 마땅한 좋은 질문이 빨리안떠오르더군요.
"아버지~ 제가 아버지계좌로 계좌이체해드릴 일이 있는데요~ 혹시 자주가는 은행이 어디였죠?"
"응"
큰일났다 싶었습니다. 그렇게 심장이 빨리뛴적은 전국대회 결승전 뛸때조차도 없었던것같습니다.
그래도 깊게 주무시면 그러실수도 있으리라. 애써 스스로 위로하며 아버지께 재차 확인했습니다.
"아버지 아프신거죠? 엠뷸런스 부를게요?"
"응"
바로 끊고 119를 눌렀습니다. 제가 경기도 용인에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경기도 소방서로 연결되더군요. 바로 전화를 끊고 침착하게 053-119를 눌렀습니다.
114랑 다르더군요. 불행하게도 또 경기도 소방서로 연결됐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한후 집에있는동생에게 전화했습니다. 자고있는지 안받더군요.
집으로도 전화했지만 아무도 받지않았습니다. 정말 어떻게 해야될지 모르겠더군요.
다시 마음을 추스리고, 소방서끼리는 연결돼있으리라, 다시 그 경기도소방서에 전화해서 이제는 자초지종을 설명드리고 집주소를 알려주며 가장가까운소방서 전화번호를 알려주실수 없냐고 여쭸더니, 가능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아버지께서 병원으로 이송됐습니다. 멀리 떨어져있는 저로써는, 그게 주무셨기때문에, 비몽사몽이셨기때문에 그러셨던것이리라, 믿으며 종교도 없지만 신에게 기도하는수밖에 없었습니다.
잠시뒤 어머니와 동생, 병원에서 차례로 아버지께서 위급하다는 전화가 왔고, 바로 제 차를 타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마지막순간에 아들이 곁에없으면 얼마나 외로우실까요.
고등학교때 아버지께 대들었던일, 20살때 라면끓여놨더니 아버지께서 다드셔서 아쉬운소리했던일, 어머니랑 다투실때 어머니편 들었던일, 아버지께서 등산가자고 하실때마다 거절했던일, 교회가자고 일요일아침마다 깨우셔도 안따라갔던일 등등 제가 잘못했던일에 대한 후회들과,
그 무섭고 무뚝뚝한 아버지께서 (21살때, 훈련소들어가기전에 한번만 안아달라고했을때 안 안아주셨던분입니다) 심지어 저에게 사랑한단말 한번 안하셨던 아버지께서 하필 불과 며칠전에 "아버지, 전화끊기전에 멀리서 고생하는 아들한테 사랑한다 아들아 한번만 해주세요" 안해주실거 알면서, 25년동안 한번도 안해주셨다 할지라도, 혹시나 하는마음에 그렇게 말씀드렸더니, 하필이면, 왜 그일이 있기 며칠전에, "허허..사랑한다 아들아"라고 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렇게 말씀하셨는지,
이런저런 과거들이 주마등처럼 스치며, 대구로 내려가던 내내 고속도로위에서 운전대 잡고 그렇게 쉬지도않고 눈물이 나왔습니다. 그렇게 큰소리내면서 펑펑 울었던적도 없었던것같습니다.
그렇게 3시간동안 울며 계시다던 병원으로 갔습니다. 다행히 생각보다는 위독해보이시지 않았습니다.
근데 무엇보다 의문인점은 제가 오기까지 세시간이나 걸렸는데 병명을 모르고있고, 아무런 처방이 되지않고 있다는것입니다. 병원에 사람이 너무많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갔던병원에서 촬영했던것과 똑같은 CT촬영을 한번더 줄서서 하느라 시간이 지체된것입니다.분명히 CT사진을 첨부하고 여기로 옮겼는데도 말이죠.(혹시 법조계, 의료계 종사하시는분은 이게 의료사고로 소송이 가능한지 자문부탁드립니다)
MRI를 찍고나서야 비로소 '뇌경색(뇌 혈관이 막히는 병, 주로 고혈압환자에게 겨울에 자주 일어나는병)'판정이 났고, 혈전약을 투여해 혈전용해술을 시도했습니다. 아시는분은 아시겠지만 발병후 3시간 이내에 해야 효과가 있는 시술입니다.
하지만 3시간30분? 4시간이 지난상태였죠.
그이유 때문인지, 며칠이지나도 상태가 악화될뿐 진전이 없었습니다.
처음부터 주치의가 너무 예의가없었고 아버지 반응속도 가늠할때 너무 무지막지하게하는것같아 마음에 들지않았었는데, 며칠동안 진전이없자 결국 누그러지고 예의바른어조로 의사는 저에게 최선을 다했지만 혈전용해술은 실패했다는것, 하지만 돌아가시지는 않으실거라는것, 그리고...........
평생 회복이 불가능하실것이라는것을 얘기해주더군요.
정말 욕과 주먹이 나올정도로 화가났지만, 한편으로는 의사잘못이 아니라 병원잘못이리라, 이게 아버지 운명이리라 스스로 위로하고 달랬습니다.
저는 그런사람의 말은 믿지않습니다. 잘못진단 내린것일겁니다.희망을 잃지않고, 아버지 몫을 내가 하면서 아버지를 기다리라(아버지께서는 주로 등산과 텃밭을 꾸미는 취미를 갖고계셨고, 2명정도에게 돈을 빌려주셨다는것을 알고있었습니다). 그리고 틈틈히 아버지곁에서 팔다리를 주물러드리고(혈액순환에 도움이 된다고합니다), 땀을 닦아드리며, 기저귀를 갈아드렸습니다.
저는 몰랐습니다. 어릴때 그 거대한 아버지께서 이렇게 가벼워 지셨는줄.
저는 몰랐습니다. 아버지께서 이렇게 채무자들에게 돈을 못받고 계시면서 스트레스 받고 계셨는줄.(한명은 파산신청까지 해놨더군요)
제가 너무 신경을 못써준 탓일까요. 엎친데 덮친격으로 1년 반동안 사귄 여자친구와도 이별하게되었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후회와 함께 여자친구에게 너무 무신경했다는 잘못과 후회.
두가지 후회가 밀려오는데다가 아버지의 불어나는 병원비와 수술비, 아버지의 돈을 돌려받기위해 뛰어다니는 지금 너무 힘이듭니다.
어제 박용하씨가 자살했다는 소식이 들리더군요. 얼마나 힘드셨으면...
그래도 자살은 정말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더이상은 없었으면 하는마음에 이렇게 글을 써보았습니다.
괜히 친구들이나 주변사람들에게 말해서 걱정시키기 싫어서 꾹꾹 참고있다가 이렇게 다 속시원히 풀어놨더니 너무 후련하네요.
두서 없는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른도시에서 119신고할때의 요령, 뇌경색,뇌출혈증상 등등은 꼭기억해놓으셨으면좋겠네요.
여러분 모두 좋은일만 있으시길 바라며, 안좋은일이 있더라도 희망을 잃지마시고 끝까지 최선을 다해주세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곁에 당연하게 계신 부모님들.... 영원히 여러분 곁에 못있어 드립니다.
효도하십시오.
저처럼 후회하시는일 없게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