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란 없다, 6만원의 새출발.

딸기스무디2010.08.21
조회940

안녕하세요~

전 서울사는 22살 철없는 청년입니다ㅋㅎ

미리 스크롤압박 말씀드려요T^T

이판은 이걸읽고 많은 청년실업가나

수험생들 소년소녀가장 여러분께 힘이되고자 쓰는글입니다..^^

글을쓰던사람이 아니라 글의이해를 돕기위해서 제 편의를 맞추고자

존칭은 쓰지 않도록할께요!!

 

글이 재미없고 너무길다고 읽기싫으신분들은

안읽으셔도 됩니다. 한사람이라도 도움이 됬으면 하는바램으로 몇글자 적어봅니다.

 

난 1989년 문화유씨 가문에서 태어났다.

(사실 아직까지 우리가문이 뭐하는가문인지 난모른다.)

우리가족은 남들 부럽지않게 초등학교 5학년때까지 부유하게 잘았엇다.

우리아버지는 건설회사 사장이셨고 그당시 평택지역 개발산업을 하고계셧다.

그리고 어머니는 삼성보험회사 직원이셨고. 나에겐 5살어린 남동생이있엇다.

 

맞벌이집안 이라그런지 초등학교 5학년인 나와, 7살유치원생인 내동생은

알지못한 외로움을 몸으로 받들며 살아왔다. 아침에 동생은 유치원을

7살나이에 혼자다녔다. 그당시엔 유치원버스가 있는 그런 동네가 거의 없었다.

 

동생은 항상 걸어다녔고 내가 학교끝나면 항상 데리러가고 그랬던 날들이

선명하게 기억난다. 학교가끝나면 내친구들은 우리집으로 놀러와서 당시에

슈퍼컴보이인가 그 팩꽃아서 하는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이랑 비슷한 구식게임기가 있다.

 

그게 우리집에 3대나 있어서 정말 우리집은 여느 피시방과 다름이없이

항상 북적거렸다. 내동생은 어릴때부터 나이많은 형들과 친해지고 놀고 그러다보니

점점 친구들과 멀어지게 되었고, 마마보이가 아닌 형광펜이 되있엇다ㅋㅋㅋ..ㅈㅅ

 

나도 동생과 노는게 좋고 내말이면 죽는시늉까지 할기세인 날 잘따르는 내동생이

너무나 사랑스러워 같이 놀때만큼은 당시엔 너무나 행복했다. 

허구한날 놀고 오락실가구 그러다보니 공부는 당연히 안하게되더라.

물론 지자랑이지만 공부는 못했던것도아니다. 안하게되다보니 공부안하는애들이랑

어울리게되고 그러다보니 소위 노는애들과 어울려놀게되 초등학교때 많이 싸우기도했고

훔쳐먹는과자가 더맛있고 몰래하는 일이 더 재밌다는걸 알게되었다. 그렇게

파출소를 들낙날락 하고 노는 반복된 생활을 살고있엇다.

 

인생의 가장큰 사건이 터진 5학년 가을쯤..날자는 기억잘안난다.

우리아버지회사가 부도가 나고 빛의떠밀려 드라마에서나보는

빨간딱지가 붙게 되고 어머니는 아버지의 빛을갚느라 돈을빌리시고

직장에서 짤리셧다. 아버지는 술과담배의 나날을보내며 어머니에게 

일하러간다고 기름값5만원만 달라며 거의 구걸하다싶이 겨우받아서

경마장을 갔다. 경마장간건 내가보진못했지만 동네소문이 쫙퍼져서

어쩔수없이 알게된 사실이다. 그렇게 6학년이되고 우리집은 정말 하루아침에

콩가루 집안이되었다. 정말 착했던 우리엄마가 담배를 피고 욕을하기시작했고

위엄넘치던 우리아버지는 엄마에게 돈을달라고하고 밥먹었다하고 몰래

라면 끓여먹는 모습을 종종 나에게 들키곤 하는 그런날들이 반복되고

결국 우리부모님은 이혼을했다. 이혼을 해서도 우리어머니에겐

아버지의 빛을 갚느라 빛진돈이남아있어 이혼을해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당시난 이혼한사실도 모르고 아빠는 출장가서 오래있다오실꺼란말만 믿고

항상 아빠를 기다렸다.  그렇게 나의 초등학교 졸업식이 왔다. 

