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17

katerina2003.07.08
조회240

철이:

 

봄이 완연해졌습니다.

 

돋는 새싹들처럼 내 마음도 파래집니다.

 

남자는 가을을 탄다는데 난 봄도 타고 있습니다.

 

사대로 난 길에서 봄바람이 날 간지럽히고 가네요.

 

강사님 진도 좀 천천히 나가요.

 

하나도 못 알아 듣겠습니다.

 

내가 왜 이걸 들었지?

 

교양과목을 듣고 나오다 그 개성있는 놈을 보았습니다.

 

어쭈.

 

이제는 아주 어려보이는 여학생들한테도 찝쩍되는구만.

 

여학생 많은 과는 좋겠다.

 

저렇게 생겨도 과 내에서 여학생들하고 친해지는구나.

 

그것도 후배들하고 말이야.

 

저 녀석과 마찬가지로 그녀도 이 건물을

 

웃으며 다니겠지요.

 

 

민이:

 

친구가 짧은 스커트를 입고 왔습니다.

 

오늘 공대 교양수업이 있는 날입니다.

 

아예 작정을 하고 온 모양입니다.

 

4학년이나 되어 가지고... 쯧쯧.

 

공대 남학생들 전 하나도 쳐다보질 않네요.

 

모두 친구에게만 시선을 주었습니다.

 

친구는 아예 수업을 포기했습니다.

 

수업시간에 거울은 왜 보냐?

 

이번 교양수업에도 그는 만나지지 않았습니다.

 

공대 앞에도 봄의 따사한 햇살이

 

너무나 기분 좋게 내리고 있습니다.

 

이 건물 어딘가에 그가 있겠지요.

 

 

철이:

 

일요일에 도서관을 나왔습니다.

 

내가 자주 앉던 자리는 이미 누가 앉아 버렸네요.

 

그녀의 모습도 보이질 않습니다.

 

조금 있으면 중간고사지만 아직 몇 주 남았습니다.

 

가방만 차지한 자리가 많습니다.

 

시험 몇 주전부터 교양공부 해보긴 첨인 거 같습니다.

 

기초 일본어. 기초는 무슨...

 

전공보다 어렵다.

 

교양 한 과목 때문에 사전사기가 아까웠습니다.

 

수업시간에 토달고 뜻달고 무던히 노력을 했지만

 

모르는 글자들이 많이 눈에 띱니다.

 

커피나 한잔하고 와야겠습니다.

 

자판기 앞에 사람이 없네요.

 

동전을 넣고 버튼을 누를려고 했는데...

 

누군가 맹물이라고 소리를 쳤읍니다.

 

아릿따운 소녀의 목소리였습니다.

 

고개를 돌려보았습니다.

 

이럴수가 그녀가 휴게실에 있었군요.

 

그녀의 친구와 자판기에서 멀지 않은 곳에

 

앉아 있었습니다.

 

왜 못 봤을까?

 

그녀를 한동안 쳐다보다가 아무말 못하고

 

머쩍한 표정만 짓고는 돈을 뽑아 돌아섰습니다.

 

가만... 오늘따라 왜 그녀에게 말을 걸 용기가 났을까요?

 

다시 돌아섰습니다.

 

"저기요..?" 이거 제가 한말 아니에요.

 

그녀가 한말이에요.

 

전 "저기..." 까지만 말했어요.

 

 

민이:

 

일요일에 도서관을 나왔습니다.

 

내가 자주 앉던 자리와 그가 자주 앉던 자리는

 

어느 씨씨가 차지해버렸네요.

 

한쪽 구석에 친구자리와 내 자리를 맡았습니다.

 

친구는 좀 늦게 나왔지요.

 

내가 맡아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 잘못이 크니까요.

 

컴퓨터 교양 때문이었습니다.

 

모레까지 리포트를 내야 하는데

 

둘 다 아는 게 있어야지요.

 

뭘 짜오라는데 컴퓨터가 실입니까? 뭘 짜오게...

 

책을 펴서 한동안 끙끙 알았습니다.

 

컴퓨터 참 쉬워요.

 

책 제목부터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제 주위에 컴 잘하는 사람은 없었읍니다.

