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면서 조금 놀랐다. 평소에는 대여기간이 2주였는데, 방학이 되자 무려 한 달 가까이로 대여기간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읽고 싶었던 책들을 최대한도까지 빌렸고, 집으로 가는 동안 무거운 가방이 어깨를 짓눌렀지만 마음은 기뻤다.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으면서 문득 오래 전에 보았던 이문열의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영화로도 제작되었는데, 홍경인, 최민식, 신구, 태민영, 고정일 등 연기파 배우들이 대거 출연하였고 케이블 영화채널에서 몇 번 본적이 있다.
빛바랜 겉표지와 황색 빛이 감도는 이 책을 보면서 새롭게 알게 된 것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1987년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는 것이다. 오래전에 읽었을 때는 잘 몰랐는데, 근래에 출판된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몇 권 읽어서 그런지 이 상이 가진 권위와 명예, 그리고 문학가 이문열의 영향력이 느껴져, 낡은 책이지만 나의 마음을 압도했다.
한편, 이 책이 이상문학상 작품집이라 대상을 수상한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외에 우수작 소설들도 포함되어있는데, 읽어보니 문학적 감성이 매우 뛰어난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같이 소개하려 한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 이문열
하지만 주먹싸움의 등수가 터무니없이 뒤로 밀리거나 아이들로부터 소외되는 것에 못잖게 괴로운 것은 합법적이고도 공공연한 박해였다. 앞서 내비친 적이 있듯, 어른들의 세계에서와 마찬가지로 아이들의 세계에서도 지켜야 할 규범들이 있기 마련이고, 또 아이들 역시 그 모든 걸 다 지켜내기는 어렵다. 털어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는 말처럼, 엄격히 보면 아이들도 어른들의 범법(犯法)이나 부도덕(不道德)에 견줄 만한 자질구레한 비행(非行)들을 수없이 저지르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학칙, 교장선생님의 훈시, 주훈(週訓), 담임선생님의 말씀과 자치회의 결정 같은 걸 지키지 않거나 부모님과 웃어른의 당부, 일반윤리 및 사회가 통념으로 어린이에게 요구하는 행동양식을 어기는 것인데, 나는 바로 그러한 규범들의 가장 엄격한 적용을 받았다. <51p>
서울에서 지방 초등학교로 전학 온 ‘나’인 병태는 같은 반 급장 엄석대의 절대 권력 앞에 분개하며 저항하지만, 담임선생님을 비롯한 학급 학생들은 그의 저항에 동조하기보다는 비난과 무관심으로 반응한다. 변화를 원했던 자신의 저항이 학급 왕따라는 최악의 결과에 이르자, 병태의 저항은 엄석대의 권력 앞에 무릎을 꿇었고, 이후 엄석대의 마음을 얻고자 부단한 노력을 하면서 누구보다 그에게 신뢰받는 심복이 된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살펴보면, 어느 시대나 절대 권력 앞에 대항하는 다수 저항자들이 있었다. 다수 저항자들 중 대부분은 저항을 밖으로 표출하기보다는 안정과 체념으로 일관했고, 소수만이 격한 말과 무력적인 행동으로 자신의 생각을 밖으로 표출하며 저항했으나 절대 권력 앞에 회유 내지 처참한 죽음으로 생을 마감했다.
어떻게 보면, 그들의 저항은 절대 권력에 고통을 받으며 침묵과 체념으로 일관한 대부분의 저항자들에게도 공감과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저항이었다. 그러나 공감을 얻기에는 절대 권력이 형성한 현실이 너무나 견고했고, 이런 현실 속에서 제 목숨을 부지하기에 급급한 사람들은 저항보다 안정과 체념을 선택했다. 그러니 굴하지 않는 저항의지를 갖고 대의를 품은 사람들의 삶은 고독했으며, 동지들의 배신과 절대 권력의 토벌로 그들의 말로는 늘 비참할 수밖에 없었다.
주인공인 병태 역시 상황이 불리해지자, 저항의지를 버리고 절대 권력에 회유된다. 분명 엄석대의 계획대로 된 것이지만, 물리적인 힘이 아닌 절대 권력의 힘 앞에 제압당했기에, 병태의 저항의지가 더 이상 힘을 쓸 수가 없었다. 차라리 서로가 치고받는 싸움으로 승자와 패자의 위치에서 이루어진 굴복이라면 어느 정도 정당성을 가질 수 있고 지금이든 훗날이든 병태의 저항의지가 남아있었겠지만, 빠져나갈 수 없는 고통스러운 그물망에 갇힌 병태의 선택은 저항의지를 완전히 버리게 되는 계기이자, 이후 석대의 심복노릇을 자청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가 내게 바라는 것은 오직 내가 그의 질서에 순응하는 것, 그리하여 그가 구축해둔 왕국을 허물려들지 않는 것뿐이었다. 실은 그거야말로 굴종이며, 그의 질서와 왕국이 정의롭지 못하다는 전제와 결합되면 그 굴종은 곧 내가 치른 대가 중에서 가장 값비싼 대가가 될 수도 있으나 이미 자유와 합리의 기억을 포기한 내게는 조금도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60p>
우리 사회에서도 이런 상황을 자주 발견할 수 있다. 사회 내에 문제의식을 가진 시민과 단체들의 활동이 큰 활약을 할 수 없는 것은, 현실의 불합리를 합리라고 체념하는 시민들과 권력자들이 형성해놓은 장막들이 너무나 견고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법은 약자가 아닌 강자의 편에 있고, 보이지 않는 사회 불평등은 권력자들의 세력을 다지는 원동력이 되었다. 여기에 시민의 편에 서서 권력자들의 횡포를 통제해야 할 공권력과 언론은 권력 그 자체가 되거나 권력자들의 하수인 노릇을 하며 이익을 배분받고 있으니, 저항자들의 저항은 시간이 지날수록 체념과 인정으로 변하면서 현실에 익숙해진다. 이후 권력자들의 권력은 더욱 강력해지고, 저항자들의 일부는 권력자들에 회유, 굴복하여 그들도 권력자로 변모해간다. 이런 상황은 새로운 저항세력이 나타나기 전까지 별다른 위기없이 유지될 것이고 사회 내 불합리는 더욱 늘어날 것이며 그 피해는 모두 시민들이 감당해야한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지금 우리 사회 내의 시민의식이 그 어느 시대보다 높다는 것에 희망을 가진다.
하지만 막상 그 우리 반을 이끌 지도자를 선택해야 될 순간이 되자 나는 갑자기 난감해졌다. 공부에서건 싸움에서건 또 다른 재능에서건 남보다 나은 아이치고 석대가 받을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아이는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대리시험으로 석대가 그전 담임선생님의 믿음과 총애를 훔치는 걸 돕거나 석대의 보이지 않는 손발이 되어 그의 불의(不義)한 질서가 가차 없이 우리 반을 위압하게 만들어 준 것은 바로 그들이었다. 내가 혼자서 그렇게 힘겹게 석대에게 저항하고 있을 때 가장 나를 괴롭게 한 것도 그들이었고, 갑작스런 반전으로 내가 석대의 가장 가까운 측근이 되었을 때 가장 많이 부러워하거나 시기한 것도 그들이었다.
