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인권조례 제정은 교육의 주체를 구성하고 있는 '학생들의 인권'에 대해서 조명한다는 측면에서 분명 가치있는 일중 하나일 것입니다. 그러나 학생인권조례 제정이 복잡하고 다양하며, 산재되어 있는 교육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환상은 버려야한다는 말씀을 드리려 합니다. --------------------------------------------------------------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학생인권조례 제정에 있어서도, '체벌'은 큰 화두입니다. 체벌의 교육 효과에 대한 논란, 체벌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체벌이 금지되어야 하는 이유는 극히 일부 교사답지 못한 교사에 의해 교권이 남용되고 극심한 폭력적인 체벌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학생인권조례제정이 학교현실과 사회현실을 무시한 채 급히 제정하는 또 다른 '교육이벤트'에 그친다면 이 미봉책은 학교현장에 더 큰 혼란만 가져 올 것이라는 우려가 듭니다. 학교에서의 '권위주의'는 사라져야 하지만, 학교에서의 '권위'는 있어야 합니다. 학생들이 잘못을 하였을 때, 따끔히 꾸짖어주던 곳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세월이 갈수록 가정,학교,사회 그 어느곳에서도 어른들은 잘못을 하는 학생들을 좀처럼 나무라지 않습니다. '무관심', '방관' 역시 학생들의 장래를 생각했을 때는, 넓은 의미에서는 또다른 체벌은 아닌가요? 필자가 학생이던 시절의 경험을 떠올려보면, 좀 심한 체벌을 하는 선생님도 아주 가끔은 계셨지만... 교사다운 모습으로, 교육철학을 바탕으로 순간의 기분이 아닌 소신을 가지고 학생을 꾸짖던 선생님들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 앞에서는 엄하게 꾸짖으셨어도, 뒤에서는 제자가 혹 받았을지 모를 마음의 상처를 걱정하시며 마음 아파 하시던 은사님의 모습도 떠오릅니다. 어른이 된 지금... 잘못을 하면 진심어리게 꾸짖어주시고 학생이기에 학생다울 것을 강조하시던 은사님들이 그리워지는 것은 왜일까요?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고 잘못을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본의든 본의가 아니든간에...학생 때 잘못하고 반성한 시간들은 보다 성숙한 어른이 되는 밑거름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학생이 학교 생활을 하는데... 학교에서는 생활지도보다는 학과교육에만 치중하고, 아주 큰 잘못이 아니고는 좀처럼 학생을 꾸짖지 않는다고 합시다. 이 학생이 나중에 자라서 어른이 된 사회에서는 큰 잘못이 아니고서야 더더욱 주위 어른들끼리 서로를 꾸짖지 않습니다. (어른들끼리는 앞에서 누군가를 쉽사리 꾸짖으려들지 않습니다. 때로는 가식이라 느껴질만큼 주위에 친절한 사람들뿐일지도 모흡니다.) 그러나 어른들은 결코 친절하기만 한 사람들은 아닙니다. 뒤에서 욕하는 경우는 그가 학생이였을 때보다 오히려 훨씬 더 많을지도 모릅니다. 한마디로 이 학생은 자신도 모르게 이미 어른이 된 세계에서 외로워지는 것입니다. 어린 학생시절부터 한번도 제대로 학생이지 못하고 어른처럼 대우받기에만 익숙했다면, 이 외로움은 매우 오래된 것일 것입니다. 어른은 자기 스스로 교육하고 자기 스스로 훈육해야 하는 다소 외로운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 진심어리게 앞에다 대고 '너 왜그러냐?'하고 직설적으로 꾸중해주는 친구가 있다면 어른들은 오히려 다행이라고 느끼기도 합니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수년전부터 맞벌이는 이제 필수처럼 여겨지고 있으며, 이는 가정에서의 교육 기능이 약화되는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하루하루 어려운 경제상황속에서 경제생활하기에 바쁘고 힘들다보니, 자식들 돌볼 틈이 많지 못한 부모님들은 자녀들에게 예전처럼 엄하게 훈육하지도 못 합니다. 그저 가슴깊은 부모의 사랑을 제대로 표현할 기회조차 많지 않은 현실이 아프고, 자녀에게 한없이 미안할 따름입니다. 그러면, 가정에서의 약화된 교육기능을 담당해야할 학교에서는 어떤가요? 