 

컴퓨터에 언어가 있다는 것도

 

이주 전 처음 알았는데 벌써 리포트란?

 

그걸로 뭘 짜오라고 했습니다.

 

모르겠다.

 

커피나 한잔하고 오자.

 

호호. 꼬시다.

 

친구가 뽑은 컵에서는

 

따뜻한 물만 매정하게 고여 있었습니다.

 

휴게실에 앉아 친구와 잠시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는데

 

그가 도서관에 있었군요.

 

흠 친구도 옆에 있고 오늘 편지를 가져왔더라면

 

눈 딱 감고 줘 버릴 수도 있었겠는데... 아쉽네요.

 

그는 나를 못 본 모양입니다.

 

자판기 앞으로가 동전을 넣는군요.

 

그래 말해주자.

 

난 그에게 물이 맹물이다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하고 달리 착하지요?

 

그는 나를 돌아보긴 했지만

 

머쩍한 표정만 지을 뿐 아무 말도 없었습니다.

 

오늘따라 그와 말을 하고 싶습니다.

 

뭐 지금껏 그와 대화한 적도 없지만

 

분명 그와 난 서로 아는 사이입니다.

 

"저기..." 이거 제가 한말 아니에요.

 

전 "저기요." 그랬어요.

 

친구와 전 컴퓨터교양의 교재를 들고 있었습니다.

 

왜 기억하지 못했을까요?

 

그가 전산과 학생이라는 것을...

 

열람실로 돌아왔습니다.

 

그하고 얘기를 많이 했냐구요?

 

아니요. 별로 못했어요.

 

하지만 잘 될 거 같아요.

 

전 지금 기초 일본어란 책을 들고와 발음을 적어주고 있습니다.

 

참 쉬운 단어들뿐입니다.

 

뜻도 같이 적어주고 있지요.

 

제가 참 어려워했던 그 리포트는

 

그가 컴 없이도 당장 짜줄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저기..." 다음에 "일교과 다니시죠?" 그렇게 말했고,

 

난 "저기요." 다음에 "전산과 맞죠?"라고 말했습니다.

 

그와 난 겨우 그 말 밖에는 할 수가 없었을까요?

 

 

철이:

 

그녀가 내 기초 일본어 책을 가지고 갔습니다.

 

나는 지금 그녀와 그녀의 친구 리포트를

 

대신 작성해주고 있습니다.

 

그녀는 공대에서 듣는 컴퓨터에 관한

 

교양수업을 듣나 봅니다.

 

하하 벌써 다 해버렸군요.

 

이걸 갖다 주어야 하는데

 

뭐라 그러며 갖다 주지요?

 

설명까지 적었습니다.

 

 

민이:

 

그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네요.

 

그는 기초일본어 교양을 듣나보군요.

 

그 교양은 대부분 사대에서 강의를 하죠.

 

그가 말한 부분까지 토를 다 달았습니다.

 

그가 열심히 토를 달고 뜻도 써놓은 곳은

 

참 많이도 틀려 있었습니다.

 

그것까지 고쳐주었지요.

 

갖다 주어야 하는데 뭐라 그러죠?

 

친구는 나 때문에 그냥 리포트하나 거저 하게 되었군요.

 

친구가 졸고 있네요.

 

몇 장 더 토를 달아준다고

 

그가 싫어하진 않겠죠?

 

 

철이:

 

누군가 나를 깨웠습니다.

 

내 눈 앞에는 그녀의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녀의 친구가 리포트 다 했냐고 물어보는군요.

 

물론 다 했지요.

 

고맙다며 밥 먹으러 가는데 같이 가자고 합니다.

 

이런 영광스러울 때가...

 

 

민이:

 

누군가 나를 깨웠습니다.

 

나를 깨운 건 친구였는데 그도 같이 있네요. 호호

 

좀 부끄럽군요.

 

그에게 일본어 교양교재를 주었습니다.

 

그러고보니 점심때가 훨씬 지났습니다.

 

친구는 뭐 한일이 있다고 자기가 주도권을 잡습니까?

 

우리 밥 먹으러 갈건데 같이 가자?

