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말부부 7년, 합가하자네요.

세아이맘2010.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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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결혼생활 11년, 남편과 한집에서 산건 4년 정도가 전부네요.

 

친정은 경북 포항, 시댁은 경북 경산 그렇게 멀지 않은 지역이라 그게 인연이 되어 친척 어른 소개로 각자 서울에서 직장생활하고 있던 저희가 만나 6개월 정도 연애하고 결혼했습니다. 저는 28살이었고 남편은 32살때였어요. 저는 3남 2녀 집안의 막내고 남편은 아들만 둘 집의 차남이었어요.

 

결혼하고 얼마 안되어 첫째가 생기고 저는 직장을 그만두고 그때부터 전업을 했어요. 첫애는 딸이었고, 시댁과의 관계는 무난했다고 생각합니다. 시부모님도 상식적이고 좋으신 분들이었고, 애당초 저 역시도 시댁에 큰 기대(딸처럼 잘해주시리라 또는 남편과 나를 공평하게 사랑해 주시리라... 뭐 그런 기대요.)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별로 섭섭할 것도 없으니 저도 그냥 제가 할 수 있는 안에서는 진심을 다해 최선을 다할 수 있었고, 대가족 속에서 자란 문화도 한몫 했던 것 같습니다.

 

결혼 4년차, 둘째를 임신직후에 남편이 주재원 발령을 받았습니다. 둘째 6개월에 남편은 해외로 나갔고 아이를 낳을때 간신히 들어오기는 했지만, 아이가 한달도 되지 않아 다시 나갔습니다. 그것도 회사에서 특별 배려해줘서 한달정도 들어와 있을수 있었다고 하더군요. 친정엄마가 산후조리겸 두달 와 계시다가 내려가셨고(친정 엄마가 포항에서 오빠네 애들을 봐 주고 있는 상황이었어요. 두달을 와 계신것도 정말 무리한 일정이었어요. 저도 압니다.) 그때부터 작은애가 6개월이 될 때까지 저 혼자서 키웠습니다.

 

남편이 나갈때 같이 나갈수도 있었는데 남편 발령지가 도시가 아닌 오지였고, 거기에서 새로 일을 시작하는 거라 주거 상황이 너무 열악했기때문에 어린 아이와 임신부인 제가 따라갈 수가 없었던 거였습니다. 어차피 나가도 저는 도시에 집을 얻어 살고 남편은 근무지에서 살면서 한번씩 도시를 오가게 될 터였기 때문에 굳이 서두르지도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다 그러더군요. 친정에 내려가있지 아무도 없는 서울에서 애 둘 데리고 왜 있었냐구요. 집을 정리해야 했거든요. 당시 저희가 살고 있던 24평 아파트를 팔고 다른 곳에 좀 큰 평형의 아파트를 전세를 끼고 사 두고 나가자고 계획을 세웠는데, 저희 집이 빨리 팔리지가 않았어요. 그리고 새로 집을 사는 것도 조건에 맞는 집이 쉽게 나오지를 않아 힘들었습니다. 저희 입장에서야 저희의 전재산인데 실수하게 될까봐 너무 무서웠습니다. 결국 집을 팔고 사는 것도 저 혼자 알아보고 저 혼자 결정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참 별 일 다 있었습니다. 나이 서른 갓 넘은 여자 혼자서 배는 불러가지고 애까지 데리고 집 보러 다니고, 집 팔려고 하니 부동산에서 정말 온갖 ... 사기는 다 시도하더군요. 남편에게 하소연 해 봐야 해외에 있는 남편이 어떡하겠습니까. 결국은 저 혼자 해결해야 하는 일들이었구요. 어쨌든 살던집은 크게 손해보지 않는 선에서 팔았고, 새로 사는 집은 시세보다 한 이천만원 정도 비싸게 주기는 했지만 나중에 집값이 많이 올랐으니 그럭저럭 눈감고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시어머니는, 경산에서 작은 가게를 하나 하고 계셨구요. 크게 돈벌이가 되지는 않았지만 시아버지가 돈벌이를 하지 않는 상황에서 유일한 수입원인데다가 시어머니의 유일하다시피한 오락거리라 그만두시게 하는 건 말도 안되는 거였습니다.

 

그렇지만 누구도 원망해보지는 않았습니다. 내자식 내가 키우는데 누구를 왜 원망합니까? 물론, 너무너무 힘들었습니다. 임신 막달 다가올때쯤엔 밤마다 너무 무서워서 울었어요. 갑자기 애가 나온다고 그러면 어쩌지, 뭐 그런 고민부터 제가 애 낳다 잘못되면 우리 큰애는 어쩌나 하는 말도 안되는 고민까지.

