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십 년 전만 해도 수백 명 정도가 작은 마을에 옹기종기 모여 살며 누구네 집에 숟가락이 몇 개 있는지 다 알고 지냈다. 그러니 어려운 처지를 외면하기도 힘들었고, 도와주면 분명히 언젠가는 대가가 돌아올 것을 알았다. 행동경제학에서 말하는 '이유 없는 이타주의'에 의한 상호의존성이 자연스럽게 확립되고 유지될 수 있었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공동체의 원칙이 거부감 없이 통용되었던 것이다.
도시의 삶은 어떠한가? 마치 역전의 식당 같은 관계만 존재한다. 다시 올 가능성이 희박한 뜨내기들만 드나드는 역전 식당은 맛이나 서비스로 승부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 눈에 띄는 좋은 곳에 자리를 잡고 적당한 가격과 빠른 속도만 요건으로 갖추면 된다. 도시의 사람 관계도 그렇다. 처음 만난 사람과 하룻밤 즐기고 헤어지는 '원 나이트 스탠드'를 즐기고, 상처받기 싫어서 상대에게 차이기 전에 자신이 먼저 차는 것을 원한다.
21세기 젊은이들은 '쿨(cool)'을 삶의 신조로 삼는다. 위키피디아 백과사전은 이 단어를 "언제 어느 상황에서나 안정감과 고요함을 유지하고, 자기조절을 잃지 않으면서 독립적인 태도를 갖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이런 삶의 태도는 살이 닿는 스킨십보다 항상 적당한 거리를 두고 독립적으로 지내는 것을 기조로 한다. 이렇게 살면 가까움에서 오는 격렬합과 불편함이 없고, 행여 헤어져도 몸에 각인된 기억이 흐릿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덜 아프기 마련이다. 그래서 요즘 젊은이들은 이런 삶을 원한다.
그렇지만 덜 아픈 대신 잃는 것도 있기 마련이다. 생각해 보라. 한번 만나 명함을 주고받은 사람과 다시 만날 확률이 얼마나 되겠는지. 몇 달 아니 몇 년간 같이 일을 했던 사람이라도 직장을 옮기고 나면 그 뿐, 관계를 이어나가는 사람은 아주 적다. 반면 살면서 대인관계를 맺어야 하는 사람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하지만 관계의 평균 깊이는 이에 반비례하여 얕아졌다. 그러니 이런 유혹이 생기게 된다.
'어차피 다시 볼 사람도 아닌데 그냥 내 몫만 챙기고 도망가버리면 어떨까? 이 넓은 도시에서 날 찾아내겠어?'
유혹에 빠지면 피해를 입히고 도망가는 가해자가 된다. 하지만 가해자도 언젠가는 피해지가 될 수 있는 법. 이러다 보니 거리를 두고 경계하는 것에 갈수록 익숙해지고 진짜 '정'을 쌓아가며 인간관계를 만들어갈 기회는 줄어든다. 그래서 헛헛한 느낌을 참을 수 없다. 뭐라도 대신 채워주기를 바란다. 한마디로 배가 고프다.
(출처 - '도시심리학' 하지현 지음, 해냄)
솔직히 하나도 버릴 것 없이 재미있게 읽었다.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여러 면모와 심리를 분석하지만, 비판하거나 힐책하지 않는다. 그저 왜 그런가를 정신과 전문의인 저자의 견해로서 설명하고 있다. 칸칸이 나뉘어진 노래방이 보여주는 사회적 관계맺기를 말하고, 문자메시지가 지닌 비동시적인 커뮤니케이션이 지닌 비정서를 말한다. 세계화 속에서 단일민족이라는 개념이 내재한 위험성과 - 이 부분에서는 다문화 교육의 방향성도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이 든다. - 자살이 지닌 타인에 대한 복수의 심리 등등. 평소 심리학 서적에 관심이 많긴 했지만 역시나 프로이트가 나와버리면 책을 덮기도 전에 눈이 감기기 일쑤였는데, 역시 난 쉽게 읽혀야 한다 싶다. 난 그닥 똑똑한 편이 아니기 때문에.
어쨌든 강추!
(오늘 진중문고를 뒤지니 태백산맥 전편이 나왔다. 서사소설은 읽다보면 앞의 내용을 까먹기 일쑤고 인물들 캐릭터 파악하기만도 정신없다. 앞의 책 계속 뒤지고 그렇겠지만, 목표가 하나 추가된것만으로도 힘이 난다. 일단 가보자.)
