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도쿄!> 中 ‘광인(메르드)’에 대하여. (※스포일러 주의!) 바로 어제 본 영화이기도 한, 이른바 ‘1+1+1’ 구성으로 3명의 영화감독의 3가지 이야기로 구성된 영화, <도쿄!> (우리나라에선 ‘봉준호 감독’이 참여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흥행 측면에선 다소 저조한 부분이 있는 듯 하다.) ▼ 영화 <도쿄!>의 포스터 ▲ 한국 포스터에서는 ‘아오이 유우’의 과도한 부각과 다소 흉측한 광인은 잘 안보이게 가려놨기에 이 포스터를 골라봤다. <도쿄!>의 3가지 이야기 중, 오늘은 프랑스 레오 까락스 감독의 ‘광인(메르드)’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 영화 <도쿄!>에서 ‘광인(메르드)’를 연출한 레오 까락스 감독 ▲ 프랑스의 천재 감독이라 불리는 레오 까락스 감독, 주요 작품 <소년, 소녀를 만나다>, <퐁네프의 연인들> 등. ▼ 영화 <도쿄!>에서 광인(메르드) 중 주인공 ‘광인(메르드)’ 역할을 맡은 드니 라방 ▲ 원체 연기를 잘하기로 유명한 배우인 드니 라방, 그의 ‘광인’ 연기는 흡사 인간이 아닌 외계인을 보는 듯 탁월하다. 광인(메르드) : 하수구에서 신출귀몰하는 괴상한 남자(메르드)를 둘러싼 이야기 ▼ 스틸컷 : <도쿄!> 중 2번째 이야기, ‘광인(메르드)’의 시작. ▲ ‘Merde’는 프랑스어로 ‘똥’이란 뜻이다. ‘하수구의 광인’, 그는 누구? 하수구의 맨홀뚜껑을 슬며시 열고 갑자기 튀어나와, 낯선 행인의 담배를 빼앗아 피우고, 모르는 여성의 맨살을 핥는 남자. 오직 ‘꽃’과 ‘돈’만을 주식으로 씹어 먹는 그는 과연 누구일까. ▼ 스틸컷 : 영화 시작과 함께 하수구 맨홀 뚜껑을 열고 등장하는 광인(메르드) ▲ 맨홀 뚜껑을 열고 나오는 ‘광인’의 모습. 그는 말도 안통하고, 모습이 더럽고, 눈과 수염 모양도 특이하다. 그런 이유로 광인과 마주하는 사람들은 그를 '미치광이'로 규정하고 대부분 그를 피한다. 광인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狂人’ 즉 ‘미친 사람’을 뜻한다. 영화의 원제는 메르드(Merde). 메르드는 프랑스어로 ‘똥’이란 뜻이다. 지상의 사람들은 그를 ‘하수도의 광인’이라고 부르고, 광인은 자신의 이름을 ‘메르드’라고 부른다. 메르드는 하수도에 산다. 가끔 지상으로 올라와 멋대로 거리를 활개하고 다니기도 한다. 길다란 손톱에 맨발로 성큼성큼 걸어다니는 모습이 기괴하다.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그가 ‘정상적이지는 않다’는 것이다. 하수구 맨홀뚜껑을 열고 기어나온 메르드는 도쿄거리를 활보하며 지니가던 사람들의 담배를 뺏어 피고, 돈과 꽃을 뺏어 ‘먹고’ (극중에서 광인은 ‘꽃’과 돈만을 주식으로 한다.) 자신을 핸드폰 카메라로 찍던 여성의 맨살을 핥는(윽..) 등, 주변의 행인들에게 시각적으로, 그리고 직접적으로 피해를 주곤 홀연히 다시 하수도의 맨홀 뚜껑으로 사라진다. ▼ 스틸컷 : 도쿄 거리를 누비며 낯선 행인들에게 피해를 주는 메르드의 모습. ▲ 하수도로 통하는 맨홀 뚜껑을 열고 도쿄 거리 한복판으로 나온 ‘광인’의 모습. ‘꽃’과 ‘돈’만을 먹으며, 아무 이유없이 사람들을 만지고, 가지고 있는 물건을 빼앗기도 한다. 그래도 색을 맞춘 ‘정장’을 입는 '센스'도 있다. (배경으로 깔리는 음악이 기괴함을 더한다.) 이른바 하수구의 광인(메르드)의 출몰로 인하여 도쿄는 혼란에 빠지게 되고, 언론은 "그는 누구인가, 그의 정체는? 목적은?"하며 이를 부채질한다. ▼ 스틸컷 : 하수구의 광인 ‘메르드’를 보도하는 아나운서 ▲ 연출자의 의도인지는 모르지만, 약간은 코믹한 분위기가 형성된다. ‘전쟁의 잔재’ 메르드. ▼ 스틸컷 : 화려한 외출(?)