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주부가 된 前전문직여성입니다

전업주부2010.08.19
조회334,400

이제 돌 된 딸램을 두고 있는 30대초반여성입니다

결혼한지는 3년째구요,

결혼전에는 소위 말하는 고소득 전문직?이었습니다 연봉8천정도..

 

임신을 하고 쓰나미같이 덮쳐온 입덧으로 쓰러진 후로 지금까지

일은 다시 안하고 전업주부의 생활을 하고 있지요

 

얼마전에 대학동기(남자)가 오랜만에 전화를 했어요

동기 - "요즘 어디서 뭐해?"  (어느 지역에서 무슨 직급이냐는 거죠)

나 - "집에서 아기키워"

동기 - "엥? 일안한다고? 고급인력이 놀면되나.."

나 - (순간 욱한 감정 억누르며) "야 죽기전에 일안했다고 후회는 안해도

       내 애 내가 안길렀다고는 후회할것 같아서 기른다"

뭐 이쯤에서 주제를 바꿨습니다만

영 마음이 안좋네요..

저도 결혼하면서부터 혼자 고민이 많았어요

아이가 생기면 일을 계속해야하나.. 집에 들어앉아야 하나..

내 일을 놓는 건 너무나 아까운 일이고

그렇다고 아이를 남의 손에 맡기자니 나중에 후회할 것 같고..

(친정 시댁 둘다 어머니들은 아이를 못봐주세요)

이 갈등은 사실 아직도 진행중입니다

 

전 결혼전까지 집안일이라곤 아무것도 할 줄 몰랐습니다

가끔 할말잃게 만드는 한국남자분들보면

여자는 태어날때부터 밥솥스위치누르는 법 알고 나오는 걸로 착각하시던데

여자나 남자나 다 똑같습니다 안하면 모르고 하면 알게 돼요

라면과 참치김치찌개 달랑 알고 수건질이라곤 정말 해본적도 없는 상태로

결혼을 했어요.. 사실 집안일?살림? 중요하게 생각안했습니다

어려운 일도 아니고 조금만 더 부지런하면 다 하고 살수있을거라 생각했죠

다들 집안일은 좀 낮게 보잖아요 저도 그랬어요

 

그.런.데...

이거 장난이 아니더군요. 집에서 해주는 밥 달랑 먹고 빨아주는 옷 달랑 주워입고

공부합네 일합네 했을때는 몰랐어요..

빨래는 세탁기가 하고 청소는 청소기가 하는 줄 알았죠

제가 절대 깔끔한 성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애기르면서 하루 삼시세끼는 커녕 두끼 챙겨먹기도 힘들어요..

167cm에 47kg하던 몸이 출산하고 1년이 가까운 지금 42kg로 줄었습니다

 

그런데 가끔 듣는 혹은 들리는 말..

언제 다시 일할거냐

애는 시댁이나 친정에서 길러줘도 되지 않느냐

공부한게 아깝지 않으냐

요즘 일안하고 집에서 논다는 데 그렇냐

 

저.. 안 놉니다

아침에 눈뜨면 밤에 잘때까지 정말 일 일 일의 연속이예요

그래도 집안일 다 잘 못해놓습니다

가사일이란게 단순노동이 아니고 과학의 총아 더군요

기획력 실행력도 있어야 되고 창의력도 가끔 필요하구요

가끔 집안일 하다가 정말 어이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니 이렇게 머리쓰고 부지런해야하는 일이 살림사는 일인데

왜 이렇게 무시당하고 있지?

전업주부라고 하면 왜 다들 집에서 논다고 하지?

전업주부들은 왜 당당하지 못하고 항상 목소리에 힘이 빠져야하지?

 

사람이 판단력이나 몸가짐이 바르지 못하면 우리가 뭐라고 합니까?

너 대학교육을 어떻게 받았길래 그모양이니 합니까?

아니죠

너 가정교육을 어떻게 받았길래 그래 그러잖아요?

그만큼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이 사람됨됨이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는 겁니다. 우리도 그걸 알고 있구요.

가정이라는게 건강한 몸과 마음을 가진 사람을 길러내는데 결정적인 곳인데

왜 이 가정을 꾸리는 전업주부를 무시하는 겁니까?

자존감이 떨어지는 전업주부가 과연 건강한 가정을 꾸릴수있을까요?

건강하지 못한 가정이 하나하나 모인 나라가 과연 살기좋은 선진국이 될 수 있을까요?

 

저는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지 못한 여러 이유중의 하나가

전업주부의 역할과 가치를 제대로 존중해주지 않는데 있다고까지 생각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뭐 이런 사회풍조가 제 세대에서 변할 것 같지는 않고..

스스로도 "나 집에서 애 키워"라고 대학동기들에게 말할 때면 움츠러드는 저를 느낍니다

당당하자, 당당하자 라고 수없이 되뇌이지만

그리고 저를 보고 함박웃음을 웃는 아이를 볼 때면 그래, 백번 잘하고 있는 거야 라고 

스스로를 다독이지만

"집에서 논다"는 말이 듣기 싫어 어떻게 재택근무라도 해보려고

이렇게저렇게 쥐나도록 아이디어를 짜내는 저를 보게 되네요

 

생각해보면 우리 어릴때만 해도 여자가 일하는 걸 반대하는 사회였는데 말이죠

배배 꼬인 몇몇 남자분들은 또 이러실지도 모르겠네요

옛날엔 바깥일하지 말랬다고 불평

요즘엔 바깥일하랜다고 불평

이러나 저러나 여자들은 불평이야.. ㅋㅋ  뭐 이렇게요

 

중요한 건, 무슨 일을 하느냐 보다

하는 일의 가치 를 인정해달란 겁니다

여자가 하면 뭐든 낮추어 보는 이 사회에 염증이 나네요

똑같이 직장일을 해서 피곤한 몸으로 집에서 쉬려고 하면

남자의 경우는 "힘든 사회생활하고 집에 왔으니 쉬는게 당연"하고

여자의 경우는 "꼴랑 돈 몇푼 벌어온다고 힘들다고 유세"하는 걸로 보는.. 사회.

극히 일부라고 생각하시죠?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거의 다 이런 시각입니다

 

가치란, 쌓인다고 통장에 찍히는 게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 인정받기가 힘들죠

여자가 전업주부하는 걸 당연시 여기는 것에서

여자의 맞벌이하는 걸 당연시 여기는 것으로 바뀌는 것에 달랑 30년도 안걸렸지만

(따박따박 통장에 찍히니까)

전업주부를 하찮게 여기는 사회에서

전업주부가 만드는 가치를 인정해주는 사회로 바뀌는 데에는.. 글쎄요

저 눈감을 때까지 그런날이 올까요? .. 안올것같네요

말했듯, 이 소중한 가치는 통장에 찍어 눈에 보여줄수가 없으니까요

이런 무형의 가치가 존중받게 되는 날

우리도 선진국대열에 들어가있게 될 것 같네요

소득이 몇만불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2천몇년도 가 아니라요.

(중국이 5년내 국민소득이 10만불씩 된다고 미국과 같은 선진국으로 존중받을까요?ㅋㅋ) 

 

중간중간 아이때문에 글이 끊겨서 매끄럽지가 못해도 양해해주세요..

이래저래 고민 많은 전업주부의 넋두리였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