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좌진(金佐鎭)을 비롯한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의 회원들이 일본 헌병대와 경찰관들의 감시를 피해 어렵게 모은 자금으로 우선 항일의열투쟁(抗日義烈鬪爭)에 사용할 총기(銃器)와 탄약(彈藥)을 조금씩 마련할 수 있었다. 중국에 있는 한국 독립운동 단체인 동제사(同濟社)의 조성환(曺成煥)과 신채호(申采浩)는 소련제 68식 권총(拳銃) 13정과 실탄 1000발을 서울로 이송중이라는 연락을 전해왔다.
김좌진이 가회동 취은루 근방으로 찾아가니 채기두(蔡基斗)가 김한종(金漢鐘)·이병찬(李秉讚)과 함께 번갈아 무기를 지키고 있었다. 무기의 인수과정을 들은 김좌진은 오늘 저녁에 권총을 나누어 줄 것이니 젊고 날쌘 동지를 10명만 소집하라고 지시하여 세 사람 모두 떠났고 자신은 무기를 은닉했다. 해는 서산에 지고 땅거미가 들어서니 이윽고 하나, 둘 모여 13명의 인원이 되었다. 김좌진은 취은루가 눈에 띄기 쉬운 곳이라 인적이 드문 산비탈에 무기를 숨겨 놓은 곳으로 자리를 옮겨 원을 지어 앉고 두 사람을 골라 파수를 세웠다.
김좌진은 동지들을 바라보며 심각한 표정으로 권총을 들어 설명한다.
“지금부터 권총을 쏘는 방법을 설명하겠소. 두 번 이상 말하지 않겠으니 잘 들으시오.”
권총을 다루는 방법을 교육한 다음 주의사항을 설명한다.
“여러분이 이 권총을 사용함에 있어 다음을 주의해야 할 것이오. 첫째, 이 권총은 사용할 시기만 가지고 다니고 그 외에는 각자 활동지역에서 아무도 알 수 없는 곳에 숨겨 두시오. 자기만이 아는 곳에다가 말이오. 둘째, 사용 후 신변이 안전할 때까지 지니고 다닌 후 다시 숨겨 놓으시오. 셋째, 자신이 일경에게 체포될 것이 확실하다고 판단되면 미리 권총을 숨기시오. 넷째, 실탄을 남발하지 마시오.”
이렇게 주의사항에 대한 전달이 끝나자 김좌진은 권총과 실탄을 나누어 주었다.
“여러 동지들, 멀리서 오시느라고 수고가 많았소. 우리가 이곳에 모은 목적은 동지들도 대강 알고 계실 줄 압니다. 거두절미(去頭截尾)하고 우리는 지금 무기를 구입할 자금이 부족합니다. 그리고 왜놈들을 처치하거나 친일파를 처단하는데 무기 없이 힘들었습니다. 무기를 사용하지 않고 민족 반역자들을 설득하거나 회유하는 일도 오히려 역효과만 만들고 있다는 사실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부터는 평화적인 방법이 아니라 살인을 해서라도 왜놈들과 친일파를 상대로 싸울 것입니다. 그러나 무모한 정면대결은 좋은 전법이 아닙니다. 지혜로 맞서고 무력(武力)이 아니면 안된다고 판단될 때만 권총을 사용하십시오. 더욱이 유념할 것은 뒷문으로 들어가서 벼락같이 해치우고 모르는 채 하면서 앞문으로 정정당당히 나오는 전법입니다. 여기 열세자루의 권총은 소련에서 구입하여 상해를 통하여 천신만고(千辛萬苦) 끝에 구입하여 여기까지 온 보물입니다. 여러분께 한 자루씩 나누어 드릴테니 목숨과 같이 간직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탄환은 1인당 50발씩 드릴 것이니 금덩이처럼 아껴 쓰십시오.”
이렇게 동지들에게 권총과 탄환을 나누어 주고 나머지 실탄 350발은 다시 보자기에 쌓아 그 바위 아래 깊숙이 묻었다.
“여러분이 실탄이 부족하게 될 때 이 곳에 와서 적당히 가져가시고 다시 묻고 낙엽으로 덮어 놓으시오.”
김좌진은 권총을 받아 가슴 속 깊이 숨겨 넣으면서 긴장하는 동지들을 바라보았다.
“지금부터 우리의 행동은 불을 뿜듯 맹렬하고 표범처럼 날렵해야 하오. 우선 제1단계로 민족의식이 없는 토호들을 상대로 군자금을 강모(强募)해야 되겠습니다. 그들은 돈만 알고 민족의 생존권은 모르는 자들이라 독립운동 자금이 무엇인지 분간도 못할 것입니다. 반드시 나라를 다시 찾는 날 되돌려 줄 것을 약속하시고 가능한 한 무기 사용을 억제하시오. 그러나 여러분의 목숨은 조국을 모르고 돈만 아는 토호들보다 100배나 소중한 목숨입니다. 신변 안전에 특별히 주의하시고 또한 동족에게 무기를 사용하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지만 대의를 위해 민족혼을 외면하는 족속들은 부득이 징벌할 수 밖에 없습니다. 자, 여기에 미리 조사된 지역별 명단이 있습니다. 살펴보시오.”
동지들에게 각자 머리 속에 기억하라 이르고 그 두루마리는 불빛이 비치지 않게 서로 겉옷을 벗어 가리고 불살랐다. 이와 같이 무기 분배까지 마친 대한광복회원들은 하나, 둘씩 간격을 두고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가며 흩어졌다.
동지들이 다 떠난 뒤 가회동 산봉(山峰)을 바라보며 혼자서 내려오는 김좌진의 발길은 유달리 무거웠다. 대한광복회의 독립운동은 분명히 무모하고 위험한 투쟁이다. 그러나 나라를 되찾을 방법은 오직 무장투쟁뿐이고 이것을 위해서는 군대를 양성할 군자금이 필요하다. 마음 같아선 동지들의 희생이 한 명도 없었으면 좋겠지만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희망이다. 걱정도 되고 앞으로 일이 어떻게 진행될지 눈앞에 캄캄하다.
