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병 판 한국녀..; [사진있음ㅋ]

병팔이2010.08.21
조회1,073

하얼빈에서 병판다고.. 한인 사이에서 나름 유명했던 1인입니다 ㅋㅋ

저를 기억하시는 분이 있을 듯 하네요..

저 학원에서도 막 병 주워가고 그랬었는데..

 

하얼빈 가중학원 유학기에 썼던..

제 글을 2년이 지난 지금 발견하고..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판에 올립니다 ㅋ..

 

하얼빈은 참 아름다운 도시였어요..

밑의 사진은- 소피아 성당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이땐 돈이 있을 때..

하얼빈 도착한 후 2일 째네요.

이러면서 돌아다니다 길 잃어버리고, 모르는 중국인한테 돈 받아서 택시타고 갔다능..

[밑의 글에 자세히..]

 

 

 이 유학기 적을 때는 북경에 있을 때라 여전히 돈이 없어서..

우울한 마음으로 적었더니, 조금 오글거리는 표현도 있네요;

톡커 여러분의 이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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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학년 1학기, 대학생활의 끝을 코 앞에 두고 대뜸 휴학을 했다.

앞으로 나아갈 용기가 없었기도 했지만, 조금의 휴식도 이쯤에서는 적절할꺼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취하는가에 따라서 달콤할 수도 있고, 더 어지러울 수도 있는게 휴식아닌가.

하얼빈? 괜찮은데.

즉흥적이라는 것은 때로 꽤 편한 것 같다.

나름 사전조사를 한답시고 깨작깨작 찾아보다가 가중학원을 알게됐다.

8월 5일, 내가 어디에 있는지 인식하지도 못한 채 몸은 하얼빈에 도착했다.


하얼빈, 동북지방, 추운 곳, 빙등제, 러시아풍격.,

연관없는 단어를 나열시키며, 내 머리속의 하얼빈과 내 주변의 하얼빈을 매치시키기에 바빴다.

정신없는 생활, 의미있는 하루를 만들기 위한 발버둥,


그러고보니 재미있는 일도 많았구나......

 


짐풀고 바로 다음날, 다음까페에서 누가 국제결혼을 하는데 통역 좀 부탁한다길래

재밌어보여서 연락하고 바로 택시타고 나갔는데..

어렴풋이 기억한 "xi da zhi jie"와 "hui yin dian"이 아니었으면,

여권도, 핸드폰도, 아무것도 가지고 나오지 않은

바로 전날 하얼빈을 도착한 '외지인'.

국제 미아 될 뻔했다.

이 날 xi da zhi jie 처음부터 끝까지 택시로 한번 쭈욱 훑어주었다.

그 다음날 당장 슈퍼가서 지도부터 샀다.


그 다음다음날,

기숙사 룸메들이 '중앙대가'라는 곳이 번화가라길래 같이 택시타고 갔다가

혼자 길을 잃어버렸다.

뭐, 버스 타면 언젠가는 도착하겠지

저녁 8시 반, 모르는 곳에서 모르는 버스를 탔다.

지도를 펼쳐들고 뒤에 앉은 중국인에게 길을 물었다.

깜짝 놀라면서 이 버스는 강북으로 간다며, 당장 내려서 택시를 타라고 했다.

수중에 단돈 11원. 절대 부족한 돈.

이 날 처음으로 모르는 사람한테 돈을 받아봤다.


.


이렇게,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내 주변에는 항상 재미있는 일만 일어난다.

그리고 하얼빈에 도착한지 한달이 되지 않은 어느 날

처음으로 집도 털려봤다. [기숙사 이전 후로 외주]


마침 베이징 여행과 비자 연장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집에 많은 현금을 두고 있었다.

직감이라는 것이 그렇게 무서운 것이었나.

텅빈 집엔 책이고 내복이고 짐들이 어지럽게 흐트러져있었다.

내 피같은 돈 3800위안은 그렇게 사라졌다.

(1위안 = 약 180원)

 


모두들 마찬가지겠지만, 나 또한 유학비용의 상당 비용을 부모님께 의지하고 있었다.

23살이 되도록 부모님께 기대는 것 자체가 죄스럽기 그지없는데

못난 딸 때문에 근심하실 부모님을 생각하니 알려드릴 수가 없었다.


100위안에 벌벌 떨던 내가

1위안에 벌벌 떨게 될 줄이야.


먼저 방을 빼고, 그 돈으로 비자를 연장했다. 그리고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 집 거실 쇼파로 이사했다.


병을 주워 만두를 사먹기도 하고

쌀과 팥을 사서 삶아 먹고, 삶은 물은 배고플 때 마시는, 합리화 시켜서 말하면 '다이어트 생활'을 시작했다. 그렇게, 방값을 포함해서 2개월 동안 550위안을 썼다

하얼빈에서의 하루하루가 시트콤같았다.

지나고 나니 별 것 아니었지만, 생활이, 인간관계가, 마음이 너무 힘들었다. 어쨌든, 나는 살아남았다.

살은 도리어 쪘지만

[빈민가 여성이 왜 더 뚱뚱한지 이제 이해할 수 있다] 인생의 도리를 터득했다고나 할까.

 

하얼빈은 내게 어두운 도시였지만

그 곳에서의 생활은, 내 인생의 빛나는 경험이 되었다.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 난 ㅇㅇㅇ이니깐. [제이름 ㅋ] 아직 젊으니깐.  

 


이 기회를 빌어서

맥도날드에서 햄버거 사주신 기자 언니 가끔 밥 해주었던 재근이오빠 도둑맞고 돈 없을 때 빵이랑 과자사들고 와준 나희 북경 오기 전에 50원 쥐어주고 가신 직원오빠 [그 돈 없었으면 저 북경에서 택시타고 못갔을꺼예요.. 감사해요ㅠ] 가끔 먹을 거 나눠주신 고마운 선생님들.. 그리고 너무 힘들어 울 때 옆에 있어준 송희, 강원도언니 ㅋㅋㅋ 그리울 거예요. 감사합니다.

저도 베풀며 살께요. 하하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