그렇다고 6학년이면서도 아직 구구(九九)단도 제대로 외지 못하는 돌대가리나 싸움도 하기 전에 눈물부터 보여 앞줄의 꼬맹이들에게까지 업신여김을 당하는 허풍선이를 급장으로 세울 수 없었다. 그 아침까지도 석대가 보장해 주는 특전에 만족해 있던 나 자신을 내세울 수는 더욱 없고 - 그래서 정직하게 던진 표가 무효를 가장한 기권표였다. 변혁을 선뜻 낙관하지 못하는 내 불행한 허무주의는 어쩌면 그때부터 싹튼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다. <79p>
권력의 몰락은 또 다른 권력을 불러일으킨다. 마치 왕이 바뀌면 신하들도 바뀌듯이, 친일파가 친미파로 둔갑했듯이, 독재정권은 사라졌지만 그 잔재가 지금도 남아 있는 것처럼, 권력은 사라지지 않고 지속적으로 유지된다. 다만 그 다음 권력이 어떻게 형성되느냐에 따라 이전보다는 더 나은 사회가 될 수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문제는 권력자들과 그 하수인들이 청산되지 않고 여전히 세력을 유지하며 시대가 바뀌어도 권력행사를 한다는 점과 권력자들의 통치에 익숙해진 상태에서 몰락 이후 시민들의 자생능력과 민주적 사회 분위기 형성에 있어서 시간과 역량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절대 권력자인 석대의 시대는 새로운 담임선생님의 등장으로 막을 내린다. 불법을 합법으로, 힘 있는 자가 곧 정의가 되었던 시대는 지나갔지만, 학생들은 예기치 못한 상황에 당황하면서도 적응해나간다. 그러나 한때 열렬한 저항자에서 석대의 심복으로 톡톡한 이익을 챙긴 병태는 이런 상황이 반갑지만은 않다. 처음에는 자신이 원했던 상황이었지만, 석대에 굴종하며 다른 이들보다 더 많은 이익과 혜택을 받아온 병태에게, 석대의 몰락은 무척 아쉬운 일이다. 그가 던진 기권표는 어떻게 보면 정직한 선택이었다. 지난 권력자로부터 받았던 이익과 혜택은 그가 처음에 보여줬던 저항과는 대조된 불법이었고, 자신이 섬겼던 권력자 이외의 다른 권력자를 상상하기에는 주변 인물들의 역량이 부족해보였기, 소신을 가장한 기권은 병태의 마지막 양심처럼 느껴졌다.
이런 병태를 보고 있자니 권력 몰락 후 권력에 협력했던 사람들의 고뇌하는 모습이 떠올랐고, 이 고뇌의 끝은 새로운 권력 수용 및 형성과 남은 양심을 지키는 것, 둘 중의 하나로 압축된다. 읽으면서 이 부분이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었다.
이후 소설의 결말은 어른이 된 병태가 힘겨운 삶 속에서 석대의 존재를 그리워하고, 소식이 끊긴 채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석대를 우연히 보았으나 경찰에 의해 체포되어 의미 없는 저항을 하는 석대의 모습만을 바라봄으로써, 작가는 석대가 여전히 평면적인 인물로 살아왔다는 것을 암시하는 듯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석대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기에 이 암시에는 약간의 의문이 남는다.
이 소설의 매력은 작가가 살았던 현실 사회를 ‘학교’에 투영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권위와 독재가 만연했던 현실 속에서 권력의 등장과 중흥, 몰락은 소설이 집필된 직접적인 동기가 되었을 것 같다. 또한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입체적이기보다는 평면적 인물들이 대부분이고, 주 연령은 초등학생이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설정에 불과하다. 그들은 지금 우리 사회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학생, 시민, 권력자 등에 비유할 수 있고, 이는 작가가 이 소설의 범위와 영역을 우리 사회 전체를 대상으로 설정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또 한 가지로 이야기 형식을 취하면서 실감나는 묘사와 비평은, 마치 내 주변에서도 볼 수 있는 사람들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 같아 박진감이 넘쳤다.
<군주론>에서 마키아벨리는 “군주된 자는, 특히 새롭게 군주의 자리에 오른 자는, 나라를 지키는 일에 곧이곧대로 미덕을 지키기는 어려움을 명심해야 한다. 나라를 지키려면 때로는 배신도 해야 하고, 때로는 잔인해져야 한다. 인간성을 포기해야 할 때도, 신앙심조차 잠시 잊어버려야 할 때도 있다. 그러므로 군주에게는 운명과 상황이 달라지면 그에 맞게 적절히 달라지는 임기응변이 필요하다. 할 수 있다면 착해져라. 하지만 필요할 때는 주저 없이 사악해져라. 군주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가? 나라를 지키고 번영시키는 일이다. 일단 그렇게만 하면, 그렇게 하기 위해 무슨 짓을 했든 칭송 받게 되며, 위대한 군주로 추앙 받게 된다.” 고 말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의 모티브와 주된 내용이 요약된 말이라 생각하는데, 우리 사회는 이런 군주적 리더를 비판하면서도 원하고 있다.
우리는 지난 정치사에서 마키아벨리가 말하는 군주적 리더를 대통령으로 세웠다. 그리고 해마다 높은 경제성장률과 국가발전을 거듭했다. 하지만 사회갈등과 불법, 비리 등은 심해졌고, 이로 인해 시민들이 주체한 민주화 운동은 활발하게 일어났다. 무엇보다 그는 유신체제를 선포하며 절대 권력을 가진 1인 천하의 독재정치를 펼쳤고, 그 결과 자신의 부하에게 피살되어 생을 마감했다. 그런데 그 시절 권력을 맛보거나 왜곡된 사실로 장점만을 귀담아들은 몰락 권력자들과 일부 시민들은 군주적 대통령을 그리워하며 희대의 독재자를 최고의 대통령으로 추앙하고 있다. 게다가 그의 딸은 실리를 추구하는 정치인으로 활동하면서 사회 내 분쟁과 갈등의 중심에 서 있다. 이런 사실만으로도 군주적 리더를 주장하는 일부 사람들의 의견에 나는 우려를 표한다.
나는 경제가 발전하는 것보다, 사회갈등과 비리, 불법이 만연하는 사회보다, 조금은 더디더라도 민주주의 원칙이 지켜지며 사회 불평등이 최소화되어 인권 존중 되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 우리가 사는 민주사회는 절대적 권력을 가진 한명의 영웅보다 스스로가 사회의 주인공이라는 생각하는 시민들이 필요하다. 그래서 그들이 대화와 타협으로 신뢰 속에서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해 나가야 한다. 민주사회에서 영웅은 일그러져도 괜찮다.
<젖어드는 땅> - 최일남
“신문이 얻어맞아야 할 일이 어디 그것뿐입니까.”
김시인도 덩달아 가세하고 나섰다.
“남의 흉보다가 닮아간다는 말씀이군요. 동네북 신세가 여기서도 재현됩니다 그려. 허허.”
“그나저나 세상이 세련되어가는 건 좋은데, 그럴수록 알맹이는 빠져가고 모든 것이 민드름 하게 다져지는 것이 곧 발전이라고 믿는 현대판 미신이 문제예요. 사라지는 무교동도 그렇게 얘기할 수 있지 않을까. 좍좍 뻗어가는 방사선 같은 길이 그럴싸하면 단가. 그건 자동차를 위한 거고, 사람들이 옹기종기 엉겨 붙을 골목도 놔둬야지. 사람도 가다가는 허점도 드러낼 줄 알아야 매력 있어 보이고, 사귈 맛도 난다는 이치는 도시에도 그대로 적용돼야 한다고 봐요. 숨결을 교환할 구멍새는 터 놔야지. 모조리 쓸어버리면 어떡해. 뉴욕의 뒷골목을 봅시다. 동경의 뒷골목을 봅시다. 알짜사람 냄새는 그런 곳에 가야 맡을 수 있거던. 사랑도 골목에서 나눠야 제격이고, 비도 뒷골목에 내리는 비가 더 아름답다는 거 왜 몰라요.”
“햐, 노교수의 이 풍요로운 감정, 시인은 죽어야겠다.”
정교수의 긴 도시론에, 김시인은 허겁지겁 일부러 꾸민 비명을 질렀다. <140~141p>
유신헌법이 시민들의 목을 죄던 시절에 술집에서 만난 시대의 지식인들의 허심탄회한 대화와 토론, 주정. 그러나 그들은 혹시나 모를 공권력의 등장 앞에 술집에서도 불안해하며 스스로 근신해야 했다. 그리고 평소에 알던 여자가 세상이 더러워서 자살하여 장례식장을 찾아갔지만 눈물이 나지 않아 차마 울어줄 수 없고, 속에서 끓어오르는 저항의 의지를 꾹꾹 누르며 오직 술로 버티다가 아침을 맞이하는 비참한 현실은 당시의 사회상이 얼마나 각박했는지 알 수 있다.
