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좌진은 옛 고구려의 중요 군사요충지 가운데 하나였던 봉황성(鳳凰城)을 바라보며 일본의 식민지 노예로 전락한 우리 민족의 서글픈 처지를 한탄하고 있었다. 그런데 백발이 성성한 노인 하나가 백의(白衣) 두루마기에 흰 바지를 입은 채 대나무 지팡이를 짚고 다니면서 넋을 잃고 있는 김좌진을 스치고 지나갔다. 김좌진은 예감이 이상하여 그 노인을 불렀다.
“저 노인 양반! 혹시 조선 사람이시오?”
“응, 그렇소만 당신은 누구시길래 나 같은 평범한 늙은이를 부르시오?”
그 노인은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지만 단정한 지식인 같았다. 만주 땅 이국만리에서 거의 볼 수 없는 조선 사람의 행세를 떳떳이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김좌진을 쳐다보는 눈빛에는 노인답지 않게 광채가 났다.
“네, 저는 홍성에서 온 김좌진이라 하는데 처음으로 만주 땅에 와서 조선 사람인 듯한 노인 어른을 뵈니 마치 고향 어르신을 뵙는 듯하여 불러보았습니다.”
“그래서 불문곡직(不問曲直)하고 불러 세웠다 이 말씀이오? 혹시 이 곳에 아시는 분이라도 살고 있어 찾아왔소?”
“그건 아닙니다만.....”
노인은 새삼스러운 듯 김좌진을 유심히 위 아래로 뜯어본다.
“혹시 별로 갈 만한 곳이 없으면 고생스러울 테지만 나를 따라와 보시오.”
반갑다는 기색도 없고 꼭 따라오라는 것도 아니고 그저 말 몇마디 하고 노인은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걸어갔다. 김좌진은 노인의 뜻이 무엇인지 가늠하기 어려워 당황했으나 자신도 모르게 발길은 그 노인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얼마 뒤를 따르다 보니 노인의 집에 도착했다. 방으로 들어가서 대좌(對坐)하고 나서 노인은 말문을 열었다.
“나에 대한 질문은 아무것도 묻지 말아주게. 다만 젊은이가 필요하다면 언제까지라도 내가 있는 한 잠자리는 거절하지 않겠네.”
“감사합니다.”
김좌진은 초행인 중국 영토에서 이와 같은 집과 노인을 만났다는 것만 해도 대단히 반갑고 고마웠다. 그리고 그 집을 살펴보니 중국 토호의 집처럼 느껴졌다. 김좌진은 여러가지 물어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으나 노인의 경고 첫마디에서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그러나 김좌진은 용기를 내어 어른의 존함이나 알고자 요청했다. 노인은 “정이나 그렇다면 내 성명은 김학영(金學永)이니 그저 그렇게만 불러 주게”하고 간단히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김좌진은 더욱 궁금해지고 아무 것도 묻지 말아달라는 말에서 사연이 많은 노인으로 보였다. 또한 학자풍의 조용한 사람으로 무엇인가 뜻이 있는 기인(奇人)으로도 보였다. 조용히 앉아 있던 노인은 책망 같기도 하고 비웃음 같기도 한 질문을 던진다.
“보아하니 신체가 장대한 젊은이가 고국 땅에서 무엇을 못해서 이 타국 땅에 흘러 들어왔나? 조선에서는 자네가 할 만한 일거리가 없던가? 더욱이 나라도 어수선한데 자네 같은 젊은이가 빠져나와서 쓰겠나?”
김좌진은 한숨을 쉬며 대답한다.
“이미 나라는 일본의 침략자들에게 빼앗겼지 않습니까? 사실 저는 광복회원에서 활동했던 독립운동자입니다. 친일 부호들의 재산을 빼앗아 군자금을 마련하여 간도에 군사학교를 세우는 데 보탬이 되려고 하였으나 힘과 지략이 부족하여 그만 조직망은 와해되었고 왜놈들의 감시가 더욱 심해져 고국 땅에서는 더 이상 독립운동 자체가 힘들기에 이 곳 만주 땅으로 온 것입니다.”