을 끝내고 하수구로 돌아온 메르드, 하수구에는 일본의 지난 2차 세계 대전에 대한 잔재들로 가득하다. ▲ 그가 사는 하수도에는 세계 2차 대전이 남기고 간 상처가 남아있다. 망가진 탱크, 전쟁무기가 즐비하다. 천황기도 늘어져 있다. 2차 대전의 역사가 지상에선 희미해졌지만, 하수도에 남아있는 수류탄과 폭발물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일본은 세계전쟁의 주도국가임에도 불고하고 전쟁에 대한 잔재들을 하수구로 몰아넣고, 현재에는 실로 엄청난 부흥을 맞이하여 세계적인 경제 국가로 발돋움하기에 이른다. 영화에서 비춰지는 하수구 아래의 전쟁에 대한 잔재들과, 메르드가 활보한 하수구 위의 엄청나게 발전한 도쿄의 거리가 상당히 대조적이다. 하수구의 전쟁 잔재들 속에서 초연히 국화(일본의 국화(國花)이기도 한)를 씹어 먹으면서 뒹굴거리던 메르드. 문득 수류탄이 가득한 상자를 손에 만지작 거리다가, 다시금 하수구 위로 올라가 시민들에게 무차별로 수류탄을 집어 던진다. 왜? 그런 건 알 수 없다. 그는 어디까지나 ‘비정상인’, 즉. ‘광인’이다. 광인은 ‘전쟁무기’를 지상으로 가져와 마구잡이로 터뜨린다. 광인 자신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를 외치며. 도시는 한순간에 수류탄이 터지는 ‘전쟁터’가 된다. 때 아닌 폭격을 당한 시민들은 일제히 주검이 되어 쓰러진다. 이쯤 되면 짐작이 간다. 꽃과 돈을 먹고,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아무나 죽이는, 이유나 목적 없이 불쑥 나타났다 또 불쑥 사라지는 그는 ‘전쟁’과 닮았다. 그렇다. 그는 2차 대전이 남긴 전쟁의 ‘잔재’그 자체이다. 그리고 그는 ‘정상적’이지 않다. 수류탄으로 일순간 혼란에 빠진 도쿄는 결국 메르드를 여러 가지 죄목으로 체포했다. ‘이슈’가 된 그에 관해 사실여부를 알 수 없는 무수히 많은 제보(무려 세계 각국의 나라에서)가 쏟아진다. 경찰당국은 말이 통하지 않는 메르드 때문에 답답해하고, 그런 찰나 그와 대화할 수 있는 ‘변호사’가 나타난다. 프랑스 사람이며, 이름은 ‘볼랑드’. 메르드와 변호사의 생김새는 놀랄 만큼 닮았고, 같은 ‘언어’를 공유하고 있다. 쌍둥이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두 사람은 ‘변호사’와 ‘미친 사람’으로 구분된다. ▼ 스틸컷 : ‘변호사 볼랑드(오른쪽)’와 ‘광인 메르드(왼쪽)’의 대화. ▲ 통역을 맡은 변호사 볼랑드와 광인 메르드. 수염이 휜 모습이나, 눈 한쪽이 백색인 것, 머리색까지 비슷하지만 이토록 닮은 두사람은 극명하게 대비되는 인물이다. 변호사는 '이성적인 인간'이고, 메르드는 '비이성적인 인간'으로 묘사된다. 어쩜 이것은 모순처럼 보이기도 한다. 두 사람의 생김새와 대화를 보고 있노라면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광인 메르드의 발언은 프랑스 변호사 볼랑드의 입을 거쳐, ‘일본인 통역사’에 의해 모습을 드러낸다. 둘의 대화는 흡사 외계인들의 대화를 보는 듯이 기괴한 모습들의 행진을 보여주고, 일본인 통역사를 비롯한 일본인들은 구석 자리잡아 ‘정상적이고 이성적인 것 같은 태도로’이를 ‘방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정상적이고 이성적인 피해자’일까? 일본의 잔재, 또한 일본과 관련된 모든 국가가 등 돌린 역사 ‘메르드 - 볼랑드 - 일본인 통역사’를 거친 메르드의 발언은 직설을 넘어 독설이다. “인간이 싫지만, 그중에서 으뜸으로 일본인이 싫다. 역겹다”거나 “우리 엄마는 성녀인데 일본사람이 강간해서 내가 태어났다”고 말한다. 그의 말을 따르자면 ‘메르드’는 ‘일본’이 만들었다. 고로, 그의 논리대로라면 전쟁의 ‘잔재’는 일본이 만들었으며, 스크린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도쿄의 피해시민들은 ‘국가’를 상대로 울분을 토해야 함이 마땅하다. 