학생인권조례가 아니더라도, 이미 매를 이용한 체벌 등은 경미한 것도 하지 못하게 규정이 있습니다. 교육청에서 학생한테 절대로 손바닥 1대라도 때리면 안 된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체벌을 감행하는 교사들은 사안의 경중에 따라서는 징계를 받게 될 것입니다. 굳이 교육청에서 금하지 않더라도 예전처럼 심하게 체벌하는 교사는 많지 않습니다. 어쩌면 체벌을 하지 않는 교사가 더 많을지도 모릅니다. 상당수의 학교에서 그리 바람직하지만은 않게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있습니다. 굳이 학생인권조례가 아니더라도, 교사들의 생활지도는 과거에 비해 소극적입니다. 폭력적이거나 심한 체벌의 경우야 당연히 비난받아야 하겠지만, 학생에 대한 선량한 의도와 관심이 기반이 된 '꾸짖음'이나, '팔굽혀펴기 5회 정도'의 가벼운 체벌에 학생이나 학부모로부터 모욕을 받는 교사들의 사례도 보도되고 있습니다. 교사도 인간이다보니 선량한 의도가 오해로 돌아왔을 때 상처를 받고 생활지도에 소극적으로 됩니다. 학부모님들도 교사를 자녀의 '스승'이 될 사람이라기보다는, '선생'으로서 대하는 일이 만연하게 되면, 교사들도 '스승'이 되기 위해 성품이든 전문성이든 부단히 정진하기보다는 그냥 '선생'이 되는데 그치지 않을까하는 괜한 노파심이 들기도 합니다. 학부모님들이 교사를 신뢰하거나 존경하지 않으니 학생들도 교사를 신뢰하거나 존경하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학생이나 학부모에 의한 교사폭행사례까지 보도되고 있습니다. 교권이 떨어지고, 교육의 주체인 학생, 교사, 학부모는 서로 신뢰하지 못합니다. 요근래 많은 교육문제들의 근본적인 문제들은 여기 있는데도, '학생인권조례를 만들면 된다'는 청사진을 제시합니다. 학생인권조례는 또 다른 방식으로 편중되는 것이니 '교권조례를 만들어야 한다'고 합니다. 과연 학생인권조례와 교권조례 등이 계속 만들어지면, 우리 교육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중의 중요한 한가지인 '신뢰'는 회복될까요? 이에 덧붙여, 학부모조례를 만들면 될까요? '신뢰'가 기반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일부 학부모님들은 자녀가 학교에서 조금이라도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생각되면, 그 일이 있기까지의 동기나 과정 등에 대해서 담임교사에게 묻거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습니다. 해당 문제와 관련된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담임교사의 교육적 고려를 신뢰하지 못하기에 담임교사에게 먼저 묻는 절차는 과감하게 생략하시기도 합니다. 교감, 교장선생님, 교육청, 심지어 청와대에 먼저 민원을 제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교육의 주체인 학생, 학부모, 교사가 서로 믿지 못하는 것은 슬픔일뿐만 아니라 문제입니다. 학생의 교육을 위해서 학생 본인은 물론이고 교사, 학부모가 서로 협력하여 시너지를 창출하여야 할텐데... 뿌리깊은 불신은 시너지는 커녕 시너지의 시작이라고도 할 수 있는 '소통'조차 어렵게 합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타인의 수업을 방해하거나 잘못된 행동을 반복하는 학생이 있다면, 그 학생의 미래를 위해 또한 수업을 방해받는 다른 학생들을 위해서 기꺼이 객관적이고 납득가능한 경미한 충고나 체벌을 하기가 매우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너 그러면 안 된다!"는 말 한 마디 혹은 "수업 방해하였으니, 뒤에 나가서 수업 들어!" 정도의 체벌이면 충분할 뿐입니다. 뒤에 나가서도 또 떠들며 수업을 방해하고 계속해서 잘못된 행동을 반복한다면, 교사는 학교나 교육청이 시끄러워지는 일을 예방하고자, 그 학생을 마치 투명인간처럼 생각하고 잘못된 행동을 못 본척, 못 들은 척 하면 되는 것인가요? 계속 잘못을 반복하면, 다른 학교로 전학을 권고하면 되는 것인가요? 학생인권조례는 우리 교육현장에 바람직한 변화중 하나가 될 수 있겠지만, 그 자체만으로 우리 교육의 청사진이 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학교 현장을 조금 벗어나서 생각해봅니다. 학생들의 모범이 되어야 할 사회에서의 우리 어른들의 모습은 어떤가요? 