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미안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 2010.08.12
조회3,564

네이트 판에 처음으로 글을 남겨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경기 시흥에 사는 23살 건장한 남자 이강현입니다.

제가 이렇게 글을 남기게 되는 이유는

평소 아버지께 하지 못했던 말을 하고 싶은 마음에 이렇게 글을 남겨봅니다.

 

아버지는 제가 중 1 되던 해에 불편하신 다리 수술을 받았지만

생각만큼의 큰 성과를 이루지 못하여 크나큰 후유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수술 때문에 20여년 동안 다니던 공장을 그만두고

집에 계시며 한 잔, 두 잔 술을 드시게 되었고

1년 뒤, 어머니와 조금은 큰 식당을 차리게 되었습니다.

 

기존에 있던 식당을 리모델링하고 개업해서 그런지 2년간은 장사가 정말 잘되고

단골 손님이 생길 정도로 식당이 잘되었습니다.

가게를 인수하며 지었던 빚을 모두 청산하고 오순도순 행복하게 살았지요.

 

그러던 어느 해부터인가, 손님이 조금씩 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음식의 맛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이유없는 먹구름이 몰려왔습니다.

식당이 잘 되지 않은 스트레스와 수술 후유증으로

드시던 술이 늘어나 결국 소위 말하는 '알콜 중독'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하루 4병 이상 술을 드시며 저와 동생, 그리고 어머니를

밤낮없이 괴롭히셨습니다.

어렸을 땐 한없이 두렵던 아버지가

제가 차츰 나이를 먹고 고등학생이 되자

무서움보단 증오가 가득차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 쉬는 시간에

전화가 울려 받아보니 어머니의 전화였습니다.

아버지가 병원 응급실에 실려갔으니 빨리 오라고 하셨습니다.

얼마나 술을 마셨기에 응급실까지 실려갔을까? 하며

불평불만을 터트리며 조퇴증을 받고 병원으로 갔습니다.

 

병원에 도착해보니 중환자실에 들어갔다는 소리를 듣고는

순간 벙찐 얼굴로 어머니를 바라봐야만 했습니다.

간에 이상이 생겨 혈액순환이 되지 않아

목에 있던 동맥이 터져 피를 토했다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

 

마음의 준비까지 하라는 의사의 입을 찢겨버리고 싶을만큼

듣기 싫었으며 괜시리 눈물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괜찮다며 무슨 일 생기면 전화할테니 얼른 집에 가서 쉬라는 어머니의 말에

더이상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볼 용기가 없어 집으로 갔습니다.

 

집으로 가며 핸드폰 사진에 찍혀있던

아버지의 환한 웃음이 그 땐 어찌나 슬프게 보이는지

증오스럽고 미운 아버지였지만 제발 살려달라며

눈물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다음 날. 정말 다행스럽게도 아버지는 의식을 되찾으셨고

놀랍다는 의사의 말이 어느덧 천사의 말처럼 곱디 고왔습니다.

 

그 이후로 아버지는..

피를 토한 자신의 모습에 놀라 술을 일체 끊게 되셨습니다.

그렇게 저희 가족은 이제서야 행복하게 살 수 있구나. 하는 마음으로

다시 새출발을 했습니다.

 

잠시 닫았던 식당을 열고 열심히 일을 하며 몇 년후,

전 전문대 졸업까지 마치고 직장을 구해 열심히 일을 하고 있습니다.(현재)

 

그렇게 행복만이 찾아올거란 기대로 열심히 살던 저희 가족에게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중환자실에 간 이후로 정기적인 외래검사를 받으시던 아버지께 들리는 소리.

 

'간암'..

부모님끼리만 알고 계시고 몇 개월 뒤에야 알게 된 저는

참 어이가 없었습니다.

행복하게 살아가려는 가족에게 시련을 주는 신이 밉고 또 미웠습니다.

 

그래도 아버지는 살아야겠다는 그 의지 하나만으로

그 고통스러운 항암치료(고주파, 색전술)를 견뎌내며

웃음을 잃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암이라는 녀석은 없애면 또 생기고 없애면 또 생기는

몹쓸 녀석이었습니다.