평소에 나는 HOT를 정말 좋아하여 집에서 항상 춤을추고 따라하고 그랬던

나를 아버지가 가끔보고 웃으시곤했는데 졸업식날에 어머니가 꽃을사들고

왔다가 일때문에 가봐야된다고 사진한장찍으시고 동생을 데리고 가셨다.

 

가실때 용돈을 쥐어주셨는데 3만원 5만원 이렇게 주시더니 딸랑 2천원을 주셨던

어머니가 그땐 미웠다. 친구들은 나에게 피시방가자고 시켜달라고 여느때와

다름없이 메아리처럼 소리쳤다. 순간 난 정말 아무이유도없이 화가나서

친구들을 무작정 팼다. 졸업식날 파출소를 갔다. 졸업했지만 그날이 졸업식이였으니

그날까지 내담임선생님께선 오셔서 경찰들에게 빌고 나를 빼내주셨다.

그리곤 보기만해도 엄청비싸보이는 메이커인오리털점퍼를 나에게주셨다.

지금현재에도 비싼 그런 고급명품이었다. 선생님이 나에게 주시면서

아버지가 주고가셨다고 말씀하셨을때 난 이혼했단 사실을 알지도 못하면서 

그냥 감각만으로 다신 아버지가 나의곁에 오지않을꺼란 사실을 직감했다.

그날은 미친듯이 울었다. 눈물이 안나올때까지........

 

중학교에 올라갔다. 난 평소가 이유없이 짜증낫고 화가 치밀어올라

싸우기 일수였다. 그래서인지 선배들과 어울려놀게되고 또다시

놀고 노는삶으로 찌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중학교2학년이되고

중간고사를 봤다 전교뒤에서 4등이었다. 나빼고 3명중엔 특수반친구들이었다

그러니 내가 꼴찌였다. 꼴찌라는걸 알아도 별 감흥이없고 집에들어갔다.

 

어머니가 줄담배를 2갑째 태우고 계셧다. 내가 이젠 몸도커지고 어른이됬단생각으로

엄마가 담배피는게 보기싫어서 대들며 소리치며 사실 욕도했다. 엄마는

공부열심히 하라고 학교다니는거지 놀러다니냔말 한마디밖에안하고 방에들어가시곤

문을 잠구셨다. 그때 선생님을 죽이고싶었다. 다음날 학교가자마자 교무실로 갔다.

우리선생님 자리가 비어있길래 교내구석구석을 찾다 주차장쪽에서 선생님들과

내얘기를 하는걸 엿들었다. 강제로 자퇴를 시킨다마 머라나 그런얘기였다.

 

순간 이성을잃고 선생님에게 달려가 욕을하며 멱살을잡고 주먹질을하기시작했고

그런결과로 난 경찰서에가고 운좋게도 감별소에서 1.3호라는 보호조취를받고

풀려났다. 학교에선 강제전학을 가게되고 우리집은 이사했다. 이때는 16살이었다. 

정말 영화에서나 나올듯한, 아니 귀신이 살듯한 그런 옥탑방으로 이사를갔다.

정말..진짜 사람이 살곳이 못됬다. 어머니는 삶을 포기하셨는지 가자마자 술을사셔

짐도 풀지않은채 술을 마셨다.  

 

문득, 난 생각이 들었다. 난 엄마처럼 아빠처럼 살지않겟다고.

모든게 돈때문이니 돈을 벌겠다고, 훔치든 뺏든 그렇게 살겟다고.