과연 충분히 모범적인가요?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던 어른이 황급히 담배를 끄며, 지나가는 학생을 꾸짖는 상황을 생각해 봅니다. 요즘은 길거리에서 학생들이 교복입고 담배를 펴도, 어른들이 뭐라고 하지도 않긴 하지만 말입니다. 뭐라고 할 수 없을 만큼 무서운 아이들도 있지요. "건강에 안 좋으니 피지 말아라."는 말 할 틈도 없이 "아저씨는 안 피시면서 말하는 거에요?" , "아저씨가 무슨 상관이에요?"하고 대드는 학생들도 많습니다. 내 자식이 아니니 괜찮은 건가요? 우리학교 학생이 아니니 괜찮은 건가요? 어른은 과연 그 건강에 나쁘다는 담배를 공공장소에서는 좀처럼 안 피우는 그런 사람인가요? 해로운 담배를 공공장소에서는 결코 피지 않는 그런 어른만이 학생들을 꾸짖을 자격이 있지 않나요? 내가 학생일 때는 안 피웠으니, 학생인 너는 피지 말아라 하면 되는 건가요? 그러한 꾸지람에 요즘 학생들은 과연 어떻게 느낄까요? 모두의 건강을 위해 좋지 않아서 나도 안 피우니까, 너도 피우지 않으면 좋겠다고 말하면 좀 더 설득력있지 않은가요? 우리 사회의 어른들은 청소년 문제에 대해 항상 많은 관심을 많이 갖고 있지만, 그 관심의 깊이가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여러모로 느끼게 됩니다. 청소년 폭력, 청소년 범죄는 전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요즘 청소년은 더이상 청소년이 아니라는 말까지 나옵니다. TV나 인터넷 등의 매스미디어의 책임은 없는 건가요? 뮤직비디오를 보든 드라마를 보든 격투장면은 자주 나옵니다. 발라드든 멜로든 장르를 불문하고 뮤직비디오는 뭔가 깨지고 박살이 나야, 드라마는 막장으로 가야 흥행이 되는 것 같습니다. 혹자는 폭력적인 매스미디어는 사회를 폭력적이게 한다고 하고, 혹자는 사회가 폭력적이니까 이를 반영하여 매스미디어가 폭력적이라고 합니다. 어쩌면 둘다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것은 아닌가요? 언제부터인가 드라마, 영화에서는 선생님에게 반항을 해야 '주인공의 여건'인 것 처럼 여겨지고 있습니다. 대다수의 주인공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항상 기세등등하고 다소 폭력적이며, 싸움실력이 마치 의리의 상징인 것처럼 표현되기도 합니다. 주인공들의 일반적인 캐릭터는 어떤가요? 기성세대인 어른들이나, 어른을 상징하는 선생님에게 때로는 별다른 이유없이 지속적으로 반항을 하는 것을 공식처럼하고 있습니다. 예술의 장르에서 '표현의 자유'의 영역이겠지만, 오히려 공식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 한 말씀드렸습니다. 학생인권조례 제정과 관련된 큰 이슈중에 하나인 '야간자율학습'에 대해서도 생각해봅니다. '야간자율학습'이 과연 학생인권조례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가에 대한 회의감을 갖게 됩니다. 이것은 조례 제정의 차원으로 해결되기 어려운, 보다 근본적인 교육시스템의 문제는 아닌가요? 학생인권조례 제정으로 인해 학교에서 야간자율학습이 금지된다고 하더라도 '무한경쟁'과 '등수 정하기'를 부추기는 학력평가 중시 경향, 객관식 단답형 지필고사 위주의 평가로 회귀하는 교육평가시스템이 있는 한, '질적 평가인 수행평가'와 '양적 평가인 학력평가'를 왔다리갔다리 하는 교육정책의 변화무쌍함이 있는 한, 국영수과 위주의 학력 중심의 대학입시제도가 여전히 건재한 이상 학교에서의 야간자율학습이 사라지더라도 가정에서의 야간자율학습, 학원에서의 야간자율학습은 오히려 더욱 혹독하게 존재할 것입니다. 장소가 '학교'에서 -> '가정이나 학원'으로 바뀔 뿐이지요. 요근래 학생인권조례 제정이 조명받고 있으나 이러한 여러가지 상황을 고려했을때, 생각해봐야 할 문제가 많습니다. 많은 교사들이 학생인권조례까지 제정하지 않더라도 이미 체벌이 금지되고 있으며, 두발 규제 또한 학교별로 교육방침에 따라 자율화되어 있음을 말합니다. 학생인권조례 제정이 안 그래도 지도하기 힘든 질풍노도의 시기에 있는 학생들에 대한 생활지도를 더욱더 어렵게 하거나 소극적이게 하고, 결과적으로 학교 현장에 더 큰 혼란을 초래할 수도 있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언제부턴가 TV와 언론에서는 학교현장에서의 사제간 신뢰와 같은 아름다운 이야기를 찾기보다는, 극히 일부의 올바르지 못한 교사를 조명하는데 초점을 맞추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극히 일부 교사들의 교사답지 못한 모습이 확대 보도될때마다, 이미 많이 낮아질대로 낮아진 교권은 더욱 낮아지고, 아직 교육현장에 다행히도 상당히 있는 좋은 선생님들, 그러니까 참교사라 불릴만큼 학생을 사랑하는 인품과 교사로서의 전문성을 모두 갖춘 교사들까지 사기가 저하됩니다. 