이러한 가운데 김좌진은 간도의 애국 청년들과 연계투쟁 계획을 수립하려고 모색하던 중 아버지와 함께 서당에서 공부했던 김기철(金基哲)이 연해주에 간 지 여러 해 된 뒤에 정해식(鄭海植) 노인과 함께 가회동에 와서 재회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는 연해주에 망명한 지사들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1895년에 의병항쟁을 벌이다가 관군의 공격으로 패배하고 의병부대를 해체한 유인석(柳麟錫)은 1908년에 연해주로 망명하여 이범윤(李範允)·이남기(李南基) 등의 추대로 13도의군도총재(十三道義軍都總載)에 올랐으나 대대적인 국내진공작전(國內進攻作戰)을 계획하다가 실패하고 1915년 관전현(寬甸縣) 방취구(芳翠溝)에서 서거하였다. 간도관리사(間島管理使)로 있던 이범윤은 최재형(崔才亨)과 함께 동의회(同義會)를 구성하고 의병부대를 조직하여 안중근(安重根)·전덕제(全德濟)·엄인섭(嚴仁燮) 등을 파견해 국내진공작전을 진행시켰지만 영산전투(永山戰鬪) 패배로 실패한 뒤 대종교(大倧敎)에 입교하여 교육계몽운동에 전념하고 있었다.
대종교는 고대 동방민족의 원시신앙을 체계화한 우리 나라의 고유 민족종교로서 대종(大倧)이란 환인(桓因)·환웅(桓雄)·단군(檀君)의 삼신(三神)을 가리키는 것이다. 대종교는 단순히 단군만을 숭배하는 종교가 아니라 삼신일체(三神一體)의 천신(天神)을 받드는 신앙사상으로 1909년 홍암(弘巖) 나철(羅喆)이 중광(重光)하였다. 나철이 1916년에 조식법(調息法)으로 자결한 뒤 대종교의 두번째 교주가 된 무원(茂園) 김교헌(金敎獻)은 일제의 탄압으로 만주로 교단(敎團)의 총본사(總本司)를 옮겨 동포들에 대한 독립사상과 민족의식 고취에 전념하였다. 김좌진은 이 종교에 대해 점점 호감을 갖게 되었고 김기철과 정해식도 대종교도였던 것이다.
대한광복회원들이 군자금 모금을 위해 좀 더 적극적인 활동을 전개하기 시작하자 총독부의 기관지인 매일신보(每日申報)에는 친일 부호와 일본인이 조선인 괴한들에게 습격을 당했다는 기사가 자주 실렸다. 김좌진은 신문을 읽으면서 오히려 얼굴이 어두워졌다. ‘우리의 목적은 군자금이지 살인이 아닌데..... 동지들이 너무 성급하게 행동하는구나.’ 이렇게 걱정하면서 돌아가는 추세를 관망하니 자신이 숨어 있는 박성태(朴性泰)의 집도 안심할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사태가 급박해지자 조선총독부는 헌병대와 전 경찰력을 총동원하여 검문·검색을 철저히 하며 살인범 색출에 나섰다. 일본 헌병들은 전국에서 광복회원들의 친일파 암살을 기화로 조선 사람이라면 기분 내키는대로 잡아들여 족치고 구금하고 몸을 수색하는가 하면 눈에 거들리기만 하면 무조건 감옥에 가두었다. 반면 친일파들은 일본 헌병대 덕을 톡톡히 보고 있었다.
전라도의 농장 주인인 일본인 부호 한사람이 광복회원에게 총살당했다는 소식을 들은 하세가와 요시미치[長谷川好道] 조선총독은 열이 바짝 올라 1906년 10월에 소위 애국반상회(愛國班常會)를 열도록 조치하고 11월에는 민영기(閔泳綺)·조진태(趙鎭泰)·예병석(芮丙錫) 등을 시켜 조일동화(朝日同化)를 명분으로 대정실업친목회(大正實業親睦會)까지 조직하여 정탐에 들어갔으나 살인범은 하늘로 솟았는지 땅 속으로 숨었는지 행방이 묘연했다. 이럴수록 하세가와 총독도 마음이 초조해졌다.
★ 기생의 도움을 받아 위기를 모면하다
‘음, 이제 나도 행동에 나설 시기가 되었다. 총독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어야겠어.’
그 해 9월 10일 깊은 밤 어둠 속을 헤치고 김좌진(金佐鎭)은 계동(桂洞)의 부자 최무윤(崔茂潤)의 집을 향했다. 가벼운 몸놀림으로 담장을 훌쩍 뛰어넘은 그의 오른손에는 권총(拳銃)이 들려 있었다. 총구(銃口)가 불빛에 비치면서 번쩍거렸다.
최씨(崔氏) 부자집은 고요하고 적막해서 멀리 귀뚜라미 소리만 들리고 워낙 부자집이라 깨끗이 정돈되어 발자국 소리만 낮추면 아무것도 거치지 않으니 행동하기가 편했다. 안사랑의 방문에 귀를 기울이니 최씨 부자의 코 고는 소리만 들리고 또 한사람의 숨소리는 들리는지 마는지 흐릿하다. 조용히 방문을 열어도 반응은 없었다. 김좌진이 재빨리 방에 들어서도 모른다.
성냥불을 켜고 방 안을 살펴보니 오십대 초반의 뚱뚱한 사내와 아직 20세도 채 못되는 소녀 하나가 실오라기 한 올도 걸치지 않은 채 잠들어 있었다. 술을 마시며 거나하게 방사(房事)를 나누다가 피로하여 곤히 잠든 모양이다. 김좌진은 그 망측한 모습을 보자 속이 뒤집힌다.
‘나라가 망하자 왜놈들에게 아부하여 가난한 백성들을 등쳐 빼앗은 돈으로 호화롭게 살면서 자신의 딸뻘 되는 여자와 저런 짓을 하다니..... 한심한 놈이로구나!’
김좌진은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억지로 가라앉히며 최씨 부자의 머리를 향해 권총을 겨누고 발바닥으로 그의 넓적다리를 지그시 건드렸다. 그래도 최씨 부자는 무슨 소리를 중얼거리며 몸만 뒤틀고 깨지 않는다. 이번에는 넓적다리를 힘주어 밟았다. 그제서야 눈을 뜬 최씨 부자가 자신의 눈앞에 겨누어진 총구를 보고 화들짝 놀라며 상체를 일으켰다.
“소리를 지르지 마라. 허튼 짓을 한다면 네놈의 고환(睾丸) 부분에 총을 쏴 평생을 불구로 살게 해 주겠다!”
김좌진이 권총으로 최씨 부자의 음경(陰莖)을 툭 치자 그의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었다.
“나는 너를 해치고 싶은 생각이 없다. 서로 협상만 잘 된다면 털끝 하나 다치지 않을 거이다. 그러나 만약 내 요구를 거절하거나 무슨 수상한 눈치가 보이면 네 물건에 총탄을 박아줄 것이다. 알겠느냐?”