이 소설에는 자유를 열망하는 지식인들이 술집에 모여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 사라져가는 낭만을 되찾으려는 애환이 담겨져 있다.
<썩지 아니할 씨> - 전상국
-피차 사랑하라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썩지 아니할 씨....ㅎㅎ. 나는 황급히 성경책을 외투 주머니에 집어넣으며 금방이라도 눈을 내릴 듯 음산하게 갈앉은 하늘 아래 그 칙칙한 겨울 산골짜기를 휘둘러보았다. 그 기분나쁜 웃음소리의 향방을 찾기 위해서 나는 계속 산기슭 외진 곳 여기저기를 두리번 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 웃음소리는 산기슭 외진데 말고도 더 가까이서도 들려왔다.
ㅎㅎ.
온몸으로 쫘악 소름이 끼쳤다. 그것은 지금 어디엔가 숨어 우리들을 내려다보고 있을 큰형이 내 입술을 몸주로 해서 내보내는 그 교활한 웃음소리였기 때문이다. <186p>
갑작스런 형의 부고 소식으로 고향에 가가된 동생은, 형의 자취를 더듬어 가던 중 형이 남기고 간 흔적들에 놀라움과 두려움을 느낀다. 그리고 그 흔적들은 여전히 형의 분신처럼 남아 썩지 아니할 씨처럼 남는다.
이 소설에는 작가의 사회 풍자와 인물 간의 해학이 돋보인다.
<흐르는 산> - 이청준
“스님께서 진정으로 세상 사람들의 아픔을 함께 하려 하신다면, 스님께서 직접 그 아픔의 강물로 흐르실 수는 없는 것입니까? 스님께서 직접 흘러내리시지 않고 지혜의 산으로만 높아지려 하심 또한 그 지혜의 산에 대한 스님의 아집의 하나가 아니겠습니까?”
한데 거기 대한 스님의 대꾸 역시 도섭에겐 일단 납득이 안 갈 수 없는 것이었다.
“사람에겐 저마다 제 자리와 제 할 일이 각기 다른 법...... 그것을 네가 쓸데없는 분별 속에 보고 있는 탓이다. 물이 산으로 높아지고 산이 강으로 흐르는 것뿐이다. 산과 물은 원래 하나인 것으로, 산은 물이요 물은 산이며, 또한 산은 산이고, 강은 강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 인간들의 삶은 어차피 분별을 떠나지 못하고 그 분별에 묶여 혹은 거기 의지해 살아야 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처지들인 것이다. 다만 자리와 소임이 다를 뿐인 것이다. 어떤 이는 산으로 높아져야 할 자가 있고, 어떤 이는 강물로 흘러내려야 할 자가 있고.....산과 물이 원래는 하나라 하지만, 산이 없으면 강물의 흐름도 못 이룰 것이 아니냐. 산이 제 스스로 지는 세상으로 흘러내릴 강물보다도 아픔의 산으로 높아지는 일로 정해진 지 오래니라. 헛된 분별 속에 그 산을 허물거나 시새우지 말 일이다. 다만 아픔의 산일뿐이 아니냐. 그리고 종당엔 그도 세상으로 흐르게 될 물이 아니더냐.” <194p>
신변의 위협을 피해 산사(山寺)로 피신한 사람들의 피치 못할 사정. 절은 그들을 거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주고 사람들은 조용히 은거하다가 때가 되면 말없이 절을 떠난다. 주인공인 도섭도 같은 처지지만 피신해 온 절에서 자신들의 이익만 추구하는 뭇사람들을 보니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스님과의 대화를 통해 무엇인가 깨달은 도섭은 앞으로 어떤 인연으로 살아가야 할지 고민한다.
<병신과 머저리>, <선학동 나그네> 등 뛰어난 문학적 재능으로 한국 문학계를 이끌었던 거장의 소설은, 부드러운 솜처럼 다가와서 강한 못같이 내 마음에 깊은 인상을 주었다. 2년 전에 운명하신 故 이청준님의 명복을 빌며..
<매우 잘생긴 우산 하나> - 윤흥길
“이봐요, 거기!”
김달채씨는 창문마다 철망이 쳐진 버스 안으로 학생을 마구 밀어넣는 사복들을 향해 느닷없이 목청을 높였다.
“아직도 어린애야! 다치지 않게 살살 좀 다뤄!”
어디서 그런 용기가 솟아나는지 김달채씨 자신도 깜짝 놀랄 지경이었다.
“당신 뭐야?”
옷깃에 비표를 단 사복차림의 청년 하나가 달려와서 김달채씨의 가슴을 떼밀었다.
“나 이런 사람이오.”
김달채씨는 엉겁결에 잠바자락 한끝을 슬쩍 들어 뒷주머니에 꿰찬 우산 케이스를 내보였다. 하지만 상대방 청년은 그런 물건 따위는 애당초 거들떠볼 생심조차 하지 않았다.
“당신도 저 차에 같이 타고 싶어? 여러 소리 말고 빨리 집에나 들어가봐요!” <224p>
평범한 공무원인 김달채씨의 유쾌한 영웅담. 개인적으로 이런 부류의 소설을 좋아한다.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똥배짱과 자기 위안은 얼마나 가련한가. 그러나 그런 똥배짱과 자기 위안 없이 사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비참한가. 나도 ‘매우 잘생긴 우산 하나’ 가 있으면 좋으련만..
이 소설도 사회 풍자와 인물간의 해학이 돋보이지만, 친근하면서도 어렵지 않는 단어와 문장들이 순식간에 소설을 읽게 만든다.
<쇠둘레(철원)를 찾아서> - 김주영
누님이 그랬다. 그녀는 지금의 박형처럼 장텃가 상점 창문 안으로 우수에 젖은 얼굴을 기웃거리면서 자형의 소식을 수소문하고, 먼 고장의 소식을 수없이 되묻곤 하였다. 나는 그런 누님을 멀찌감치 비켜서서 지켜보았었기 때문에, 역시 지금 박형이 하고 있는 것처럼, 상대와 무슨 말을 주고받는지 확실하게 알아챌 수 없었다. 온종일 누님의 뒤를 밟고 다닌다 할지라도 누님과 맞대면을 할 수 있는 시간은 점심때의 떡 가게에서나 아니면 누님이 싸가지고 온 무거리 떡으로 점심을 대신할 때였다. 허기를 채우고 나면 우리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장터의 옹기전 옆에 있는 우물터로 갔고 물을 마시고 나면 누님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나를 본척만척하고 장꾼들의 무리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었다. 자형의 전사통지서는 끝까지 전달되지 않았다.
그분이 전사자로 정리될 수 있었던 것은 누님의 장텃거리 출입을 더 이상은 참고 볼 수 없었던 사돈댁 어른들이 낸 탄원서 때문이었는데 누님이 없는 사람을 없는 사람으로 호적을 정리해서 이루어진 전사통지(戰死通知)를 한사코 믿으려 하지 않았다. 다만 그 전보다 더 진하게 눈 가장자리로 우수의 그늘이 자리잡아갔다. <264p>
상전벽해(桑田碧海)의 시간 속에서 ‘나’가 살았던 ‘철원’은 사라지고 없었다. 남은 것은 이름뿐인 철원. 이제 그곳은 ‘나’만이 느끼고 간직한 낭만과 그리움이 흔적으로만 남아있고, 수익을 위한 지역개발과 흉흉해진 민심만이 가득했다.
발단과 전개는 좋았으나 절정과 결말이 조금 아쉬운 소설이다. 또한 약간 상투적인 느낌도 든다.