 

그 시기 잘 넘기고, 둘째까지 데리고 남편이 발령받은 나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자주보면 한달에 두번 가끔은 두달에 한번 정도 보면서 애 둘 키웠어요. 5년 발령 받은 남편 임기는 3년을 꽉 채우고 4년차에 접어들고 있었고요. 큰애가 학교를 가야할 때가 왔는데 학비가 유난히 비싸더군요. (인터내셔널을 보냈습니다.) 킨더부터 보내는데 거의 연 만불 정도가 들더라구요.

 

제가 취미로 퀼트를 합니다. 처녀때 퀼트강사 자격증도 따 놓았구요. 손재주가 좀 있는 편이라서 편물도 잘 하는 편이구요.

 

큰애 학교에 가기 시작하고부터 한국 교민 아줌마들 상대로 부업을 했어요. 집에서 조그맣게 퀼트 공방을 열어서 가르치고 밤에 작품 만들어서 팔고...

 

저희가 아이 학비는 계산에 넣지 못하고 집을 너무 무리하게 질렀었어요. 연 만불을 저축액에서 빼려고 하니 도저히 답이 안나오더라구요. 그것도 킨더나 만불이죠. 프랩거쳐 엘리멘트리 가면 연 2만불이 우습더군요. 겁이 덜컥나서 부업을 한겁니다. 부업은 생각보다 잘 되었고, 아이 학비는 빠듯하게 어떻게 맞추어서 댈 수 있겠더군요. 남들은 그런 제 속은 알지도 못하고요. 저도 남편 없는 기나긴 밤 외로워서 바느질이라도 한다고 웃고 말았지만 속은 썩어 문드러졌어요.

 

다른 사람들 남편하고 놀러다니고, 즐겁게 웃는 시간에, 저는 애들 재워놓고 밤새워서 바느질하고 재봉틀 돌리고 원단 자르고, 패턴 그리고... 그렇게 살았던 겁니다.

 

그 와중에 뜬금없이 셋째가 생겼어요. 도대체 언제 생겼는지 모르게 생긴 아이였습니다. 남편과 저는 정말 많은 고민을 했고, (네, 저희 셋째한테 정말 미안한 말이지만 저희 포기하려는 생각 정말 많이 했습니다.) 전 정말 도저히 낳을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쩌다 알게 된 시어머님이 낳아보라고, 아들일지도 모르지 않느냐고(형님네가 딸만 셋을 낳으셨고, 저도 딸만 둘인 상황이었거든요.) 아무래도 이번엔 아들같다고, 아들이 아니라도 어떠냐고, 아들 셋은 힘들어도 딸 셋은 좋다고 강권하셔서, 안그래도 차마 중절은 무서워서 못하고 있던 와중에 어영부영 낳기로 했습니다.

 

제가 임신 열달내내 입덧을 하는 체질입니다. 입덧 해 보신 분들은 아실 겁니다. 남의 나라에서 입덧하는 심정은 말로는 다 못합니다. 그 열달 입덧을 하면서, 퀼트 공방은 계속했고,(애 학비 벌어야 했으니까요) 아침마다 큰애 학교에 데려다주고 작은애 돌보며 살았어요. 마침 그 시기에 남편 회사 일은 너무 바빠져 두달에 한번 정도 오더군요. 그래도 인건비가 싼 나라라 식모 둘의 도움으로 어찌어찌 그 시기를 넘겼습니다.

 

셋째는 낳아보니 아들이었고, 친정엄마가 오셔서 산후조리를 도와주셨습니다. 6주. 아이가 낳기 전엔 산후조리 말씀 전혀 안하시던 시어머니가 아들 낳았다는 말에 한 3주 정도는 당신께서 와 계시겠다고 하더군요. 저 그러시라고 했습니다. 여섯번째에 겨우 태어난 아들 손주 반가웠겠지요. 비행기 티켓도 예매해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때 딱 시아버님이 디스크 수술을 하게 되어서 어영부영 그 시기를 넘겨버리고, 1년만 더 기다리면 귀국하는 마당에 비싼 비행기 삯 쓰기도 아깝다고 안나오셨습니다.