최씨 부자는 벌벌 떨면서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내가 오늘 너를 찾아온 것은 돈을 좀 빌리러 왔다. 왜놈들에게만 빌려주지 말고 나한테도 빌려줘야 하겠어.”
“얼마나 필요하십니까?”
“네가 소작인한테 긁어모은 것과 영세상인들 등쳐서 모은 돈 10만원만 빌려주면 그 돈을 긴요하게 쓰고 이자는 못주더라도 나라가 독립되면 꼭 돌려주마. 어떤가?”
최씨 부자는 10만원이란 거액을 듣자 나체(裸體)가 굳어지며 소름이 돋았다.
“그와 같이 큰 돈은 며칠 기일이 있어야지 지금 당장에는.....?”
“왜 안되겠어?”
김좌진이 다시 권총을 그의 성기(性器) 쪽으로 겨누자 그는 두 손으로 자신의 사타구니를 가리며 질겁한다.
“아니 그런 것이 아니라 워낙 큰 돈이라서 지금 당장으론 어렵습니다. 며칠만 말미를 주시면 꼭 구해드리겠습니다.”
그러나 그의 말은 뻔한 수작이었다. 우선 곤경을 모면하고 헌병대나 경찰에 연락해서 동시에 신변보호를 요청하자는 얄팍한 수작임을 김좌진이 모를 리 없다.
“잔소리 말고 네가 어떤 형편인지 내가 다 일고 있으니까 서투룬 수작을 하면 너를 먼저 죽일 것이다. 어서 돈을 내놔라.”
김좌진이 권총을 들이대고 여유없이 협박하자 최씨 부자는 등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저 그럼 우선 옷부터 입게 시간을 좀 주십시오. 옷을 입고 나서 돈을 드리겠습니다.”
“정말 죽고 싶은가? 너는 벌거벗은 몸보다 네가 그동안 부유함을 유지하고 더 배를 불리기 위해 왜놈들에게 아부했던 지난 과오를 부끄러워 해야 할 것이다. 나는 이미 삶과 죽음을 초월했다. 그러나 너는 지금 죽으면 아쉬운 것이 많을 것이다. 자, 어떻게 할 테냐?”
최씨 부자는 하는 수 없이 전라로 엉금엉금 기어 벽장문을 연 뒤 다시 삼중으로 된 비밀 문을 열고 금궤를 꺼내왔다. 김좌진은 금 궤를 열어 보지도 않고 번쩍 들어 옆구리에 끼고 일어난다.
“여하튼 고맙다. 경찰에 알리고 싶거든 날이 밝거든 알려라. 여러 사람 잠못자게 하지 말고... 만약 내가 네 방을 나가는 사이에 무슨 일이 생기면 다시 들어와 너를 쏠 것이다.”
김좌진은 권총을 흔들면서 최씨 부자에게 단단히 주의시켰다. 그때까지 최씨 부자 옆에서 전라(全裸)로 잠자고 있던 소녀는 다행스럽게도 깨지 않았다. 안사랑 방문을 나온 김좌진은 잠시 집안의 동정을 살핀 다음 다시 담장을 훌쩍 날아 뛰어넘었다. 그러나 김좌진도 그 안사랑방에 뒷문이 있었다는 사실은 전혀 살피지 못했다. 더욱이 최씨 부자는 그러한 경우를 대비하여 방 뒤에 벽지로 위장한 창문을 만들어 놓고 이번에 활용한 것이다. 그는 김좌진이 방문을 나가자 창호지문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가 김좌진의 발자국 소리가 멀어지자 옷을 주섬주섬 걸치고 밀문(密問)을 뜯고 뛰어나가 경찰에 신고한 것이다. 조금 지나니 서울 장안에 비상이 걸리고 헌병들과 경찰관이 총동원되었다.
그러한 상황을 모르고 있는 김좌진은 무거운 금궤를 어깨에 메고 계동 골목을 자연스럽게 걷고 있었다. 그런데 뒤에서 군홧발 소리와 호루라기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뒤를 돌아보니 경찰관과 헌병들이 지나는 청년 두세명을 붙들고 몸수색을 하고 있다. 눈치가 빠른 김좌진은 날쌔게 뛰기 시작했다. 그러나 무거운 금궤 때문에 몸이 둔해졌다. 군홧발 소리는 가까워지고 걸음을 재촉하여 달아나도 역시 앞에도 호루라기 소리가 요란하다. 하는 수 없이 옆 골목길로 방향을 바꿔 들어갔으나 삼면이 담장으로 막혀 있다.
운명을 하늘에 맡기고 담장을 뛰어 넘어가니 담안으로 통하는 도랑이 있다. 재빨리 도랑을 헤치고 금궤를 묻으니 잠시 후 물이 흘러 묻은 흔적이 없어진다. 그러는 순간 경찰관들이 옆집 문을 두드렸다.
“어느 놈이 달아나서 어느 집 담장을 넘은 것 같은데 본 적 있소?”
“아니 어느 놈이 우리 집에 침입했단 말이오?”
내용을 모르는 집 주인은 어리둥절하다.
“최씨 부자 댁에 웬 강도놈이 들어와 금궤를 뺏어가지고 도망쳐서 이 골목으로 왔는데...? 혹시 수상한 자를 보게 되면 즉시 연락하시오.”
경찰관들은 이렇게 이르고 다음 집의 문을 두드리며 주인을 찾는다.
김좌진은 자신이 넘어온 집 마당에서 잠시 망설였다. 잠시 자신이 거리로 나가면 붙들릴 것이 명확하고 담장 밑에서 날이 새도록 기다릴 수도 없고 좋은 묘안이 생기지 않는다. 이 집은 아담한 한옥으로 밖을 살펴봐도 남정네 신발이 눈에 띄지 않는다. 집을 돌면서 방문을 살펴봐도 조용하다. 안마루를 조심스럽게 기어가 창호지문에 구멍을 내고 살펴보니 화장품 냄새가 코를 찌른다. 건너방도 문구멍으로 동정을 살피니 사람이 사용하지 아니하여 탕냄새만 난다. 여자 혼자 사는 집인가? 일단 이 집 도랑에 금궤를 묻었으니 이 집에서 은신처를 삼아야 했다.
김좌진은 하는 수 없이 안방문을 찢고 손을 넣어 문고리를 벗긴 다음 방문을 슬그머니 연 뒤 재빨리 방으로 들어갔다. 그 방에서 하얀 소복을 입은 여인이 잠에서 깨어 장승같은 김좌진을 보고 기겁을 했다.