김학영 노인은 갑자기 껄껄 웃으면서 김좌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여보게, 젊은이. 나라가 강하면 백성도 풍족하여 살기가 좋고 나라가 망하면 백성은 고달프고 고생만 하게 마련이지. 그 진리를 알아야 하네. 그러나 백성 중에는 나라가 망해야 좋은 세상이 온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네. 여기 만주(滿州)도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안전한 곳이 못되네. 곧 여기도 왜놈들에게 짓밟힐 날이 멀지 않았네. 당덩어리가 넓다고 우리가 활개치고 다닐 것 같은가? 뭐라 해도 고향만 못하고 내 나라와 내 동포가 제일일세. 나야 이미 늙어서 아무것도 못하고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지만 자네 같은 젊은이가 조국에서 빼져나오면 누가 남아서 왜놈과 싸운단 말인가? 그대로 왜놈들에게 백성들이 유린당하는 꼴을 보고만 있을 작정인가? 한심한 일일세. 또한 통탄스러운 일이기도 하고.....”
김좌진은 역시 생각한 대로 김학영 노인이 결코 평범한 사람은 아니라는 짐작이 갔다. 그는 김학영 노인의 집에서 8일째 유숙하면서 마음을 가다듬고 앞날의 설계를 했다. 봉황성(鳳凰城) 대장대(大將臺)에 올라 고국을 생각하던 김좌진은 일본인들에 대한 적개심을 한 수의 시(詩)로 표현해냈다.
‘刀頭風動關山月 칼끝에 스친 바람 이국 산 위의 달에 걸려 있고
劍末霜寒故國心 쓰지 못한 칼끝에 어린 서리 고국 생각 다시 나게 하네
三千槿域倭何事 삼천리 금수강산에 왜놈들이 웬말이냐?
不斷腥塵一掃尋 단장의 아픈 마음 쓸어버릴 길이 없구나’
김학영은 김좌진의 시를 읽어보고 그의 용감무쌍(勇敢無雙)한 의지를 보았다. 그는 성실하게 김좌진의 앞길에 대해 조언을 주었다.
“자네에게는 두 가지 길이 있네. 첫째는 다시 조국으로 돌아가서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를 습격하거나 총독부의 고위급 관료를 암살하여 일본의 조선에 대한 통치력을 교란시키는 방법이지. 그게 힘들다면 둘째는 간도(間島)로 가는 걸세. 물론 조국만은 못하지만 조국 땅을 등지고 떠나온 조선인들이 그런대로 함께 어울려서 잘 살고 있으니 만주 안의 조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위세가 대단하네. 그곳은 처음에는 농민들이 소규모로 살기 위하여 이민왔지만 지금은 나라를 되찾으려고 우국지사들이 많이 모여들어 동지 규합에도 좋고 우선 왜놈들의 간섭이 적으니 그 곳에서 뜻을 펴보는 것이 좋을 듯하네.”
김좌진은 김학영의 조언 가운데 둘째 권고를 따르기로 하였다. 또 대단한 충고도 곁들었다.
“어디에 가서 무슨 일을 하든 제발 동포끼리 다투는 일은 삼가게. 누가 우두머리가 되던 그게 무슨 상관인가? 우선 짓밟힌 조국을 찾는데 첫번째 목적이 있음을 명심하게. 그 목적이 성공한 뒤에는 그 때는 자네 마음대로 하게니. 꼭 잊어서는 안될 일은 함께 뭉쳐야 힘이 나오고 그 힘이 나라를 찾을 수 있다는 진리를 잊어서는 안되는 법일세.”
김학영 노인은 길을 떠나는 김좌진에게 어린 자식을 타이르듯 당부했다. 김좌진은 섭섭하게 김학영과 작별하고 간도로 발길을 옮겼다. 고향 땅 좁은 곳에서 일본 경찰의 눈길을 피하기도 어려웠고 가족과 친지들에게 손과 발이 묶여 부자유스럽던 과거를 회상하면 낯선 땅이라도 동포들과 함께 상의하며 혼자서 자유자재로 활동하기가 편리하다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은 김좌진 혼자뿐은 아니었다. 한국 독립운동 종사자들은 다같은 생각으로 가족과 재산까지도 뒤로 한 채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 만주 일대에 숨어들어 민족해방운동(民族解放運動)을 위하여 모여들었다. 일제의 탄압정치에 항거하여 일본 경찰과 친일파의 눈을 피하면서 속속 만주에 모여든 애국지사들은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각종 단체를 조직하여 항일투쟁(抗日鬪爭)의 방책을 세우고 온갖 사업을 전개하였다.