감별소에 잠깐있다와서그런지 그땐 감옥이 훨씬 낫겠단 생각까지 가지고,

엄마가 몰래 숨겨둔 10만원을 꺼내 집을 나왔다.

 

이때부터 나의 인생이 시작되었다

16살..이제 좋은 고등학교를 가기위해 공부를하고 자기진로를 결정하여

기술을 갈고닦을 시기다. 난 오토바이를 훔치고 돈을뻇으며 그렇게

살았다.  겨울엔 애들을시켜 고구마를 팔게하고 여름엔 도둑질을시켰다.

그렇게 돈이 벌리고 난 그돈가지고 명품을 사입고 겉치례를 하여

호스트바에 나이를 속이고 들어갔다. 어려보이는 외모때문일까

돈이 술술 잘벌렸고 잘벌리는돈에 노는게 `다`인 삻이 몸에 찌들어벼렸다.

 

18살이 되었다. 노는것도 지겹고 돈을 번단 목표도 잊은채 돈을봐도

별감흥이 없엇다. 난 그렇게 호스트바에서 나와 시작했다. 무엇을,

이유없는 싸움질을 시작했다. 그냥 싸움이 하고싶었다. 당시에 알게된

친구들과 어울려 경찰특공대에게도 싸움을 걸어봤고 조직폭력배랑도

싸웠엇다. 지는날도있고 운좋게 이겨서 도망치는 날도있엇다.

재밌엇다. 맞고 터져도 그런 심장뛰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날들이 그냥 즐거웠을뿐이다. 그렇게 지내다 결국 난 벼랑끝까지갔다.

소위말하는 본드를 시작했다. 우리애들은 좀다르게 니스라는 걸로했다.

 

그렇게 하다가 친구한명이 걸려 잡히게 되고. 그당시에 철떡서니없는

우정놀이에 연행할려는 친구를 지켜주다가 이성을잃어 경찰관을

미치도록 팻다. 그래서 난 소년원에 가게되었다. 어떻게 우리어머니에게

연락이 갔나보다. 면회를 오셨다. 어머니랑 많은 얘기를했다. 어쨋든 잘살고있엇다.

동생때문에 악착같이일해서 겨우 직장을 얻었고 빛도 거의다 갚았단다.

집은 그대로 아직 그곳에 살고있다고 했다. 그집을생각하니 다시 들어가기싫었다.

 

20살이되어 난 소년원에서 나오고, 다시금 몇달안되 유흥의타락속으로 빠져들었다.

물론 계속 혼자 살았고 친구들과 어울려 놀았다. 그생활이 몇일안되

친구는 또 들어가게되었다. 이번엔 나이가있어 교도소로 가게되고, 친구한명은

니스중독에 빠져 나오질못했다. 난 괴로웠다. 그냥 인생이 어둡게 보였다.

 

처음으로 혼자술을 먹었다. 난왜 혼자살고있지. 왜사는걸까

"아 돈벌러 나왔지 성공하러 나왔지" 그때 문득 생각이들었다.

 

어렸을때 호스트바에서 마술을배우고 혼자 인터넷동영상을보며

마술을 연마하고 여자꼬시기로 실전연습을 다진나는 나와서

마술을 좀더 전문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고,

 

몇달안되 프로마술기획사에 들어갔다. 정말 쉽게 돈을벌었다.

공연만 몇십분해주면 돈이나왔고. 마술때문인지 또 지자랑이지만

인기도 많았다. 그렇게 여자들을 만나고 돈을 허황되게 쓰다보니

21살..회사에서 공연펑크로 1년만에 짤렷다. 물론 한두번이아니었다.

 

다시금 인생이 허탈해졌다. 난 갖은 오기로 돈을 벌겟다며

장사며 웨이터며 윤락업소삼촌까지 주유소 피시방알바 편의점알바

진짜 알바란 알바는 다해봤다. 돈이 안벌린다. 분명 돈은 벌고있는데

모이질않는다. 뭐가 잘못된걸까.. 그렇게 22살이 되었다..