“쉿! 조용히 하시오. 나는 당신을 해치려고 온 사람이 아닙니다. 부득이한 일로 왜놈들에게 쫓기는 사람입니다. 당신도 조선인이고 나와 같은 백의민족이라면 나를 숨겨주시오.”
김좌진은 당황한 기색 없이 당당한 자세로 간청했다. 이 말을 듣고 있던 집 주인 여자는 묵묵히 일어나 김좌진을 뒤의 골방으로 안내하고 골방 위에 있는 다락을 가리키며 여기에 숨으라고 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더니 이런 경우를 두고 말하는 것이겠다는 생각을 하며 김좌진은 반갑고 감사한 마음 금할 수 없다. 주인의 안내로 다락방 벽장에 들어가니 그 벽장이 아주 넓은 방이라 한 사람의 은신처로는 안성마춤이었다. 김좌진은 집 주인 여자의 배려로 그 벽장방에서 뜬눈으로 아침을 맞았다.
한편 일본 경찰과 헌병대는 비상사태를 발령하고 전 병력을 동원하여 범인을 잡으려 하였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총독부에서는 날이 밝자마자 기마병들까지 동원해서 장안의 집집마다 검색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동이 트기 전에 집 주인 여자가 찰밥을 지어 조기까지 구워 놓고 동동주를 곁들인 밥상을 벽장방에 밀어넣었다. 허기진 김좌진이 동동주 한 잔에 배를 채우고 상을 치운 여자는 벽장문 앞에 열두폭 병풍을 치고 거문고와 지필묵을 가져와 병풍 앞에 늘어놓았다. 동쪽에서 해싳이 치솟자 대문을 치는 소리가 들렸다. 장안 일대의 가택수색이 시작된 것이다.
집 주인 여자는 토방과 마당에 물을 뿌리고 대나무 빗자루로 쓸고 있었다. 고무신짝을 끌면서 속치마 바람에 대문을 열고 보니 무장한 헌병 두 명과 경찰관 세명 그리고 동리 반장이 동행했다. 주인 여자가 선수를 쳐서 능청을 떨었다.
“어제 저녁 그 강도를 잡지 못했습니까? 나는 명월관(明月館)에서 일하는 기생(妓生)입니다. 여기는 저 혼자 사는 집이에요.”
동리 반장이 경찰관들에게 말했다.
“여기는 의심할 집이 아닙니다.”
“무슨 소리요? 적당히 넘어갈 일이 아닙니다. 수색해라.”
헌병과 경찰관들은 집 곳곳을 뒤졌으나 의심할 만한 부분이 눈에 띄지 않자 반장에게 말했다.
“그만 여기를 떠납시다.”
“그래요. 한 곳에서 너무 오래 시간을 끌 이유가 없소.”
경찰관과 헌병들이 떠나자 주인 여자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김좌진이 숨어 있는 벽장방으로 들어갔다.
“왜놈들이 의심없이 떠났지만 어떠한 경우라도 밖에 나오면 안됩니다.”
김좌진은 감격하여 그녀의 손목을 덥썩 잡았다.
“나를 도와 주었으니 그 신세를 언제든 갚을 것이오.”
“저는 당신이 조국의 독립을 위해 투쟁하는 독립투사인 것을 눈치챘습니다. 옛날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논개(論介)라는 기생은 왜장을 끌어안고 진주성의 촉석루에서 순절했다는데 저도 그렇게는 못할망정 어찌 돕지 않겠습니까?”
여자는 요강 두 개를 벽장에 들여 놓고 또한 놋쇠 방짜로 만든 세숫대야도 함께 들여다 주었다.
“나에게 은공을 베풀어 주었는데 그대 이름이라도 좀 알려 주시오. 나는 대한광복회원 김좌진이오.”
“명월관의 기생 김계월(金桂月)입니다.”
뒤늦게 통성명(通姓名)이 끝나자 집 주인 여자는 다시 벽장문을 닫고 나간다.
조금 있다가 인력거를 타고 이 집으로 출근하는 아주머니가 있었는데 그녀는 낮에 이 집에 와서 마당 청소와 빨래를 해주는 파출부였다. 집 주인 김계월은 그 아주머니에게 돈 몇냥을 주면서 “오늘은 내가 물을 뿌리고 마당까지 다 쓸었고 또한 몸살이 나서 명월관에 못 가겠으니 저 인력거를 타고 내 대신 명월관에 가서 내가 못간다는 말을 전해 주시고 오늘은 좀 쉬세요.” 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난 다음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골방에다 물을 갖다 놓고 김좌진의 옷을 대충 빨았다.
그리고 해가 저물어지자 저자에 가서 김좌진의 키와 몸집에 맞는 한복을 사 가지고 와서 갈아입혔다. 이것은 김계월이 글을 읽을 줄 아는 여인이었기에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녀는 김좌진을 은신시킨 이후부터 집을 나갈 때 골방문까지 자물쇠로 채우고 나가며 파출부가 와서 일을 하더라도 빨래감을 미리 내어주고 방문까지 다 잠근다.
하루는 이상히 여긴 파출부 아주머니가 전에 하지 않던 일을 하니까 의심이 나서 “새아씨는 저를 의심하나요? 전에는 나를 언니와 같이 믿어가며 전부 맡기더니 요즘은 달라진 것 같으니 나보고 그만두란 말입니까?”고 김계월에게 물었다. 그러자 김계월은 파출부의 말을 받아서 “제가 왜 아주머니를 의심하겠어요? 요즘은 총독이 경찰을 동원해서 조선 사람이 살고 있는 집집마다 가택수색을 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대요. 나라를 다시 찾겠다고 독립운동하는 사람들이 부자들을 마구 죽이고 돈을 털어가는가 하면 총을 들고 강도짓까지 하기 때문에 일본 경찰관들이 장안에 사냥개처럼 갈려 있어 문단속을 잘하려는 것이지요. 그래서 나도 자물쇠로 문을 잠근 것이니 아주머니도 이해하세요”하고 대답했다.