 

좀 느낌이 이상하군요. 우리?

 

 

철이:

 

그녀가 이 경양식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나봅니다.

 

주인언니랑. 아니지

 

주인아줌마랑 친하게 얘기를 몇 마디 주고받았습니다.

 

이런 꿈같은 일이...

 

비록 데이트도 아니고 친구사이로

 

시간의 여유를 즐기러 온 것도 아니지만

 

난 그녀와 같은 테이블에서 대화도 할 수 있는 자격으로

 

점심을 먹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생각을 하면 웃음이 나기도 합니다.

 

별 어려움 없이 이런 자리가 마련될 줄 알았다면

 

왜 3년 동안 말 한마디 못 건넸을까요?

 

하하 그 삼년 동안 서로 모습을 익혀서

 

이런 자리가 마련될 수 있는 거라구요?

 

전 중간에 군대 갔다 왔는데요.

 

그녀와 그녀 친구가 나를 마주보며 앉았습니다.

 

봄이 만연했는데 아직 이런 뜨거운 물을...

 

할 말이 안떠오르니 물만 자꾸 마셔지네요.

 

그녀도 물을 다 마셨군요.

 

그녀의 친구가 서로 아는 사이냐고 물어봅니다.

 

나도 그랬지만 그녀도 아무런 대답을 안했습니다.

 

그녀의 친구가 나를 대충 기억을 합니다.

 

조금 쪽팔리는군요.

 

3년 전 교양과목 자기네 뒤에 앉았던걸

 

그녀 친구가 기억을 할 정도니 그녀는 말할 나위 없겠죠.

 

이상하게 생각을 했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녀의 친구가 나한테 말을 많이 걸었습니다.

 

그녀는 그냥 옆에서 별말 없이 앉아만 있었구요.

 

그녀 친구의 질문에 나는

 

그녀에게 답하는 식으로 대답을 했습니다.

 

그녀 친구는 성격이 활달하군요.

 

괜찮습니다.

 

그때는 가방만 다친 거에요.

 

전공이 그쪽이다 보니 컴퓨터는 좀 다루는 편이지요.

 

삼학년이에요.

 

하하 군대를 갔다와서 제가 한 학번 높을걸요.

 

(그녀가 삼학년인건 저도 알아요.) 그렇습니까.

 

그럼요. 다음에도 절 보시면 부탁하세요. 해 드릴께요.

 

팬티엄이요?

 

그건 인텔사가 다른 회사 씨피유와 차별화를 위해

 

586이라 쓰지 않고

 

고유한 자사 상표로 정한 것으로 별 뜻은 없어요.

 

다른 제조회사에서도 386, 486

 

이렇게 이름을 쓰니까 구별지을 필요성을 느낀 것이죠.

 

씨피유요? 아직 안 배웠어요?

 

사람으로 치면 뇌라고 봐야죠.

 

예? (모른다고 해야하나? 아는 사이라고 해야하나?)

 

그녀의 친구와 이야기를 한참 하다가 그녀친구가

 

다시 그녀와 나의 관계를 물었읍니다.

 

에구구 고개를 못 들겠군요.

 

설마 했는데... 가만 아직 상병이겠구나.

 

신상병 제대하면 보자.

 

조용히 밥나올 때까지 기다려야겠습니다.

 

 

민이:

 

친구가 밥 산다고 했으니 조금 비싼 곳도 괜찮겠지요.

 

전에 아르바이트했던 경양식점으로 안내를 했습니다.

 

후후. 나를 마주보며 그가 앉았네요.

 

그와의 만남을 참 많이 기대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막상 마주 대하고 보니

 

왜 그렇게 마음만 졸여야 했었는지,

 

바보 같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많은 말을 하고는 싶은데 친구도 있고 또한

 

어색함에 물만 찾게 되는군요.

 

왜 친구가 그에게 관심을 보이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냥 친구에게 그가 전에부터 내가 찍어 논 사람이다라고

 

말해 버릴까요?

 

그가 나한테 편지 보낸 사람이란 것도 말해 버릴까요?

 

둘이서 아주 죽이 맞아 재밌게 이야기를 합니다.