여러 독립운동 단체 가운데 조직력이 강한 몇몇 단체가 체계화되어 차츰 기반을 닦고 세력을 넓혀서 군소단체들을 통합하고 보다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대한독립군단 총사령관 백야 김좌진 장군 3간도에서의 항일투쟁 ⑴
★ 단장지통(斷腸之痛)
김좌진은 옛 고구려의 중요 군사요충지 가운데 하나였던 봉황성(鳳凰城)을 바라보며 일본의 식민지 노예로 전락한 우리 민족의 서글픈 처지를 한탄하고 있었다. 그런데 백발이 성성한 노인 하나가 백의(白衣) 두루마기에 흰 바지를 입은 채 대나무 지팡이를 짚고 다니면서 넋을 잃고 있는 김좌진을 스치고 지나갔다. 김좌진은 예감이 이상하여 그 노인을 불렀다.
“저 노인 양반! 혹시 조선 사람이시오?”
“응, 그렇소만 당신은 누구시길래 나 같은 평범한 늙은이를 부르시오?”
그 노인은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지만 단정한 지식인 같았다. 만주 땅 이국만리에서 거의 볼 수 없는 조선 사람의 행세를 떳떳이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김좌진을 쳐다보는 눈빛에는 노인답지 않게 광채가 났다.
“네, 저는 홍성에서 온 김좌진이라 하는데 처음으로 만주 땅에 와서 조선 사람인 듯한 노인 어른을 뵈니 마치 고향 어르신을 뵙는 듯하여 불러보았습니다.”
“그래서 불문곡직(不問曲直)하고 불러 세웠다 이 말씀이오? 혹시 이 곳에 아시는 분이라도 살고 있어 찾아왔소?”
“그건 아닙니다만.....”
노인은 새삼스러운 듯 김좌진을 유심히 위 아래로 뜯어본다.
“혹시 별로 갈 만한 곳이 없으면 고생스러울 테지만 나를 따라와 보시오.”
반갑다는 기색도 없고 꼭 따라오라는 것도 아니고 그저 말 몇마디 하고 노인은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걸어갔다. 김좌진은 노인의 뜻이 무엇인지 가늠하기 어려워 당황했으나 자신도 모르게 발길은 그 노인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얼마 뒤를 따르다 보니 노인의 집에 도착했다. 방으로 들어가서 대좌(對坐)하고 나서 노인은 말문을 열었다.
“나에 대한 질문은 아무것도 묻지 말아주게. 다만 젊은이가 필요하다면 언제까지라도 내가 있는 한 잠자리는 거절하지 않겠네.”
“감사합니다.”
김좌진은 초행인 중국 영토에서 이와 같은 집과 노인을 만났다는 것만 해도 대단히 반갑고 고마웠다. 그리고 그 집을 살펴보니 중국 토호의 집처럼 느껴졌다. 김좌진은 여러가지 물어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으나 노인의 경고 첫마디에서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그러나 김좌진은 용기를 내어 어른의 존함이나 알고자 요청했다. 노인은 “정이나 그렇다면 내 성명은 김학영(金學永)이니 그저 그렇게만 불러 주게”하고 간단히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김좌진은 더욱 궁금해지고 아무 것도 묻지 말아달라는 말에서 사연이 많은 노인으로 보였다. 또한 학자풍의 조용한 사람으로 무엇인가 뜻이 있는 기인(奇人)으로도 보였다. 조용히 앉아 있던 노인은 책망 같기도 하고 비웃음 같기도 한 질문을 던진다.
“보아하니 신체가 장대한 젊은이가 고국 땅에서 무엇을 못해서 이 타국 땅에 흘러 들어왔나? 조선에서는 자네가 할 만한 일거리가 없던가? 더욱이 나라도 어수선한데 자네 같은 젊은이가 빠져나와서 쓰겠나?”
김좌진은 한숨을 쉬며 대답한다.
“이미 나라는 일본의 침략자들에게 빼앗겼지 않습니까? 사실 저는 광복회원에서 활동했던 독립운동자입니다. 친일 부호들의 재산을 빼앗아 군자금을 마련하여 간도에 군사학교를 세우는 데 보탬이 되려고 하였으나 힘과 지략이 부족하여 그만 조직망은 와해되었고 왜놈들의 감시가 더욱 심해져 고국 땅에서는 더 이상 독립운동 자체가 힘들기에 이 곳 만주 땅으로 온 것입니다.”