 

귀국 1년도 채 안남은 시점에 남편 회사에서 2년 정도만 더 머물러 달라는 요청을 하더군요. 남편과 저 많은 고민을 했지만, 사실 유모 두고 식모두고 애 키우는 게 편하기도 했구요, 작은 아이도 인터내셔널을 보내서 영어를 좀 배우게 하고 싶었고, 돈도 욕심이 났구요. 그러라고 했습니다. 남편은 정말 고마워 했고,

 

그 시기에 저희는 집을 갈아탔어요. 나올때 샀던 집을 팔고 2년 반 뒤 입주하는 48평 아파트의 입주권을 샀어요. 아이가 셋이니 방이 넷은 필요하고, 마침 저희가 살고싶어 하던 지역에 좋은 조건의 아파트가 나왔더군요. 남편이 아이가 어릴때는 방 하나를 제 전용 방으로 내어주겠다고 약속을 하더군요. 퀼트 편물 해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크게 하게되면 방 하나 아예 따로 필요한 게 이런 일이거든요.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2년 또 열심히 일했어요. 애 키우고, 애들 학비 벌고, 남편은 여전히 한달에 한두번 왔다 가구요.

 

 

 

 

 

월말부부나 주말부부는 정말 하는 거 아닙니다. 부부라는 감정 유지 자체가 정말 어려웠어요. 부부가 화가나서 등을 돌리고 자도 그 등은 맞대고 자야 하는 거라는 말씀 부모님들 하시더군요. 한 집에서 각방만 써도 맘이 멀어진다고 그런 말도 많이 들었습니다.

 

11년 결혼 생활에 7년을 떨어져 살았어요. 종종 이 사람과 나와의 관계는 뭘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애가 셋이나 있으니 부부는 부부일테고, 아이가 부부사이의 끈이라는 말도 실감했습니다.

 

처음엔 몰라서 월말부부 하겠다고 덤볐지만, 이제는 만약 내 딸이 나중에 결혼해서 월말부부를 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최대한 같이 살려고 노력을 해보고, 그래도 도저히 안되겠으면 차라리 이혼하라고 말을 할 겁니다. 그만큼 힘들었습니다.

 

 

 

 

어쨌든 그 상황은 이제 끝나가고, 저희 아파트 입주도 곧 시작된다고 하고, 몇달만 있으면 귀국해서 남편과 합쳐서 살아갈 꿈에 부풀어 있는 저에게,

 

남편이 한국에 들어가면 부모님을 모시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을 하더군요.

 

저는 처음에 제가 무슨 말을 잘못들은 것인줄 알았습니다.

 

아주버님 내외가 대구에 살고 있습니다. 거기는 애가 셋인데 32평 아파트예요. 집을 늘려가게 될 것 같지는 않구요, 애들은 점점 커가고, 도저히 시부모님과 한 집에 살 형편은 아닌데다 형님이 성격이 약간 차갑습니다. 나쁜 분이라는 의미가 아니고, 성격 자체가 원래 좀 살갑게 애교 떠는 성격은 아닌데다, 약간 결벽증까지 있으세요. 하루 종일 집안을 쓸고 닦는 성격이라 시어머니가 종종 그 집에가면 편하지가 않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예전부터.

 

시부모님은 지금 69세, 68세 세요. 시어머니가 하던 가게는 그만둔지 오래 되었구요. 시아버님 디스크 수술 이후로 아무런 일도 못하시고 자식들에게 용돈 받아 생활하신지 오래 되었습니다. 아들 둘 낳아서, 둘 다 서울로 대학 보내고, 그때부터 부부 둘만 외롭게 살아오신지 25년이 넘었으니, 이제 그만 아들들하고 살고 싶은 마음도 이해는 합니다.

 

남편이 그러더군요. 처음에 48평 아파트를 계약할 때, 제일 큰 방이든 뭐든 제가 원하는 방은 제 퀼트 공방으로 내주겠다는 그 큰소리는 어디가고, 우리 셋째는 아직 어리니까 안방에 데리고 자면 되고, 방이 하나 남으니 시부모님 모셔와도 되지 않겠느냐고요.

 

막말로, 48평 아파트 그거 누가 만들었는데요. 제가 애 낳기 이틀전까지 재봉틀 돌리고, 애 낳고 두달째부터 바늘 잡지 않았으면 남편 월급 애들 학비로 다 녹아들고 없었어요. 물론 남편은 그러네요. 제가 돈을 벌지 않았으면 애 둘다 인터내셔널 안보냈다구요. 그 말도 맞겠죠.

 

남편도 고생한 것 압니다. 제가 혼자 애 키우느라 고생한만큼 남편도 얼마나 고생을 했겠습니까. 외로웠을테고 그 외진 오지에서, 남편이 그러더군요. 그래도 넌 애들하고라도 같이 있지 않았냐구요. 네, 그 애들 키우느라 힘들 었던거 그건 어디로 가고 없고, 애들 덕에 외롭지는 않았다고 그거 남아있네요. 맞아요. 자기 자식 키우면서 힘들었다고 유세하는 어미가 세상천지에 어디 있겠습니까.

