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7월 18일 사적 제317호로 지정되었으며, 충주시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면적은 80,454㎡이며, 하늘재[寒喧嶺]·계립재[鷄立嶺]·새재[鳥嶺]에 둘러싸인 험준한 산골짜기 북쪽 기슭에 북향하여 있다고 합니다. 창건 연대나 내력은 물론 사원의 정확한 명칭도 알 수 없으나, 고려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짐작된며.
길이 9.8m, 너비 10.75m, 높이 6m의 인공으로 쌓은 석굴식(石窟式) 법당의 중앙에 대좌를 두어 석불입상을 봉안하고, 측면과 후면 석벽 중앙은 감실(龕室)처럼 만들어 작은 불상들을 부조하여 장식하였다. 상부에는 목조건물을 지어 천장을 만들었던 것으로 짐작되며, 이는 토함산 석굴암의 양식을 계승한, 고려시대의 유일한 석조·목조 구조의 반축조(半築造) 석굴사원으로 평가되고 있다. 절터 안에는 오층석탑(보물 95), 석불입상(보물 96), 삼층석탑, 석등, 귀부(龜趺), 당간지주, 불상대좌 등의 석조 유물이 있다. 이들 유물의 조형수법으로 보아 고려 초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북쪽으로 지형이 낮아짐에 따라 계단식으로 대지를 조성하여 사원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1977년부터 연차적으로 발굴조사가 실시되어 사원의 옛 모습이 밝혀지고 있다. ‘미륵당초(彌勒堂草)’라 새겨진 기와, 연꽃무늬 막새기와, 금동제 귀면(鬼面) 등이 출토되었습니다.
날씨가 좋아서 인지 많은 사람들이 미륵사지를 찾더군요.
그래 나만 솔로야 ㅋㅋㅋ
초록 이끼와 작은 연못이 너무나 잘 어울리더군요.
괴산미륵리석불입상(보물 96)과 괴산미륵리오층석탑(보물 95)의 가운데 있는 8각 석등으로 석등의 조형미가 뛰어난 수작으로 꼽히며. 높이는 2.3m랍니다.
지대석과 연화대석은 한 돌로 조성되었는데, 하대석에는 8잎의 연잎이 새겨졌으며 석등의 기둥이 되는 간주석(竿柱石)은 아무런 장식이 없는 8각 돌기둥이다. 간주석 위에 올려진 상대석에는 아랫면에 각형(角形) 1단을 두었고 8잎의 앙련(仰蓮)을 새겨졌으며. 화사석은 8각 중 4면에만 화창(火窓)이 뚫려 있습니다. 옥개석의 추녀선은 약간 위로 향하고 있으며 꼭대기에는 8각의 상륜 받침 위에 연봉형 보주(寶珠)가 조각되어 있네요.
자연석의 바위돌을 거북모양으로 다듬어 비석을 바치는 귀부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 비석은 남아있지 않아 정확한 용도를 알 수는 없지만 비석을 꽂은 홈이 남아있습니다.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일반적인 귀부의 형태와 다르고 매우 독특한 생김새를 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등면에는 거북껍질의 문양은 전혀 새기지 않았고 좌측 등 경사면에 새끼 거북이 2마리가 새겨져 있어요.
고려시대의 절터인 중원 미륵리 사지에 있는 석조 불상이입니다. 의자에 앉은 모습이라 의상(倚像)이라고 부른다. 판석 형태의 석재 한쪽 면에 부조로 조각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마모가 심하고 색이 검게 변해 형상이 뚜렷하지는 않다. 크기는 높이 95cm, 폭 68cm, 두께 50cm이다. 불상의 얼굴은 갸름하고, 목에는 세 겹의 주름살로 약하게 삼도(三道)를 표현했다. 머리에는 보관을 쓰고 그 장식이 양쪽 귀를 감싸며 어깨까지 늘어뜨려져 있어 보살임을 알 수 있다. 옷은 왼쪽 어깨에만 걸치고 오른쪽 가슴은 드러냈으며, 가사의 형태나 옷 주름은 마모가 심해 잘 보이지 않는다. 손은 몸에 비해 매우 긴데, 왼손은 구부려 가슴께까지 올렸고 오른손은 직각으로 구부려 배꼽 위에 올렸다. 다리는 의자에 앉아 무릎을 구부리고 있으며, 오른쪽 다리를 왼쪽으로 구부리고 있어 신체 구조에 맞지 않는 어색한 자세이다. 상체와 하체의 비율이 맞지 않아 다소 기형적이나 전체적으로 안정되어 보인다. 의자는 사각형의 탁자 형태로 네 모서리에 긴 다리가 달려 있다. 이런 의자에 앉아 오른쪽 다리를 구부려 반가좌를 한 모습은 다른 불상에서 찾아보기 드문 경우이다. 미륵리 사지는 고려시대에 크게 번창한 사찰로 미륵대원(彌勒大院)이라고도 부른다. 이 당시는 인공적으로 석굴을 조성해 석불입상을 봉안했는데, 이 불상은 석재의 뒷면이 대충 다듬어진 것으로 보아 석굴의 벽면을 장식한 면석(面石)의 하나로 보인다. 당시 석굴이 구체적인 설계에 의해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는 자료이며, 삼국시대반가사유상의 자세를 한 특색 있는 불상이란 점에서 가치가 있다. 2005년 5월 6일 충청북도 문화재자료 제47호로 지정되었다.
