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생, 올 해 31살이 되는 남자의 넋두리입니다. 저는 현재는 한 여자의 남편이고 곧 한 아이의 아빠가 될 사람입니다. 제 아내는 임신 2개월째 입니다. 2008년 초에 결혼하고 3년 차에 아이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 번 임신도 계획하에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어쩌다 보니, 정말 어쩌다 보니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놈의 '어쩌다', 참말로 그 놈의 '어쩌다'가 참 문제인 듯 합니다(?) 아내가 요즘 입덧이 심해 여러모로 굉장히 힘들어 합니다. 몸에 변화가 커서 그런지 엄청나게 예민해져 있고 밤에 잠을 자는 것조차도 힘들어 합니다. 오늘도 힘겹게 잠이 든 아내의 머리 맡을 지키다 조용히 다른 방으로 건너 와, 먹먹하게 아린 가슴을 부여 잡고 난생 처음 이런 글을 써봅니다. 마음을 정리하면서 글을 쓰다 보니 지난 3년여 간의 결혼 생활이 필름처럼 주르륵 눈 앞을 스쳐 갑니다. 이게 참 이상하게도 아내에게 잘 해 준 기억, 아내와의 즐겁고 행복했던 시간보다는 신경 곤두세우며 싸운 기억들이 먼저 떠오르네요. 참 못된 남편으로 3년을 살았나 봅니다. 지금 제가 살고 있는 이 곳은 한국이 아닙니다. 가깝고도 먼 나라, 중국입니다.(이 말은 일본을 표현할 때 쓰는 건가요?) 먹고 살아보자고, 나이 서른까지 저축한 돈과 차 판 돈 모두 정리해서 이 땅에 들어와 조그마한 사업체를 차린 지 이제 9개월 되었네요. 결과는? 뭐 뻔한 결론이겠지만, 가지고 온 돈은 진작에 다 썼고, 현재 회사 실적은 적자에 허덕이고 있으며 7월분 직원들 월급을 지급하고 나니, 통장 잔고가 한국 돈 90만 원입니다. 3일 전에는 사무실 관리비가 나왔는데 한화로 약 55만원 정도(2달치)가 나왔습니다. 어떻게든 내야 하는데 내고 나면 통장 잔고가...하하하. 한국의 친구 놈들 다 어렵습니다. 입에 풀칠이라도 할 수 있는 직업이라도 가진 넘은 그나마 양반인 축입니다. 가끔 한국 들어가서 친구 놈들에게 연락이라도 하면, 제가 중국에서 무슨 건실한 기업체라도 차려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사람인 마냥 저를 부러워 합니다. 자식들… 매달 직원들 월급 줄 돈이 모자라 절벽에 서는 듯 한 심정을 아는 지 모르는 지... 곧 있으면 월세 계약한 집이 1년이 될 텐데, 다음 해 1년 간의 월세 비용은 또 어떻게 마련할 지... 이런 고민들, 말 할 수도 없는 이런 고민들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국이 너무 힘드니까 어떻게 자기도 중국 땅에서 기회를 가져볼 수 없겠느냐고 물어보는 녀석들을 보면서 쓴 웃음만 날렸네요. 주변 선배 들에게 듣자니 막상 아이 아빠가 되면 많은 돈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막 태어난 아이는 그저 먹고 싸고 자고 먹고 싸고 자기 때문에 거기에 준비해야 할 것은 돈으로 환산 되지 않는 정성과, 눈 앞에 쌓여져 있는 돈다발이라고 하더군요. 기저귀 값, 분유 값, 병원비 등등은 쓸 때도 놀랍지만, 쓰고 나서 정산하면 기절초풍할 비용이라고 합니다. 아내에게 너무 너무 미안합니다. 아내도 이 땅에 일하러 들어왔는데, 저랑 같이 딱 2년 정도만 고생해서 회사가 자리를 잡는 대로 아이를 갖자고 하였는데, 회사가 자리를 잡을 것이라고 예상한 2년은 고사하고, 1년도 되지 않아 덜컥 아이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앞날에 스트레스 받고, 첫 임신으로 인하여 스트레스 받고… 힘겨워 하는 아내를 보자니, 과연 이 땅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한숨 밖에 나오지 않네요. 