그러던 가운데 그 파출부의 20세 난 아들이 아무 이유없이 경찰관들에게 피체당하자 파출부로 다니던 그 아주머니도 그 집에서 부득이 그만두게 되었다. 그것이 김좌진을 은신시켜 준 집 주인 김계월에게는 차라리 잘된 일이었다. 이와 같이 골방 다락의 김좌진과 집 주인 김계월 사이에는 뜻이 같아지고 정이 깊어져서 결국 연인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대한독립군단 총사령관 백야 김좌진 장군 2애국계몽운동 참여 ⑷
★ 대한광복회의 무기 입수
김좌진(金佐鎭)을 비롯한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의 회원들이 일본 헌병대와 경찰관들의 감시를 피해 어렵게 모은 자금으로 우선 항일의열투쟁(抗日義烈鬪爭)에 사용할 총기(銃器)와 탄약(彈藥)을 조금씩 마련할 수 있었다. 중국에 있는 한국 독립운동 단체인 동제사(同濟社)의 조성환(曺成煥)과 신채호(申采浩)는 소련제 68식 권총(拳銃) 13정과 실탄 1000발을 서울로 이송중이라는 연락을 전해왔다.
김좌진이 가회동 취은루 근방으로 찾아가니 채기두(蔡基斗)가 김한종(金漢鐘)·이병찬(李秉讚)과 함께 번갈아 무기를 지키고 있었다. 무기의 인수과정을 들은 김좌진은 오늘 저녁에 권총을 나누어 줄 것이니 젊고 날쌘 동지를 10명만 소집하라고 지시하여 세 사람 모두 떠났고 자신은 무기를 은닉했다. 해는 서산에 지고 땅거미가 들어서니 이윽고 하나, 둘 모여 13명의 인원이 되었다. 김좌진은 취은루가 눈에 띄기 쉬운 곳이라 인적이 드문 산비탈에 무기를 숨겨 놓은 곳으로 자리를 옮겨 원을 지어 앉고 두 사람을 골라 파수를 세웠다.
김좌진은 동지들을 바라보며 심각한 표정으로 권총을 들어 설명한다.
“지금부터 권총을 쏘는 방법을 설명하겠소. 두 번 이상 말하지 않겠으니 잘 들으시오.”
권총을 다루는 방법을 교육한 다음 주의사항을 설명한다.
“여러분이 이 권총을 사용함에 있어 다음을 주의해야 할 것이오. 첫째, 이 권총은 사용할 시기만 가지고 다니고 그 외에는 각자 활동지역에서 아무도 알 수 없는 곳에 숨겨 두시오. 자기만이 아는 곳에다가 말이오. 둘째, 사용 후 신변이 안전할 때까지 지니고 다닌 후 다시 숨겨 놓으시오. 셋째, 자신이 일경에게 체포될 것이 확실하다고 판단되면 미리 권총을 숨기시오. 넷째, 실탄을 남발하지 마시오.”
이렇게 주의사항에 대한 전달이 끝나자 김좌진은 권총과 실탄을 나누어 주었다.
“여러 동지들, 멀리서 오시느라고 수고가 많았소. 우리가 이곳에 모은 목적은 동지들도 대강 알고 계실 줄 압니다. 거두절미(去頭截尾)하고 우리는 지금 무기를 구입할 자금이 부족합니다. 그리고 왜놈들을 처치하거나 친일파를 처단하는데 무기 없이 힘들었습니다. 무기를 사용하지 않고 민족 반역자들을 설득하거나 회유하는 일도 오히려 역효과만 만들고 있다는 사실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부터는 평화적인 방법이 아니라 살인을 해서라도 왜놈들과 친일파를 상대로 싸울 것입니다. 그러나 무모한 정면대결은 좋은 전법이 아닙니다. 지혜로 맞서고 무력(武力)이 아니면 안된다고 판단될 때만 권총을 사용하십시오. 더욱이 유념할 것은 뒷문으로 들어가서 벼락같이 해치우고 모르는 채 하면서 앞문으로 정정당당히 나오는 전법입니다. 여기 열세자루의 권총은 소련에서 구입하여 상해를 통하여 천신만고(千辛萬苦) 끝에 구입하여 여기까지 온 보물입니다. 여러분께 한 자루씩 나누어 드릴테니 목숨과 같이 간직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탄환은 1인당 50발씩 드릴 것이니 금덩이처럼 아껴 쓰십시오.”
이렇게 동지들에게 권총과 탄환을 나누어 주고 나머지 실탄 350발은 다시 보자기에 쌓아 그 바위 아래 깊숙이 묻었다.
“여러분이 실탄이 부족하게 될 때 이 곳에 와서 적당히 가져가시고 다시 묻고 낙엽으로 덮어 놓으시오.”
김좌진은 권총을 받아 가슴 속 깊이 숨겨 넣으면서 긴장하는 동지들을 바라보았다.
“지금부터 우리의 행동은 불을 뿜듯 맹렬하고 표범처럼 날렵해야 하오. 우선 제1단계로 민족의식이 없는 토호들을 상대로 군자금을 강모(强募)해야 되겠습니다. 그들은 돈만 알고 민족의 생존권은 모르는 자들이라 독립운동 자금이 무엇인지 분간도 못할 것입니다. 반드시 나라를 다시 찾는 날 되돌려 줄 것을 약속하시고 가능한 한 무기 사용을 억제하시오. 그러나 여러분의 목숨은 조국을 모르고 돈만 아는 토호들보다 100배나 소중한 목숨입니다. 신변 안전에 특별히 주의하시고 또한 동족에게 무기를 사용하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지만 대의를 위해 민족혼을 외면하는 족속들은 부득이 징벌할 수 밖에 없습니다. 자, 여기에 미리 조사된 지역별 명단이 있습니다. 살펴보시오.”
동지들에게 각자 머리 속에 기억하라 이르고 그 두루마리는 불빛이 비치지 않게 서로 겉옷을 벗어 가리고 불살랐다. 이와 같이 무기 분배까지 마친 대한광복회원들은 하나, 둘씩 간격을 두고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가며 흩어졌다.
동지들이 다 떠난 뒤 가회동 산봉(山峰)을 바라보며 혼자서 내려오는 김좌진의 발길은 유달리 무거웠다. 대한광복회의 독립운동은 분명히 무모하고 위험한 투쟁이다. 그러나 나라를 되찾을 방법은 오직 무장투쟁뿐이고 이것을 위해서는 군대를 양성할 군자금이 필요하다. 마음 같아선 동지들의 희생이 한 명도 없었으면 좋겠지만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희망이다. 걱정도 되고 앞으로 일이 어떻게 진행될지 눈앞에 캄캄하다.