 

결국 의사의 최선책이라는 것은 '간 이식 수술' 뿐이라고 했습니다.

엄청난 수술비에 대한 부담보다 누구의 간을 이식받냐 가 가장 큰 고민이었습니다.

KONOS(장기이식센터)에 등록을 해도 운 좋으면 바로지만

대부분 몇 년 이상 지난 후에도 아니 그 이상의 시간에도 받기 힘들다는 것을

잘 알기에.. 더욱 절망적이었습니다.

 

그러다 친척 형님(아버지의 조카)께서 사정을 알고

자신의 간을 드리겠다며 오셨습니다. 너무나도 고마운 마음에

이것저것 다 챙겨드리며 입원을 하였는데

정말 슬프게도 형님의 간이 작아 수술을 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절망적인 가운데도 희망이 생겨났는지

제가 아버지와 혈액형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모 자식 간의 장기 이식은 성공률이 높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고 하여

무작정 병원을 찾았습니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간 이식을 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지만

사실 전 120kg에 육박하는 전형적인 고도비만이었습니다.

예상대로 '비만성 지방간'이 발견되어 살을 빼지 않으면

간 이식은 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제 몸도 망가질거라고 하셨습니다.

 

정말 죽을 둥 살 둥. 아버지를 살려야겠다는 생각에

지난 1월부터 6월까지 120kg 에서 어느덧 95kg 까지 살을 빼버렸습니다.

아직은 불분명하지만 5월에 2차 간 조직검사를 했습니다.

 

6월이 되자 검사 결과가 나왔고 천만다행으로 살이 많이 빠져

수술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다만 조금의 위험성이 있다고 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리곤

가족들과 수술 날짜만을 기다렸습니다.

 

수술이 끝나고 몸이 회복하면 고향으로 내려가

집 하나 얻어서 닭도 키우고 개도 키우고

채소도 가꾸며 1~2년 정도 요양을 하고 싶다던 아버지.

 

직장에 병가를 내고 6월 중순에 병원에 입원을 하였습니다.

이것저것 많은 정밀검사를 하며 컨디션 조절을 하고

평상시 서로의 일 때문에 식사조차 못하던 아버지와 저는

오랫만에 일주일동안 아침, 점심, 저녁 3끼를 함께 했습니다.

 

입원한 지 8일 째 되던 날.

드디어 수술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수술에 들어가기에 앞서 대기실에서 의사들끼리

인수인계를 하는데 어찌나 긴장되고 춥던지요.

먼저 수술실에 들어가신 아버지가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아버지를 비롯하여 저희 가족은 행복한 미래를 꿈꾸며

아버지와 저는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

.

.

.

.

 

그렇게 14시간의 시간이 흐르고 수술실에서 나온 저는

어머니와 간호사들이 깨우는 통에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도

아버지의 수술여부가 걱정이 되어 어떻게 되었냐고 물었습니다.

 

아직 수술중이라는 어머니의 눈을 바라보며

걱정되는 마음으로 마취에서 깬 후, 다시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이 되니 조금은 정신이 돌아오고

옆에 계시던 어머니께 아버지 수술은 어떻게 됐냐고 물으니

새벽 4시경에 수술이 끝나 지금 무균실에 있다고 했습니다.

 

다행이라는 생각에 안도를 하고 있는데

어젯밤부터 목에서 걸리적 거리던 살덩이가

귀찮게 목을 막아오는 겁니다.

간호사들을 불렀지만 그들조차도 이게 뭔지 모르겠다며

핀셋으로 이리 누르고 저리 누르며 사람을 짜증나게 했죠.

 

그러던 중, 의사가 들어와 정맥 주사를 맞자고 해서

맞는데 너무나 아팠습니다. 그러다 하늘이 노래지며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 살덩이 같은 건 수술 당시 기도삽관을 했을 때

부어오른 목젖이었고 그 목젖이 기도를 막아 호흡곤란을 일으켰습니다.

 

다행히 중환자실에 들어서자 정신을 차렸고

아버지가 계신 무균실에서 고작 10m 가량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코와 위까지 연결된 호스 때문에 물조차 마시지 못해

의사에게 사정사정 해서 결국 호스를 빼내고 물을 마시게 되었습니다.