방송만 보고 있자면, '선생님다운 선생님은 이제 없나?'라는 반문도 해보게 됩니다. 과연 '우리 교육현장이 그토록 어둡기만 하단 말인가?' '사회 곳곳에 쉴새없이 있는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왜 유독 교육현장에는 이리도 드문 것인가?' '언제부터 교육현장이 이렇게 메마른 무한경쟁의 현장이 되었단 말인가?' 하는 생각들을 하게 됩니다.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어야 한다면 '교권조례'역시 함께 균형 있게 제정되어야 한다는 교원총연합회의 주장도 이러한 맥락에서는 충분히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학생인권조례'에 맞서 '교권조례'가 제정되면, 현재 우리가 직면한 수많은 교육문제들이 해결될까요? 아니면 이에 덧붙여, '학부모조례'까지 제정하면, 우리교육이 더 발전하는 건가요? 다시, 한 번 교육현장에서의 '신뢰'라는 두 글자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과거 교육현장에도 불합리한 체벌을 비롯한 여러가지 문제가 많았고, 교육의 여건이 지금보다 좋지 못하였으나, 전반적으로 보았을 때는, 지금의 현실보다 한가지 부러웠던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학생,교사,학부모간에 서로 믿는 신뢰였습니다. 학생은 선생님께서 바르게 가르쳐주실 것이라고 굳게 믿고 선생님을 존경했고, 교사는 자신의 인품과 전문성을 함양하며 학생에게 애정과 노력을 쏟으면, 학생이 바르게 자라나는 데 있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것이라 굳게 믿는 열정이 있었습니다. 이 열정이 학생과 학부모님이 교사를 신뢰하는 바탕이 되었을테지요. 학부모님은 어려운 교육여건 속에서도 기꺼이 신뢰할 수 있게하는 교사의 열정을 보았기에 교사로부터 심지어 자녀가 다소 부당한 체벌을 받았을 경우에까지도, 아픈 가슴을 부여잡고 '잘못을 했으니까 혼났겠지'라고 자녀에게 먼저 물었습니다. 의혹이 있으면 교육청이 아니라 담임교사에게 먼저 묻고 의혹을 풀려고 했구요. 이러한 신뢰가 학급당 학생수 50명이던 시절에도 교육이란 것이 가능하게 했던 선생님의 에너지, 학생의 에너지, 학부모님의 에너지였던 것은 아닐까요? 요근래 교권의 하락을 비롯한 여타 교육의 문제들과 교사 자신의 문제로 인하여, 소위 교육자로서의 열정이 다소 약해진다는 댓글들을 인터넷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성과를 올리는 일'이 대세이고 '선한 의도와 과정이라도 오해를 살 일은 안하는 것'이 대세다 보니 학업성적이나 되도록 많은 교육활동들을 통한 성과물들위주로 편중하고픈 유혹의 마음이 생길 때가 간혹 있습니다. 또는, 전담교사라는 핑계로 학생들 생활지도에 지나치게 소극적일 때도 있는 스스로의 모습에 놀라 반성하기도 합니다! 좋은 방향인지, 나쁜 방향인지 쉽게 판단되지는 않고, 함부로 판단하기도 어렵지만.... 교육이 크게 변화하고 있는 시대에 교사로서 성찰하며 현재까지 찾은 답은 '교육에서의 신뢰 회복'인 것 같습니다. 그러면 저는 어떤 노력들을 해야 할까요?. 성품이야 하루 아침에 쌓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좋은 성품을 갖추기 위해서 앞으로도 매우 많은 시간 동안 꾸준히 더욱 꾸준히 계속 노력해야 할 것이고, 교과에 대한 것이든 생활지도에 대한 것이든 교사로서 전문성을 부단히 쌓아야 할 것이고, 교양이든, 상식이든 많은 지식과 경험을 쌓아야 할 것이며 학급에 관련된 것이든, 학교에 관련된 것이든, 예산에 관련된 것이든 교육행정적인 지식과 전문성 또한 갖추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할 것이며... 이것들을 기반으로 '학생에게 애정과 노력을 쏟으면, 학생이 바르게 자라나는 데 있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것이라 굳게 믿는 열정'을 놓지 않는 것이 미약하게나마 교육을 위해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습니다.
