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군대가 갈만한곳이라고 생각되나요?

하아.2010.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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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저는 해양경찰에서 25개월 근무하고 전역했습니다.

 

남자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전경중에서는 그나마 쉽다고 꿀빠는곳이라는 시선을 가지고 있는곳입니다

 

사실 그래서 지원했습니다. 군대가기 너무 무서워서. 차라리 욕먹더라구

 

조금이나마 쉬운곳에서 근무해보자구요

 

결과부터 말하면  전경이기에 자유도도 높아서 격주로 외출 두달마다 5박6일의 휴가를

 

받았습니다. 물론. 위의 혜택은 계급차이없이받습니다. 처음엔 어째서 휴가가 이렇게 잦은건지 이해할수

 

없었습니다.

 

해군훈련소를 경찰학교를 거치며 바닷가근처의 경찰서로 배치받았습니다.

 

첨은에는 대부분 배로 발령받기때문에 바다에 배가나가있는이상은 경찰서에서 다른 고참들과

 

신체라 불리며 길면 일주일까지 장난감/샌드백 노릇을했습니다.

 

배에 발령받기전까지는 이유도 모른채 매일저녘 맞았습니다.

 

해경은 국토해양부 하관이라

 

국방부처럼 군인의 피해신고에따라 직속상관하사관이나 직업군인들이 피해를 크게입지않습니다.

 

따라서 경찰관이 전경을 폭행해도 경찰서장선에서 일이끝나버립니다. 그래서 가끔 나쁜직원들은

 

전경을 구타합니다. 자주있는일이니 그냥 넘어가겠습니다.

 

따라서 선임이 후임을 때렸을때 죽지만 않으면 됩니다. 직속경찰관도 이를 보통 묵인합니다.

 

군기를 잡는다는 이유로 매일 머리밖구 자는도중에 동기가 코곤다는이유로 동기 전부 새벽에 구타를 받았습니다.

 

정말 너무 무서웠습니다. 하루에 많이 자면 4시간이었습니다. 잘해주는 선임도 있었지만

 

정말 말도안되게 악마인 선임들이 더 많았습니다. 그곳은 실수가 허용되지않습니다.

 

잘못한줄 모르면 맞고나서 이게 잘못한거구나라고 시정하는곳이 제가 있던곳이었습니다.

 

배로 부임받고 반년가까이 배에서 취사를하구 취사를 면하구 배키를 잡거나 통신기앞에서 당직섰습니다.

 

물론 배로 부임받으니 일이경들은 맞는시간이 따로 있었습니다. 저녘청소가 끝나고 점호시작 30분전부터

 

정말 이가떨리도록 빌었습니다. 그냥 넘어가달라구. 오늘은 그냥 넘어가달라구.

 

내무반장이 뭔가하나 트집잡구 담부터 잘해하고 침소로 들어가버리면. 그때부터 머리껍질 벗겨지도록

 

머리를밖고 고참에게 발로까였습니다. 정말 부끄러운이야기지만은 배를타고 일주일가까이는

 

점호끝나고 침소에서 혼자 울었습니다. 세상이 싫었고 정말 몇번이나 죽고싶었습니다.

 

정말 하루하루 참는게 버거울정도였습니다. 이경때는 고참앞에서 웃지도 가만히 있지도 못합니다.

 

할수있는말은 잘못들었습니다.예알겠습니다.주의하겠습니다.그리고 관등성명 이게 전부였습니다.

 

6개월동안 사적인 말은 공중전화붙잡는 5분. 그시간이었습니다. 여자 편지가오면 여친없는 선임에게

 

까입니다. 부모님에게 편지가오면 차석에게 "니가 공중전화로 징징대니까 걱정하시자나"라며 까입니다.