<文身의 땅> - 문순태
내가 지난 여름 산동네의 무료진료봉사 때 만났던 노마리아를 다시 떠올린 것도 따지고 보면 내 머릿속이 미국에 대한 생각으로 뒤숭숭한 가운데, 그녀의 온몸을 난도질해 놓은 듯 수치스러운 문신이 버터·햄버거·밀크 등의 영어로 된 낱말과 함께 벌레처럼 징그럽게 꿈틀거렸기 때문이다. 순간 노마리아에 대한 모멸감과 불결한 마음이 사라졌다. 그리고 나에게 미국 놈이 다 되었다고 한 할머니와, 수치스러운 문신을 지우지 않고는 차마 이 땅에 묻힐 수 없다면서 그것을 없애달라고 애원하던 늙은 양공주 노마리아의 얼굴이 자꾸 겹쳐왔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녀를 다시 만날 생각은 없었다. 문신을 수술할 수 있는지 알아봐서 연락해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자책감 때문이 아니라, 그녀를 마주 대했을 때 내 쪽에서 수치심을 느끼는 것이 싫어서였다. 따지고 보면 그녀의 문신에 대해 나까지 수치심을 느껴야 할 이유가 없는데도 이상하게 노마리아를 떠올리면 마치 나 자신이 발가벗은 채 많은 사람들 앞에 서 있는 것처럼 온몸이 죄어들고 심장이 후끈거리는 것이었다. 내가 산동네의 무료진료봉사 이후 노마리아라는 여자에 대해서 잊고 지내온 것도 어쩌면 그와 같은 수치심을 다시 돌이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사실 나는 그동안 노마리아에 대해서 완전히 잊고 지내온 것이 아니라 가능하면 잊으려고 노력한 것인지도 몰랐다. 그녀를 만난 이후 나는 거리에서 미군병사들과 마주칠 때마다 펀듯펀듯 문신으로 얼룩진 그녀의 몸뚱이가 생각났고, 그 순간 내 얼굴이 자신도 모르는 순간에 달아오르곤 하였다. <302~303p>
소설을 읽으면서 여성인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나는 극단적 여성주의자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여성인권에 대한 사회적 시각은 일부 개선되어야 한다고 본다. 역사적으로 여성은 남성보다 많은 피해를 받으며 살아왔다. 남존여비(男尊女卑)사상이 분명했던 사회에서 남성은 여성의 인권을 짓밟았고, 여성을 물건이나 도구처럼 다루고 생각했다. 그리고 정절을 지키지 않는 여성과 지조와 교양 없는 여성은 가족과 이웃, 사회로부터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특히 화냥년, 종군위안부, 양공주 등 성적 노리개로 식민지 남성들보다 더 없는 비참한 생활과 고통을 받았던 여성들을 향한 시선은 더욱 차갑고 냉정하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일부 여성들은 일본과 미국의 강압 통치 앞에 강제적으로 또는 어쩔 수 없이 몸을 팔았지만, 약한 여성을 보호하고 나라를 지켜야 할 힘 있는 남성들은 왜놈들에게 나라를 팔아버렸다. 남성들은 여성들의 사회진출이나 이익에 엄격한 눈으로 통제 가했으며, 모든 책임전가를 여성들에게 돌리려 하는 이상한 습관을 가지고 있다. 신문을 보면 가정폭력의 주원인이 남성이고, 이혼의 주원인도 남성이다. 더구나 지금같이 성범죄가 끊이지 않고, 자극적이고 원색적인 성문화가 판을 치고 있는 실정에서 여성들은 더욱 남성들의 욕구의 표적이 되어가고 있다.
이 소설은 지금의 시대를 사는 나와 같은 젊은이들이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
<못> - 이승우
“당신은 꼭 허겁지겁 도망가는 사람 같애.”
사흘째 굶어 핏기 가신 얼굴로 불쑥 기도원행을 선포하고 일어서는 아내에게 내가 말했다.
“늘 그래. 당신이 기도원에 가겠다고 가방을 챙길 때면 언제나 당신의 얼굴에 두려움의 그늘이 짙게 깔려 있어. 꼭 그 두려움의 추적을 피해 달아는 꼴이란 말이야.”
“거길 올라가면 왜인지 모르게 편안해져요. 모든 것이 가능할 것 같고, 모든 것이 낙관적으로 보이고, 도대체 세상에서 상처 같은걸 입을 티끌만치의 여지도 안 보여요. 헌데, 내려오면 전혀 그렇지 않아요.”
“당신은 환상을 찾고 있는 거지. 현실이 너무 감당하기에 벅차고 무시무시할 땐 그 현실의 무시무시함과 날카로움을 둔화시키는 환상도 필요할 테지. 그 현실의 흉기에 찔려 비명사하는 불운만은 면하게 해줄 테니까. 하지만, 결코 환상이 현실을 대신할 수는 없다는 엄연한 현실인식에 당신의 고민이 있는 것 같군.”
“모르겠어요. 우리가 왜 이렇게 됐죠, 여보?”
아내는 눈물을 글썽이며 나의 품으로 쓰러졌다. 아내의 몸은 검불만큼이나 가벼웠다. 그런 아내의 눈물 앞에서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 나의 무력 때문에 나는 가슴이 아팠다. 나는 그 자리에서 나의 생각을 더 이상 계속 잇지 못했다. 아내여, 환상이 많이 요청되는 시대일수록 그만큼 불행한 시대이다. 환상을 제공하는 장소가 번창하는 시대일수록 그만치 불안정한 시대인 것이다. 환상의 양은 그 현실의 날카로움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현실의 그 날카로움과 무시무시함을 피해 숨어들 환상이라도 가지고 있다는 건, 아내여! 어차피 날카롭고 무시무시한 현실을 살아야 하는 사람에겐 얼마나 다행스런 축복이냐? <343~344p>
휴식 차 월미도에 가게 된 ‘나’는 월미도의 여관방에서 잠을 자다가 문득 시끄러운 소리에 잠이 깬다. 알고 보니 낮에 잠깐 만났던 주인집 아들의 발작이었다. 외아들로 어머니의 지극한 사랑에 힘입어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대학에 진학하여 모두의 기대와 촉망을 받았던 인재였지만, 유신체제 항거 시위의 피해로 정신이상자가 되어 대학교를 자퇴하고 집에서 죄수처럼 지내게 된다. 하나 뿐이 아들이 정신이상자가 되자, 어머니는 기독교에 심취하게 되면서 아들에게 주었던 사랑을 종교로 돌린다. 이와 비슷하게 ‘나’의 아내도 열성적인 신앙생활을 통해 자신이 처한 불확실하고 어려운 현실을 벗어나고자 한다.
종교를 통해 현실을 도피하려는 사람들과 무기력함으로 체념하는 사람들, 그리고 이 모든 현실이 자신의 잘못처럼 느껴져 스스로 자학하려는 사람들. 이 세 부류가 한데 어우러져 기이한 소설이 되었다. 개인적으로 영화로 만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 수록된 대부분의 소설들은 어떤 공상적인 주제보다 그 당시 현실의 문제점을 모티브로 삼아 풍자 내지 비판을 하고 있다. 1987년은 문학가들에게 있어서 그들이 처했던 현실의 고통과 부조리를 외면할 수 없었던 시기였나보다. 그들은 글로써 더 나은 세상을 꿈꿨고, 암울했던 사회를 향해 자신의 생각과 이상을 유감없이 표현했다. 아마 그것이 가장 좋은 항거와 소통의 수단이었을 것이다.
예전에 소설을 한 편을 써보려고 준비는 했었는데, 아직까지 준비에만 머무르고 있다. 생각은 많은데 정리가 안되는 것도 있고, 정리된 것은 왠지 식상한 것 같아 쓰기가 망설여진다. 아니면 천재 문학가 이상(李箱)처럼 어떤 것도 의식하지 않는 강단한 마음이 없어서일까? 이런 저런 생각에 서평을 적다보니 더욱 무거운 마음이 든다.