하지현 - 도시심리학
(여기 사이버지식정보방은 이미지 업로드가 안된다.ㅠ)
특히나 공감가는 부분 인용한다.(타이핑치며 곱씹기)
역전의 식당 같은 관계
몇십 년 전만 해도 수백 명 정도가 작은 마을에 옹기종기 모여 살며 누구네 집에 숟가락이 몇 개 있는지 다 알고 지냈다. 그러니 어려운 처지를 외면하기도 힘들었고, 도와주면 분명히 언젠가는 대가가 돌아올 것을 알았다. 행동경제학에서 말하는 '이유 없는 이타주의'에 의한 상호의존성이 자연스럽게 확립되고 유지될 수 있었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공동체의 원칙이 거부감 없이 통용되었던 것이다.
도시의 삶은 어떠한가? 마치 역전의 식당 같은 관계만 존재한다. 다시 올 가능성이 희박한 뜨내기들만 드나드는 역전 식당은 맛이나 서비스로 승부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 눈에 띄는 좋은 곳에 자리를 잡고 적당한 가격과 빠른 속도만 요건으로 갖추면 된다. 도시의 사람 관계도 그렇다. 처음 만난 사람과 하룻밤 즐기고 헤어지는 '원 나이트 스탠드'를 즐기고, 상처받기 싫어서 상대에게 차이기 전에 자신이 먼저 차는 것을 원한다.
21세기 젊은이들은 '쿨(cool)'을 삶의 신조로 삼는다. 위키피디아 백과사전은 이 단어를 "언제 어느 상황에서나 안정감과 고요함을 유지하고, 자기조절을 잃지 않으면서 독립적인 태도를 갖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이런 삶의 태도는 살이 닿는 스킨십보다 항상 적당한 거리를 두고 독립적으로 지내는 것을 기조로 한다. 이렇게 살면 가까움에서 오는 격렬합과 불편함이 없고, 행여 헤어져도 몸에 각인된 기억이 흐릿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덜 아프기 마련이다. 그래서 요즘 젊은이들은 이런 삶을 원한다.
그렇지만 덜 아픈 대신 잃는 것도 있기 마련이다. 생각해 보라. 한번 만나 명함을 주고받은 사람과 다시 만날 확률이 얼마나 되겠는지. 몇 달 아니 몇 년간 같이 일을 했던 사람이라도 직장을 옮기고 나면 그 뿐, 관계를 이어나가는 사람은 아주 적다. 반면 살면서 대인관계를 맺어야 하는 사람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하지만 관계의 평균 깊이는 이에 반비례하여 얕아졌다. 그러니 이런 유혹이 생기게 된다.
'어차피 다시 볼 사람도 아닌데 그냥 내 몫만 챙기고 도망가버리면 어떨까? 이 넓은 도시에서 날 찾아내겠어?'
유혹에 빠지면 피해를 입히고 도망가는 가해자가 된다. 하지만 가해자도 언젠가는 피해지가 될 수 있는 법. 이러다 보니 거리를 두고 경계하는 것에 갈수록 익숙해지고 진짜 '정'을 쌓아가며 인간관계를 만들어갈 기회는 줄어든다. 그래서 헛헛한 느낌을 참을 수 없다. 뭐라도 대신 채워주기를 바란다. 한마디로 배가 고프다.
(출처 - '도시심리학' 하지현 지음, 해냄)
솔직히 하나도 버릴 것 없이 재미있게 읽었다.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여러 면모와 심리를 분석하지만, 비판하거나 힐책하지 않는다. 그저 왜 그런가를 정신과 전문의인 저자의 견해로서 설명하고 있다. 칸칸이 나뉘어진 노래방이 보여주는 사회적 관계맺기를 말하고, 문자메시지가 지닌 비동시적인 커뮤니케이션이 지닌 비정서를 말한다. 세계화 속에서 단일민족이라는 개념이 내재한 위험성과 - 이 부분에서는 다문화 교육의 방향성도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이 든다. - 자살이 지닌 타인에 대한 복수의 심리 등등. 평소 심리학 서적에 관심이 많긴 했지만 역시나 프로이트가 나와버리면 책을 덮기도 전에 눈이 감기기 일쑤였는데, 역시 난 쉽게 읽혀야 한다 싶다. 난 그닥 똑똑한 편이 아니기 때문에.
어쨌든 강추!
(오늘 진중문고를 뒤지니 태백산맥 전편이 나왔다. 서사소설은 읽다보면 앞의 내용을 까먹기 일쑤고 인물들 캐릭터 파악하기만도 정신없다. 앞의 책 계속 뒤지고 그렇겠지만, 목표가 하나 추가된것만으로도 힘이 난다. 일단 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