김학영 노인은 갑자기 껄껄 웃으면서 김좌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여보게, 젊은이. 나라가 강하면 백성도 풍족하여 살기가 좋고 나라가 망하면 백성은 고달프고 고생만 하게 마련이지. 그 진리를 알아야 하네. 그러나 백성 중에는 나라가 망해야 좋은 세상이 온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네. 여기 만주(滿州)도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안전한 곳이 못되네. 곧 여기도 왜놈들에게 짓밟힐 날이 멀지 않았네. 당덩어리가 넓다고 우리가 활개치고 다닐 것 같은가? 뭐라 해도 고향만 못하고 내 나라와 내 동포가 제일일세. 나야 이미 늙어서 아무것도 못하고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지만 자네 같은 젊은이가 조국에서 빼져나오면 누가 남아서 왜놈과 싸운단 말인가? 그대로 왜놈들에게 백성들이 유린당하는 꼴을 보고만 있을 작정인가? 한심한 일일세. 또한 통탄스러운 일이기도 하고.....”
김좌진은 역시 생각한 대로 김학영 노인이 결코 평범한 사람은 아니라는 짐작이 갔다. 그는 김학영 노인의 집에서 8일째 유숙하면서 마음을 가다듬고 앞날의 설계를 했다. 봉황성(鳳凰城) 대장대(大將臺)에 올라 고국을 생각하던 김좌진은 일본인들에 대한 적개심을 한 수의 시(詩)로 표현해냈다.
‘刀頭風動關山月 칼끝에 스친 바람 이국 산 위의 달에 걸려 있고
劍末霜寒故國心 쓰지 못한 칼끝에 어린 서리 고국 생각 다시 나게 하네
三千槿域倭何事 삼천리 금수강산에 왜놈들이 웬말이냐?
不斷腥塵一掃尋 단장의 아픈 마음 쓸어버릴 길이 없구나’
김학영은 김좌진의 시를 읽어보고 그의 용감무쌍(勇敢無雙)한 의지를 보았다. 그는 성실하게 김좌진의 앞길에 대해 조언을 주었다.
“자네에게는 두 가지 길이 있네. 첫째는 다시 조국으로 돌아가서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를 습격하거나 총독부의 고위급 관료를 암살하여 일본의 조선에 대한 통치력을 교란시키는 방법이지. 그게 힘들다면 둘째는 간도(間島)로 가는 걸세. 물론 조국만은 못하지만 조국 땅을 등지고 떠나온 조선인들이 그런대로 함께 어울려서 잘 살고 있으니 만주 안의 조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위세가 대단하네. 그곳은 처음에는 농민들이 소규모로 살기 위하여 이민왔지만 지금은 나라를 되찾으려고 우국지사들이 많이 모여들어 동지 규합에도 좋고 우선 왜놈들의 간섭이 적으니 그 곳에서 뜻을 펴보는 것이 좋을 듯하네.”
김좌진은 김학영의 조언 가운데 둘째 권고를 따르기로 하였다. 또 대단한 충고도 곁들었다.
“어디에 가서 무슨 일을 하든 제발 동포끼리 다투는 일은 삼가게. 누가 우두머리가 되던 그게 무슨 상관인가? 우선 짓밟힌 조국을 찾는데 첫번째 목적이 있음을 명심하게. 그 목적이 성공한 뒤에는 그 때는 자네 마음대로 하게니. 꼭 잊어서는 안될 일은 함께 뭉쳐야 힘이 나오고 그 힘이 나라를 찾을 수 있다는 진리를 잊어서는 안되는 법일세.”
김학영 노인은 길을 떠나는 김좌진에게 어린 자식을 타이르듯 당부했다. 김좌진은 섭섭하게 김학영과 작별하고 간도로 발길을 옮겼다. 고향 땅 좁은 곳에서 일본 경찰의 눈길을 피하기도 어려웠고 가족과 친지들에게 손과 발이 묶여 부자유스럽던 과거를 회상하면 낯선 땅이라도 동포들과 함께 상의하며 혼자서 자유자재로 활동하기가 편리하다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은 김좌진 혼자뿐은 아니었다. 한국 독립운동 종사자들은 다같은 생각으로 가족과 재산까지도 뒤로 한 채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 만주 일대에 숨어들어 민족해방운동(民族解放運動)을 위하여 모여들었다. 일제의 탄압정치에 항거하여 일본 경찰과 친일파의 눈을 피하면서 속속 만주에 모여든 애국지사들은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각종 단체를 조직하여 항일투쟁(抗日鬪爭)의 방책을 세우고 온갖 사업을 전개하였다.
여러 독립운동 단체 가운데 조직력이 강한 몇몇 단체가 체계화되어 차츰 기반을 닦고 세력을 넓혀서 군소단체들을 통합하고 보다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