[1987년 이상문학상 작품집] 민주사회에서 영웅은 일그러져도 괜찮다
대학원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다.
대학원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면서 조금 놀랐다. 평소에는 대여기간이 2주였는데, 방학이 되자 무려 한 달 가까이로 대여기간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읽고 싶었던 책들을 최대한도까지 빌렸고, 집으로 가는 동안 무거운 가방이 어깨를 짓눌렀지만 마음은 기뻤다.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으면서 문득 오래 전에 보았던 이문열의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영화로도 제작되었는데, 홍경인, 최민식, 신구, 태민영, 고정일 등 연기파 배우들이 대거 출연하였고 케이블 영화채널에서 몇 번 본적이 있다.
빛바랜 겉표지와 황색 빛이 감도는 이 책을 보면서 새롭게 알게 된 것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1987년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는 것이다. 오래전에 읽었을 때는 잘 몰랐는데, 근래에 출판된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몇 권 읽어서 그런지 이 상이 가진 권위와 명예, 그리고 문학가 이문열의 영향력이 느껴져, 낡은 책이지만 나의 마음을 압도했다.
한편, 이 책이 이상문학상 작품집이라 대상을 수상한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외에 우수작 소설들도 포함되어있는데, 읽어보니 문학적 감성이 매우 뛰어난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같이 소개하려 한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 이문열
하지만 주먹싸움의 등수가 터무니없이 뒤로 밀리거나 아이들로부터 소외되는 것에 못잖게 괴로운 것은 합법적이고도 공공연한 박해였다. 앞서 내비친 적이 있듯, 어른들의 세계에서와 마찬가지로 아이들의 세계에서도 지켜야 할 규범들이 있기 마련이고, 또 아이들 역시 그 모든 걸 다 지켜내기는 어렵다. 털어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는 말처럼, 엄격히 보면 아이들도 어른들의 범법(犯法)이나 부도덕(不道德)에 견줄 만한 자질구레한 비행(非行)들을 수없이 저지르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학칙, 교장선생님의 훈시, 주훈(週訓), 담임선생님의 말씀과 자치회의 결정 같은 걸 지키지 않거나 부모님과 웃어른의 당부, 일반윤리 및 사회가 통념으로 어린이에게 요구하는 행동양식을 어기는 것인데, 나는 바로 그러한 규범들의 가장 엄격한 적용을 받았다. <51p>서울에서 지방 초등학교로 전학 온 ‘나’인 병태는 같은 반 급장 엄석대의 절대 권력 앞에 분개하며 저항하지만, 담임선생님을 비롯한 학급 학생들은 그의 저항에 동조하기보다는 비난과 무관심으로 반응한다. 변화를 원했던 자신의 저항이 학급 왕따라는 최악의 결과에 이르자, 병태의 저항은 엄석대의 권력 앞에 무릎을 꿇었고, 이후 엄석대의 마음을 얻고자 부단한 노력을 하면서 누구보다 그에게 신뢰받는 심복이 된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살펴보면, 어느 시대나 절대 권력 앞에 대항하는 다수 저항자들이 있었다. 다수 저항자들 중 대부분은 저항을 밖으로 표출하기보다는 안정과 체념으로 일관했고, 소수만이 격한 말과 무력적인 행동으로 자신의 생각을 밖으로 표출하며 저항했으나 절대 권력 앞에 회유 내지 처참한 죽음으로 생을 마감했다.
어떻게 보면, 그들의 저항은 절대 권력에 고통을 받으며 침묵과 체념으로 일관한 대부분의 저항자들에게도 공감과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저항이었다. 그러나 공감을 얻기에는 절대 권력이 형성한 현실이 너무나 견고했고, 이런 현실 속에서 제 목숨을 부지하기에 급급한 사람들은 저항보다 안정과 체념을 선택했다. 그러니 굴하지 않는 저항의지를 갖고 대의를 품은 사람들의 삶은 고독했으며, 동지들의 배신과 절대 권력의 토벌로 그들의 말로는 늘 비참할 수밖에 없었다.
주인공인 병태 역시 상황이 불리해지자, 저항의지를 버리고 절대 권력에 회유된다. 분명 엄석대의 계획대로 된 것이지만, 물리적인 힘이 아닌 절대 권력의 힘 앞에 제압당했기에, 병태의 저항의지가 더 이상 힘을 쓸 수가 없었다. 차라리 서로가 치고받는 싸움으로 승자와 패자의 위치에서 이루어진 굴복이라면 어느 정도 정당성을 가질 수 있고 지금이든 훗날이든 병태의 저항의지가 남아있었겠지만, 빠져나갈 수 없는 고통스러운 그물망에 갇힌 병태의 선택은 저항의지를 완전히 버리게 되는 계기이자, 이후 석대의 심복노릇을 자청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가 내게 바라는 것은 오직 내가 그의 질서에 순응하는 것, 그리하여 그가 구축해둔 왕국을 허물려들지 않는 것뿐이었다. 실은 그거야말로 굴종이며, 그의 질서와 왕국이 정의롭지 못하다는 전제와 결합되면 그 굴종은 곧 내가 치른 대가 중에서 가장 값비싼 대가가 될 수도 있으나 이미 자유와 합리의 기억을 포기한 내게는 조금도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60p>
우리 사회에서도 이런 상황을 자주 발견할 수 있다. 사회 내에 문제의식을 가진 시민과 단체들의 활동이 큰 활약을 할 수 없는 것은, 현실의 불합리를 합리라고 체념하는 시민들과 권력자들이 형성해놓은 장막들이 너무나 견고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법은 약자가 아닌 강자의 편에 있고, 보이지 않는 사회 불평등은 권력자들의 세력을 다지는 원동력이 되었다. 여기에 시민의 편에 서서 권력자들의 횡포를 통제해야 할 공권력과 언론은 권력 그 자체가 되거나 권력자들의 하수인 노릇을 하며 이익을 배분받고 있으니, 저항자들의 저항은 시간이 지날수록 체념과 인정으로 변하면서 현실에 익숙해진다. 이후 권력자들의 권력은 더욱 강력해지고, 저항자들의 일부는 권력자들에 회유, 굴복하여 그들도 권력자로 변모해간다. 이런 상황은 새로운 저항세력이 나타나기 전까지 별다른 위기없이 유지될 것이고 사회 내 불합리는 더욱 늘어날 것이며 그 피해는 모두 시민들이 감당해야한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지금 우리 사회 내의 시민의식이 그 어느 시대보다 높다는 것에 희망을 가진다.
하지만 막상 그 우리 반을 이끌 지도자를 선택해야 될 순간이 되자 나는 갑자기 난감해졌다. 공부에서건 싸움에서건 또 다른 재능에서건 남보다 나은 아이치고 석대가 받을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아이는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대리시험으로 석대가 그전 담임선생님의 믿음과 총애를 훔치는 걸 돕거나 석대의 보이지 않는 손발이 되어 그의 불의(不義)한 질서가 가차 없이 우리 반을 위압하게 만들어 준 것은 바로 그들이었다. 내가 혼자서 그렇게 힘겹게 석대에게 저항하고 있을 때 가장 나를 괴롭게 한 것도 그들이었고, 갑작스런 반전으로 내가 석대의 가장 가까운 측근이 되었을 때 가장 많이 부러워하거나 시기한 것도 그들이었다.