그는 자신이 “잘 생겼다고 생각한다”고 말하고, “거울을 한 번도 본 일이 없다.”고도 말한다. 그의 엄마가 거울 보는 것을 금했기 때문이다. 전쟁이 남긴 기억. 결코 아름다울 수 없는 과거의 잔상을, 그는 스스로 보기를 금하며 살았다. 또 하나, 메르드는 ‘일본만’이 만든 것이 아니다. 그의 외모로 판단해 보건데 반은 ‘서양’이 섞여있다. 반은 일본이지만, 반은 서양 사람인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서양’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본인들의 과거에는 무책임하면서, 일본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고 있는 다른 국가들을 향한 ‘질책’으로 보인다. 일본은 물론, 일본과 관계된 모든 나라들에 대한 떳떳하지 못한 기억이 바로 ‘메르드’다. ▼ 스틸컷 : 메르드의 사형집행을 위해 재판을 연 일본, 그를 변호에 나선 프랑스 변호자(이자 메르드의 통역사) 볼랑드. ▲ 긴긴 재판의 판결은 사형. 메르드는 악이 분명함해도, 이쯤되면 언제나처럼 정의와 악에 대한 혼란이 엄습한다. 내 안에 존재하는 온갖 상처의 모습은 ‘메르드’일까, ‘볼랑드’일까. 아니면 ‘일본’일까.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 언제나처럼 존재하는 ‘자기 맘대로’식 사회 ▼ 스틸컷 : 메르드를 옹호하는 집단, 분노하여 사형을 주장하는 집단, 메르드를 악(惡)으로 정의하는 언론. ▲ 인권단체에서는 메르드의 석방을 요구하기도 하고, 일각에선 ‘메르드교’가 생기기도 한다. 분노에 겨워 ‘처벌을 원한다’는 사람들 또한 있다. 메르드는 상품이 되기도 한다.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 언제나처럼 존재하는 ‘자기 맘대로’식 사회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관점으로 따라가는 대중들, 그중에는 그것으로 이익을 챙기는 사람도 있고, 그에게 기대어 위로받으려는 사람도 있다. 정작 ‘이슈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한 진지한 생각은 눈꼽만큼도 하지 않은 채로. 이것은 어느 사회의 대중과 비교해 봐도 ‘닮은’ 모습이다. 신도 늙어버린 세상, ‘메르드’는 여전히 존재한다. 메르드는 사형을 선고받은 후에도 “계속 살고 싶다”는 말을 반복하며, “담배를 피고 싶다, 꽃과 돈이 먹고 싶다.”고 말한다. ▼ 스틸컷 : 하수도의 광인, ‘메르드’의 사형집행. ▲ 그는 사형대에서 사형을 집행, 의사에게 ‘사망’이라는 진단을 받지만, 죽지 않고 다시 살아나고. 이윽고 사라져 버린다. 전쟁의 잔재, 즉 ‘과거’는 하수구에 밀어넣어 숨길 수도, 사형대로 몰아 죽여 없앨 수 없다. 등에 지고 살아가야 할 뿐이다. 메르드는 ‘다시 살아난 후’ 불현듯이 눈가리개를 내려 한쪽눈만을 드러낸다. 이에 보여지는 ‘하얀 눈’은 자기 스스로 눈을 가리고, 혹은 진실과 마주하지 않고 잔재를 하수구로, 사형대로 밀어 넣었던 일본의 모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자신들의 ‘잔재’를 인정하지 않고 죽이려 했던 ‘일본’은 결국 잔재를 죽이지 못하고 놓치고 만다. 메르드는 "신도 이젠 늙었다"는 말을 남긴 채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 스틸컷 : 아니, 흔적은 있다. 그는 미국으로 간다. ▲ 메르드의 다음 목표지역은 ‘미국’이라는 것이 마지막 흔적으로 남았다. 그가 이야기할 미국은 어떠한 메르드(똥) 냄새가 날까. 3
[리뷰] 하수구 아래 감춰진 전쟁, 영화 <도쿄!> 中 ‘광인(메르드)’
영화 <도쿄!> 中 ‘광인(메르드)’에 대하여. (※스포일러 주의!)