 

친구에게 편지가오면 과자상자 안보내냐며 까입니다. 정말 억지라 보이실수있겠지만 여기선 이게

 

당연한규칙이었고 저도 그렇게 물들어갔습니다. 배를타고 한달내내 멀미로 아침먹고 토하고

 

점심먹고 토하고 저녘먹고 토하고 밤에도 잠을 설쳐 3~4시간 자는게 전부였습니다.

 

이렇게 일경이되었습니다.

 

후임을 받은 저는 다시 맞기 시작했습니다.

 

후임이 인사를 잘못했다고 맞고. 청소가 제대로 안되있다고 맞고. 후임군기가 안잡혀있다고 맞고.

 

후임이 일 잘 못한다고 맞고. 계속 맞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후임을 절대 구타하지 않았습니다.

 

절대 이런일이 반복되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며 제가 맞고 끝냈습니다.

 

그렇게 육상 파출소로 발령났습니다.

 

아마 파출소에 발령나있을때가 정말 행복했던거같습니다.

 

정말 좋은선임들과 있었고 정말 재미있는 후임들과 생활했습니다. 일이 정말 힘들어도.

 

이곳에서 구타를 당하지 않는것 하나만으로 감사하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선. 직원이 전경을 구타했습니다. 민원전화를 잘못받으면 그날 점호가 끝나고서도

 

전경 전부는 기합을 받아야했고. 파출소장은 자신의 책상이나 방이 제대로 청소가 안되있으면

 

그자리에서 청소를 담당하는 전경을 불러 미친듯이때렸습니다.

 

사무실에는 여경도 있고 하물며 민원인과 수협직원이 있는데 불구하고 파출소장은 손이 올라갔습니다.

 

하지만 정말 힘든건. 여름철 가고가 많은 계절이었습니다.

 

저희구역은 전설의 고향에 나올만큼 기네스에 오를만큼 해마다 사고가 일어나는 곳입니다.

 

소문만 들었지 막상 닥쳤을때는 세상이 뒤집어지는줄 알았습니다.

 

사건은 오전에 일어났습니다. 5인가족이 방파제에 갔다가 파도에 등대만큼높은 파도가 덮치며

 

그 가족들이 전부 물에 휩쓸려 버렸습니다. 결과는 그중 두명만 살았습니다.

 

저에게도 좋지 않은 기억이기때문에 제대로 설명은 못해드리겠습니다.

 

시체를 처음 봤습니다. 그것도 온전한시채가 아닌  그 큰파도에 휩쓸려 방파제에 쌓여있는

 

삼바리 (파도를 파쇄시키는 울퉁불퉁한 바위입니다.) 에 몇번이나 크게 부딪혀서. 물에서 꺼내

 

고무보트에 올렸을때는 허리와 팔이 정상적인각도가 아닌 각도로 휘어져있었으며 옆구리에는

 

갈비뼈라 추정되는 뼈가 표출되어 계속 출혈이 되어 건진지 30초도 안되어 고무보트 전체가 피로

 

물들었습니다. 또 한명은 시신은 온전했으나 입에서 계속 거품을 물고 발작했습니다.

 

어떻게 시간이 지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말 너무 무서웠습니다.

 

아직 살아있음에 불구했지만 만지지도 못했고 시선을 두는것조차 심장이 터질듯이 뛰었습니다.

 

구급차로 옮기고 그날 부터 매일 밥을 제대로 못먹었습니다. 악몽에도 시달렸구요.

 

물론 다른 실종된 시신을 찾기위해 밤낮으로 해안가와 방파제를 순찰했습니다.

 

파출소 전경인원이 부족했기에 최소 인원을 내비두고 나머지 전경은 시체를 찾기위해 계속해서

 

순찰했습니다. 물론 경찰관들은 전경의 수면시간을 배려해주지 않습니다. 시체를 찾을때까지

 

내무반장을 제외한 무든 전경은 하루에 4시간 자는게 전부였습니다.