'학생인권조례'와 '신뢰'
학생인권조례 제정은
교육의 주체를 구성하고 있는
'학생들의 인권'에 대해서 조명한다는 측면에서 분명 가치있는 일중 하나일 것입니다.
그러나 학생인권조례 제정이
복잡하고 다양하며, 산재되어 있는 교육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환상은 버려야한다는 말씀을 드리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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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학생인권조례 제정에 있어서도, '체벌'은 큰 화두입니다.
체벌의 교육 효과에 대한 논란, 체벌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체벌이 금지되어야 하는 이유는
극히 일부 교사답지 못한 교사에 의해 교권이 남용되고
극심한 폭력적인 체벌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학생인권조례제정이
학교현실과 사회현실을 무시한 채
급히 제정하는 또 다른 '교육이벤트'에 그친다면
이 미봉책은 학교현장에 더 큰 혼란만 가져 올 것이라는 우려가 듭니다.
학교에서의 '권위주의'는 사라져야 하지만,
학교에서의 '권위'는 있어야 합니다.
학생들이 잘못을 하였을 때, 따끔히 꾸짖어주던 곳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세월이 갈수록 가정,학교,사회 그 어느곳에서도
어른들은 잘못을 하는 학생들을 좀처럼 나무라지 않습니다.
'무관심', '방관' 역시 학생들의 장래를 생각했을 때는, 넓은 의미에서는 또다른 체벌은 아닌가요?
필자가 학생이던 시절의 경험을 떠올려보면,
좀 심한 체벌을 하는 선생님도 아주 가끔은 계셨지만...
교사다운 모습으로, 교육철학을 바탕으로 순간의 기분이 아닌 소신을 가지고 학생을 꾸짖던 선생님들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
앞에서는 엄하게 꾸짖으셨어도,
뒤에서는 제자가 혹 받았을지 모를 마음의 상처를 걱정하시며
마음 아파 하시던 은사님의 모습도 떠오릅니다.
어른이 된 지금...
잘못을 하면 진심어리게 꾸짖어주시고
학생이기에 학생다울 것을 강조하시던 은사님들이 그리워지는 것은 왜일까요?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고 잘못을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본의든 본의가 아니든간에...학생 때 잘못하고 반성한 시간들은
보다 성숙한 어른이 되는 밑거름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학생이 학교 생활을 하는데... 학교에서는 생활지도보다는 학과교육에만 치중하고,
아주 큰 잘못이 아니고는 좀처럼 학생을 꾸짖지 않는다고 합시다.
이 학생이 나중에 자라서 어른이 된 사회에서는 큰 잘못이 아니고서야 더더욱 주위 어른들끼리 서로를 꾸짖지 않습니다.
(어른들끼리는 앞에서 누군가를 쉽사리 꾸짖으려들지 않습니다. 때로는 가식이라 느껴질만큼 주위에 친절한 사람들뿐일지도 모흡니다.)
그러나 어른들은 결코 친절하기만 한 사람들은 아닙니다.
뒤에서 욕하는 경우는 그가 학생이였을 때보다 오히려 훨씬 더 많을지도 모릅니다.
한마디로 이 학생은 자신도 모르게 이미 어른이 된 세계에서 외로워지는 것입니다.
어린 학생시절부터 한번도 제대로 학생이지 못하고 어른처럼 대우받기에만 익숙했다면,
이 외로움은 매우 오래된 것일 것입니다.
어른은 자기 스스로 교육하고 자기 스스로 훈육해야 하는 다소 외로운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 진심어리게 앞에다 대고 '너 왜그러냐?'하고 직설적으로 꾸중해주는 친구가
있다면 어른들은 오히려 다행이라고 느끼기도 합니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수년전부터 맞벌이는 이제 필수처럼 여겨지고 있으며,
이는 가정에서의 교육 기능이 약화되는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하루하루 어려운 경제상황속에서 경제생활하기에 바쁘고 힘들다보니,
자식들 돌볼 틈이 많지 못한 부모님들은 자녀들에게 예전처럼 엄하게 훈육하지도 못 합니다.
그저 가슴깊은 부모의 사랑을 제대로 표현할 기회조차 많지 않은 현실이 아프고,
자녀에게 한없이 미안할 따름입니다.
그러면, 가정에서의 약화된 교육기능을 담당해야할 학교에서는 어떤가요?
학생인권조례가 아니더라도, 이미 매를 이용한 체벌 등은 경미한 것도 하지 못하게 규정이 있습니다.
교육청에서 학생한테 절대로 손바닥 1대라도 때리면 안 된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체벌을 감행하는 교사들은 사안의 경중에 따라서는 징계를 받게 될 것입니다.