길이6m가령의 이 석탑은 기단 하부가 파묻혀 구조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탑신부는 방형 중층 양식이고요. 중석(中石)은 자연석에 가까운 거칠은 방형석으로 우주(隅柱:모서리 기둥)나 탱주(撑柱)의 표시가 없습니다. 갑석(甲石)은 좁은 2개의 판석으로 덮어, 밑에는 형식적인 부연(附椽)만 있고 윗면은 경사가 뚜렷하며. 탑신부는 초층 옥개석만 2장이고 옥신이나 다른 옥개석은 모두 1매석인데. 각층 옥신에는 옥신의 나비에 비해 좁은 우주의 형상을 새겨 형식적인 느낌을 주며, 각층 크기의 줄어든 비율도 고르지 않아 어설프고 간략해 보이더군요. 옥개석은 일반형 석탑에서 옥신과 옥개석의 비례를 무시하고 좁아져서 미관을 해치고 있더라고요. 받침은 각층 5단이나 추녀가 너무 짧아 6단 받침으로 착각되더군요. 추녀 밑은 수평이고 옥상의 경사는 급하나 전각(轉角)의 반전(反轉)은 거의 없었고요. 상륜부(相輪部:탑의 맨 윗부분)는 노반(露盤)·복발(覆鉢)이 남아 있는데, 노반은 5층 옥개석의 크기에 비하여 6층 옥개로 볼 만큼 크며, 복발은 조각이 없는 반구형이다. 정상에 철제 찰간(擦竿)이 남은 것은 드문 예로 중요시된다고 하더라고요 ㅋㅋ
미륵리를 지키는 견공 자는데 사진 찍으니 일어나더군요.
너도 참 귀찬겠구나 싶더라고요.
중원 미륵사지(사적 제 317호)의 창건후에 지리적 여건과 역원제도의 정비로 동쪽에 별도로 역의 기능을 담당하는 원을 세우고 미륵대원 이라 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삼국유사에 미륵대원계립령동령야(彌勒大院鷄立嶺東嶺也) 라 한 기록과 일치하고 있다. 이 원터는 계립령(지금의 하늘재)길과 연관되어 고려초기에 설치되어 운영되다가 조선시대에 조령(일명: 새재)에 관방시설이 완비되면서 이곳 원터는 점차 그 기능을 상실해 갔던 것으로 보인다. 건물지에 대한 조사결과 2차에 걸친 중수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며 건물지는 口回口자형의 구조로 가운데에는 말을 묶어 둔 마방 시설을 두었던 것으로 보이며 그 주변의 건물터는 나그네 숙소 및 관리인이 기거했던 건물터의 구조가 남아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곳은 사찰과 원터의 기능이 같이 이루어진 고려초기 중요한 유적지로 평가받고 있다고 합니다.
미륵리사지&수안보 주말 당일여행 1편
저번주 토요일 이었지요
앗 오늘은 여행가는 날인데 ㅜㅜ
제맘과 다르게 새벽부터 번개가 치고 비가 억수같이 내렸답니다.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출발한 수안보 당일여행
차를 타고 가다보니 어느새 비는 그치고
구름 사이로 햇빛이 비추더군요.
비가 왔으면 좋으련만
날씨가 맑아지자 솔로의 한탄이 다시 나오더군요 ㅜㅜ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에 있는 절터로
1987년 7월 18일 사적 제317호로 지정되었으며, 충주시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면적은 80,454㎡이며, 하늘재[寒喧嶺]·계립재[鷄立嶺]·새재[鳥嶺]에 둘러싸인 험준한 산골짜기 북쪽 기슭에 북향하여 있다고 합니다. 창건 연대나 내력은 물론 사원의 정확한 명칭도 알 수 없으나, 고려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짐작된며.