그렇다고 6학년이면서도 아직 구구(九九)단도 제대로 외지 못하는 돌대가리나 싸움도 하기 전에 눈물부터 보여 앞줄의 꼬맹이들에게까지 업신여김을 당하는 허풍선이를 급장으로 세울 수 없었다. 그 아침까지도 석대가 보장해 주는 특전에 만족해 있던 나 자신을 내세울 수는 더욱 없고 - 그래서 정직하게 던진 표가 무효를 가장한 기권표였다. 변혁을 선뜻 낙관하지 못하는 내 불행한 허무주의는 어쩌면 그때부터 싹튼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다. <79p>
권력의 몰락은 또 다른 권력을 불러일으킨다. 마치 왕이 바뀌면 신하들도 바뀌듯이, 친일파가 친미파로 둔갑했듯이, 독재정권은 사라졌지만 그 잔재가 지금도 남아 있는 것처럼, 권력은 사라지지 않고 지속적으로 유지된다. 다만 그 다음 권력이 어떻게 형성되느냐에 따라 이전보다는 더 나은 사회가 될 수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문제는 권력자들과 그 하수인들이 청산되지 않고 여전히 세력을 유지하며 시대가 바뀌어도 권력행사를 한다는 점과 권력자들의 통치에 익숙해진 상태에서 몰락 이후 시민들의 자생능력과 민주적 사회 분위기 형성에 있어서 시간과 역량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절대 권력자인 석대의 시대는 새로운 담임선생님의 등장으로 막을 내린다. 불법을 합법으로, 힘 있는 자가 곧 정의가 되었던 시대는 지나갔지만, 학생들은 예기치 못한 상황에 당황하면서도 적응해나간다. 그러나 한때 열렬한 저항자에서 석대의 심복으로 톡톡한 이익을 챙긴 병태는 이런 상황이 반갑지만은 않다. 처음에는 자신이 원했던 상황이었지만, 석대에 굴종하며 다른 이들보다 더 많은 이익과 혜택을 받아온 병태에게, 석대의 몰락은 무척 아쉬운 일이다. 그가 던진 기권표는 어떻게 보면 정직한 선택이었다. 지난 권력자로부터 받았던 이익과 혜택은 그가 처음에 보여줬던 저항과는 대조된 불법이었고, 자신이 섬겼던 권력자 이외의 다른 권력자를 상상하기에는 주변 인물들의 역량이 부족해보였기, 소신을 가장한 기권은 병태의 마지막 양심처럼 느껴졌다.
이런 병태를 보고 있자니 권력 몰락 후 권력에 협력했던 사람들의 고뇌하는 모습이 떠올랐고, 이 고뇌의 끝은 새로운 권력 수용 및 형성과 남은 양심을 지키는 것, 둘 중의 하나로 압축된다. 읽으면서 이 부분이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었다.
이후 소설의 결말은 어른이 된 병태가 힘겨운 삶 속에서 석대의 존재를 그리워하고, 소식이 끊긴 채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석대를 우연히 보았으나 경찰에 의해 체포되어 의미 없는 저항을 하는 석대의 모습만을 바라봄으로써, 작가는 석대가 여전히 평면적인 인물로 살아왔다는 것을 암시하는 듯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석대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기에 이 암시에는 약간의 의문이 남는다.
이 소설의 매력은 작가가 살았던 현실 사회를 ‘학교’에 투영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권위와 독재가 만연했던 현실 속에서 권력의 등장과 중흥, 몰락은 소설이 집필된 직접적인 동기가 되었을 것 같다. 또한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입체적이기보다는 평면적 인물들이 대부분이고, 주 연령은 초등학생이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설정에 불과하다. 그들은 지금 우리 사회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학생, 시민, 권력자 등에 비유할 수 있고, 이는 작가가 이 소설의 범위와 영역을 우리 사회 전체를 대상으로 설정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또 한 가지로 이야기 형식을 취하면서 실감나는 묘사와 비평은, 마치 내 주변에서도 볼 수 있는 사람들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 같아 박진감이 넘쳤다.
<군주론>에서 마키아벨리는 “군주된 자는, 특히 새롭게 군주의 자리에 오른 자는, 나라를 지키는 일에 곧이곧대로 미덕을 지키기는 어려움을 명심해야 한다. 나라를 지키려면 때로는 배신도 해야 하고, 때로는 잔인해져야 한다. 인간성을 포기해야 할 때도, 신앙심조차 잠시 잊어버려야 할 때도 있다. 그러므로 군주에게는 운명과 상황이 달라지면 그에 맞게 적절히 달라지는 임기응변이 필요하다. 할 수 있다면 착해져라. 하지만 필요할 때는 주저 없이 사악해져라. 군주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가? 나라를 지키고 번영시키는 일이다. 일단 그렇게만 하면, 그렇게 하기 위해 무슨 짓을 했든 칭송 받게 되며, 위대한 군주로 추앙 받게 된다.” 고 말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의 모티브와 주된 내용이 요약된 말이라 생각하는데, 우리 사회는 이런 군주적 리더를 비판하면서도 원하고 있다.
우리는 지난 정치사에서 마키아벨리가 말하는 군주적 리더를 대통령으로 세웠다. 그리고 해마다 높은 경제성장률과 국가발전을 거듭했다. 하지만 사회갈등과 불법, 비리 등은 심해졌고, 이로 인해 시민들이 주체한 민주화 운동은 활발하게 일어났다. 무엇보다 그는 유신체제를 선포하며 절대 권력을 가진 1인 천하의 독재정치를 펼쳤고, 그 결과 자신의 부하에게 피살되어 생을 마감했다. 그런데 그 시절 권력을 맛보거나 왜곡된 사실로 장점만을 귀담아들은 몰락 권력자들과 일부 시민들은 군주적 대통령을 그리워하며 희대의 독재자를 최고의 대통령으로 추앙하고 있다. 게다가 그의 딸은 실리를 추구하는 정치인으로 활동하면서 사회 내 분쟁과 갈등의 중심에 서 있다. 이런 사실만으로도 군주적 리더를 주장하는 일부 사람들의 의견에 나는 우려를 표한다.
나는 경제가 발전하는 것보다, 사회갈등과 비리, 불법이 만연하는 사회보다, 조금은 더디더라도 민주주의 원칙이 지켜지며 사회 불평등이 최소화되어 인권 존중 되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 우리가 사는 민주사회는 절대적 권력을 가진 한명의 영웅보다 스스로가 사회의 주인공이라는 생각하는 시민들이 필요하다. 그래서 그들이 대화와 타협으로 신뢰 속에서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해 나가야 한다. 민주사회에서 영웅은 일그러져도 괜찮다.
<젖어드는 땅> - 최일남
“신문이 얻어맞아야 할 일이 어디 그것뿐입니까.”
김시인도 덩달아 가세하고 나섰다.
“남의 흉보다가 닮아간다는 말씀이군요. 동네북 신세가 여기서도 재현됩니다 그려. 허허.”
“그나저나 세상이 세련되어가는 건 좋은데, 그럴수록 알맹이는 빠져가고 모든 것이 민드름 하게 다져지는 것이 곧 발전이라고 믿는 현대판 미신이 문제예요. 사라지는 무교동도 그렇게 얘기할 수 있지 않을까. 좍좍 뻗어가는 방사선 같은 길이 그럴싸하면 단가. 그건 자동차를 위한 거고, 사람들이 옹기종기 엉겨 붙을 골목도 놔둬야지. 사람도 가다가는 허점도 드러낼 줄 알아야 매력 있어 보이고, 사귈 맛도 난다는 이치는 도시에도 그대로 적용돼야 한다고 봐요. 숨결을 교환할 구멍새는 터 놔야지. 모조리 쓸어버리면 어떡해. 뉴욕의 뒷골목을 봅시다. 동경의 뒷골목을 봅시다. 알짜사람 냄새는 그런 곳에 가야 맡을 수 있거던. 사랑도 골목에서 나눠야 제격이고, 비도 뒷골목에 내리는 비가 더 아름답다는 거 왜 몰라요.”
“햐, 노교수의 이 풍요로운 감정, 시인은 죽어야겠다.”
정교수의 긴 도시론에, 김시인은 허겁지겁 일부러 꾸민 비명을 질렀다. <140~141p>
유신헌법이 시민들의 목을 죄던 시절에 술집에서 만난 시대의 지식인들의 허심탄회한 대화와 토론, 주정. 그러나 그들은 혹시나 모를 공권력의 등장 앞에 술집에서도 불안해하며 스스로 근신해야 했다. 그리고 평소에 알던 여자가 세상이 더러워서 자살하여 장례식장을 찾아갔지만 눈물이 나지 않아 차마 울어줄 수 없고, 속에서 끓어오르는 저항의 의지를 꾹꾹 누르며 오직 술로 버티다가 아침을 맞이하는 비참한 현실은 당시의 사회상이 얼마나 각박했는지 알 수 있다.
