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에 서버린 삶

어려운삶2010.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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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에 서버린 삶

 

네모난 방 안에서

 

혼자 누워서 있습니다.

전신류마티즘이란 병으로

30여 년을 바닥에 누워서 지내는

40대의 남자 1급 지체장애인입니다.

 

저는 오늘 제가 살아온 인생에 관해 써 내려가 볼까 합니다.

다소 긴 내용이더라도 제 떨리는 손가락으로 어렵게 쓴

이 글을 외면하지 말아주세요.

 

여럿을 적 농촌 마을에서 태어난 저는 정상인 이였습니다.

두발로 걷고.. 두 손으로 모든 것을 해냈던..

그런 어린 시절이 있었습니다.

 

10살이 되던 해.. 몸을 일으킬 수 없었습니다.

온몸이 굳어 버리기 시작했습니다.

집 천장만 바라봐야 했습니다…

 

굳어가는 제 몸을 바라만 봐야 했던 처절함과 슬픔도 잠시

손가락이 하나씩.. 꺾이기 시작했습니다. 비명을 질렀습니다.

전신 류마티즘이라는 이 따위 병 때문에..

고통 속에서 손가락이

하나씩.. 하나씩.. 꺾이기 시작했습니다.

시골이고 농사를 짓던,

돈이 없는 가정 이였기에 병원도 갈 수 없었습니다.

손가락이 꺾이는 고통이 다시 찾아오는 것을 두려워하며 떨어야 했습니다.

고통 중에 한번은 수건을 입에 꾹 물고는

눈물을 흘리며 그 고통을 참았던 적도 있었습니다.

13살의 어린 나이에 저는 뼈마디가 꺾이는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육체적인 고통과 함께 왔던 정신적인 고통도 있었습니다.

그것은 어머니에 대한 미안함 이였습니다.

변변한 개인 밭도 없어서

남의 밭에서 하루 종일 품앗이로 일하시는 어머니..

힘든 그 농사일을 하러 새벽녘에 나가셔서 반나절 허리도 못 피시고 일을 하시다

잠시 쉴 수 있는 점심시간에 저 때문에 3km나 되는 거리를 쉴새 없이 걸어 오셨습니다.

그렇게 오셔서는 제 몸 상태를 둘러보시고는 다시 3km를 걸어서 돌아가셨습니다.

농사일을 마치고.. 간신히 펴지는 허리를 이끄시고

다시 제 병간호를 해주셨습니다.

 

그러다 제 옆에 움크려 잠드신 모습을 보았습니다.

어머니 눈에 눈물자국이 선명하게 보이는 날에는 미친듯 소리치고 싶었습니다.

일어서고 싶었습니다.

열손가락 손톱이 뒤로 젖혀져 피가 나면서도 어떻게든 일어나보려고

수없이 발버둥도 쳐봤습니다.

어머니께 가슴 타 들어가는 죄송스러움에

5년이 지났을 때 부터는 고개도 들지 못했습니다.

 

이런 어머니께 쉬시라고 말도 못하는 제 심정 여러분 아시겠습니까….?

 

육체적인 고통과 정신적인 고통…. 결국 전 스스로 10년만에 집을 나오게 되었습니다.

제가 없어야 어머니께서 흘린 10년의 고통을 해방해 드릴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어머니께서는 떠나려 했던 당일 마저도

“주관아.. 가지말거라… 애야.. 어딜 가려고 하니

엄마가 이렇게 부탁한단다.. 내 곁에 있어다오…”

시설로 가는 20살 어느 날 이른 아침... 차에 올라

몸을 움직일 수 없던 저는 멀어져 가는 어머니 모습도 눈으로 보지 못한 채

차 천정만 보며 어머니 얼굴 하나하나 조목조목 생각만 하며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그렇게 시설에 입소했습니다.

저는 여러 시설을 다녔지만 어머니의 따듯함을 내내 그리워하며

20년을 시설에서 보냈습니다.

시설에 살며 구타를 당하기도 했지만

전 어머니를 위한 제 선택에 조금의 후회도 하지 않았습니다.

 

20년이란 시간이 허무하기만 하지만

어머니께 눈물자국을 만드는 것보다 이런 삶이 더 낳았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주말이면 어김없이 시설에 방문하셨습니다.

밥은 잘 먹는지… 생활은 편한지… 집에 돌아오고 싶지는 않은지…

매번 오실 때 마다 눈물을 글썽거리며 꼭 물어보시던 말들이였습니다.

그때 마다 전 눈물을 꾹 숨긴채 이말만 되풀이 했습니다.

 

“어머니.. 이제 저를 잊어주세요.”

정말 잊었으면… 해서 한말이 아니였습니다.

목이 막혀가면서도 어머니를 위해 드렸던 한마디였습니다..

돌아서서 시설 안에 들어와서는 또다시 천정을 보며

침대 시트와 베게를 흠뻑 적셨습니다..

 

그러다 40살 되던 해에 조금씩 모아온 돈으로 시설을 나와 작은 임대주택을

구해 들어왔습니다.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는 없었지만…

제 남은 인생마저 20년간 보냈던 의미없는 삶으로 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세상은 정말 차갑고 냉정하더군요..

활동보조인을 통해 밖을 나가면 사람들은 저를 보며

친구처럼 다가오려 하지 않았고.. 그저 “불쌍한 사람”이라는 눈빛으로 쳐다만 봤습니다.

네.. 저도 압니다. 제가 멀쩡하지 않다는 사실을요…

 

하지만 그런 눈빛으로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제 몸에서 오는 고통보다 더한 고통이란거 아시나요..?

 

한번만이라도 단 한번만이라도 절 친구처럼 바라봐 주세요…

그게 제 모든 소망이랍니다.

 

두달 전 저희 단체로 날아온 한 통의 e-mail이였습니다.

제 자신을 돌아보고 후회와 반성을 하게 해준 글이기도 했습니다.

사지육신 멀쩡한 제 자신은 무엇을 했나… 부모님께 과연 효도를 하며 살았나… 란

것과 장애인을 매번 편견의 눈으로만 바라봤지 친구로써

왜 한번도 다가갈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란 후회와 반성의 시간을 갖게 해주었습니다.

 

이분은 현재.. 가지고 있던 전신 류마티즘과 얼마전 찾아온 뇌경색과 파킨슨병까지

얻게되어 더이상 마지막이란 없는 분입니다..

아래의 링크 주소에서 동영상으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영상만 보셔도 되고 응원의 댓글만이라도 좋습니다.

 

우리 유저 분들께서도 서주관씨에게 친구로써의 역할…

댓글로써 한번 실천해 봐주시는건 어떨까요…?

아래의 주소가 이분의 동영상이 담긴 주소입니다.

추천버튼도 클릭 부탁드립니다.

http://happylog.naver.com/metter/rdona/H0000000313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