바로 어제 본 영화이기도 한, 이른바 ‘1+1+1’ 구성으로 3명의 영화감독의 3가지 이야기로 구성된 영화, <도쿄!>
(우리나라에선 ‘봉준호 감독’이 참여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흥행 측면에선 다소 저조한 부분이 있는 듯 하다.)
▼ 영화 <도쿄!>의 포스터
▲ 한국 포스터에서는 ‘아오이 유우’의 과도한 부각과 다소 흉측한 광인은 잘 안보이게 가려놨기에 이 포스터를 골라봤다.
<도쿄!>의 3가지 이야기 중, 오늘은 프랑스 레오 까락스 감독의 ‘광인(메르드)’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 영화 <도쿄!>에서 ‘광인(메르드)’를 연출한 레오 까락스 감독
▲ 프랑스의 천재 감독이라 불리는 레오 까락스 감독, 주요 작품 <소년, 소녀를 만나다>, <퐁네프의 연인들> 등.
▼ 영화 <도쿄!>에서 광인(메르드) 중 주인공 ‘광인(메르드)’ 역할을 맡은 드니 라방
▲ 원체 연기를 잘하기로 유명한 배우인 드니 라방, 그의 ‘광인’ 연기는 흡사 인간이 아닌 외계인을 보는 듯 탁월하다.
광인(메르드) : 하수구에서 신출귀몰하는 괴상한 남자(메르드)를 둘러싼 이야기
▼ 스틸컷 : <도쿄!> 중 2번째 이야기, ‘광인(메르드)’의 시작.
▲ ‘Merde’는 프랑스어로 ‘똥’이란 뜻이다.
‘하수구의 광인’, 그는 누구?
하수구의 맨홀뚜껑을 슬며시 열고 갑자기 튀어나와, 낯선 행인의 담배를 빼앗아 피우고,
모르는 여성의 맨살을 핥는 남자. 오직 ‘꽃’과 ‘돈’만을 주식으로 씹어 먹는 그는 과연 누구일까.
▼ 스틸컷 : 영화 시작과 함께 하수구 맨홀 뚜껑을 열고 등장하는 광인(메르드)
▲ 맨홀 뚜껑을 열고 나오는 ‘광인’의 모습. 그는 말도 안통하고, 모습이 더럽고, 눈과 수염 모양도 특이하다.
그런 이유로 광인과 마주하는 사람들은 그를 '미치광이'로 규정하고 대부분 그를 피한다.
광인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狂人’ 즉 ‘미친 사람’을 뜻한다. 영화의 원제는 메르드(Merde).
메르드는 프랑스어로 ‘똥’이란 뜻이다. 지상의 사람들은 그를 ‘하수도의 광인’이라고 부르고, 광인은 자신의 이름을 ‘메르드’라고 부른다.
메르드는 하수도에 산다. 가끔 지상으로 올라와 멋대로 거리를 활개하고 다니기도 한다.
길다란 손톱에 맨발로 성큼성큼 걸어다니는 모습이 기괴하다.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그가 ‘정상적이지는 않다’는 것이다.
하수구 맨홀뚜껑을 열고 기어나온 메르드는 도쿄거리를 활보하며 지니가던 사람들의 담배를 뺏어 피고, 돈과 꽃을 뺏어 ‘먹고’ (극중에서 광인은 ‘꽃’과 돈만을 주식으로 한다.)
자신을 핸드폰 카메라로 찍던 여성의 맨살을 핥는(윽..) 등, 주변의 행인들에게 시각적으로, 그리고 직접적으로 피해를 주곤 홀연히 다시 하수도의 맨홀 뚜껑으로 사라진다.
▼ 스틸컷 : 도쿄 거리를 누비며 낯선 행인들에게 피해를 주는 메르드의 모습.
▲ 하수도로 통하는 맨홀 뚜껑을 열고 도쿄 거리 한복판으로 나온 ‘광인’의 모습. ‘꽃’과 ‘돈’만을 먹으며, 아무 이유없이 사람들을 만지고,
가지고 있는 물건을 빼앗기도 한다. 그래도 색을 맞춘 ‘정장’을 입는 '센스'도 있다. (배경으로 깔리는 음악이 기괴함을 더한다.)
이른바 하수구의 광인(메르드)의 출몰로 인하여 도쿄는 혼란에 빠지게 되고, 언론은 "그는 누구인가, 그의 정체는? 목적은?"하며 이를 부채질한다.