 

점점 기분이 안좋아 지려고 합니다.

 

석이 있잖아? 걔하고 같은 군대 고참이었어.

 

그래서 좀 아는 사이야.

 

(야이 기집애야 왜 자꾸 물어봐?)

 

그가 자기가 죄지은 게 있는 줄 아는가 봅니다.

 

갑자기 하던 이야기를 멈추고

 

고개를 숙인 채 물도 없는 컵을 입에다 갖다 대는군요.

 

예? 에... 친구가 물었을 땐 잘만 대답을 하더니

 

내가 물으니 머뭇거리네요.

 

표정도 굳었습니다.

 

교양들을 만한 게 없어서요...

 

예? 예. 월요일 5.6교신데요.

 

....

 

....

 

이참에 군대 있을 때 편지 받은 거 누가 준건지

 

아냐고도 물어 버릴까요?

 

아쉽게도 밥이 나와 버렸네요.

 

어머머. 웃기는 애야.

 

자기가 산다고 했으면 자기가 내야지.

 

왜 그가 계산을 할려고 할까요?

 

그가 내던 돈을 빼앗아 도로 그에게 주었습니다.

 

친구가 또 나를 태울 듯한 눈을 가늘게 뜨고는

 

날 한번 쳐다보고 계산을 했습니다.

 

도서관에 들어왔습니다.

 

친구가 그 사람 괜찮다고 하네요. 귀엽다고 합니다.

 

그가 자기보다 선배인데 말입니다.

 

열람실에서는 조용히 해야지요?

 

조용히 해! 기집애야.

 

서로 아는 사이냐고 또 묻습니다.

 

내가 그에게 물었던 게 잘 아는 사이같다면서...

 

 

철이:

 

왜 밥은 빨리 나오지 않습니까?

 

경양식점에서 볶음밥 시켰다고 무시하는 겁니까?

 

드디어 그녀가 입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왜 저렇게 쌀쌀한 어투로

 

물어보는지 모르겠습니다.

 

고등학교때는 불어를 했습니다.

 

일어가 쉽다고 하길래...

 

...아니요. 어렵던데요.

 

(불어도 그렇게 발음나는대로 토달고 외웠어요?

 

다들 그렇게 공부하지 않나요?)

 

...예.

 

많이 틀렸던가요?

 

...그냥..

 

(편지는 잘 쓰더군요? 그럼요 좀 쓰는 편이죠.

 

비록 마음 아팠던 답장은 받았었지만...)

 

계철인데요.

 

꼭 발음이 개철이처럼 들려서요.

 

(분명히 개철이냐고 물어놓구선...)

 

형하나 있는데요.

 

우리형 이름은 어떻게 아세요?

 

우리학교 안다니는데요.

 

아니 그냥 그녀석이 자랑을 하길래...

 

(그녀석이 분명 훔쳐왔다고 했는데... 말이 틀리잖아.

 

뭐? 고참이 안 가져오면 엄청 괴롭힐 거라며 사진을 달라고 했어?

 

너 담에 제대해서 복학하면 죽었다.)

 

다른 사람한테는 안 그랬어요.

 

심심해서요. 군대 있을 때는 장난삼아 썼지만 그때는 아닌데...

 

예? (옆에 친구도 있는데... 직접 갖다 놓으신 거에요?

 

그럼 직접 갖다 놓았지. 누구한테 심부름시키남.

 

다행히 그녀의 친구는 무슨 말인지 모르는 듯한 표정입니다.)

 

예. 곧 드릴께요. 아직 싫증이 안나서요.

 

(하... 그녀가 메탈 쪽도 좋아할려나?

 

그녀가 준 테이프가 누구 노래였더라?

 

기억을 못하겠읍니다.

 

그것만이라도 알면 그냥 사서 선물삼아 주면 되는데...)

 

땀이 다 납니다.

 

살았습니다. 밥이 나왔습니다.

 

그녀의 친구가 그녀를 멀뚱멀뚱 쳐다봤습니다.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밥을 먹네요.

 

나를 좀 곤혹스럽게 하긴 했지만 밥 먹는 모습은 참 예쁩니다.

