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Q84 손을 맞잡고, 이 세계를 걸어나가야 돼.

안해영2010.08.13
조회437

무라카미 하루키.

 

시대의 상징 같은, 이 이름은 이제는 식상하리만큼 자주

사람들 입과 미디어에 오르내리는 이름이 되었다.

 

나도 한 때 비주류라는 묘한 열정의 공기에 휩싸여

어떤 책을 읽느냐가, 나를 결정한다는 생각에 얽매여 있을 때

그의 책을 들고 겉 멋이 (잔뜩) 들었던 10대였다.

 

순수하게 와닿던 그의 강렬했던 생각들은

 

세월의 때가 묻고, 이미 하루키적인 삶을 일부나마 살아버린

지금의 나에게는 그저 모던하고 깔끔한 문장!

 

삶을 표현하는 하나의 기교로밖에는 와닿지 않는다.

 

그리고, 이제서야 나는 콩깎지를 벗고

하루키 빠에서 한 걸음 떨어진 거리에서 그를 바라볼 수 있는듯..

 

 

1Q84

 

가벼운 연애소설처럼 읽히는 소설.

어느 순간엔가 운명처럼 딴 세상으로 접어든 남녀가

서로를 갈구하다가(수십년 동안) 결국 자신들을 끌고 온 운명처럼

함께 손을 잡고, 딴 세상을 걸어나간다는 줄거리.

 

재미있는 여러 요소들이 등장하고

현실과는 다른 딴 세상이다 보니

달도 2개고, 리틀피플도 살고

희한한 방법으로 수태(임신)도 된다.

 

결국, 함께 손을 맞잡고 걸어나가는 이 커플..

기존의 하루키 소설과 딱 맞아떨어지는 결론이면서도

조금은 현실적인 느낌이랄까..

 

댄스댄스댄스 에서 그들은 계속 춤을 추면서

세상을 이겨나가는 힘을 얻어야한다고 한다.

 

해석이 분분하겠지만, 난 약간의 현실 도피적인

하루키적인 결론이라고 생각했다.

 

이번 1Q84 의 결론은 조금 다르다.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고, 참아내며

꾐과 거짓 혹은 위협 속에서

운좋게도 운명처럼 힘을 내더니

결국 그 세계 전체를 부정(탈출)할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한 남녀듀오를 결성! 보여준다.

 

뭐랄까.. 좀 더 건설적인 결론이랄까.

그래서.. 좀 더 맥빠지는 하루키랄까.

 

스토리에 흠뻑 취해있다 깨어나보니

명백한 사기라는 생각이 더 분명해지는 느낌.

 

재미있고, 볼만 하나

개인적으로 하루키에 대한 변화에 적응 못하는 1인이 되고만

그렇고 그런 결론을 가지게 된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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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해서, 하루키를 둘러싼 사고의 배경들을 곱씹어본다.

 

사람이란 늘,

자신이 가장 치열했던 시절을 사고적 배경으로 깔고

사고를 혹은 생각을 시작하게 마련이다.

 

하루키에게 1984년은 전공투 이후 세상이 변해갔던

일종의 상징적인 해가 아니었나 추측해본다.

 

첨예했던 사상의 대립 혹은 무장이 사그라지고

자유란 이름하에 자본주의가 세상을 집어삼키기 시작하고

 

치열한 정신의 소유자들의 일부는

현실과 동 떨어진 자율적 커뮤니티를 지향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안에서의 내분을 또 겪고

종교적인 색채를 띄며 점점 시대와의 결탁을

그리고 시대와의 거리를 넓혀간다.

 

자본주의의 가장 큰 매력 중에 하나는

자본이 곧 힘이라는 것이고, 이를 소유함으로써

거의 완전한, 독립적인 자유를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일 거다.

 

하루키는 전공투 이후의 맥빠진 분위기를 초기작부터

줄기차게 그리고 다양하게 그려왔다.

 

믿음이 사라진 세상이랄까..

 

당구도 술도 섹스도 인생의 한 부분도 채워주지 못해

걍 자살을 해버린다거나,

 

양도 쫗아보고 세계의 끝을 산정해도 보고

우주 밖을 떠돌고 있는 죽은 스푸트니크도 끌어와 보지만

결국 계속 춤을 추면서, 결국 살아갈 수 밖에 없다는

허무와 마주하고(혹은 슬며시 비켜서서) 시간의 흐름을

기다린다는 느낌이었다.

 

삶을 바라보는 방법 중에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하기 힘든 것이 응시. 관찰. 파악.

그리고 지키기 힘든 결론도 가만히.. 참고 기다리는 것.

 

살아야 하기에 삶을 살아가는 실존적인 태도와

적당히 아무렴 어떠냐.. 사상도 없는 지들 맘대로의 세상인데인..

무정부적인 마인드로 십여년 니나노 결론의 소설이었다는 말.

 

어느 부분에서인지.. 하루키는 조금씩

희망을, 꿈을 그려보고 싶었던게 아닐까..

 

쉰 정도의 인생을 살아보면서,

허무와 지겹도록 마주하면서,

삶이 이게 다가 아니라는 헛된 조그마한 희망이라도

뿜어내보고 싶었던게 아닐까..

 

내가 하루키라면 좀 더 그럴듯한 논리로

멋있고 세련된 삶의 태도를 논하겠지만,

 

대충 정리해보면..

어쨌든 살아보니, 뭔가 있더라.

 

허무와 고독 그리고 외로움을 즈려밟는

삶의 본질적인..

 

그.. 뭔가 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