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스] 그들에겐 클래스란 소통의 장이었다.

토니몬타나2010.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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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에 들어서 우리나라와 프랑스 사이에 문화적 교류가 상당히 오고가는것 같다.

내가 파리에 여행을 갔을때 ‘사우스 코리아’ 라고 하면 박지성을 말을 했었고, 누군가는 김기덕 혹은 박찬욱을 이야기를 했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이름이 세계에 꽤나 긍적적으로 널리 알려진다는것에 자부심을 느꼈는데  역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프랑스라고 했을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것은 무엇일까?


여자들은 샤넬 혹은 향수를 남자들은 지단을 포함한 아트사커 11명을 나열할것이다.

하지만 나는 프랑스하면 민주주의와 교육이 떠오른다.


자유,평등,박애로 상징되는 프랑스의 민주주의와 이런 프랑스를 건강한 나라로 만드는 교육.

아무리 민주주의라 할지라도 교육의 방법과 목적이 잘못되었을 경우 그 사회가 어떻게 되는지는 우리 스스로 잘 알고있다. 현재의 프랑스를 움직이게 만드는  프랑스의 교육을 알아보려는 중 작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에 빛나는 “클래스”를 통해 프랑스의 교육과 사회의 문제점을 접했다.

 

                           

                                                   <우리나라의 클래스 장면?ㅋㅋ>


클래스라는 단어가 말하듯 학급(8학년3반 약 우리나라로 치면 중학교2학년 수준)내에서  다큐멘터리식으로 새학기가 들어서는 9월부터 방학하기전까지의 이야기를 보여주고있다.

만약 이게 우리나라에서 만들었다면 아마 이런장면들이 나왔을거다.

#1  선생이 일방적으로 가르치고 학생은 받아 적는다. 성적이 나와도  객관식과 단답형으로 이루어지는것이여서 불만은 없다. #2 또한 성적표에 있는 “ 부모님께”  란 또한 담임선생님들은 자신의 주관에 그저 휙휙 공란 매꾸듯이 쓴다.

 

                            

                                         <아이들이 말 안듣는건 어느나라나 마찬가지인듯..>

                               

하지만 이영화의 첫장면 아니 프랑스의 첫 수업을 보고 경악을 했다. 스승과 제자가 아닌 개인과 개인이었으며 수업은 어수선하고 정신이 없다. 매순간 매순간 선생님한테  아이들은 도대체 우리가 이걸 왜 배우냐고 선생님한테 물어보고, 떠든다. 더 나아가서  선생님이 글을 읽어달라고 부탁을 하면 거부권도 행사한다. 우리나라였으면 바로 귀싸대기 때린다음 낼 부모님 모시고와라고 말하지만 놀랍게도 선생님은 학생들을 차근차근 설득시킨다.

너무나 많은 질문에 진도를 못나가지만 다양한 주제로 토론을 하고 좋은 의견에는 칭찬을 해준다. 하지만 늘 학생입장에서는 선생님의 이런 설득하는거 조차 체제에 순응시키기 위한 말이라 생각하며 일반적이며 강압적인 태도로 규정하고 반항한다.


이런 수업방식보다 더 놀라운것은  징계위원회 때도 성적을 줄때도 항상 학급부장 학생과 학부모의장이 꼭 참석을 한다는 점이었다. 성적을 주면서 부모님한테 어떤글을 쓸지. 어떤성적을 줄지 생각을 하고 토의를 한다. 징계를 줄때도 참석을 참관자로 참여를 한다.


계속되는 토론,토의..우리나라의 선생님이라는 존재는 그저 과목을 가르치는 대상이고 학생은 가르침을 받는 대상이지만. 이나라에서는 선생이라는것은 클래스에선 토론을 이끌어가는 사회자인 동시에 아이들에게 전공을 가르쳐야하는 선생이요, 선생님들 사이에선 토의를 이끌어 결론에 다다르게 만드는 합리적인 생각하는 사람이라는것이다.

 

 


당연히 이런 엄청난 책임감과 수행이 13살 14살짜리에게 먹힐 리가 없다. 과정은 너무나도 힘들고 고달프다. 그래서 어떠한 교사들은 이들의 태도에 앙심을 품을때도 있고 그들에게 모욕을 줄때도 있으며 열받아서 화를 낼때도 있다. 왜냐하면 그들도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얀리본은 어른들의 모순적 태도가 다음세대로 하여금 폭력적 파시즘으로 만들수있다고 경고한다.>


물론 이 힘든것을 선택하지 않고 순간의 체벌과 억제는 아이들을 선생한테 복종하게 만들 수있다. 이는 미하넬 하네케의 ‘하얀리본’에서도 잘 나타나있는데  순수의 상징인 하얀리본을  체벌과 억제로 기독교적인 학습을 강요받은 어린아이들한테 달아주지만 결국 일어나는건 끝없는 폭력의 연속과 파시즘이다. 이와같은 무조건적인 체벌과 억제는 반대하지만 나는 이 꼬맹이들을 데리고 하는 프랑스의 중구난방식 토론문화 또한 반대한다.


하지만 이런 토론과 토의에  참여하는것에 익숙한 13살,14살이 성인이 되면 어떻게 될까?

그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인권확립과 다양성의 인정이다.

나이가 어려도 교육의 주체로서 인정 해주는것에 익숙해져있고, 언제나 자신있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수 있는 기회와  비판할수있는 기회가 익숙해져있기에  프랑스의 민주주의는 성숙해지고 발전할 수밖에 없다.


이런점들은 지금 우리나라 사회의 혼란과 교육, 폭력에 노출된 학교에 있어서 더욱더 생각하게 만든다. 지금의 우리나라 사회문제의 원인은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것인데 그 이유는 단순하다. 학생과 선생은 일종의 복종의 관계였으며, 어렸을때부터 자신있게 말할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이 되어있지 않고 객관식에 익숙해져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탈시 무조건적인 체벌. 결국 이러한 것들이 하얀리본에 나오는 마을, 즉 폭력에 노출된 사회로 만들었다. 국가애국론이 폭력와 맞물리게 되었을때 파시즘이 생겨난다는 말처럼 지금 우리사회도 그런 사회로 되어가고 있는것이 아닌가 자문해본다.


그렇기에 프랑스의 교육방식을 보여주었던 교사들과 교육방식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중학교땐 프랑스노조의 가장 큰 힘을 가지고 있는 단체가 교사단체라는 기사를 접했을때 황당하고 헛웃음이 나왔지만, 이런방식으로 이런고생을 하는 교사들이라면 충분히 아니 당연히 그래야 된다는 생각이다.)

 

                

                          <클래스는 결국 소통의 장소의자 희망을 놓치 말아야하는 장소이다.>


영화는 마지막장면, 운동장에서 교사와 학생들이 어울려 축구 하는 장면을 배경으로 텅 빈 교실 안을 카메라로 잡는다. 정리가 안된 이 어지러운 교실은   배움의장소이자, 아픔의 장소, 수다의 장소이다.

비록 여러 사연을 가진 장소이지만  학생들의 환한 웃음소리처럼 이곳은 희망의 장소로 성장의 장소로 될것이라는것이 믿음이 클래스가 보여주는 마지막 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