굳이 교육청에서 금하지 않더라도 예전처럼 심하게 체벌하는 교사는 많지 않습니다.
어쩌면 체벌을 하지 않는 교사가 더 많을지도 모릅니다.
상당수의 학교에서 그리 바람직하지만은 않게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있습니다.
굳이 학생인권조례가 아니더라도, 교사들의 생활지도는 과거에 비해 소극적입니다.
폭력적이거나 심한 체벌의 경우야 당연히 비난받아야 하겠지만,
학생에 대한 선량한 의도와 관심이 기반이 된
'꾸짖음'이나, '팔굽혀펴기 5회 정도'의 가벼운 체벌에
학생이나 학부모로부터 모욕을 받는 교사들의 사례도 보도되고 있습니다.
교사도 인간이다보니 선량한 의도가 오해로 돌아왔을 때 상처를 받고
생활지도에 소극적으로 됩니다.
학부모님들도 교사를 자녀의 '스승'이 될 사람이라기보다는, '선생'으로서 대하는 일이 만연하게 되면,
교사들도 '스승'이 되기 위해 성품이든 전문성이든 부단히 정진하기보다는
그냥 '선생'이 되는데 그치지 않을까하는 괜한 노파심이 들기도 합니다.
학부모님들이 교사를 신뢰하거나 존경하지 않으니
학생들도 교사를 신뢰하거나 존경하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학생이나 학부모에 의한 교사폭행사례까지 보도되고 있습니다.
교권이 떨어지고, 교육의 주체인 학생, 교사, 학부모는 서로 신뢰하지 못합니다.
요근래 많은 교육문제들의 근본적인 문제들은 여기 있는데도,
'학생인권조례를 만들면 된다'는 청사진을 제시합니다.
학생인권조례는 또 다른 방식으로 편중되는 것이니
'교권조례를 만들어야 한다'고 합니다.
과연 학생인권조례와 교권조례 등이 계속 만들어지면,
우리 교육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중의 중요한 한가지인
'신뢰'는 회복될까요?
이에 덧붙여, 학부모조례를 만들면 될까요?
'신뢰'가 기반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일부 학부모님들은
자녀가 학교에서 조금이라도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생각되면,
그 일이 있기까지의 동기나 과정 등에 대해서 담임교사에게 묻거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습니다.
해당 문제와 관련된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담임교사의 교육적 고려를 신뢰하지 못하기에
담임교사에게 먼저 묻는 절차는 과감하게 생략하시기도 합니다.
교감, 교장선생님, 교육청, 심지어 청와대에 먼저 민원을 제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교육의 주체인 학생, 학부모, 교사가 서로 믿지 못하는 것은 슬픔일뿐만 아니라 문제입니다.
학생의 교육을 위해서
학생 본인은 물론이고 교사, 학부모가 서로 협력하여 시너지를 창출하여야 할텐데...
뿌리깊은 불신은 시너지는 커녕 시너지의 시작이라고도 할 수 있는 '소통'조차 어렵게 합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타인의 수업을 방해하거나 잘못된 행동을 반복하는 학생이 있다면,
그 학생의 미래를 위해 또한 수업을 방해받는 다른 학생들을 위해서
기꺼이 객관적이고 납득가능한 경미한 충고나 체벌을 하기가 매우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너 그러면 안 된다!"는 말 한 마디 혹은
"수업 방해하였으니, 뒤에 나가서 수업 들어!" 정도의 체벌이면
충분할 뿐입니다.
뒤에 나가서도 또 떠들며 수업을 방해하고 계속해서 잘못된 행동을 반복한다면,
교사는 학교나 교육청이 시끄러워지는 일을 예방하고자,
그 학생을 마치 투명인간처럼 생각하고
잘못된 행동을 못 본척, 못 들은 척 하면 되는 것인가요?
계속 잘못을 반복하면, 다른 학교로 전학을 권고하면 되는 것인가요?
학생인권조례는 우리 교육현장에 바람직한 변화중 하나가 될 수 있겠지만,
그 자체만으로 우리 교육의 청사진이 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학교 현장을 조금 벗어나서 생각해봅니다.
학생들의 모범이 되어야 할 사회에서의 우리 어른들의 모습은 어떤가요?
과연 충분히 모범적인가요?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던 어른이 황급히 담배를 끄며, 지나가는 학생을 꾸짖는 상황을 생각해 봅니다.
요즘은 길거리에서 학생들이 교복입고 담배를 펴도, 어른들이 뭐라고 하지도 않긴 하지만 말입니다.
뭐라고 할 수 없을 만큼 무서운 아이들도 있지요.