 

그리고 결국 찾았습니다. 5주째 되는날이었습니다. 방파제 어민의 신고로 갔을때는

 

새벽에 떠밀려온듯 싶었지만. 시체 근처 과장되게 말하면. 방파제 절반도 안걸었는데.

 

시체부폐되는 냄새가 진동을 했습니다. 가까이 걸어갈수록 정말 심했습니다.

 

냄새가 심해질수록 공포는 더해갔고 발길은 정말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코는 냄새에 민감하니 금방 익숙해질꺼야 란. 생각은 착각이었습니다.

 

어지러울정도로 역한 냄새를 참으며 그렇게 시신을 끌어올려 병원에서 올때까지 기달렸습니다.

 

시신의 모습은.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1한달이 넘도록 바닷물에 있던 익사체라 하면 이해하실꺼라봅니다.

 

그날이후 한달가까히 밥은 먹고나서 토했구 새벽마다 가위에눌려 제대로 자지 못했습니다.

 

전역한 지금까지도 고기상한냄새를 맡으면 헛구역질부터 나고 그때

 

기억이 되살아나 그날 컨디션 전부 망쳐버립니다.

 

이렇게 시신을 건진적이 총 6번입니다. 물론. 다른사람들은 익숙해진다지만

 

저는 절대 익숙해지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시신을 건진날부터 한달동안 헛구역질과 가위에 눌렸으며

 

유가족들을의 눈물을보며 죄책감과 우울증에 시달렸습니다.

 

원래 담배를 태우지않았지만 이곳에서 담배를배웠고.

 

사고가 일어난날이면 하루에 두갑가까히 태우며 마음을 달랬습니다.

 

언젠가는 후임한명이 목을매달았습니다. 군인이였다면 직속상관의 책임을 묻겠지만

 

이곳은 자살한 전경을 죄인으로 모는 곳입니다.

 

그 후임역시 잦은구타와 외로움에 견디지 못한거겠죠. 정말 안타깝고 슬펐지만.

 

정말 부그럽지만 한편으로 그 후임이 잠깐이나마 부러웠습니다.

 

유언에 이렇게 써놨더군요

 

그곳에가면 아무도 자길 괴롭히지 않을꺼구 아무도 자길때리지않을꺼구

 

이토록 외롭지도 않을꺼라구.

 

보고나서 이틀내내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못했습니다.

 

 

이게 가장 육해공전경중 가장 꿀빠는 곳이라고 여기는 해경입니다.

 

제가 있는곳이이러한데. GP나 백골부대 해병대  이런곳을 상상하라면 전 그곳을 가느니 차라리

 

한국을 버리겠습니다.

 

제가 나약해서 그런것도 있고 그곳에서도 상상할수없을만큼의 시련을 참아내는 전역자들도 있고

 

전 그들을 존경스럽게 생각합니다.

 

여성분들...

 

맞습니다 살인기술을배우는 곳입니다. 북한군이라고 생각하며 방아쇠를 당기라고 강요하는곳입니다.

 

맞습니다 군인은 정말 더럽고 단순하고 변태들입니다. 상관의 명령에 절대복종해야하며 아이돌을보며

 

그때잠시 외로움에서 벗어납니다. 하지만

 

군인은 아니 군대는

 

당신들이 웃으며 농담따먹는 어조로 말할수 있는 곳이 절대. 아닙니다.

 

당신이 편협적인 시선을갖고 비난할수있는곳이 아닙니다.

 

전역자들이 군대얘기하는것을 벼슬달았다고 생각하지 말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건 절대 벼슬이 아닙니다. 족쇄입니다. 사슬입니다.

 

그냥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남자들이 군대 다녀와서 아 난 이랬지 난 어땠지 하는 남자들 보면.

 

불쾌하시더라두. 한번 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건 그들만의 아무것도 보상받지 못한것에 대한 푸념입니다.

 

가산점? 그딴건 필요 없습니다. 그들의 푸념에 당신의 진심어린 위로한마디가

 

우리들에게 정말 간절한 보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