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당시가 딱 사춘기 시절(?) 이어서 그런지, 방황도 많이 하고 사고도 많이 치고 파출소를 들락거렸지요.
어머니가 백방으로 뛰어 다니셔서, 겨우겨우 모면 할 수 있었습니다.
자식을 낳은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못난 아들이었네요. ㅜ_ㅜ
그러던 중 대학에 진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대학 갈 형편이 되지 않았지만, 어머님께서 빚을 내어서 보내주셨지요.
어머님께 죄송해서 장학금도 받아보고, 아르바이트도 해보고 해봤지만, 어머니 혼자 저와 제 여동생을 양육하시기 힘들어 하셨습니다.
그로인행 제 여동생은 대학에 갈 꿈도 못 꾸었으니깐요. (정말 동생에게 미안하지요.)
졸업 후 IMF 위기에 이력서를 100통도 넘게 쓰고 정말 어렵게 어렵게 취업을 하였습니다.
아직도 어머님 손을 잡고 취직이 되었다고 고생 안하셔도 된다고 엉엉 울었을때가 생각나네요.
그렇게 취직을 하였으나, 정말 정확히 일주일 후에 어머니께서 뇌출혈로 쓰러지시게 됩니다.
쓰러지신날 신입으로 밤새야근 하느라, 연락도 제대로 못드렸는데, 밤늦게 여동생에게 연락이 와서 병원으로 뛰어갔습니다.
80%이상 돌아가실거라는 의사의 말과는 달리 어머니께서는 기적적으로 살아나셨고,
정말로 정말로 감사했습니다.
하지만, 1급 장애를 받으시고 침대생활 밖에는 안되는 대소변을 주변에서 다 받아 내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외가집 친인척들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등을 돌리고, 어린 남매 둘이 어머니를 보살피자니,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 당시 제 월급 80만원 이었고, 차비/밥값 다 별도 였으니, 카드 돌려막기도 안되더군요. )
그나마 저는 회사를 다닌다는 핑계로 밖에 나가 있었지만, 어린 여동생은 3년동안을 어머님 옆에서 간병을 해야만 했습니다.
집안형편과 어리다는 이유로 집에만 있게한 제 동생에게 평생의 빚을 진거지요...
그러던중 지금의 저의 집사람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저보다 4살 연상이지만, 이쁘고 동안에 상대방의 대한 배려가 깊고 참 현명한 여자입니다. (제가 말하긴 그렇지만, 명문대 출신에 정말 잘나가던 사람이었습니다. )
편찮으신 어머님께 먼저 찾아뵙자고 하고, 주말이면 제가 직장에 출근하면 본인이 몰래 집에 다녀오곤 했습니다. (여동생 집에만 있으면 답답하다고 밖으로 내보내고, 집사람이 어머니와 시간을 많이 보냈더라구요.)
그런 모습을 저의 집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이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는 마음과 이런 여자는 평생 다시 못만날것이라 생각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제 처지를 아는 이상 선뜻 제맘을 내세울수 없었고, 제 스스로도 이런 저에게 시집을 온다면 고생할게 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지요.
그러던 어느날 집사람이 도저히 저의 어머니와 제 여동생을 그냥 내버려둘수 없다고 하더군요.
본인이 직접 매일 매일 보살피고 싶다고... 어떻게 보면 그런식으로 제가 청혼을 받게 되었습니다.
정말로 많이 울었습니다. 못난 남자 만나서 평생 한번 한다는 결혼 프로포즈도 받지 못하게 했으니...
집사람이 그렇게 결혼을 결심하니,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 되었습니다.
상견례는 저의 친가어른과 했으며, 처가댁에서도 저의 사정을 알고 계셨지만, 저의 집사람의 의견을 전적으로 지지해 주셨습니다.
집사람이 혼자 살던 집은 결혼식후 처분하여서 본가로 들어가기로 하였고, 결혼식장은 교회에서 하기로 하였습니다.
예물, 예단은 물론 하지 않기로 하고 저희 둘이 작게 하려고 하였지만, 저의 친가 친인척 분들이 조금씩 모아서 신부에게 필요한 귀금속, 정장, 화장품 등등 해 주시더군요. 이런것 받지 않으면 평생 서럽게 생각하신다구요. (요즘 분들은 이런것들로 많이들 힘들어 하시더군요.)
