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와 나는, 지금 통일입니까?

. 2010.07.18
조회410

3년전 쯤 군대 전역 후에 있었던 일인데 당시엔 일기쓰듯 미니홈피에 썼던 글이 있었습니다.최근에 그 일에 관한 결과? 같은 것이 생기기도 했고.특이한 이야기인 것 같아서 소개하고 싶어 당시에 썼던 글을 조금 각색해서 올려봅니다.
아... 아마도 이 글은 프롤로그 같은 것이겠구요. 사연이 좀 깁니다-_-;
꾸준히 올릴게요. 리플 많이 달아주세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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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대 전역 후 에버랜드 고릴라처럼 매일 누워만 있는 나를 어머니는 늘 못마땅해하셨다. 어머니 친구분들이 집에 올 때 마다 뒹굴거리는 나를 보며 ‘부스러기’라고 불렀고 참다못한 어머니는 사회에 쓸모있는 인간이 되라며 뒹굴거릴 시간에 운전면허라도 따라고 하셨다. 혹시나 ‘차도 사주시려나!’ 라는 얄팍한 생각이 꿈틀거려 눈을 반짝이며 가까운 운전면허학원을 알아보았다. 내가 사는 곳은 인천 계양구인데, 인천에 올라온지 얼마 안되었던 터라 지하철명도 잘 몰랐었다. 그냥 검색창에 ‘계양구 자동차운전학원’ 이라고 검색하니 나온 곳이 ‘땡땡자동차 운전학원’인데 운전학원이름치고 학구적인 느낌이 나서 마음에 들었다. 심지어 동네 이름이 박촌동이었다. 박촌동. 뭔가 묘한 발음상의 맛이 느껴졌다. 전화로 접수를 하고 자동차를 모는 나를 상상하며 내가 스스로를 얼마나 흐뭇해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나란 인간이 갑작스럽게 부지런해질리도 없고 학원을 갈 때도 나는 항상 아슬아슬한 시간에 가끔씩은 씻지도 않고 눈곱을 붙인채 가곤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운전면허학원이라함은 갓 20살남짓 된 처녀총각들의 만남의 장소이자 뭔가를 배운다는 공통목표와 수능을 끝내고 해방감과 동시에 일탈을 원하는 젊은 청춘들의 집합소같은 곳이었다. 하지만 왠지 우리동네 운전면허장에는 요즘 티비광고에 나오는 950번째 기능시험에 도전하는 69세 할머니와 같은 경우가 많았고 대기시간에는 까칠한 턱수염을 가진 대형트럭운전수같은 아저씨들이나 피케셔츠의 깃을 세운 깡마른 동네 양아치들과 어색한 침묵을 공유하며 담배나 피워야 했다. 그 날도 어김없이 나는 깜찍한 눈곱에다가 입가에는 반짝이는 침자국까지 한 채 폐인 풀메이크업을 하고 학원으로 향했다. 학원에는 나와 함께 누가 더 폐인모드로 오는가 경쟁하는 청년이 하나 있었는데 나는 그를 ‘잡초인생’이라고 불렀다. ‘부스러기’와 ‘잡초인생’은 땡땡운전학원의 마스코트같은 존재였다고 회상한다. 그는 그 날 엄마슬리퍼같은 걸 신고 위아래로 연두색 옷을 입고와 메뚜기나 오이 같은 걸 떠올리게 했다. 나는 그와 눈인사를 하고 말은 왠만하면 섞지 않았다. 이 둘이 하나의 풍경에 속해있게 되면 그 곳은 더 이상 운전면허학원이 아닌 무료급식소가 될 것 같아서였다. 교육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지하철 플랫폼에 들어서는데 한 여학생이 말을 걸어왔다.

 

“ 저...저기요, 서울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해요? ”

 

너무 너무 너무너무너무 후질근한 내 모습이 조금은 부끄러워서 당황했지만 대답할 타이밍을 놓치지는 않았다.

 

“ (손가락으로 한쪽을 가리키며) ... 이 쪽이요. ”

 

“ 아.. 고맙습니다!!! ”

 

그녀는 90도로 꾸벅 인사했다. 살면서 처음 받아본 90도 인사. 기분이 묘했다. 지나가다 길 묻는 풍경이야 흔하지만 뭔가 이상한. 억양?

어찌됐건 어차피 가는 방향이 같아 함께 지하철을 타게 되었는데 시간대가 애매해 사람도 없고 한산했다. 내가 또 한 오지랖하고 궁금한 건 못 참는 성격이라 곰곰이 생각하다가 눈곱을 떼고 입가를 슥슥 닦은 뒤 결국 말을 걸었다.