"건강에 안 좋으니 피지 말아라."는 말 할 틈도 없이
"아저씨는 안 피시면서 말하는 거에요?" , "아저씨가 무슨 상관이에요?"하고 대드는 학생들도 많습니다.
내 자식이 아니니 괜찮은 건가요?
우리학교 학생이 아니니 괜찮은 건가요?
어른은 과연 그 건강에 나쁘다는 담배를 공공장소에서는 좀처럼 안 피우는 그런 사람인가요?
해로운 담배를 공공장소에서는 결코 피지 않는 그런 어른만이 학생들을 꾸짖을 자격이 있지 않나요?
내가 학생일 때는 안 피웠으니, 학생인 너는 피지 말아라 하면 되는 건가요?
그러한 꾸지람에 요즘 학생들은 과연 어떻게 느낄까요?
모두의 건강을 위해 좋지 않아서 나도 안 피우니까,
너도 피우지 않으면 좋겠다고 말하면 좀 더 설득력있지 않은가요?
우리 사회의 어른들은 청소년 문제에 대해 항상 많은 관심을 많이 갖고 있지만,
그 관심의 깊이가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여러모로 느끼게 됩니다.
청소년 폭력, 청소년 범죄는 전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요즘 청소년은 더이상 청소년이 아니라는 말까지 나옵니다.
TV나 인터넷 등의 매스미디어의 책임은 없는 건가요?
뮤직비디오를 보든 드라마를 보든 격투장면은 자주 나옵니다.
발라드든 멜로든 장르를 불문하고 뮤직비디오는 뭔가 깨지고 박살이 나야,
드라마는 막장으로 가야 흥행이 되는 것 같습니다.
혹자는 폭력적인 매스미디어는 사회를 폭력적이게 한다고 하고,
혹자는 사회가 폭력적이니까 이를 반영하여 매스미디어가 폭력적이라고 합니다.
어쩌면 둘다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것은 아닌가요?
언제부터인가 드라마, 영화에서는 선생님에게 반항을 해야 '주인공의 여건'인 것 처럼 여겨지고 있습니다.
대다수의 주인공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항상 기세등등하고 다소 폭력적이며, 싸움실력이 마치 의리의 상징인 것처럼 표현되기도 합니다.
주인공들의 일반적인 캐릭터는 어떤가요?
기성세대인 어른들이나, 어른을 상징하는 선생님에게 때로는 별다른 이유없이 지속적으로 반항을 하는 것을 공식처럼하고 있습니다.
예술의 장르에서 '표현의 자유'의 영역이겠지만, 오히려 공식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 한 말씀드렸습니다.
학생인권조례 제정과 관련된 큰 이슈중에 하나인 '야간자율학습'에 대해서도 생각해봅니다.
'야간자율학습'이 과연 학생인권조례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가에 대한 회의감을 갖게 됩니다.
이것은 조례 제정의 차원으로 해결되기 어려운, 보다 근본적인 교육시스템의 문제는 아닌가요?
학생인권조례 제정으로 인해 학교에서 야간자율학습이 금지된다고 하더라도
'무한경쟁'과 '등수 정하기'를 부추기는 학력평가 중시 경향, 객관식 단답형 지필고사 위주의 평가로 회귀하는 교육평가시스템이 있는 한,
'질적 평가인 수행평가'와 '양적 평가인 학력평가'를 왔다리갔다리 하는 교육정책의 변화무쌍함이 있는 한,
국영수과 위주의 학력 중심의 대학입시제도가 여전히 건재한 이상
학교에서의 야간자율학습이 사라지더라도
가정에서의 야간자율학습, 학원에서의 야간자율학습은 오히려 더욱 혹독하게 존재할 것입니다.
장소가 '학교'에서 -> '가정이나 학원'으로 바뀔 뿐이지요.
요근래 학생인권조례 제정이 조명받고 있으나 이러한 여러가지 상황을 고려했을때,
생각해봐야 할 문제가 많습니다.
많은 교사들이 학생인권조례까지 제정하지 않더라도 이미 체벌이 금지되고 있으며,
두발 규제 또한 학교별로 교육방침에 따라 자율화되어 있음을 말합니다.
학생인권조례 제정이 안 그래도 지도하기 힘든 질풍노도의 시기에 있는 학생들에 대한 생활지도를
더욱더 어렵게 하거나 소극적이게 하고,
결과적으로 학교 현장에 더 큰 혼란을 초래할 수도 있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언제부턴가 TV와 언론에서는 학교현장에서의 사제간 신뢰와 같은 아름다운 이야기를 찾기보다는,
극히 일부의 올바르지 못한 교사를 조명하는데 초점을 맞추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극히 일부 교사들의 교사답지 못한 모습이 확대 보도될때마다,
이미 많이 낮아질대로 낮아진 교권은 더욱 낮아지고, 아직 교육현장에 다행히도 상당히 있는 좋은 선생님들,
그러니까 참교사라 불릴만큼 학생을 사랑하는 인품과 교사로서의 전문성을 모두 갖춘 교사들까지 사기가 저하됩니다.