이 소설에는 자유를 열망하는 지식인들이 술집에 모여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 사라져가는 낭만을 되찾으려는 애환이 담겨져 있다.
<썩지 아니할 씨> - 전상국
-피차 사랑하라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썩지 아니할 씨....ㅎㅎ. 나는 황급히 성경책을 외투 주머니에 집어넣으며 금방이라도 눈을 내릴 듯 음산하게 갈앉은 하늘 아래 그 칙칙한 겨울 산골짜기를 휘둘러보았다. 그 기분나쁜 웃음소리의 향방을 찾기 위해서 나는 계속 산기슭 외진 곳 여기저기를 두리번 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 웃음소리는 산기슭 외진데 말고도 더 가까이서도 들려왔다.
ㅎㅎ.
온몸으로 쫘악 소름이 끼쳤다. 그것은 지금 어디엔가 숨어 우리들을 내려다보고 있을 큰형이 내 입술을 몸주로 해서 내보내는 그 교활한 웃음소리였기 때문이다. <186p>
갑작스런 형의 부고 소식으로 고향에 가가된 동생은, 형의 자취를 더듬어 가던 중 형이 남기고 간 흔적들에 놀라움과 두려움을 느낀다. 그리고 그 흔적들은 여전히 형의 분신처럼 남아 썩지 아니할 씨처럼 남는다.
이 소설에는 작가의 사회 풍자와 인물 간의 해학이 돋보인다.
<흐르는 산> - 이청준
“스님께서 진정으로 세상 사람들의 아픔을 함께 하려 하신다면, 스님께서 직접 그 아픔의 강물로 흐르실 수는 없는 것입니까? 스님께서 직접 흘러내리시지 않고 지혜의 산으로만 높아지려 하심 또한 그 지혜의 산에 대한 스님의 아집의 하나가 아니겠습니까?”
한데 거기 대한 스님의 대꾸 역시 도섭에겐 일단 납득이 안 갈 수 없는 것이었다.
“사람에겐 저마다 제 자리와 제 할 일이 각기 다른 법...... 그것을 네가 쓸데없는 분별 속에 보고 있는 탓이다. 물이 산으로 높아지고 산이 강으로 흐르는 것뿐이다. 산과 물은 원래 하나인 것으로, 산은 물이요 물은 산이며, 또한 산은 산이고, 강은 강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 인간들의 삶은 어차피 분별을 떠나지 못하고 그 분별에 묶여 혹은 거기 의지해 살아야 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처지들인 것이다. 다만 자리와 소임이 다를 뿐인 것이다. 어떤 이는 산으로 높아져야 할 자가 있고, 어떤 이는 강물로 흘러내려야 할 자가 있고.....산과 물이 원래는 하나라 하지만, 산이 없으면 강물의 흐름도 못 이룰 것이 아니냐. 산이 제 스스로 지는 세상으로 흘러내릴 강물보다도 아픔의 산으로 높아지는 일로 정해진 지 오래니라. 헛된 분별 속에 그 산을 허물거나 시새우지 말 일이다. 다만 아픔의 산일뿐이 아니냐. 그리고 종당엔 그도 세상으로 흐르게 될 물이 아니더냐.” <194p>
신변의 위협을 피해 산사(山寺)로 피신한 사람들의 피치 못할 사정. 절은 그들을 거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주고 사람들은 조용히 은거하다가 때가 되면 말없이 절을 떠난다. 주인공인 도섭도 같은 처지지만 피신해 온 절에서 자신들의 이익만 추구하는 뭇사람들을 보니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스님과의 대화를 통해 무엇인가 깨달은 도섭은 앞으로 어떤 인연으로 살아가야 할지 고민한다.
<병신과 머저리>, <선학동 나그네> 등 뛰어난 문학적 재능으로 한국 문학계를 이끌었던 거장의 소설은, 부드러운 솜처럼 다가와서 강한 못같이 내 마음에 깊은 인상을 주었다. 2년 전에 운명하신 故 이청준님의 명복을 빌며..
<매우 잘생긴 우산 하나> - 윤흥길
“이봐요, 거기!”
김달채씨는 창문마다 철망이 쳐진 버스 안으로 학생을 마구 밀어넣는 사복들을 향해 느닷없이 목청을 높였다.
“아직도 어린애야! 다치지 않게 살살 좀 다뤄!”
어디서 그런 용기가 솟아나는지 김달채씨 자신도 깜짝 놀랄 지경이었다.
“당신 뭐야?”
옷깃에 비표를 단 사복차림의 청년 하나가 달려와서 김달채씨의 가슴을 떼밀었다.
“나 이런 사람이오.”
김달채씨는 엉겁결에 잠바자락 한끝을 슬쩍 들어 뒷주머니에 꿰찬 우산 케이스를 내보였다. 하지만 상대방 청년은 그런 물건 따위는 애당초 거들떠볼 생심조차 하지 않았다.
“당신도 저 차에 같이 타고 싶어? 여러 소리 말고 빨리 집에나 들어가봐요!” <224p>
평범한 공무원인 김달채씨의 유쾌한 영웅담. 개인적으로 이런 부류의 소설을 좋아한다.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똥배짱과 자기 위안은 얼마나 가련한가. 그러나 그런 똥배짱과 자기 위안 없이 사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비참한가. 나도 ‘매우 잘생긴 우산 하나’ 가 있으면 좋으련만..
이 소설도 사회 풍자와 인물간의 해학이 돋보이지만, 친근하면서도 어렵지 않는 단어와 문장들이 순식간에 소설을 읽게 만든다.
<쇠둘레(철원)를 찾아서> - 김주영
누님이 그랬다. 그녀는 지금의 박형처럼 장텃가 상점 창문 안으로 우수에 젖은 얼굴을 기웃거리면서 자형의 소식을 수소문하고, 먼 고장의 소식을 수없이 되묻곤 하였다. 나는 그런 누님을 멀찌감치 비켜서서 지켜보았었기 때문에, 역시 지금 박형이 하고 있는 것처럼, 상대와 무슨 말을 주고받는지 확실하게 알아챌 수 없었다. 온종일 누님의 뒤를 밟고 다닌다 할지라도 누님과 맞대면을 할 수 있는 시간은 점심때의 떡 가게에서나 아니면 누님이 싸가지고 온 무거리 떡으로 점심을 대신할 때였다. 허기를 채우고 나면 우리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장터의 옹기전 옆에 있는 우물터로 갔고 물을 마시고 나면 누님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나를 본척만척하고 장꾼들의 무리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었다. 자형의 전사통지서는 끝까지 전달되지 않았다.
그분이 전사자로 정리될 수 있었던 것은 누님의 장텃거리 출입을 더 이상은 참고 볼 수 없었던 사돈댁 어른들이 낸 탄원서 때문이었는데 누님이 없는 사람을 없는 사람으로 호적을 정리해서 이루어진 전사통지(戰死通知)를 한사코 믿으려 하지 않았다. 다만 그 전보다 더 진하게 눈 가장자리로 우수의 그늘이 자리잡아갔다. <264p>
상전벽해(桑田碧海)의 시간 속에서 ‘나’가 살았던 ‘철원’은 사라지고 없었다. 남은 것은 이름뿐인 철원. 이제 그곳은 ‘나’만이 느끼고 간직한 낭만과 그리움이 흔적으로만 남아있고, 수익을 위한 지역개발과 흉흉해진 민심만이 가득했다.
발단과 전개는 좋았으나 절정과 결말이 조금 아쉬운 소설이다. 또한 약간 상투적인 느낌도 든다.