 

친한친구와 같이살게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일을하며

끝난후에 공원에서 기타를 치고 마술을 보여주면서

작은공연하며 지내는 날들이 즐거웠고 그생활에 만족하여

평생이렇게만 살고싶다는 생각에 빠져있을때였다.

 

친구 여자친구가 임신을하게되고 그로인해 같이모은 여태까지돈을 거의다 날렸다.

돈이없어진 우리는 찌라시알바를 하기시작했고, 그첫날..여자란 여자는 많이만나봤는데

정말 멘트치는게 아니라 그냥 쳐다보는데도 이상한느낌이 드는한여자가

친구인것처럼 보이는 한여자와 함께 술집 주변을 서성거렸다. 어디술집을갈지

모르는 거같았다. 마침잘됬다. 찌라시 알바인데다 그때 상태도 괜찮았겟다.

마술이라는 무기도있겟다. 자신감에 차 그여자친구를 내가전단지뿌리는 술집으로

끌고오기 성공했다. 

 

그여자와친구가 안주를 시켰고. 난 그사이에 재빨리 테이블로가

안주나오는동안 심심하실텐데 마술보여준다고 하고 발광을떨었다. 말그대로

같이놀고싶어 발광했다..ㅋㅋ정말 그중에 한여자가 보기만해도 심장이 터질꺼같이

그야말로 정말 내마음을 첫눈에 뺏어가버렸다. 물론 그렇게 이쁘진않앗다.

옷도 촌스러웠고 머리도 떡졌고 눈도 엄청부어있엇고 심지어 다래끼 까지 났엇다.

근데 내눈엔 정말 아름다워보였다. 같이 있는 친구인거같은여자는 한살언니란다

그여자는 대부분이 남자들이 좋아하는 그런 스타일이었다 딱봐도 괜찬네 이쁘네

란말을 할수있을정도의 미모를 가진 여자랑 같이있었는데도 전혀 꿀려보이지않앗고

오히려 우월해보였다. 난 마술을 보여주고 간뒤에 핸드폰을 잃어버렸단 핑계로

그여자의 번호를 따는데 성공했다. 우린 연락하고지내다 사귀기시작했다.

 

내생에 첫사랑을 시작하게 된것이다. 그여자가 미소를 한번지으면

뭐든 해줄수있을꺼같았고 그여자의 말이라면 곧이 곧대로 다들었다.

그렇게 난 성격도 변해갔고 평범한 대학생들처럼 평범해졌다.

유흥에 돈쓰지않았고 노는삶에 찌든친구들과도 연락두절했다.

 

그렇게 난 여자친구와 데이트비용을 마련하기위해 정말 열심히

이것저것 일을했다. 평화롭고 행복했던 어느날이었다.

한통의 전화. 우리사촌이모였다. 엄마가 돌아가셨단다.

엄마가 미웠고 싫었지만 왠지모르게 가슴속에서 마음이 휘몰아쳤다.

동생은 소년원에 가있단다. 그형에 그동생 아니랄까봐 오토바이 타다가

들어갔단다..난 몇년간 끈었던 니스를 다시하였다. 그러다 여자친구와

헤어지게되었고 난 정말 죽고싶어 자살시도도 여러번했다. 그치만

죽는게 어디 쉽더냐. 죽기쉽다고 말하는사람들은 한번 죽어보라하자.

정말. 맨정신으론 안된다. 못죽는다 그게인간이다. 계속 죽지못해

사는 삶을 살고있지만 여자친구는 내가 이렇게 까지 사랑하는걸알기에

사실 내가 죽을까바 자기때문에 내인생이 망칠까봐 만나주었고 연락해주었다.