 

그녀의 친구가 밥을 산다고 했지만

 

내가 계산을 해야겠지요.

 

그러고 싶습니다.

 

그래야 내가 그녀에게 식사한끼라도 대접한 게 되니까요.

 

왜 그런데 그녀가 그런 내 마음을 몰라주고

 

돈을 뺏어 도로 줄까요?

 

도서관까지는 별 말 없이 잘 왔습니다.

 

헤. 일본어 책을 펴 봤습니다. 옆에 설명까지...

 

발음도 깨끗하게 적혀 있습니다.

 

내가 말한 범위보다 몇 장 더 토를 달아 놓았군요.

 

감사합니다.

 

그녀가 오늘은 오래 공부를 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알았냐구요.

 

친구와 나가면서 나한테 인사를 하고 갔거든요.

 

이제 그녀를 보면 나도 인사를 해야겠습니다.

 

 

민이:

 

이제 그에게 편지를 주어도 되겠군요.

 

편지봉투가 어색합니다.

 

편지봉투만 새로 샀습니다.

 

날씨가 화창한 게 기분이 좋습니다.

 

동아리방의 오후가 사랑스럽게 짙어 갑니다.

 

아무도 들어오지 말아라.

 

철이 녀석이군요.

 

그가 들어왔습니다.

 

한가롭던 시간은 그의 출연에 조금 시끄럽습니다.

 

호호 녀석이 자전거를 새로 샀다고 합니다.

 

브레이크가 잘 안 듣는다고 투덜거리더니

 

새 걸로 하나 샀군요.

 

나? 자전거 못타.

 

조금 꼴불견입니까?

 

학교에서 녀석이 뒤에서 잡아주고 자전거를 직접 몰아봤습니다.

 

재밌군요.

 

사대 앞 내리막길이 위태하지만 그래도 잘 내려 왔습니다.

 

"안녕하세요."

 

이렇게 그를 앞질러 가게 되었군요.

 

그는 교양수업을 마치고 다시 공대 쪽으로 가는 중이었나 봅니다.

 

이제 인사 못 할 것도 없지요.

 

난 참 밝게 웃어주었는데 그는 표정이 밝지 못하네요.

 

"얘. 이젠 돌아가자."

 

 

철이:

 

그녀가 토를 달아주어 이번 교양수업은

 

여유를 가지며 수업에 임할 수 있었습니다.

 

강사가 발음이 별로 안 좋았군요..

 

벌써 바람에 나뭇잎 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사대복도에서 혹시나 시간을 죽여 봤지만

 

그녀의 모습은 볼 수 없었지요.

 

하지만 그 공간의 두건거림은 설레임으로 바뀌었습니다.

 

이제 그녀와 마주쳐도 예전처럼 마냥

 

떨기만 하지는 않을 겁니다.

 

사대의 내리막길을 내려오며 그녀와 마주치면 뭐라고 말할까?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반갑습니다?

 

날씨 좋죠? 안녕할까요?

 

"안녕하세요."

 

내 생각에 그녀가 답을 해주고 지나갔습니다.

 

자전거 탄 모습이 어색합니다.

 

저 녀석 자전거 뒤에 매달린 저 녀석 모습이 참 어색합니다.

 

그녀는 예전에 내가 그녀를 횡하니 지나쳤을 때처럼

 

그렇게 모습을 작게 하며 사라져 갔습니다.

 

 

민이:

 

공대 교양수업을 마치고 나왔습니다.

 

많은 학생들로 산만함을 줍니다.

 

친구와 난 그 산만함 속을 고요함으로 내려왔습니다.

 

친구와 오늘은 별로 말을 안했습니다.

 

교수가 리포트를 내주었는데,

 

친구가 그에게 또 부탁하자고 했습니다.

 

왜 그랬는지 그 말이 썩 듣기가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조금 다툼이 있었습니다.

 

친구를 먼저 보내고 난 공대로 다시 들어갔지요.

 

할 일이 있었거든요.

 

가방에서 편지를 꺼내었습니다.

 

다행히 공대 편지함은

 

그의 과와 상관없는 곳에 모여있었습니다.

 

과 이름이 참 다양합니다.