차이나 드림을 너무 막연하고 쉽게만 생각하고 들어온 것은 아니었나 하는 후회 속에서… 듣자 하니 남들은 태어날 아이를 위하여 투잡도 하고 돈 되는 일은 닥치는 대로 한다고 하더군요. 맞벌이를 해도 빠듯한 상황이 태반이라고… 여기가 한국이었다면 저도 대리운전이라도 하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외국에서 그런 것을 할 수는 없지요. 그래서 저도 나름대로 고민 끝에 얼마 전부터 투잡을 시작하였습니다. 제가 여기 중국에서 복장 무역업을 하고 있어서 옷 만든 게 좀 많습니다. 그래서 퇴근 후 KTV(한국으로 따지자면 단란주점? 룸살롱)에 가서 KTV의 여종업원들에게 그 옷들을 팔고 있습니다. 하지만 남의 돈 벌기는 쉽지 않네요. KTV에 손님으로 놀러 가서 마담들이랑 친분 같은 것을 쌓아 놓은 것도 아니고 인터넷 전화부에서 KTV 위치 찾아내고 무작정 쳐들어가서 경리(일반적으로 중국의 조직 사회에서 관리자의 직함은 경리임)를 불러 달라고 하니 미친 놈 취급 당하기 십상입니다. 제가 아직 중국어를 능통하게 하는 경지도 아닌지라, 외국인이 옷 싸 짊어지고 다니는 게 꽤 이상해 보이나 봅니다. 게다가 옷 장사를 해 본 경험이 없고, 아직 중국 여성들, 그 중에서도 이 쪽 계통에 종사하는 여성들의 취향을 아직 잘 몰라서 그런지, 막상 어렵게 어렵게 들어가설랑은 판매량이 신통치 않으니 참 답답합니다. 어제는 그나마 팔았던 옷 중에 두 벌이나 반품이 들어왔네요. 각양 각색의 안주(?)인지 뭔지 모를 색깔들에 물든 채로… 그래도 어쩝니까? 산 목숨은 살아야지요. 오늘도 또 퇴근 후에 저는 옷을 싸 짊어지고 KTV로 향할 겁니다. 무슨 욕을 얻어 먹고, 무슨 소리를 듣더라도 산 목숨은 살아야지요… 마지막으로 태어날 아이에게 한 마디를 해주고 싶습니다. ‘아가야. 비록 물질적으로 넉넉한 집에서 태어나진 못하겠지만, 널 위해 엄마와 아빠는 이렇게 열심히 준비를 하고 있단다. 건강하고 씩씩한 모습으로 세상에 나와주렴.’ 2
31세...곧 아이 아빠가 됩니다.
80년 생, 올 해 31살이 되는 남자의 넋두리입니다.
저는 현재는 한 여자의 남편이고 곧 한 아이의 아빠가 될 사람입니다.
제 아내는 임신 2개월째 입니다.
2008년 초에 결혼하고 3년 차에 아이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 번 임신도 계획하에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어쩌다 보니, 정말 어쩌다 보니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놈의 '어쩌다', 참말로 그 놈의 '어쩌다'가 참 문제인 듯 합니다(?)
아내가 요즘 입덧이 심해 여러모로 굉장히 힘들어 합니다.
몸에 변화가 커서 그런지 엄청나게 예민해져 있고 밤에 잠을 자는 것조차도 힘들어 합니다.
오늘도 힘겹게 잠이 든 아내의 머리 맡을 지키다 조용히 다른 방으로 건너 와, 먹먹하게 아린 가슴을 부여 잡고 난생 처음 이런 글을 써봅니다.
마음을 정리하면서 글을 쓰다 보니 지난 3년여 간의 결혼 생활이 필름처럼 주르륵 눈 앞을 스쳐 갑니다.
이게 참 이상하게도 아내에게 잘 해 준 기억, 아내와의 즐겁고 행복했던 시간보다는 신경 곤두세우며 싸운 기억들이 먼저 떠오르네요.
참 못된 남편으로 3년을 살았나 봅니다.
지금 제가 살고 있는 이 곳은 한국이 아닙니다.
가깝고도 먼 나라, 중국입니다.(이 말은 일본을 표현할 때 쓰는 건가요?)
먹고 살아보자고, 나이 서른까지 저축한 돈과 차 판 돈 모두 정리해서 이 땅에 들어와 조그마한 사업체를 차린 지 이제 9개월 되었네요.
결과는?
뭐 뻔한 결론이겠지만, 가지고 온 돈은 진작에 다 썼고, 현재 회사 실적은 적자에 허덕이고 있으며 7월분 직원들 월급을 지급하고 나니, 통장 잔고가 한국 돈 90만 원입니다.
3일 전에는 사무실 관리비가 나왔는데 한화로 약 55만원 정도(2달치)가 나왔습니다.
어떻게든 내야 하는데 내고 나면 통장 잔고가...하하하.