난 알고있엇다. 내가 무섭고 내가 한다면 하는놈인걸 알기에 여자친구는

어쩔수없이 날 만나주었단걸. 그래도 좋았다. 너무나 좋았다.

 

사귄지는 별로안됬다. 그렇게 지내다 100일이란 숫자가 가까워지고.

여자친구가 평소에 가지고싶어하던 물건들을 사기위해 일을했다

역시나 힘들었다 그만두기 일쑤였고. 몇일안가 몸이 고됬다.

그렇게 시간은 다가오고 돈도못버는데 핸드폰은 사업한다고 3개씩이나

개통해놓고 카드쓰고 그래서 신용불량자가되고 채무액도 만만치않았다.

 

더이상 물러설곳이없엇다. 어떻게든 돈벌어서 채무해결하고 여자친구기쁘게해주고

나도 평화롭게 살고싶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엇다. 난 정말 죽어도 노가다는

하기싫었는데 우리부모님처럼 그렇게 살기싫었는데 노가다현장을갔다.

바로 엊그제다. 4시까지 주소알려주고 오란말후에 뚝끈어버린 용역사무실,

 

갔더니 어떤 술집마담같은 여자가 저기서 자면돼 한마디하곤 가버렸고

그곳엔 80명가량 잘수있는 대형 콘테이너였다. 방에들어가니 진짜 더위죽을꺼같았다

에어컨이 켜있는데 실내온도가 40도였다. 미칠듯한 땀냄새 벽엔 오줌자국도있엇고

설마 여기 돼지나 개키우는곳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정도로 환경이 열악했다.

 

6:30분경 일이끝난 일꾼들이 하나둘씩 숙소로 모이기시작했고 아까 그 술집마담같은

여자가 자기보다 나이많은 아저씨들에게 반말을하며 수고했다○○아 이러며

일을 잘하지못한 사람에겐 돈도안주고 욕을하고 떄리기까지 하더라. 그리곤

일꾼들이 지쳐 샤워를하고 밥을먹고 숙소로 들어왔다, 나도 그사이에껴 밥먹고

일단 씻엇다. 숙소로 같이 들어왔는데 그렇게 힘들게 일한돈으로 얘기를들어보니

윤락가를 가는사람도있고 피시방게임현질을하는사람도있고 도박을하는사람도있고

그렇더라,  그일꾼들 대부분이 한국사람이아니었다. 중국사람도있엇다. 분명북한말을

쓰는데 중국사람이라고 우기는 사람도있엇다. 분명이건 불법이다. 뭐 불법업소에서

일을 많이 해봐서 그다지 감흥오진 않았지만 열악한환경에 스트레스가 쌓여 그곳에서

일하기가 싫어 집에가고싶었지만 시골이라 늦은시간도아닌데 차가 끈켰다.

어쩔수없이 자야했다. 근처엔 피시방도없엇다 아무것도없고 딸랑 단란주점하나였다.

가기도싫었고 오느라 피곤해 잘라고 숙소에 들어갔다. 잘사람은 자고있더라.

나도 잘려고 주어진 이불을폈다.

 

이게왠말인가. 정말이게 이불인가 누더기가 훨씬났겟다 싶은 이불이였다

곰팡이가 썩었구 축축했다 땀으로..피도나있엇도 온몸에 털이 이불에 박혀

있엇고 닳고 닳아 찢어지기 일보직전인 이불이었다. 그냥 맨바닥에 가져온수건을깔고

내옷을 베게삼아잠을청했다. 30분이 흘렀을까..

 

진심으로 자다가 잠꼬대에 화난적 처음이다.

80명쯤 되는사람들이 한콘테이너를 쓰는데 코고는소리는

가히 탱크소리와 만먹었다. 실제 탱크소리 들어봤다. 괜한소리 아니다.