방송만 보고 있자면, '선생님다운 선생님은 이제 없나?'라는 반문도 해보게 됩니다.
과연 '우리 교육현장이 그토록 어둡기만 하단 말인가?'
'사회 곳곳에 쉴새없이 있는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왜 유독 교육현장에는 이리도 드문 것인가?'
'언제부터 교육현장이 이렇게 메마른 무한경쟁의 현장이 되었단 말인가?' 하는 생각들을 하게 됩니다.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어야 한다면
'교권조례'역시 함께 균형 있게 제정되어야 한다는
교원총연합회의 주장도 이러한 맥락에서는 충분히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학생인권조례'에 맞서 '교권조례'가 제정되면, 현재 우리가 직면한 수많은 교육문제들이 해결될까요?
아니면 이에 덧붙여, '학부모조례'까지 제정하면, 우리교육이 더 발전하는 건가요?
다시, 한 번 교육현장에서의 '신뢰'라는 두 글자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과거 교육현장에도 불합리한 체벌을 비롯한 여러가지 문제가 많았고, 교육의 여건이 지금보다 좋지 못하였으나,
전반적으로 보았을 때는, 지금의 현실보다 한가지 부러웠던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학생,교사,학부모간에 서로 믿는 신뢰였습니다.
학생은 선생님께서 바르게 가르쳐주실 것이라고 굳게 믿고 선생님을 존경했고,
교사는 자신의 인품과 전문성을 함양하며 학생에게 애정과 노력을 쏟으면,
학생이 바르게 자라나는 데 있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것이라 굳게 믿는 열정이 있었습니다.
이 열정이 학생과 학부모님이 교사를 신뢰하는 바탕이 되었을테지요.
학부모님은 어려운 교육여건 속에서도 기꺼이 신뢰할 수 있게하는 교사의 열정을 보았기에
교사로부터 심지어 자녀가 다소 부당한 체벌을 받았을 경우에까지도,
아픈 가슴을 부여잡고 '잘못을 했으니까 혼났겠지'라고 자녀에게 먼저 물었습니다.
의혹이 있으면 교육청이 아니라 담임교사에게 먼저 묻고 의혹을 풀려고 했구요.
이러한 신뢰가
학급당 학생수 50명이던 시절에도 교육이란 것이 가능하게 했던
선생님의 에너지, 학생의 에너지, 학부모님의 에너지였던 것은 아닐까요?
요근래 교권의 하락을 비롯한 여타 교육의 문제들과 교사 자신의 문제로 인하여,
소위 교육자로서의 열정이 다소 약해진다는 댓글들을 인터넷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성과를 올리는 일'이 대세이고
'선한 의도와 과정이라도 오해를 살 일은 안하는 것'이 대세다 보니
학업성적이나 되도록 많은 교육활동들을 통한 성과물들위주로 편중하고픈
유혹의 마음이 생길 때가 간혹 있습니다.
또는, 전담교사라는 핑계로
학생들 생활지도에 지나치게 소극적일 때도 있는 스스로의 모습에 놀라 반성하기도 합니다!
좋은 방향인지, 나쁜 방향인지 쉽게 판단되지는 않고, 함부로 판단하기도 어렵지만....
교육이 크게 변화하고 있는 시대에
교사로서 성찰하며 현재까지 찾은 답은 '교육에서의 신뢰 회복'인 것 같습니다.
그러면 저는 어떤 노력들을 해야 할까요?.
성품이야 하루 아침에 쌓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좋은 성품을 갖추기 위해서
앞으로도 매우 많은 시간 동안 꾸준히 더욱 꾸준히 계속 노력해야 할 것이고,
교과에 대한 것이든 생활지도에 대한 것이든 교사로서 전문성을 부단히 쌓아야 할 것이고,
교양이든, 상식이든 많은 지식과 경험을 쌓아야 할 것이며
학급에 관련된 것이든, 학교에 관련된 것이든, 예산에 관련된 것이든
교육행정적인 지식과 전문성 또한 갖추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할 것이며...
이것들을 기반으로
'학생에게 애정과 노력을 쏟으면,
학생이 바르게 자라나는 데 있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것이라 굳게 믿는 열정'을 놓지 않는 것이
미약하게나마 교육을 위해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