이러한 가운데 김좌진은 간도의 애국 청년들과 연계투쟁 계획을 수립하려고 모색하던 중 아버지와 함께 서당에서 공부했던 김기철(金基哲)이 연해주에 간 지 여러 해 된 뒤에 정해식(鄭海植) 노인과 함께 가회동에 와서 재회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는 연해주에 망명한 지사들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1895년에 의병항쟁을 벌이다가 관군의 공격으로 패배하고 의병부대를 해체한 유인석(柳麟錫)은 1908년에 연해주로 망명하여 이범윤(李範允)·이남기(李南基) 등의 추대로 13도의군도총재(十三道義軍都總載)에 올랐으나 대대적인 국내진공작전(國內進攻作戰)을 계획하다가 실패하고 1915년 관전현(寬甸縣) 방취구(芳翠溝)에서 서거하였다. 간도관리사(間島管理使)로 있던 이범윤은 최재형(崔才亨)과 함께 동의회(同義會)를 구성하고 의병부대를 조직하여 안중근(安重根)·전덕제(全德濟)·엄인섭(嚴仁燮) 등을 파견해 국내진공작전을 진행시켰지만 영산전투(永山戰鬪) 패배로 실패한 뒤 대종교(大倧敎)에 입교하여 교육계몽운동에 전념하고 있었다.
대종교는 고대 동방민족의 원시신앙을 체계화한 우리 나라의 고유 민족종교로서 대종(大倧)이란 환인(桓因)·환웅(桓雄)·단군(檀君)의 삼신(三神)을 가리키는 것이다. 대종교는 단순히 단군만을 숭배하는 종교가 아니라 삼신일체(三神一體)의 천신(天神)을 받드는 신앙사상으로 1909년 홍암(弘巖) 나철(羅喆)이 중광(重光)하였다. 나철이 1916년에 조식법(調息法)으로 자결한 뒤 대종교의 두번째 교주가 된 무원(茂園) 김교헌(金敎獻)은 일제의 탄압으로 만주로 교단(敎團)의 총본사(總本司)를 옮겨 동포들에 대한 독립사상과 민족의식 고취에 전념하였다. 김좌진은 이 종교에 대해 점점 호감을 갖게 되었고 김기철과 정해식도 대종교도였던 것이다.
대한광복회원들이 군자금 모금을 위해 좀 더 적극적인 활동을 전개하기 시작하자 총독부의 기관지인 매일신보(每日申報)에는 친일 부호와 일본인이 조선인 괴한들에게 습격을 당했다는 기사가 자주 실렸다. 김좌진은 신문을 읽으면서 오히려 얼굴이 어두워졌다. ‘우리의 목적은 군자금이지 살인이 아닌데..... 동지들이 너무 성급하게 행동하는구나.’ 이렇게 걱정하면서 돌아가는 추세를 관망하니 자신이 숨어 있는 박성태(朴性泰)의 집도 안심할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사태가 급박해지자 조선총독부는 헌병대와 전 경찰력을 총동원하여 검문·검색을 철저히 하며 살인범 색출에 나섰다. 일본 헌병들은 전국에서 광복회원들의 친일파 암살을 기화로 조선 사람이라면 기분 내키는대로 잡아들여 족치고 구금하고 몸을 수색하는가 하면 눈에 거들리기만 하면 무조건 감옥에 가두었다. 반면 친일파들은 일본 헌병대 덕을 톡톡히 보고 있었다.
전라도의 농장 주인인 일본인 부호 한사람이 광복회원에게 총살당했다는 소식을 들은 하세가와 요시미치[長谷川好道] 조선총독은 열이 바짝 올라 1906년 10월에 소위 애국반상회(愛國班常會)를 열도록 조치하고 11월에는 민영기(閔泳綺)·조진태(趙鎭泰)·예병석(芮丙錫) 등을 시켜 조일동화(朝日同化)를 명분으로 대정실업친목회(大正實業親睦會)까지 조직하여 정탐에 들어갔으나 살인범은 하늘로 솟았는지 땅 속으로 숨었는지 행방이 묘연했다. 이럴수록 하세가와 총독도 마음이 초조해졌다.
★ 기생의 도움을 받아 위기를 모면하다
‘음, 이제 나도 행동에 나설 시기가 되었다. 총독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어야겠어.’
그 해 9월 10일 깊은 밤 어둠 속을 헤치고 김좌진(金佐鎭)은 계동(桂洞)의 부자 최무윤(崔茂潤)의 집을 향했다. 가벼운 몸놀림으로 담장을 훌쩍 뛰어넘은 그의 오른손에는 권총(拳銃)이 들려 있었다. 총구(銃口)가 불빛에 비치면서 번쩍거렸다.
최씨(崔氏) 부자집은 고요하고 적막해서 멀리 귀뚜라미 소리만 들리고 워낙 부자집이라 깨끗이 정돈되어 발자국 소리만 낮추면 아무것도 거치지 않으니 행동하기가 편했다. 안사랑의 방문에 귀를 기울이니 최씨 부자의 코 고는 소리만 들리고 또 한사람의 숨소리는 들리는지 마는지 흐릿하다. 조용히 방문을 열어도 반응은 없었다. 김좌진이 재빨리 방에 들어서도 모른다.
성냥불을 켜고 방 안을 살펴보니 오십대 초반의 뚱뚱한 사내와 아직 20세도 채 못되는 소녀 하나가 실오라기 한 올도 걸치지 않은 채 잠들어 있었다. 술을 마시며 거나하게 방사(房事)를 나누다가 피로하여 곤히 잠든 모양이다. 김좌진은 그 망측한 모습을 보자 속이 뒤집힌다.
‘나라가 망하자 왜놈들에게 아부하여 가난한 백성들을 등쳐 빼앗은 돈으로 호화롭게 살면서 자신의 딸뻘 되는 여자와 저런 짓을 하다니..... 한심한 놈이로구나!’
김좌진은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억지로 가라앉히며 최씨 부자의 머리를 향해 권총을 겨누고 발바닥으로 그의 넓적다리를 지그시 건드렸다. 그래도 최씨 부자는 무슨 소리를 중얼거리며 몸만 뒤틀고 깨지 않는다. 이번에는 넓적다리를 힘주어 밟았다. 그제서야 눈을 뜬 최씨 부자가 자신의 눈앞에 겨누어진 총구를 보고 화들짝 놀라며 상체를 일으켰다.
“소리를 지르지 마라. 허튼 짓을 한다면 네놈의 고환(睾丸) 부분에 총을 쏴 평생을 불구로 살게 해 주겠다!”
김좌진이 권총으로 최씨 부자의 음경(陰莖)을 툭 치자 그의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었다.
“나는 너를 해치고 싶은 생각이 없다. 서로 협상만 잘 된다면 털끝 하나 다치지 않을 거이다. 그러나 만약 내 요구를 거절하거나 무슨 수상한 눈치가 보이면 네 물건에 총탄을 박아줄 것이다. 알겠느냐?”