아니 더큰거같았다. ㅡㅡ 진심이다..... 구석에서 자는 어느 교포는

자다가 가래를 끓고 다시먹기도하고 옆사람에게 밷고 그랬다. 난 졸려도

잠을청할수없엇다. 자위행위를 하는사람도 있엇고. 자다가 화장실가기 귀찬아

벽에 오줌싸고 그냥 자는사람도있엇다. 왔을때 벽에 오줌자국이 그거였구나 하고

생각이 들었다. 정말 이게 사람인가 사람이 이렇게까지 될수있나. 라고생각이들었다

옆사람이 자위행위를 하던손으로 씻지도않고 잠이들었나보다. 잠꼬대를하다가

나를 그손으로 툭쳤다..

 

순간 나도모르게 자리에서 벌떡일어나 화장실로가 팔을 미친듯이씻엇다.

아..방에 들어가기싫엇다.. 밖에나와 세벽내내 담배를 태웠다..화는났지만

힘들었던시절을 보내며 화를 참는 방법을 배웠고 단체생활을 배워온 나다.

 

쉽게 화내지않았다. 그런나도 신기했지만 체력도 다됬는데 잠도못자고

세벽4시가되서 다들 억지로 잠을깨워 일어나 일터로 나갔다. 난 졸렸지만

나의사랑스런 그녀의 웃는모습을 상상하며 돈을 벌기로 결심해서 죽기살기로 갔다.

 

나의 오늘일은 공사현장이었다. 점심때까진 정말 시간이안갔다.

움직이지않아도 미칠듯더운날씨에 땀은 쉬지않고흘렀고 하나당 15kg이 넘는

철판을 거짓말안하고 500개가량 혼자 나른거같다.

 

일하다보니 일하는사람들은 정말 착했다. 평범하고 나와같이 힘들게살다

돈때문에 다른나라까지온 교포들이많았다. 한국사람들중에서도

나와 비슷한삶을 살았던 아저씨들.. 어린사람은 나밖에없엇다..

 

점심이 끝나고 다시작업을시작하는데 어지러웠다 코피가났다.

땀은 멈출쭐모르고 목에두른수건으로 땀을 계속짜도 수돗물틀듯이 땀이

쉬지않고 나왔다. 하..죽는기분이들었다. 옆에있던아저씨가 약을주었다

포도당이다 그걸로 사람들은 하루를 견뎌가고 있엇던것이다.

 

먹고 10분쉬고 다시일하려는데 내작업장옆에 다른용역팀에서온 교포가

진짜 자기힘들다고 일을 막하는바람에 막던진 목재에 내어깨가 맞아 피가나고

멍이들었다 물론 이곳현장은 안전장비도 지급해주지않아서 안전모도없어서

머리도 까졋다. 순간 아픈거보다 화난나는 그아저씨에게 아저씨 옆에사람이

작업하고있으면 조심해서 해야죠 다같이 힘들게 일하는사람인데 조심좀해요

다쳤자나요 라고 말했다. 그순간 주위에있던 교포들 열댓명이 내주위를 감쌋다

 

한 덩치큰 교포가 내멱살을잡았다 나도모르게 같이멱살을잡고 있엇다

그들손에는 망치 톱 통철못 갖은 공사현장 연장들이 손에들려있엇고

그곳은 깊은 시골산속 공사현장이라 정말 여기서 소리없이 죽을수도

있겟구나 라고 생각이들었다 오는길엔 파출소하나 보이지않앗고..

 

마침 주위에있던 한국사람 한명이 와서 나대신 무릅을꿇고 빌었다 중국사람들에게

난 끝까지 버럭버럭 대느라 좀맞았다. 그러다 공사현장 반장이 와서 말려서

상황은 종료됬지만 난 잠도못자고 열대에 일해서 몸이말이아니었다.

사실 좀 쉬라고할찌알았는데 계속일을 시키더라 정말 미칠꺼같았다.

그렇게 한시간또 일하고..

 

쉬는시간.. 그한국아저씨 내게 대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셨다..