 

심장이 꽉 막혀 숨을 못쉴 것 같습니다. 이제 겨우 남편하고 우리 가족 살아보나 기대하고 있었는데 시부모님과 함께 살자니요.

 

저는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싫다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내가 당신하고 11년 살면서 7년을 떨어져 살았는데 이제 겨우 함께 살게 된 마당에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아야겠냐고 했습니다.

 

요즘 대구 집값도 떨어졌다는데 시부모님 경산 집 팔고 아주버님 대구 집 팔아 큰집 들어가 그 집에 합쳐 사시라 했습니다.

 

남편이 그러더군요. 너도 하기 싫으면서 형수한테는 왜 하라고 하느냐구요. 저 못됐다네요? 허...

 

우리 형님 결혼 생활 이제 17년차, 17년 내내 부부 둘이 붙어 살았습니다. 저 결혼해서 부부 한국 살때 4년, 여름 휴가마다, 큰아들네 작은아들네 시부모님 모여서 1박 또는 2박 하고나면 형님부부는 친정 식구들이랑 휴가 지내러 가고 저희 부부는 시부모님 모시고 서울 저희집 올라와 1주일이고 2주일이고 함께 계시다 내려갔습니다. 제가 그렇게 편하게 해 드렸으니 이제 모시잡니다.

 

제가 당신 너무하다 했더니 남편이 남들한테 물어보랍니다.

 

그래서 이렇게 글 올립니다.

 

제가 남편에게 이혼하자고 했습니다. 그 집 팔아 반 나눠서 각자 집 얻어서 당신은 부모님 모시고 살라고 했습니다. 전 지금처럼 애 셋 데리고 혼자 살테니 애들한테 이혼한거 말할 필요도 없이 딱 지금처럼 양육비나 보내고 한달에 한두번 와서 애들이나 만나고 가라고 했습니다. 전 진짜 차라리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지금도 저희애들 상처 하나 없이 밝고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습니다. 한국 가서도 못 그럴 것도 없지 싶습니다.

 

 

제가 너무합니까?

 

 

 

 

 

전 진짜 시부모님 모실수도 있고 모시지 않을수도 있습니다.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단지, 저는 오직 남편 하나만을 바라는데 남편이 이렇게까지 제 마음을 몰라준다는 것이 섭섭함을 넘어 분노스럽습니다. 제가 지난 7년 세월을 어떻게 보내왔는데, 말도 안통하는 외국에서 애 셋 길러가며 돈까지 벌어가며 임신하고 낳고... 그러면서 항상 남편 외롭고 힘들거란 생각에 나 힘들단 말 한마디 안해가며 늘 즐거운 척 하고 살았는데요.

 

한동안 너무 힘들어서 항우울제를 복용한 적도 있습니다. 남편도 그걸 압니다. 언제였냐면, 셋째 낳고 한 6개월 쯤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정말 너무 힘들어서 딱 죽을 것 같은 기분이라 남편에게 말하고 6개월 정도 약 먹었습니다. 남편도 걱정 많이했고, 저는 남편 걱정시키는 게 미안했었습니다, 그때는. 어린애도 아니고 남편도 이미 힘든데 제가 힘들다고 보채봐야 상황이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괜히 마음만 힘들게 한다 싶어 많이 미안해했습니다.

 

그랬던 결과가 이거네요. 제가 이런 사람을 제 남편이라고 믿고, 배려해주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저는 이제 합가를 하던 안하던 남편하고 살고 싶지 않습니다. 이건 정말 저의 진심입니다. 갓 태어난 아이들 데리고도 혼자 살았는데 이제 막내도 좀 있으면 세돌이 다가오고 혼자 못 살 것도 없습니다. 양육비 주면 좋고 안줘도 그뿐입니다. 고생이야 되겠지만 아무도 모르는 여기서도 공방 열어 한달에 이백 가까이 벌었는데 한국 가서도 못할 것도 없다 싶습니다.

 

시부모님을 모시지 않는다고 저를 나쁜 며느리 죄인 취급할 남편이라면 전 절대 남편하고 안살겁니다. 물론 시부모님을 모시지도 않을 겁니다.

 

남편과 아내가 있어야 시부모와 며느리도 있는거지, 내가 이 사람의 아내라는 생각보다는 우리 아이들의 엄마라는 생각이 훨씬 강한 이 상황에서 며느리노릇을 해야겠습니까?

 

 

 

 

 

 

 

어떤 말씀이라도 좋습니다.

 

제가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다면 저를 나무래 주셔도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