최씨 부자는 벌벌 떨면서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내가 오늘 너를 찾아온 것은 돈을 좀 빌리러 왔다. 왜놈들에게만 빌려주지 말고 나한테도 빌려줘야 하겠어.”
“얼마나 필요하십니까?”
“네가 소작인한테 긁어모은 것과 영세상인들 등쳐서 모은 돈 10만원만 빌려주면 그 돈을 긴요하게 쓰고 이자는 못주더라도 나라가 독립되면 꼭 돌려주마. 어떤가?”
최씨 부자는 10만원이란 거액을 듣자 나체(裸體)가 굳어지며 소름이 돋았다.
“그와 같이 큰 돈은 며칠 기일이 있어야지 지금 당장에는.....?”
“왜 안되겠어?”
김좌진이 다시 권총을 그의 성기(性器) 쪽으로 겨누자 그는 두 손으로 자신의 사타구니를 가리며 질겁한다.
“아니 그런 것이 아니라 워낙 큰 돈이라서 지금 당장으론 어렵습니다. 며칠만 말미를 주시면 꼭 구해드리겠습니다.”
그러나 그의 말은 뻔한 수작이었다. 우선 곤경을 모면하고 헌병대나 경찰에 연락해서 동시에 신변보호를 요청하자는 얄팍한 수작임을 김좌진이 모를 리 없다.
“잔소리 말고 네가 어떤 형편인지 내가 다 일고 있으니까 서투룬 수작을 하면 너를 먼저 죽일 것이다. 어서 돈을 내놔라.”
김좌진이 권총을 들이대고 여유없이 협박하자 최씨 부자는 등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저 그럼 우선 옷부터 입게 시간을 좀 주십시오. 옷을 입고 나서 돈을 드리겠습니다.”
“정말 죽고 싶은가? 너는 벌거벗은 몸보다 네가 그동안 부유함을 유지하고 더 배를 불리기 위해 왜놈들에게 아부했던 지난 과오를 부끄러워 해야 할 것이다. 나는 이미 삶과 죽음을 초월했다. 그러나 너는 지금 죽으면 아쉬운 것이 많을 것이다. 자, 어떻게 할 테냐?”
최씨 부자는 하는 수 없이 전라로 엉금엉금 기어 벽장문을 연 뒤 다시 삼중으로 된 비밀 문을 열고 금궤를 꺼내왔다. 김좌진은 금 궤를 열어 보지도 않고 번쩍 들어 옆구리에 끼고 일어난다.
“여하튼 고맙다. 경찰에 알리고 싶거든 날이 밝거든 알려라. 여러 사람 잠못자게 하지 말고... 만약 내가 네 방을 나가는 사이에 무슨 일이 생기면 다시 들어와 너를 쏠 것이다.”
김좌진은 권총을 흔들면서 최씨 부자에게 단단히 주의시켰다. 그때까지 최씨 부자 옆에서 전라(全裸)로 잠자고 있던 소녀는 다행스럽게도 깨지 않았다. 안사랑 방문을 나온 김좌진은 잠시 집안의 동정을 살핀 다음 다시 담장을 훌쩍 날아 뛰어넘었다. 그러나 김좌진도 그 안사랑방에 뒷문이 있었다는 사실은 전혀 살피지 못했다. 더욱이 최씨 부자는 그러한 경우를 대비하여 방 뒤에 벽지로 위장한 창문을 만들어 놓고 이번에 활용한 것이다. 그는 김좌진이 방문을 나가자 창호지문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가 김좌진의 발자국 소리가 멀어지자 옷을 주섬주섬 걸치고 밀문(密問)을 뜯고 뛰어나가 경찰에 신고한 것이다. 조금 지나니 서울 장안에 비상이 걸리고 헌병들과 경찰관이 총동원되었다.
그러한 상황을 모르고 있는 김좌진은 무거운 금궤를 어깨에 메고 계동 골목을 자연스럽게 걷고 있었다. 그런데 뒤에서 군홧발 소리와 호루라기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뒤를 돌아보니 경찰관과 헌병들이 지나는 청년 두세명을 붙들고 몸수색을 하고 있다. 눈치가 빠른 김좌진은 날쌔게 뛰기 시작했다. 그러나 무거운 금궤 때문에 몸이 둔해졌다. 군홧발 소리는 가까워지고 걸음을 재촉하여 달아나도 역시 앞에도 호루라기 소리가 요란하다. 하는 수 없이 옆 골목길로 방향을 바꿔 들어갔으나 삼면이 담장으로 막혀 있다.
운명을 하늘에 맡기고 담장을 뛰어 넘어가니 담안으로 통하는 도랑이 있다. 재빨리 도랑을 헤치고 금궤를 묻으니 잠시 후 물이 흘러 묻은 흔적이 없어진다. 그러는 순간 경찰관들이 옆집 문을 두드렸다.
“어느 놈이 달아나서 어느 집 담장을 넘은 것 같은데 본 적 있소?”
“아니 어느 놈이 우리 집에 침입했단 말이오?”
내용을 모르는 집 주인은 어리둥절하다.
“최씨 부자 댁에 웬 강도놈이 들어와 금궤를 뺏어가지고 도망쳐서 이 골목으로 왔는데...? 혹시 수상한 자를 보게 되면 즉시 연락하시오.”
경찰관들은 이렇게 이르고 다음 집의 문을 두드리며 주인을 찾는다.
김좌진은 자신이 넘어온 집 마당에서 잠시 망설였다. 잠시 자신이 거리로 나가면 붙들릴 것이 명확하고 담장 밑에서 날이 새도록 기다릴 수도 없고 좋은 묘안이 생기지 않는다. 이 집은 아담한 한옥으로 밖을 살펴봐도 남정네 신발이 눈에 띄지 않는다. 집을 돌면서 방문을 살펴봐도 조용하다. 안마루를 조심스럽게 기어가 창호지문에 구멍을 내고 살펴보니 화장품 냄새가 코를 찌른다. 건너방도 문구멍으로 동정을 살피니 사람이 사용하지 아니하여 탕냄새만 난다. 여자 혼자 사는 집인가? 일단 이 집 도랑에 금궤를 묻었으니 이 집에서 은신처를 삼아야 했다.
김좌진은 하는 수 없이 안방문을 찢고 손을 넣어 문고리를 벗긴 다음 방문을 슬그머니 연 뒤 재빨리 방으로 들어갔다. 그 방에서 하얀 소복을 입은 여인이 잠에서 깨어 장승같은 김좌진을 보고 기겁을 했다.
