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동갑 삼촌이야기

가족사랑2010.08.19
조회780

재미없으면 어떡하나 싶은생각 안듦...이었으면 좋겠지만
만약 재미없다고 욕하지마시고 그냥[◀─]키를 눌러주셨음 좋겠습니다.


나도 요즘 다 쓴다는 음씀체로 써볼려고 함. 눈에 거슬려도 이해바람.
요즘 뉴스에 하도 흉흉한 소재거리(부모살인.자식유기 등)가 많아 정화시키고자
나의 어릴적 추억과 화목한(?)가족애를 얘기하고 싶어짐.


***어릴적 삼촌의 비리
난 아직도 이 일을 잊어버릴수가없음.
삼촌과 나 12살 띠동갑임. 울 아버지와 삼촌 10살차이임. 거의 남매나 다름없음. 태어나서 6살초까지는 할머니댁시골에서 촌녀자로 거의 살다시피함
삼촌이 나 키웠다보면됨. 울 아버지 육남매중 장남으로 큰고모는 시집가고 둘째고모 셋째고모 모두 서울가고 삼촌과 막내고모만 시골에서 살았음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삼촌과 알바하고 계신 막내고모. 학교갔을땐 막내고모가 수업마치면 삼촌이 나와 놀아줌. 울 삼촌 당시 질풍노도의 시기임
한날은 소개팅이 있었나 봄. 헌데 그럴려면 내가 걸거침. 그때 막내고모는 알바중이었음
내 나이  6살....삼촌친구들 갈등하는 삼촌곁에서 악마처럼 조잘댔음. 결국 나의 삼촌은 내게 숨바꼭질 술래를 시키더니
등 돌린 사이 도망가버림. 그때 고바이(언덕)였는데 미친듯이 내려가는 삼촌 뒷모습을 보았음. 나 역시 미친듯이 쫓아보았지만...
6살짜리가 18살짜리 다리를 따라갈수있겠음? 택도 없지...자빠지기까지했음. 그 모습을 보면서도 삼촌은 뒤로 뛰는 기술까지 선보여줌(내가 걸리긴 한게지..)
그냥 울면서 막내고모한테 감. 빵집알바하던 울고모 찌질해진 내 모습(당시 시골에서 그래도 스타였음. 워낙애가 없어서..)에 깜놀.
지금 생각하면 6살짜리가 고모 빵집까지 찾아갈 생각한거보면 참 겁도 없음..집앞 빵집 아님..시장통에 있었음
그날 삼촌은 막내고모가 나 위로한다고 저녁반찬으로 햄굽던 와중에 들어오는 바람에 잘 달아오른 햄 폭탄 맞았음. 뒤집개로도 미친듯이 맞음
상상이 가는지 모르겠음. 난 그걸 좋다고 보고 있었으며 삼촌과 난 아직도 이 일을 가지고 서로 배신자라 우겨댐.

 


***촌놈이 부산으로 오게된 이유
나의 아버지는 상당히 가부장적임. 어릴적 13살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그때 정정하신 할아버지만 기억하시는 관계로
할아버지의 무서운점만 닮으심. 오죽하면 할머니는 내게 "내속으로 낳았지만 ㅈㄹ맞은 놈"이라고까지 하심.
나의 할매 늘 나만보면 안타까워하시는 1인...이심.
일단 이것또한 내 얘기는 아님. 삼촌얘기임. 울 할머니집은 경북 울진 대흥리에 있음. 리라고 다 같은 리가 아님.
산 골짜기골짜기 차타고도 20분걸림. 그 안에 할머니집이 있음. 폰도 안 터짐. 그정도로 촌인데 이곳의 청년들은 현역으로 군대들어가기 힘듬
쉽게설명하면 하~~~도 젊은이들이 없어서 농촌이고하다보니 방위만 보냈다함.(지금은 모르겠으나 그때당시엔 그랬음)
그렇게 청년으로서 방위생활을 마을을 나라를 열심히 지키는듯했으나 내내 힘들다는 말을 남발하고 사셨음
그러던중 결국 사고치신 삼촌..제대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왠지 할머니가 아버지에게 쉬쉬하는 느낌이 들었음. 나만 느낀게 아님
어느주말. 아버지는 갑자기 할머니께 올라가자함(아버지는 포크레인자영업하셔 업무주기가 일정치않음). 그렇게 울진에 도착....
하....그날 거의 초상집이었음. 이유인즉슨 삼촌이 머리를 볶아온거임. 또 제대하면서 벌여들인돈(군대월급외 부수입-송이따기.산불알바등)으로
전축을 하나 샀는데 음악을 아주 크게 틀고 누워서는 한발은 무릎을 세우고 그 무릎위에 나머지한발을 올려선 발을 까딱까딱 대고 있는거임
파마머리를 해서는....(요즘 그런 파마머리아님. 레알 할머니뽀글이파마였음)
그날 이후 삼촌은 부산으로 내려와야했음. 아버지가 삼촌결혼전까지 끼고 사셨다해도 과언아님. 물론 아버지덕에 직장도 번듯한거 구하게되고
(현재 창원 항공쪽에 종사하고계심) 결혼해서 잘 살고 있으나 우린 지금도 할머니께 하소연함
아버지는 우리를 손에 쥐고 벗어나면 큰일나는줄 아는 사람이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