 

전산과를 찾아서 편지를 넣을려고 했지요.

 

봉투에 그의 이름이 바르게 적혀있습니다.

 

"..안녕하세요."

 

나쁜 짓 한 것도 아닌데

 

그 소리에 무척이나 놀랐습니다.

 

들고 있던 편지도 떨어뜨리고 말았습니다.

 

내 뒤에는 그가 있었습니다.

 

예전처럼 부끄러운 듯 웃고 있네요.

 

전 좀 굳은 표정이었지요.

 

뭐 잘 됐습니다.

 

어차피 용기가 서지 않아

 

그에게 직접 주지 못한 것인데요 뭐.

 

편지를 주울려고 했는데 그가 줍는군요.

 

풋! 그에 대해서 다시 생각을 해봐야겠습니다.

 

자기편지인데...

 

그렇게 자기이름까지 또렷하게 적혀있는데,

 

그는 편지를 주워 나에게 주었습니다.

 

그 편지를 다시 가방에다 넣고

 

돌아서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수업이 있나봅니다.

 

급히 계단 쪽으로 뛰어가 버렸습니다.

 

편지는 다시 편지함에 넣어버리면 되지만

 

그럴 수가 없네요.

 

김이 샜거든요.

 

 

철이:

 

잘못하다간 수업에 늦겠습니다.

 

친구와 열심히 뛰었습니다.

 

당구라이벌전이 결승까지 가는 바람에 시간이 촉박합니다.

 

앞서거니 뒷서거니 친구와 전 열심히 뛰었습니다.

 

공대에 들어섰습니다.

 

전 친구보다는 좀 여유가 있습니다.

 

그는 강씨고 난 성씨니까요.

 

친구 뒤를 따라 복도를 뛰었습니다.

 

낯익고 언제나 그리운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공대 편지함이 있는 곳에서 그녀가 무얼 들고 서 있네요.

 

친구야. 자네 먼저 가게나.

 

친구는 뒤도 안 돌아보고 뛰어가 버리는군요.

 

"안녕하세요."

 

나의 이 말에 그녀는 무척이나 놀란 표정입니다.

 

들고 있던 편지봉투를 떨어뜨립니다.

 

나는 참 반가운 표정을 지었는데 그녀는 아니군요.

 

좀 무안하네요.

 

나를 보는 동그란 그녀의 눈동자를 보며

 

떨어뜨린 걸 주워 드렸지요.

 

그게 뭔지 궁금하지도 중요하지도 않습니다.

 

그녀를 공대 내에서 보니 새롭습니다.

 

예전과 달리 이렇게 말을 건넬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아쉽지만 수업 때문에...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 다음 또 뛰었습니다.

 

학생들이 웃네요. 그럴만도 하지요.

 

내가 강의실 들어서자마자

 

교수님이 내 이름을 불렀거든요.

 

가방을 맨 체로 서서 대답을 했습니다.

 

 

민이:

 

그와 며칠 동안은 만나지지 않았습니다.

 

이번 주말도 도서관이나 나와야겠네요.

 

금요일 오후는 항상 여유롭지요.

 

오전 수업은 모두 끝이 났습니다.

 

오후 수업이 있냐구요?

 

없어요.

 

너무 안 어울린다.

 

아직 고등학생처럼 보이는 소녀와

 

얼마 안 있으면 애아빠처럼 보일 것 같은 현철이가

 

서로 말을 놓고 친구인양 말하는 모습이

 

어색한 듯 정다워 보입니다.

 

그래 사랑에 나이가 무슨 상관이겠니.

 

잘해봐라. 저 둘은 나이가 같군요.

 

안 귀여워. 귀여운척 하지마.

 

현철이가 그 늙은 얼굴로 애교를 부리며

 

밥을 사달라고 합니다.

 

그래. 대신 학생식당이다.

 

학생식당 테이블에 그하고 같이 앉았습니다.

 

기분이 엄청 안 좋군요.

 

여우같은 기집애.

 

작정을 하고 책을 가지고 다녔었구만.

 

그만 부탁해. 언제 봤다고...

 

"왜 가만히 있는 애를 건드려요?"