한국의 친구 놈들 다 어렵습니다.
입에 풀칠이라도 할 수 있는 직업이라도 가진 넘은 그나마 양반인 축입니다.
가끔 한국 들어가서 친구 놈들에게 연락이라도 하면, 제가 중국에서 무슨 건실한 기업체라도 차려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사람인 마냥 저를 부러워 합니다.
자식들…
매달 직원들 월급 줄 돈이 모자라 절벽에 서는 듯 한 심정을 아는 지 모르는 지...
곧 있으면 월세 계약한 집이 1년이 될 텐데, 다음 해 1년 간의 월세 비용은 또 어떻게 마련할 지...
이런 고민들, 말 할 수도 없는 이런 고민들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국이 너무 힘드니까 어떻게 자기도 중국 땅에서 기회를 가져볼 수 없겠느냐고 물어보는 녀석들을 보면서 쓴 웃음만 날렸네요.
주변 선배 들에게 듣자니 막상 아이 아빠가 되면 많은 돈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막 태어난 아이는 그저 먹고 싸고 자고 먹고 싸고 자기 때문에 거기에 준비해야 할 것은 돈으로 환산 되지 않는 정성과, 눈 앞에 쌓여져 있는 돈다발이라고 하더군요.
기저귀 값, 분유 값, 병원비 등등은 쓸 때도 놀랍지만, 쓰고 나서 정산하면 기절초풍할 비용이라고 합니다.
아내에게 너무 너무 미안합니다.
아내도 이 땅에 일하러 들어왔는데, 저랑 같이 딱 2년 정도만 고생해서 회사가 자리를 잡는 대로 아이를 갖자고 하였는데, 회사가 자리를 잡을 것이라고 예상한 2년은 고사하고, 1년도 되지 않아 덜컥 아이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앞날에 스트레스 받고, 첫 임신으로 인하여 스트레스 받고…
힘겨워 하는 아내를 보자니, 과연 이 땅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한숨 밖에 나오지 않네요.
차이나 드림을 너무 막연하고 쉽게만 생각하고 들어온 것은 아니었나 하는 후회 속에서…
듣자 하니 남들은 태어날 아이를 위하여 투잡도 하고 돈 되는 일은 닥치는 대로 한다고 하더군요.
맞벌이를 해도 빠듯한 상황이 태반이라고…
여기가 한국이었다면 저도 대리운전이라도 하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외국에서 그런 것을 할 수는 없지요.
그래서 저도 나름대로 고민 끝에 얼마 전부터 투잡을 시작하였습니다.
제가 여기 중국에서 복장 무역업을 하고 있어서 옷 만든 게 좀 많습니다.
그래서 퇴근 후 KTV(한국으로 따지자면 단란주점? 룸살롱)에 가서 KTV의 여종업원들에게 그 옷들을 팔고 있습니다.
하지만 남의 돈 벌기는 쉽지 않네요.
KTV에 손님으로 놀러 가서 마담들이랑 친분 같은 것을 쌓아 놓은 것도 아니고 인터넷 전화부에서 KTV 위치 찾아내고 무작정 쳐들어가서 경리(일반적으로 중국의 조직 사회에서 관리자의 직함은 경리임)를 불러 달라고 하니 미친 놈 취급 당하기 십상입니다.
제가 아직 중국어를 능통하게 하는 경지도 아닌지라, 외국인이 옷 싸 짊어지고 다니는 게 꽤 이상해 보이나 봅니다.
게다가 옷 장사를 해 본 경험이 없고, 아직 중국 여성들, 그 중에서도 이 쪽 계통에 종사하는 여성들의 취향을 아직 잘 몰라서 그런지, 막상 어렵게 어렵게 들어가설랑은 판매량이 신통치 않으니 참 답답합니다.
어제는 그나마 팔았던 옷 중에 두 벌이나 반품이 들어왔네요. 각양 각색의 안주(?)인지 뭔지 모를 색깔들에 물든 채로…
그래도 어쩝니까?
산 목숨은 살아야지요. 오늘도 또 퇴근 후에 저는 옷을 싸 짊어지고 KTV로 향할 겁니다.
무슨 욕을 얻어 먹고, 무슨 소리를 듣더라도 산 목숨은 살아야지요…
마지막으로 태어날 아이에게 한 마디를 해주고 싶습니다.
‘아가야. 비록 물질적으로 넉넉한 집에서 태어나진 못하겠지만, 널 위해 엄마와 아빠는 이렇게 열심히 준비를 하고 있단다. 건강하고 씩씩한 모습으로 세상에 나와주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