▼ 스틸컷 : 하수구의 광인 ‘메르드’를 보도하는 아나운서
▲ 연출자의 의도인지는 모르지만, 약간은 코믹한 분위기가 형성된다.
‘전쟁의 잔재’ 메르드.
▼ 스틸컷 : 화려한 외출(?)을 끝내고 하수구로 돌아온 메르드, 하수구에는 일본의 지난 2차 세계 대전에 대한 잔재들로 가득하다.
▲ 그가 사는 하수도에는 세계 2차 대전이 남기고 간 상처가 남아있다. 망가진 탱크, 전쟁무기가 즐비하다. 천황기도 늘어져 있다.
2차 대전의 역사가 지상에선 희미해졌지만, 하수도에 남아있는 수류탄과 폭발물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일본은 세계전쟁의 주도국가임에도 불고하고 전쟁에 대한 잔재들을 하수구로 몰아넣고, 현재에는 실로 엄청난 부흥을 맞이하여 세계적인 경제 국가로 발돋움하기에 이른다.
영화에서 비춰지는 하수구 아래의 전쟁에 대한 잔재들과, 메르드가 활보한 하수구 위의 엄청나게 발전한 도쿄의 거리가 상당히 대조적이다.
하수구의 전쟁 잔재들 속에서 초연히 국화(일본의 국화(國花)이기도 한)를 씹어 먹으면서 뒹굴거리던 메르드.
문득 수류탄이 가득한 상자를 손에 만지작 거리다가, 다시금 하수구 위로 올라가 시민들에게 무차별로 수류탄을 집어 던진다.
왜? 그런 건 알 수 없다. 그는 어디까지나 ‘비정상인’, 즉. ‘광인’이다.
광인은 ‘전쟁무기’를 지상으로 가져와 마구잡이로 터뜨린다. 광인 자신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를 외치며.
도시는 한순간에 수류탄이 터지는 ‘전쟁터’가 된다. 때 아닌 폭격을 당한 시민들은 일제히 주검이 되어 쓰러진다.
이쯤 되면 짐작이 간다. 꽃과 돈을 먹고,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아무나 죽이는,
이유나 목적 없이 불쑥 나타났다 또 불쑥 사라지는 그는 ‘전쟁’과 닮았다.
그렇다. 그는 2차 대전이 남긴 전쟁의 ‘잔재’그 자체이다. 그리고 그는 ‘정상적’이지 않다.
수류탄으로 일순간 혼란에 빠진 도쿄는 결국 메르드를 여러 가지 죄목으로 체포했다.
‘이슈’가 된 그에 관해 사실여부를 알 수 없는 무수히 많은 제보(무려 세계 각국의 나라에서)가 쏟아진다.
경찰당국은 말이 통하지 않는 메르드 때문에 답답해하고, 그런 찰나 그와 대화할 수 있는 ‘변호사’가 나타난다.
프랑스 사람이며, 이름은 ‘볼랑드’. 메르드와 변호사의 생김새는 놀랄 만큼 닮았고, 같은 ‘언어’를 공유하고 있다.
쌍둥이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두 사람은 ‘변호사’와 ‘미친 사람’으로 구분된다.
▼ 스틸컷 : ‘변호사 볼랑드(오른쪽)’와 ‘광인 메르드(왼쪽)’의 대화.
▲ 통역을 맡은 변호사 볼랑드와 광인 메르드. 수염이 휜 모습이나, 눈 한쪽이 백색인 것, 머리색까지 비슷하지만 이토록 닮은 두사람은 극명하게 대비되는 인물이다.
변호사는 '이성적인 인간'이고, 메르드는 '비이성적인 인간'으로 묘사된다.
어쩜 이것은 모순처럼 보이기도 한다. 두 사람의 생김새와 대화를 보고 있노라면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광인 메르드의 발언은 프랑스 변호사 볼랑드의 입을 거쳐, ‘일본인 통역사’에 의해 모습을 드러낸다.
둘의 대화는 흡사 외계인들의 대화를 보는 듯이 기괴한 모습들의 행진을 보여주고, 일본인 통역사를 비롯한 일본인들은 구석 자리잡아
‘정상적이고 이성적인 것 같은 태도로’이를 ‘방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정상적이고 이성적인 피해자’일까?