그렇게 준비하던 중 결혼은 3개월 앞두고 어머님께서 돌아가시게 되었습니다.
노쇠해 계신 상태에서 합병증으로 정말 손도 못쓰고 하늘나라로 가시게 되었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더군요.
병석에 계셨지만, 저 마음의 큰 벽이셨던 어머니가 돌아가시니, 어찌할바를 모르겠고 하염없이 울기만 했었습니다.
그렇게 어머니를 보내드리고, 큰일이 있는 해에는 결혼하지 않는 다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예정된 날짜에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께 묻고 싶네요... 행복한 느낌을 언제 느끼시는지...
결혼 후 제 모든 상황이 바뀌면서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나고, 매사에 긍정적이며 조급하지 않은... 이런 느낌이 행복한 느낌이구나... 라고 저는 느꼈습니다.
그리고 이 행복을 깨지 않기 위해서 정말 많이 노력하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렇게 큰딸을 낳고 얼마전 아들도 낳아서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으며, 월세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서울에 방3칸짜리 전세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도 열심해 해서 그런지 5식구 먹고 살수 있을 정도고 수입도 괜찮아 졌고, 동생도 뒤늦게 대학에 다니고 싶어해서 지원도 해주고 있습니다.
[긴글] 톡톡 최하남... 여러분 저 지금 잘 하는 있는 거지요?
안녕하세요.
30대 남자사람 입니다.
요즘 톡에 중독이 되어서 남자인데도 불구하고 시간나면 들리곤 하네요. ^^;
다름이 아니라 제가 지금 잘 살고 있는건지... 톡님들께 조언을 듣고자 글을 쓰네요.
글이 좀 길어질꺼 같은데, 긴글 싫어하시는 분들은 뒤로가기를 누르셔야 할 듯 하네요 ;;
현재 저희 집은 5식구 저,와이프,딸,아들 그리고 제 여동생이 함께 살고 있습니다.
저는 1남 1녀의 장남으로 부모님 두 분은 모두 돌아가셨습니다.
어릴적 부모님 슬하에서 자랄때를 기억해 보면 좋은 기억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아버님의 알콜중독과 불같은 성격의 어머니
빈번한 부부싸움 때문에 주변에 피신하기도 많이 했었으니까요.
그렇게 지내던중 중학교때 두분께서 이혼하시고, 저는 아버지께 동생은 어머니께 맡겨져 자라 왔습니다.
그러던 중 2년후 아버님께서 간경화로 돌아가시게 되어서 어머니 집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이 당시가 딱 사춘기 시절(?) 이어서 그런지, 방황도 많이 하고 사고도 많이 치고 파출소를 들락거렸지요.
어머니가 백방으로 뛰어 다니셔서, 겨우겨우 모면 할 수 있었습니다.
자식을 낳은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못난 아들이었네요. ㅜ_ㅜ
그러던 중 대학에 진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대학 갈 형편이 되지 않았지만, 어머님께서 빚을 내어서 보내주셨지요.
어머님께 죄송해서 장학금도 받아보고, 아르바이트도 해보고 해봤지만, 어머니 혼자 저와 제 여동생을 양육하시기 힘들어 하셨습니다.
그로인행 제 여동생은 대학에 갈 꿈도 못 꾸었으니깐요. (정말 동생에게 미안하지요.)
졸업 후 IMF 위기에 이력서를 100통도 넘게 쓰고 정말 어렵게 어렵게 취업을 하였습니다.
아직도 어머님 손을 잡고 취직이 되었다고 고생 안하셔도 된다고 엉엉 울었을때가 생각나네요.
그렇게 취직을 하였으나, 정말 정확히 일주일 후에 어머니께서 뇌출혈로 쓰러지시게 됩니다.
쓰러지신날 신입으로 밤새야근 하느라, 연락도 제대로 못드렸는데, 밤늦게 여동생에게 연락이 와서 병원으로 뛰어갔습니다.
80%이상 돌아가실거라는 의사의 말과는 달리 어머니께서는 기적적으로 살아나셨고,
정말로 정말로 감사했습니다.