 

 

철이:

 

밥은 먹고 당구를 쳐야 하지 않습니까?

 

당구가 그렇게 좋을까요?

 

나는 밥을 먹고 가마.

 

좀 허전하군요.

 

혼자서 밥을 먹으러 가니까 말입니다.

 

오늘따라 캠퍼스에 예쁜 여학생들이 많이 보입니다.

 

그녀라도 마주친다면...

 

즐거운 상상을 해봅니다.

 

"안녕하세요. 저 아시겠죠?" 물론 알지요.

 

학생식당 쪽으로 걸어가다 그녀의 친구를 만났습니다.

 

그녀의 친구는 그녀보다 성격이 개방적인가 봅니다.

 

그녀의 친구도 참 예쁩니다.

 

기분이 좋네요.

 

이렇게 캠퍼스를 거니는 게...

 

그녀였으면 더 좋았겠지만 말입니다.

 

"또 리포트를 내 주었어요?"

 

밥 먹으러 간다니까 그녀의 친구가 밥을 사준다고 합니다.

 

하하. 그러면서 리포트를 부탁하는군요.

 

그래요 학생식당에서 한번 봐 봅시다.

 

교양수업인데 뭐 어렵겠어요.

 

그녀의 친구는 그녀와 나를 이어줄 수 있는 烏作(오작)교이니까

 

잘해주어야 합니다.

 

학생식당 테이블에 그녀와 같이 앉았습니다.

 

그녀의 친구가 줄서 있는 그녀를 발견하고

 

그녀 뒤에서 차례줄까지 섰습니다.

 

그것까지는 좋았는데 그녀가

 

그 재수 없는 놈하고 같이 있었습니다.

 

'뭘 째려봐 임마. 그래 낯이 익을거다.'

 

늑대같은 놈.

 

소녀같이 어려 보이는 여학생 옆에 어쩜

 

저렇게 뻔뻔하게 앉아버리냐.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우헤헤 참 많이도 늙어 보인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그건 결코 니 잘못이니 그러려니 해라.

 

그 재수 없던 자전거녀석은 구오학번이었군요.

 

그녀는 단지 녀석을 후배로서 잘해 준 거구요.

 

그녀의 친구가 다 말해주었습니다.

 

많이 먹어.

 

그런 뜻으로 등 한번 살포시 때려주었는데

 

녀석이 캑캑거리는군요.

 

불쌍한 표정 지으며 말입니다.

 

옆에 앉았던 꼬맹이 여학생도

 

날 원망스러운 듯 쳐다봅니다.

 

그녀는 왜 또 저렇게 쌀쌀하게 말하죠?

 

"시험공부 안 하세요? 남의 것 해줄 시간 있어요?"

 

"수민씨 것두 해드릴..."

 

"됐어요." ...흑흑

 

'알았어요. 사 드릴께요.'

 

 

민이:

 

괜히 그랬습니다.

 

어쩌죠.

 

밥은 다 먹어가고 그에게 말을 걸 껀수는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나도 리포트를 내야 하는데

 

그가 애써 해준다고 말한걸 다 듣지도 않고 됐다고 했으니...

 

호호 생각해 냈습니다.

 

"테이프는 언제 줄 거에요?"

 

나의 이 말에 그는 갑자기 밥을 먹다가 켁켁거렸습니다.

 

좀 진정을 하고는 살며시 말을 건넸습니다.

 

"저... 그 테이프 누구 노래였어요?"

 

친구는 졸업반이라 바쁘네요. 빨리 가라.

 

그가 감사하게도 커피를 뽑아 주었습니다.

 

후배들 거까지 애써 뽑아다 주네요.

 

조금 그와 걸었습니다.

 

이렇게 그와 화창한 봄 길을 걷는 것이 참 좋네요.

 

걷다가 다정한 어투로 말해 버렸죠.

 

"제것도 해주시는 거죠?"

 

"예. 그럼요."

 

그가 씩씩하게 답을 해주었습니다.

 

그도 바쁜가 봅니다. 그 말을 남기고

 

얼마 후 그는 뛰어 갔습니다.

 

여전히 그의 뛰는 모습은 귀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