일본의 잔재, 또한 일본과 관련된 모든 국가가 등 돌린 역사
‘메르드 - 볼랑드 - 일본인 통역사’를 거친 메르드의 발언은 직설을 넘어 독설이다. “인간이 싫지만, 그중에서 으뜸으로 일본인이 싫다. 역겹다”거나
“우리 엄마는 성녀인데 일본사람이 강간해서 내가 태어났다”고 말한다. 그의 말을 따르자면 ‘메르드’는 ‘일본’이 만들었다.
고로, 그의 논리대로라면 전쟁의 ‘잔재’는 일본이 만들었으며, 스크린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도쿄의 피해시민들은 ‘국가’를 상대로 울분을 토해야 함이 마땅하다.
그는 자신이 “잘 생겼다고 생각한다”고 말하고, “거울을 한 번도 본 일이 없다.”고도 말한다.
그의 엄마가 거울 보는 것을 금했기 때문이다. 전쟁이 남긴 기억. 결코 아름다울 수 없는 과거의 잔상을, 그는 스스로 보기를 금하며 살았다.
또 하나, 메르드는 ‘일본만’이 만든 것이 아니다. 그의 외모로 판단해 보건데 반은 ‘서양’이 섞여있다. 반은 일본이지만, 반은 서양 사람인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서양’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본인들의 과거에는 무책임하면서, 일본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고 있는 다른 국가들을 향한 ‘질책’으로 보인다.
일본은 물론, 일본과 관계된 모든 나라들에 대한 떳떳하지 못한 기억이 바로 ‘메르드’다.
▼ 스틸컷 : 메르드의 사형집행을 위해 재판을 연 일본, 그를 변호에 나선 프랑스 변호자(이자 메르드의 통역사) 볼랑드.
▲ 긴긴 재판의 판결은 사형. 메르드는 악이 분명함해도, 이쯤되면 언제나처럼 정의와 악에 대한 혼란이 엄습한다.
내 안에 존재하는 온갖 상처의 모습은 ‘메르드’일까, ‘볼랑드’일까. 아니면 ‘일본’일까.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 언제나처럼 존재하는 ‘자기 맘대로’식 사회
▼ 스틸컷 : 메르드를 옹호하는 집단, 분노하여 사형을 주장하는 집단, 메르드를 악(惡)으로 정의하는 언론.
▲ 인권단체에서는 메르드의 석방을 요구하기도 하고, 일각에선 ‘메르드교’가 생기기도 한다.
분노에 겨워 ‘처벌을 원한다’는 사람들 또한 있다. 메르드는 상품이 되기도 한다.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 언제나처럼 존재하는 ‘자기 맘대로’식 사회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관점으로 따라가는 대중들, 그중에는 그것으로 이익을 챙기는 사람도 있고, 그에게 기대어 위로받으려는 사람도 있다.
정작 ‘이슈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한 진지한 생각은 눈꼽만큼도 하지 않은 채로. 이것은 어느 사회의 대중과 비교해 봐도 ‘닮은’ 모습이다.
신도 늙어버린 세상, ‘메르드’는 여전히 존재한다.
메르드는 사형을 선고받은 후에도 “계속 살고 싶다”는 말을 반복하며, “담배를 피고 싶다, 꽃과 돈이 먹고 싶다.”고 말한다.
▼ 스틸컷 : 하수도의 광인, ‘메르드’의 사형집행.
▲ 그는 사형대에서 사형을 집행, 의사에게 ‘사망’이라는 진단을 받지만, 죽지 않고 다시 살아나고. 이윽고 사라져 버린다.
전쟁의 잔재, 즉 ‘과거’는 하수구에 밀어넣어 숨길 수도, 사형대로 몰아 죽여 없앨 수 없다. 등에 지고 살아가야 할 뿐이다.
메르드는 ‘다시 살아난 후’ 불현듯이 눈가리개를 내려 한쪽눈만을 드러낸다.
이에 보여지는 ‘하얀 눈’은 자기 스스로 눈을 가리고, 혹은 진실과 마주하지 않고
잔재를 하수구로, 사형대로 밀어 넣었던 일본의 모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자신들의 ‘잔재’를 인정하지 않고 죽이려 했던 ‘일본’은 결국 잔재를 죽이지 못하고 놓치고 만다.
메르드는 "신도 이젠 늙었다"는 말을 남긴 채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 스틸컷 : 아니, 흔적은 있다. 그는 미국으로 간다.
▲ 메르드의 다음 목표지역은 ‘미국’이라는 것이 마지막 흔적으로 남았다. 그가 이야기할 미국은 어떠한 메르드(똥) 냄새가 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