하지만, 1급 장애를 받으시고 침대생활 밖에는 안되는 대소변을 주변에서 다 받아 내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외가집 친인척들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등을 돌리고, 어린 남매 둘이 어머니를 보살피자니,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 당시 제 월급 80만원 이었고, 차비/밥값 다 별도 였으니, 카드 돌려막기도 안되더군요. )
그나마 저는 회사를 다닌다는 핑계로 밖에 나가 있었지만, 어린 여동생은 3년동안을 어머님 옆에서 간병을 해야만 했습니다.
집안형편과 어리다는 이유로 집에만 있게한 제 동생에게 평생의 빚을 진거지요...
그러던중 지금의 저의 집사람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저보다 4살 연상이지만, 이쁘고 동안에 상대방의 대한 배려가 깊고 참 현명한 여자입니다.
(제가 말하긴 그렇지만, 명문대 출신에 정말 잘나가던 사람이었습니다. )
편찮으신 어머님께 먼저 찾아뵙자고 하고, 주말이면 제가 직장에 출근하면 본인이 몰래 집에 다녀오곤 했습니다.
(여동생 집에만 있으면 답답하다고 밖으로 내보내고, 집사람이 어머니와 시간을 많이 보냈더라구요.)
그런 모습을 저의 집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이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는 마음과 이런 여자는 평생 다시 못만날것이라 생각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제 처지를 아는 이상 선뜻 제맘을 내세울수 없었고, 제 스스로도 이런 저에게 시집을 온다면 고생할게 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지요.
그러던 어느날 집사람이 도저히 저의 어머니와 제 여동생을 그냥 내버려둘수 없다고 하더군요.
본인이 직접 매일 매일 보살피고 싶다고... 어떻게 보면 그런식으로 제가 청혼을 받게 되었습니다.
정말로 많이 울었습니다. 못난 남자 만나서 평생 한번 한다는 결혼 프로포즈도 받지 못하게 했으니...
집사람이 그렇게 결혼을 결심하니,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 되었습니다.
상견례는 저의 친가어른과 했으며, 처가댁에서도 저의 사정을 알고 계셨지만, 저의 집사람의 의견을 전적으로 지지해 주셨습니다.
집사람이 혼자 살던 집은 결혼식후 처분하여서 본가로 들어가기로 하였고, 결혼식장은 교회에서 하기로 하였습니다.
예물, 예단은 물론 하지 않기로 하고 저희 둘이 작게 하려고 하였지만, 저의 친가 친인척 분들이 조금씩 모아서 신부에게 필요한 귀금속, 정장, 화장품 등등 해 주시더군요. 이런것 받지 않으면 평생 서럽게 생각하신다구요. (요즘 분들은 이런것들로 많이들 힘들어 하시더군요.)
그렇게 준비하던 중 결혼은 3개월 앞두고 어머님께서 돌아가시게 되었습니다.
노쇠해 계신 상태에서 합병증으로 정말 손도 못쓰고 하늘나라로 가시게 되었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더군요.
병석에 계셨지만, 저 마음의 큰 벽이셨던 어머니가 돌아가시니, 어찌할바를 모르겠고 하염없이 울기만 했었습니다.
그렇게 어머니를 보내드리고, 큰일이 있는 해에는 결혼하지 않는 다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예정된 날짜에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께 묻고 싶네요... 행복한 느낌을 언제 느끼시는지...
결혼 후 제 모든 상황이 바뀌면서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나고, 매사에 긍정적이며 조급하지 않은... 이런 느낌이 행복한 느낌이구나... 라고 저는 느꼈습니다.
그리고 이 행복을 깨지 않기 위해서 정말 많이 노력하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렇게 큰딸을 낳고 얼마전 아들도 낳아서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으며, 월세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서울에 방3칸짜리 전세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도 열심해 해서 그런지 5식구 먹고 살수 있을 정도고 수입도 괜찮아 졌고, 동생도 뒤늦게 대학에 다니고 싶어해서 지원도 해주고 있습니다.
톡을 읽다보면, 저는 여러분 글에 답글을 달고 싶어도 쉽게 달지 못하겠더군요.
톡에서는 저란 남자는 정말 명함도 내밀지 못할 정도로 못난 사람이었으니깐요.
그래도 용기내서 한번 여쭤보고 싶었습니다.
톡 여러분들... 이런 저... 잘 살고 있는거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