<文身의 땅> - 문순태
내가 지난 여름 산동네의 무료진료봉사 때 만났던 노마리아를 다시 떠올린 것도 따지고 보면 내 머릿속이 미국에 대한 생각으로 뒤숭숭한 가운데, 그녀의 온몸을 난도질해 놓은 듯 수치스러운 문신이 버터·햄버거·밀크 등의 영어로 된 낱말과 함께 벌레처럼 징그럽게 꿈틀거렸기 때문이다. 순간 노마리아에 대한 모멸감과 불결한 마음이 사라졌다. 그리고 나에게 미국 놈이 다 되었다고 한 할머니와, 수치스러운 문신을 지우지 않고는 차마 이 땅에 묻힐 수 없다면서 그것을 없애달라고 애원하던 늙은 양공주 노마리아의 얼굴이 자꾸 겹쳐왔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녀를 다시 만날 생각은 없었다. 문신을 수술할 수 있는지 알아봐서 연락해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자책감 때문이 아니라, 그녀를 마주 대했을 때 내 쪽에서 수치심을 느끼는 것이 싫어서였다. 따지고 보면 그녀의 문신에 대해 나까지 수치심을 느껴야 할 이유가 없는데도 이상하게 노마리아를 떠올리면 마치 나 자신이 발가벗은 채 많은 사람들 앞에 서 있는 것처럼 온몸이 죄어들고 심장이 후끈거리는 것이었다. 내가 산동네의 무료진료봉사 이후 노마리아라는 여자에 대해서 잊고 지내온 것도 어쩌면 그와 같은 수치심을 다시 돌이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사실 나는 그동안 노마리아에 대해서 완전히 잊고 지내온 것이 아니라 가능하면 잊으려고 노력한 것인지도 몰랐다. 그녀를 만난 이후 나는 거리에서 미군병사들과 마주칠 때마다 펀듯펀듯 문신으로 얼룩진 그녀의 몸뚱이가 생각났고, 그 순간 내 얼굴이 자신도 모르는 순간에 달아오르곤 하였다. <302~303p>
소설을 읽으면서 여성인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나는 극단적 여성주의자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여성인권에 대한 사회적 시각은 일부 개선되어야 한다고 본다. 역사적으로 여성은 남성보다 많은 피해를 받으며 살아왔다. 남존여비(男尊女卑)사상이 분명했던 사회에서 남성은 여성의 인권을 짓밟았고, 여성을 물건이나 도구처럼 다루고 생각했다. 그리고 정절을 지키지 않는 여성과 지조와 교양 없는 여성은 가족과 이웃, 사회로부터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특히 화냥년, 종군위안부, 양공주 등 성적 노리개로 식민지 남성들보다 더 없는 비참한 생활과 고통을 받았던 여성들을 향한 시선은 더욱 차갑고 냉정하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일부 여성들은 일본과 미국의 강압 통치 앞에 강제적으로 또는 어쩔 수 없이 몸을 팔았지만, 약한 여성을 보호하고 나라를 지켜야 할 힘 있는 남성들은 왜놈들에게 나라를 팔아버렸다. 남성들은 여성들의 사회진출이나 이익에 엄격한 눈으로 통제 가했으며, 모든 책임전가를 여성들에게 돌리려 하는 이상한 습관을 가지고 있다. 신문을 보면 가정폭력의 주원인이 남성이고, 이혼의 주원인도 남성이다. 더구나 지금같이 성범죄가 끊이지 않고, 자극적이고 원색적인 성문화가 판을 치고 있는 실정에서 여성들은 더욱 남성들의 욕구의 표적이 되어가고 있다.
이 소설은 지금의 시대를 사는 나와 같은 젊은이들이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
<못> - 이승우
“당신은 꼭 허겁지겁 도망가는 사람 같애.”
사흘째 굶어 핏기 가신 얼굴로 불쑥 기도원행을 선포하고 일어서는 아내에게 내가 말했다.
“늘 그래. 당신이 기도원에 가겠다고 가방을 챙길 때면 언제나 당신의 얼굴에 두려움의 그늘이 짙게 깔려 있어. 꼭 그 두려움의 추적을 피해 달아는 꼴이란 말이야.”
“거길 올라가면 왜인지 모르게 편안해져요. 모든 것이 가능할 것 같고, 모든 것이 낙관적으로 보이고, 도대체 세상에서 상처 같은걸 입을 티끌만치의 여지도 안 보여요. 헌데, 내려오면 전혀 그렇지 않아요.”
“당신은 환상을 찾고 있는 거지. 현실이 너무 감당하기에 벅차고 무시무시할 땐 그 현실의 무시무시함과 날카로움을 둔화시키는 환상도 필요할 테지. 그 현실의 흉기에 찔려 비명사하는 불운만은 면하게 해줄 테니까. 하지만, 결코 환상이 현실을 대신할 수는 없다는 엄연한 현실인식에 당신의 고민이 있는 것 같군.”
“모르겠어요. 우리가 왜 이렇게 됐죠, 여보?”
아내는 눈물을 글썽이며 나의 품으로 쓰러졌다. 아내의 몸은 검불만큼이나 가벼웠다. 그런 아내의 눈물 앞에서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 나의 무력 때문에 나는 가슴이 아팠다. 나는 그 자리에서 나의 생각을 더 이상 계속 잇지 못했다. 아내여, 환상이 많이 요청되는 시대일수록 그만큼 불행한 시대이다. 환상을 제공하는 장소가 번창하는 시대일수록 그만치 불안정한 시대인 것이다. 환상의 양은 그 현실의 날카로움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현실의 그 날카로움과 무시무시함을 피해 숨어들 환상이라도 가지고 있다는 건, 아내여! 어차피 날카롭고 무시무시한 현실을 살아야 하는 사람에겐 얼마나 다행스런 축복이냐? <343~344p>
휴식 차 월미도에 가게 된 ‘나’는 월미도의 여관방에서 잠을 자다가 문득 시끄러운 소리에 잠이 깬다. 알고 보니 낮에 잠깐 만났던 주인집 아들의 발작이었다. 외아들로 어머니의 지극한 사랑에 힘입어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대학에 진학하여 모두의 기대와 촉망을 받았던 인재였지만, 유신체제 항거 시위의 피해로 정신이상자가 되어 대학교를 자퇴하고 집에서 죄수처럼 지내게 된다. 하나 뿐이 아들이 정신이상자가 되자, 어머니는 기독교에 심취하게 되면서 아들에게 주었던 사랑을 종교로 돌린다. 이와 비슷하게 ‘나’의 아내도 열성적인 신앙생활을 통해 자신이 처한 불확실하고 어려운 현실을 벗어나고자 한다.
종교를 통해 현실을 도피하려는 사람들과 무기력함으로 체념하는 사람들, 그리고 이 모든 현실이 자신의 잘못처럼 느껴져 스스로 자학하려는 사람들. 이 세 부류가 한데 어우러져 기이한 소설이 되었다. 개인적으로 영화로 만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 수록된 대부분의 소설들은 어떤 공상적인 주제보다 그 당시 현실의 문제점을 모티브로 삼아 풍자 내지 비판을 하고 있다. 1987년은 문학가들에게 있어서 그들이 처했던 현실의 고통과 부조리를 외면할 수 없었던 시기였나보다. 그들은 글로써 더 나은 세상을 꿈꿨고, 암울했던 사회를 향해 자신의 생각과 이상을 유감없이 표현했다. 아마 그것이 가장 좋은 항거와 소통의 수단이었을 것이다.
예전에 소설을 한 편을 써보려고 준비는 했었는데, 아직까지 준비에만 머무르고 있다. 생각은 많은데 정리가 안되는 것도 있고, 정리된 것은 왠지 식상한 것 같아 쓰기가 망설여진다. 아니면 천재 문학가 이상(李箱)처럼 어떤 것도 의식하지 않는 강단한 마음이 없어서일까? 이런 저런 생각에 서평을 적다보니 더욱 무거운 마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