" 저기, 근데 서울 어디 가시는거예요? "


" 강남이요!! "


매우 당당한 목소리로 눈을 토끼처럼 땡그랗게 뜨고 말한 그녀는 마치 대답을 준비하고 있었던 사람같았다. 허나 그런 것보다 역시 나의 관심을 끄는 건 이상한 분위기였다. 말투와 태도, 억양. 모두 수상했다.

 

‘ 내 몰골을 보고도 이렇게 친절한 여자생물이 있다는 건 믿을 수가 없어! ’

 

명탐정 기질이 발휘된 나는 느지시 말을 이었다.


" 저기, 실례지만... 말투가... 어디에서 오셨어요? "


그녀는 주위를 개의치 않고 조금 전과 다름없이 토끼처럼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 북한이요! "

 

 





놀란 거야 말할 것도 없고 당시엔 너무 신기해서 대화를 더 나누고 싶었다.

 

“ 저, 옆에 앉아서 같이 가도 될까요? ”

 

“ 예. ”

 

...

..

.


" 남한엔 어떻게 온 거예요? "


토끼같은 그녀는 너무나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 그냥 왔어요. "



-_-

 

그냥 왔다니;;;


말이 안되잖아!! ;;


" 아니, 그게.... 어떻게 왔다는 거죠..? "


당황한 내 표정은 신경도 안 쓰고 되려 질문 자체가 답답하다는 듯 눈썹을 팔자로 만들며 그녀가 말했다.


" 그냥 왔는데요? "




아... 생각을 정리해보자.. -_-a


그래...


그냥 왔구나!! ^0^*


....



그렇게 우리는 한참을 앉아서 얘기했다. 그녀는 탈북한 지 3달 정도가 되었고, 나오자마자 북한에 비해 차가 너무 많은 남한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2달동안 입원해 있다가 최근에야 퇴원을 했었다. 그리고 퇴원을 하자마자 그녀의 아버지가 불러서 강남;으로 가는 길이었다. 처음 가는 길을 애 혼자서 간다는 것도 웃기고 그 당시에 차려입고 있던 차림새는 검정 스키니 진에 15cm 가죽 하이힐이었고 상의는 너무 파격적이어서 콘서트 중 도망친 아이돌의 무대의상같았다. 하지만 이 아이를 알게 된 지 한참 지나고 나서는 이 모든 걸 이해할 수 있었다.

 

찾으러 가는 아빠는 이미 10년전에 탈북해서 새장가를 갔었고 그녀는 그런 아빠가 밉다고 했다. 최근엔 어머니랑 오빠가 탈북을 했다는 그녀의 말투는 무덤덤하면서도 내색하지 않는 원망이 느껴졌다. 나는 꼬질꼬질한 모습을 한 채 원래 내려야 할 역에서 내리지도 않고 그녀를 아버지의 집까지 데려다 주었다.(인천에서-_-강남까지)

그녀는 집에 들어가기 전에도 90도 인사를 꾸벅했다.

 

 

한참 뒤에 알게 된 사실들이지만 그녀는 할머니가 북한고위간부라 아버지가 나왔을 때도 감시소 같은 데 끌려가지 않았고 북에서 식모를 두고 살아서 손에 물 한번 안 묻혀봤다는 이야기는 꽤나 생소하게 여겨졌다. 하지만 이어진 말들이 내겐 더 생소하게 느껴졌다.


“... 그런데, 여기에서 살려면 뭔가 일을 해야 되고... 정말 일을 하고 싶어요.. 공부도 내년부터 하고 싶구요. ”


하이힐 발끝에 시선을 떨어뜨린 채 지금껏 살면서 일을 안해본 자신이 부끄럽다고까지 하는 그 애를 보며 나는 담배를 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18살이고.


너무 귀엽고 맑다.



 

그러니까 바로 어제, 태어나서 처음 친구들과 마셔본 와인을 먹고 취해선 웅얼웅얼 거리다가 수줍게 " 오빠가 전화오면... 이상해요... 심장이 쿵쿵 거려요... " 라는 말을 들었다. 나는 “나도 너에게 호감이 있어.” 라고 말했다.

그녀는 '호감' 이 무슨 뜻인지 몰랐고 사랑한다는 것과 좋아한다는 것보다는 덜 하지만 많이 친해지고 싶다는 표현이라고 말해주었더니 볼이 빨개지는 너무 순진하고 착한 아이다.




나도 그 애가 좋다.

우린 어떻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