“쉿! 조용히 하시오. 나는 당신을 해치려고 온 사람이 아닙니다. 부득이한 일로 왜놈들에게 쫓기는 사람입니다. 당신도 조선인이고 나와 같은 백의민족이라면 나를 숨겨주시오.”
김좌진은 당황한 기색 없이 당당한 자세로 간청했다. 이 말을 듣고 있던 집 주인 여자는 묵묵히 일어나 김좌진을 뒤의 골방으로 안내하고 골방 위에 있는 다락을 가리키며 여기에 숨으라고 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더니 이런 경우를 두고 말하는 것이겠다는 생각을 하며 김좌진은 반갑고 감사한 마음 금할 수 없다. 주인의 안내로 다락방 벽장에 들어가니 그 벽장이 아주 넓은 방이라 한 사람의 은신처로는 안성마춤이었다. 김좌진은 집 주인 여자의 배려로 그 벽장방에서 뜬눈으로 아침을 맞았다.
한편 일본 경찰과 헌병대는 비상사태를 발령하고 전 병력을 동원하여 범인을 잡으려 하였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총독부에서는 날이 밝자마자 기마병들까지 동원해서 장안의 집집마다 검색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동이 트기 전에 집 주인 여자가 찰밥을 지어 조기까지 구워 놓고 동동주를 곁들인 밥상을 벽장방에 밀어넣었다. 허기진 김좌진이 동동주 한 잔에 배를 채우고 상을 치운 여자는 벽장문 앞에 열두폭 병풍을 치고 거문고와 지필묵을 가져와 병풍 앞에 늘어놓았다. 동쪽에서 해싳이 치솟자 대문을 치는 소리가 들렸다. 장안 일대의 가택수색이 시작된 것이다.
집 주인 여자는 토방과 마당에 물을 뿌리고 대나무 빗자루로 쓸고 있었다. 고무신짝을 끌면서 속치마 바람에 대문을 열고 보니 무장한 헌병 두 명과 경찰관 세명 그리고 동리 반장이 동행했다. 주인 여자가 선수를 쳐서 능청을 떨었다.
“어제 저녁 그 강도를 잡지 못했습니까? 나는 명월관(明月館)에서 일하는 기생(妓生)입니다. 여기는 저 혼자 사는 집이에요.”
동리 반장이 경찰관들에게 말했다.
“여기는 의심할 집이 아닙니다.”
“무슨 소리요? 적당히 넘어갈 일이 아닙니다. 수색해라.”
헌병과 경찰관들은 집 곳곳을 뒤졌으나 의심할 만한 부분이 눈에 띄지 않자 반장에게 말했다.
“그만 여기를 떠납시다.”
“그래요. 한 곳에서 너무 오래 시간을 끌 이유가 없소.”
경찰관과 헌병들이 떠나자 주인 여자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김좌진이 숨어 있는 벽장방으로 들어갔다.
“왜놈들이 의심없이 떠났지만 어떠한 경우라도 밖에 나오면 안됩니다.”
김좌진은 감격하여 그녀의 손목을 덥썩 잡았다.
“나를 도와 주었으니 그 신세를 언제든 갚을 것이오.”
“저는 당신이 조국의 독립을 위해 투쟁하는 독립투사인 것을 눈치챘습니다. 옛날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논개(論介)라는 기생은 왜장을 끌어안고 진주성의 촉석루에서 순절했다는데 저도 그렇게는 못할망정 어찌 돕지 않겠습니까?”
여자는 요강 두 개를 벽장에 들여 놓고 또한 놋쇠 방짜로 만든 세숫대야도 함께 들여다 주었다.
“나에게 은공을 베풀어 주었는데 그대 이름이라도 좀 알려 주시오. 나는 대한광복회원 김좌진이오.”
“명월관의 기생 김계월(金桂月)입니다.”
뒤늦게 통성명(通姓名)이 끝나자 집 주인 여자는 다시 벽장문을 닫고 나간다.
조금 있다가 인력거를 타고 이 집으로 출근하는 아주머니가 있었는데 그녀는 낮에 이 집에 와서 마당 청소와 빨래를 해주는 파출부였다. 집 주인 김계월은 그 아주머니에게 돈 몇냥을 주면서 “오늘은 내가 물을 뿌리고 마당까지 다 쓸었고 또한 몸살이 나서 명월관에 못 가겠으니 저 인력거를 타고 내 대신 명월관에 가서 내가 못간다는 말을 전해 주시고 오늘은 좀 쉬세요.” 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난 다음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골방에다 물을 갖다 놓고 김좌진의 옷을 대충 빨았다.
그리고 해가 저물어지자 저자에 가서 김좌진의 키와 몸집에 맞는 한복을 사 가지고 와서 갈아입혔다. 이것은 김계월이 글을 읽을 줄 아는 여인이었기에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녀는 김좌진을 은신시킨 이후부터 집을 나갈 때 골방문까지 자물쇠로 채우고 나가며 파출부가 와서 일을 하더라도 빨래감을 미리 내어주고 방문까지 다 잠근다.
하루는 이상히 여긴 파출부 아주머니가 전에 하지 않던 일을 하니까 의심이 나서 “새아씨는 저를 의심하나요? 전에는 나를 언니와 같이 믿어가며 전부 맡기더니 요즘은 달라진 것 같으니 나보고 그만두란 말입니까?”고 김계월에게 물었다. 그러자 김계월은 파출부의 말을 받아서 “제가 왜 아주머니를 의심하겠어요? 요즘은 총독이 경찰을 동원해서 조선 사람이 살고 있는 집집마다 가택수색을 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대요. 나라를 다시 찾겠다고 독립운동하는 사람들이 부자들을 마구 죽이고 돈을 털어가는가 하면 총을 들고 강도짓까지 하기 때문에 일본 경찰관들이 장안에 사냥개처럼 갈려 있어 문단속을 잘하려는 것이지요. 그래서 나도 자물쇠로 문을 잠근 것이니 아주머니도 이해하세요”하고 대답했다.
그러던 가운데 그 파출부의 20세 난 아들이 아무 이유없이 경찰관들에게 피체당하자 파출부로 다니던 그 아주머니도 그 집에서 부득이 그만두게 되었다. 그것이 김좌진을 은신시켜 준 집 주인 김계월에게는 차라리 잘된 일이었다. 이와 같이 골방 다락의 김좌진과 집 주인 김계월 사이에는 뜻이 같아지고 정이 깊어져서 결국 연인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