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구한 우리가족사 한번 들어보실래요?

힘내자우리가족2010.08.11
조회1,269

스물다섯살 먹은 처자입니다.

2년 휴학을 하고 아직 졸업을 못했습니다.

2년 휴학 동안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안 한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남은건 하나도 없네요.

그저 세상의 쓴맛만 보고 사는게 힘든거구나 하는 것만 배운것 같습니다 .

 

누가 읽어주길 바라는 것은 아닙니다. 길어질지도 모르구요.

하지만 세상에 나보다 더 힘든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또 힘든 우리 가족을 보면서 위안을 삼고 힘내서 살아야 겠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을 지도 몰라 힘내자고 글을 씁니다.

 

우리 다들 힘내서 살아요.

 

아빠, 엄마 우리 형제 자매들 여섯가지 모두 여덟식구.

중학생 때가지 할머니 할아버지와 시골에서 10식구가 함께 살았습니다.

부모님 부양하고 자식 여섯 키우시느라 아버지 어머니도 참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간단히 정리를 해 보면

 

농사짓고 삶. 농사로 열식구 먹여살리시느라 고생하신 부모님.

집터가 안좋아서 창고를 개조한 산 밑의 집으로 이사.

하지만 그 해, 태풍이 불어 집 붕괴.

오갈데 없는 우리 교회에서 생활하다 아버지가 주택대출? 받으셔서 손수 집 지으심.

 

토마토 하우스, 고추 하우스. 애호박 하우스, 벼농사, 밭농사

토마토 하우스가 처음 잘 돼 평수를 늘림

그러고 나서 다음핸가 1.5키로 토마트 한박스 100원으로 추락.

물론 빚만 남긴 시설 하우스들.

대출 받아서 지은 하우스들이 망하면서 원금을 갚지 못해 이자는 눈덩이 처럼 불어남.

할머니 위암, 할아버지 지병으로 병원비 감당 안됨.

 

그러다 2002년 아버지 사고.

이앙기로 모내기를 하시고 돌아오시던 중 안전장치를 해놓지 않은 농로공사 현장에서

추락.

이앙기에 깔려 골반, 허벅지 뼈 골절.

시골 종합병원 입원. 수술 성공적? 하지만 깨어나지 않으심.

알고 보니 수술 후 중환자실에 있는 동안 산소호흡기에서 산소가 공급이 안됨.

어이 없음.

성공적이라던 수술도 골반뼈, 허벅지뼈에서 나온 지방덩어리들이 폐로 흘러들어가 혼수상태.

대학병원으로 옮겨 한달만에 겨우 살아나심.

현재 수술한 다리 후유증으로 철심을 박으신 왼쪽 다리 저심.

확연하게 차이가 나는 두 다리의 두께.. 장애판정 받으심..

 

아버지 다리가 다치시고는 도저히 농사일이 안됨.

그래서 읍내에 어머니 조금만 치킨집. 월세 60 내기 빠듯.

그 해 조류독감 발생. 치킨 집 빚만 잔뜩 앉고 망함.

여린 엄마가 치킨으로는 생활이 전혀 안되자, 시골의 생 닭을 잡아 파시면서 우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함..

 

아버지는 아는 분의 소개로 자동차 보험일을 하시지만 시골이라 한정적.

결국 장거리 트럭 운전. 하지만 그것의 결국 여의치 않아 덤프트럭 기사로 취직.

하지만 회사는 부도가 나고 월급도 못 받으시고 결국 또 주저 앉음.

 

제대로 된 수입이 없는 생활이 계속 되면서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남.

 결국 많던 논, 밭, 땅, 아버지가 손수 지으신 우리의 집.. 경매로 다 넘어감.

결국 아버지 신용불량자. 빚은 어머니에게로. 마지막 선택. 파산신청...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집을 보러다니던 그 때를 잊을 수가 없음.

아는 분이 학생들에게 내어주던 일년에 150하는 한칸짜리 방..

어느 동네의 마을 회관.. 이런 곳에서 살아야 한다는 현실이 슬퍼 많이 움.

 

하지만 고마운 친척들 덕분에 조그만 18평 짜리 임대 아파트 얻을 수 있었음.

 

현재 어머니 시장에서 반찬을 만들어 파심.

어머니 아직 젊으심. 근데 농사일이다 뭐다 일을 너무 많이 하셔서 무릎 연골이 닳아짐.

무릎에 물이 차고 뼈끼리 부딪쳐 그 그통을 말로 할 수 없음.

제대로 서있기 힘드신데도 종일 김치 만들어 파심..

아버지는 난생 처음으로 가족들과 떨어져 인천으로 가셔셔 트럭 운전 하심.

절뚝거리는 다리를 주물러 가시며 잠을 반납하고 밤새 운전하심.

아무리 어려워도 가족들이 떨어져 본적이 없는데, 터미널에서 인천가는 버스에 올라타는 아빠를 보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름..

 

언니는 몇년 동안 돈 번거 가족들한테 모두 바치고 열심히 경찰의 꿈을 위해 공부중.

동생 역시 자신이 학비 벌어가면서 4년 학교 다니고 졸업 후 직장생활 중.

나머지 동생들 아직 학생. 나도 학생..

그냥 무작정 엄마,아빠 한테 죄송스럽고 어서 빨리 성공해서 다 갚아 드리고 싶음.

 

언젠가 엄마가 하신 말씀이 생각남.

 

우리 딸들, 나중에 결혼하는데 엄마 아빠가 다들 다리병신이라 절뚝거려서 부끄러워서 어쩌니..

 

이 말에 얼마나 울었는지 모름.

죄송스럽고 죄송스러운 마음 뿐임.

우리 때문에 고생하시다 이렇게 된 부모님. 정말 꼭 효도할꺼임.

 

요즘 모두들 살기 힘들다고 함. 나도 역시 살기 힘들어서 미치겠음.

죽고 싶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님. 쥐꼬리 만큼 벌어서 집에 가져가도 밑빠진 독에 물붓기 같아서 허무한적이 한두번이 아님.

 

하지만 가족들 때문에 힘내서 삼.

정말 사랑하는 우리 가족들..

꼭 여덟식구가 함께 행복할 날이 올것임.

 

집도 잃고 가진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지금도 예전 우리가 지은 집이 있는 동네를 지날 때면 마음이 아프고 눈물이 납니다.

하지만 그 곳에서 또 다른 가족이 예전 우리 가족들이 그랬던 것처럼.

행복 하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집을 잃고 돈을 잃었지만 가족간의 정은 더욱 돈돈해 진 것 같습니다.

 

세상의 모든 부모님들 화이팅.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