어쩔수없는거라고 세상엔 필요악이있고 저런사람들이 생기는 이유도있고

저런사람글이 있어서 사람들이 편하게살고 그런 얘기들을 해주셨다

듣고보면 틀린말은 아니지만 그아저씨에겐 이미 열정이란게 느껴지지않앗다

무얼위해서 돈버는지조차 몰르고 있엇다. 그냥 하다보니 할일이없어

이일말곤 다른걸 할수가없다더라. 마치 폐인같았다. 몸을보니 썩은곳고있엇다.

이건 다 사실이다. 불과 어제일어난 일이다. 하루일당 6만원

내전재산0원 채무액은 다세본적없어 모르지만 엄청나다. 그렇게 하루를

일하며 6만원받고 지옥같은곳에서 내목표를 세우자니

 

젊은나이에 내인생이 아까웠다. 다시금 공연을 하고싶었고.

한번사는인생 최고가 되고싶었다. 난 억지로 오기로 일을끝마치고

일당을받아. 용역소에서 도망쳤다. 그냥온게 아니라 정말 도망쳤다

어디가냐고 가방냅두고 나가라고 뭐하냐고 욕하며 따라왔다.

참..도망치는거하나는 나 되게 잘한다. 그때느꼇다..ㅋㅋㅋㅋㅋ

 

엄마집으로 왔다 저녁늦게..

물론 엄마는 살아계셨다. 우리잘난이모가 날집에

들어오게할 수단으로써 입에 담지도못할 몰래카메라를 연출하실작정이었다고

들었다. 동생은 소년원에서 나온지 일주일도안되 집을나갔다고한다.

 

난 새로운목표를잡았다. 헛된 목표말고 내가 할수있고 해서

성공을 할수있는 목표를 잡았다. 그6만원을가지고

난 일단 약을사서 몸을치료했고. 그놈의 담배를 끈으려

금연껌과 은단을삿다. 물론 지금 금연껌을 씹으며 쓰고있는데

참..쓰다..처음엔 달다가 나중엔 쓰다..ㅠㅠ

담배가 미칠듯피고싶다 끊은지 6시간째인데 참..미치겠다..

그래도 참아야된다 내목표를위해. 그리곤 막바지 문닫을려는 서점을

뛰어들어가 주인에게 부탁을하여 일본어공부책을삿다.

 

외국어를 배워야겠단 생각을했다. 내가 피땀흘려 번돈으로 노는데

쓰고싶지않았고 이6만원으로 내인생을 바꾸고싶었다. 그러기엔

이책이 제일이었다. 차비하고 뭐하고 해서 남은돈이 지금 만오천원이다.

나는 이돈을가지고 내일 어릴때이후로 사본적없는 필기도구와 공책을살것이고

남은돈으로 불우한이웃들에게 무료 마술공연을 하기위해 시청에 갈차비를할것이다.

단 100원도 헛되게 쓰지않을것이다. 난 어제의 노가다를 비난하지않는다

오히려 감사한다. 나의 마음을 독하게 먹게했다. 성공을향해

 

혹시 지금 방황하는 친구들이있나요

채무된금액으로 고된삶을사는 청년실업가들이있나요

소년소녀가장들 어떻게살지 막막신가요

 

이건 제인생이지만 분명 다른인생들을 살고있을겁니다.

하지만 깨닳은것이 있습니다. 목표와 열정과 노력만있다면

인간은 못할꺼없습니다. 비록저도 지금 채무신세를 지고있지만

사랑하는여자에게 밥한끼 사줄수없지만 불행하지않습니다

 

어제의 저와 지금의 저는 다르니까요.

 

사실 제취미는 게임과 술이지만

할쭐아는게 마술조금밖에없지만

목표는 세게최고의 마술사가 꿈입니다.

 

지금까지 주절되는 인생얘기 들어주셔서 감사하고요

제인생을 쓴글이니만큼 악플이 없길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