 

정말 살 것 같은 마음으로 옆을 보니 아버지가 무균실에 누워계셨습니다.

평온하게 주무시는 아버지의 모습에 안도를 하며

면회 온 어머니랑 이야기를 하던 중,

어머니가 말씀하셨습니다.

 

수술 당시 부어오른 장기 때문에 배를 닫지 못한 채

임시방편으로 인공 테이프로 우선 닫아놓았다며

가라앉은 후에 다시 수술에 들어갈거라는 이야기..

걱정되는 마음을 뒤로 한 채, 잠에 들려던 찰나..

 

 

 

2010년 6월 25일 금요일 새벽 1시 20분..

아버지는 저희 가족을 남겨둔 채

평온한 모습으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고등학교 때 마음의 준비까지 하라던 의사에 말보다

더욱 슬픈 아버지의 사망 선고.

 

그 모든 소리를 들으며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흘리며

통곡하는 제게 사망선고를 하던 의사는 다가와

미안하다는 말을 연신 하며 좋은 곳 가셨을거라며 위로를 해줍니다.

 

중환자실에 간 후, 180도 달라진 아버지의 모습에

마음을 열고 정 주고 정을 받으며 그렇게 아버지와

이야기꽃을 피우며 행복했던 시간이 끝이 났습니다.

 

저 또한 수술을 했기에..

아버지의 장례식장조차 찾아가지 못하고

아버지의 입관식 역시 지켜보지 못하고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 앞에 묻어지는 아버지의

그 마지막 모습조차 저는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저.. 소리로만 아버지의 임종을 들을 수 있었고

의사와 간호사들의 급박한 소리에..

어머니와 동생의 절규.. 그냥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

.

.

.

 

지난 7월 31일.

아버지의 생일이었습니다.

평소 생일 선물 제대로 해준 것이 없는데

이 날마저도 아무것도 해드릴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를 보내드린 후 처음으로 찾은 아버지의 보금자리.

모든 게 낯설게만 느껴져 저 산소가 우리 아버지의 묘인가?

싶을 정도로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습니다.

 

수술 이틀 전에 금식 때문에 마지막 저녁식사를 하던 때..

"고맙고 미안하다.." 라는 짧은 말을 하셨습니다.

아버지가 제게 해주신 생애 마지막 말이었습니다..

 

 

 

아버지.. 아버지를 떠나보낸지 어느덧 한달 반이란 시간이 흘렀어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커져만 갑니다.

단지 아버지 한 분이 계시지 않을 뿐인데.. 우리 가족에게는 많은 변화가 있었어요.

아버지의 사랑을.. 이제서야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23년 살아오면서 아버지께 단 한번도 해드리지 못했던 말들이

이렇게 한이 되고 슬플 줄은 몰랐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아버지께 꼭 전해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아버지.. 정말 죄송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마지막으로 정말 사랑합니다..'

 

 

모든 네이트 회원 여러분.

영원할 것이라 생각하며 다들 소흘하셨죠?

이 세상엔 '영원'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나봅니다.

나중에 평생 후회하지 마시고..

지금 한번 우리 가족을 바라봐 주세요..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계시는 우리들의 '아버지'

남편과 자식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시는 대한민국 슈퍼 아줌마 '어머니'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일들이 힘들고 짜증나더라도

그 뒤에서 모든 것을 지탱해주시는 우리 부모님께

한번만이라도 사랑한다는 말을 전해주셨으면 합니다.

 

저 역시도 이런 글들을 수없이 많이 봐왔고

수많은 TV 프로그램을 봤지만.. 직접 겪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좋은 곳에 취직하여 많은 연봉으로 돈과 명예를

가지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 아닙니다..

내 곁에서 나만을 바라봐주고 나만을 생각해주는

우리 가족..

그 어떤 행복보다도 더 크고 값진 것을 가지고 있기에

먼 곳에서 행복을 찾기보단..

가깝고 내 곁에 있는 행복을 찾는 것이 더욱 아름다울 거라 생각하며

길고 길었던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