길이 9.8m, 너비 10.75m, 높이 6m의 인공으로 쌓은 석굴식(石窟式) 법당의 중앙에 대좌를 두어 석불입상을 봉안하고, 측면과 후면 석벽 중앙은 감실(龕室)처럼 만들어 작은 불상들을 부조하여 장식하였다. 상부에는 목조건물을 지어 천장을 만들었던 것으로 짐작되며, 이는 토함산 석굴암의 양식을 계승한, 고려시대의 유일한 석조·목조 구조의 반축조(半築造) 석굴사원으로 평가되고 있다. 절터 안에는 오층석탑(보물 95), 석불입상(보물 96), 삼층석탑, 석등, 귀부(龜趺), 당간지주, 불상대좌 등의 석조 유물이 있다. 이들 유물의 조형수법으로 보아 고려 초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북쪽으로 지형이 낮아짐에 따라 계단식으로 대지를 조성하여 사원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1977년부터 연차적으로 발굴조사가 실시되어 사원의 옛 모습이 밝혀지고 있다. ‘미륵당초(彌勒堂草)’라 새겨진 기와, 연꽃무늬 막새기와, 금동제 귀면(鬼面) 등이 출토되었습니다.
날씨가 좋아서 인지 많은 사람들이 미륵사지를 찾더군요.
그래 나만 솔로야 ㅋㅋㅋ
초록 이끼와 작은 연못이 너무나 잘 어울리더군요.
괴산미륵리석불입상(보물 96)과 괴산미륵리오층석탑(보물 95)의 가운데 있는 8각 석등으로 석등의 조형미가 뛰어난 수작으로 꼽히며. 높이는 2.3m랍니다.
지대석과 연화대석은 한 돌로 조성되었는데, 하대석에는 8잎의 연잎이 새겨졌으며 석등의 기둥이 되는 간주석(竿柱石)은 아무런 장식이 없는 8각 돌기둥이다. 간주석 위에 올려진 상대석에는 아랫면에 각형(角形) 1단을 두었고 8잎의 앙련(仰蓮)을 새겨졌으며. 화사석은 8각 중 4면에만 화창(火窓)이 뚫려 있습니다. 옥개석의 추녀선은 약간 위로 향하고 있으며 꼭대기에는 8각의 상륜 받침 위에 연봉형 보주(寶珠)가 조각되어 있네요.
자연석의 바위돌을 거북모양으로 다듬어 비석을 바치는 귀부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 비석은 남아있지 않아 정확한 용도를 알 수는 없지만 비석을 꽂은 홈이 남아있습니다.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일반적인 귀부의 형태와 다르고 매우 독특한 생김새를 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등면에는 거북껍질의 문양은 전혀 새기지 않았고 좌측 등 경사면에 새끼 거북이 2마리가 새겨져 있어요.
고려시대의 절터인 중원 미륵리 사지에 있는 석조 불상이입니다. 의자에 앉은 모습이라 의상(倚像)이라고 부른다. 판석 형태의 석재 한쪽 면에 부조로 조각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마모가 심하고 색이 검게 변해 형상이 뚜렷하지는 않다. 크기는 높이 95cm, 폭 68cm, 두께 50cm이다.불상의 얼굴은 갸름하고, 목에는 세 겹의 주름살로 약하게 삼도(三道)를 표현했다. 머리에는 보관을 쓰고 그 장식이 양쪽 귀를 감싸며 어깨까지 늘어뜨려져 있어 보살임을 알 수 있다. 옷은 왼쪽 어깨에만 걸치고 오른쪽 가슴은 드러냈으며, 가사의 형태나 옷 주름은 마모가 심해 잘 보이지 않는다. 손은 몸에 비해 매우 긴데, 왼손은 구부려 가슴께까지 올렸고 오른손은 직각으로 구부려 배꼽 위에 올렸다. 다리는 의자에 앉아 무릎을 구부리고 있으며, 오른쪽 다리를 왼쪽으로 구부리고 있어 신체 구조에 맞지 않는 어색한 자세이다. 상체와 하체의 비율이 맞지 않아 다소 기형적이나 전체적으로 안정되어 보인다.
의자는 사각형의 탁자 형태로 네 모서리에 긴 다리가 달려 있다. 이런 의자에 앉아 오른쪽 다리를 구부려 반가좌를 한 모습은 다른 불상에서 찾아보기 드문 경우이다.
미륵리 사지는 고려시대에 크게 번창한 사찰로 미륵대원(彌勒大院)이라고도 부른다. 이 당시는 인공적으로 석굴을 조성해 석불입상을 봉안했는데, 이 불상은 석재의 뒷면이 대충 다듬어진 것으로 보아 석굴의 벽면을 장식한 면석(面石)의 하나로 보인다.
당시 석굴이 구체적인 설계에 의해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는 자료이며, 삼국시대 반가사유상의 자세를 한 특색 있는 불상이란 점에서 가치가 있다. 2005년 5월 6일 충청북도 문화재자료 제47호로 지정되었다.
길이6m가령의 이 석탑은 기단 하부가 파묻혀 구조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탑신부는 방형 중층 양식이고요. 중석(中石)은 자연석에 가까운 거칠은 방형석으로 우주(隅柱:모서리 기둥)나 탱주(撑柱)의 표시가 없습니다. 갑석(甲石)은 좁은 2개의 판석으로 덮어, 밑에는 형식적인 부연(附椽)만 있고 윗면은 경사가 뚜렷하며. 탑신부는 초층 옥개석만 2장이고 옥신이나 다른 옥개석은 모두 1매석인데. 각층 옥신에는 옥신의 나비에 비해 좁은 우주의 형상을 새겨 형식적인 느낌을 주며, 각층 크기의 줄어든 비율도 고르지 않아 어설프고 간략해 보이더군요. 옥개석은 일반형 석탑에서 옥신과 옥개석의 비례를 무시하고 좁아져서 미관을 해치고 있더라고요. 받침은 각층 5단이나 추녀가 너무 짧아 6단 받침으로 착각되더군요. 추녀 밑은 수평이고 옥상의 경사는 급하나 전각(轉角)의 반전(反轉)은 거의 없었고요.
상륜부(相輪部:탑의 맨 윗부분)는 노반(露盤)·복발(覆鉢)이 남아 있는데, 노반은 5층 옥개석의 크기에 비하여 6층 옥개로 볼 만큼 크며, 복발은 조각이 없는 반구형이다. 정상에 철제 찰간(擦竿)이 남은 것은 드문 예로 중요시된다고 하더라고요 ㅋㅋ
미륵리를 지키는 견공 자는데 사진 찍으니 일어나더군요.
너도 참 귀찬겠구나 싶더라고요.
중원 미륵사지(사적 제 317호)의 창건후에 지리적 여건과 역원제도의 정비로 동쪽에 별도로 역의 기능을 담당하는 원을 세우고 미륵대원 이라 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삼국유사에 미륵대원계립령동령야(彌勒大院鷄立嶺東嶺也) 라 한 기록과 일치하고 있다. 이 원터는 계립령(지금의 하늘재)길과 연관되어 고려초기에 설치되어 운영되다가 조선시대에 조령(일명: 새재)에 관방시설이 완비되면서 이곳 원터는 점차 그 기능을 상실해 갔던 것으로 보인다. 건물지에 대한 조사결과 2차에 걸친 중수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며 건물지는 口回口자형의 구조로 가운데에는 말을 묶어 둔 마방 시설을 두었던 것으로 보이며 그 주변의 건물터는 나그네 숙소 및 관리인이 기거했던 건물터의 구조가 남아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곳은 사찰과 원터의 기능이 같이 이루어진 고려초기 중요한 유적지로 평가받고 있다고 합니다.
이곳 하늘재를 찾는 등산객분들이 연아 나무라며 부르는 나무가 있다 하여
다시 등산을 시작하게 되었지요. ㅜㅜ
헉 1.8km 가지말까 망설임도 있었지만
연아양 본다는데 ㅜㅜ
산 입구에는 천하대장군 과 지하여장군이 서있네요.
하늘재 라고 비석이 써있더군요.
이젠 완전히 맑아진 하늘 ~~
시원한 계곡을 지나
푸른숲을 지나니
표지판이 떡하고 있더군요 ㅋㅋ
아마 이런 동작을 말하는거 같은데 비슷하더라고요 ㅋㅋ
웅 몹쓸재연 들어가주시는 산악인(?) 분이 있으시더군요 ㅋㅋ
그렇게 하늘재 까지 가려했으나 시간상의 문제로
내려온 저는
수안보에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한 휨에 도착했답니다.
여기서 이곳의 명물인 사과국수와 사과주를 먹기로 했지요 ㅋㅋ
부추무침과
전
김치
늙은호박 이 나왔고요.
곤약과 브로콜리 까지
수안보의 자랑 이라는 사랑할때 라는 사과주랍니다.
충남대에서 종자를 개량해서 만들었다고 해서
옥수수 이름이 대학옥수수 하고 하더군요.
아주 찰진게 제대로 맛있었어요.
수안보의 명물이라는 사과국수
반죽에 사과를 함께 했다고 하더군요.
산에 올라갔다와서인지
너무나 배고파서 두그릇이나 먹어 버렸어요 ㅋㅋ
휨 앞에는 주말장도 열리는데
시장 공사가 다끝나면 크게 열린다고 하네요.
막걸리 시음회가 있어 사람들이 줄을 많이 서있더라고요.
사과로 직접 만들었다는 사과비타민
사과맛이 나서 맛있더군요.
간단히 주말장을 돌아보고 너무 더워
온천에 가기전에 휨로비에서 팥빙수 한그릇 먹어주었답니다.
용량관계로 2편으로 넘어 갑니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