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Bedevilled』

손민홍2010.08.26
조회570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Bedevilled

2009

 

 

장철수

서영희.

 

8.5

 

「대놓고 보는 은근함의 아쉬움」

 

이 영화에서 은근함을 찾기란 쉽지않다.

 

직장에서의 해원의 톡톡 튀는(?) 행동들과
경찰서 주차장에서 대놓고 증인을 협박하는
'이태원 버거K'스러운 범법자들을 보여주며,
영화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은 뭔가를 숨길 의사가 애초에 없음을 천명한다.
이러한 현상은 영화의 배경이 무도로 넘어가면서 더욱 심해진다.

 

섬에 남자라고는 딱 셋, 뭐 둘이라고 해도 무리는 없다.
젊은 여자는 김복남 하나, 뭐 역시 둘이라고 해도 무리는 없다.
태닝부작용 효과를 주는 분장을 하고 마치 조선시대 종갓집 시어머니 마냥
복남에게 남녀차별, 인신공격성의 발언을 일삼는 만종의 엄마와

그녀의 시다바리 섬할머니 3인방은 복남을 대놓고 천한 종자 취급한다.

뭐 가끔 돌려서 말하는 센스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 센스마저 노골적이어서 관객들은 머리 아프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만종의 동생 철종은 형의 아내인 복남의 몸을 서슴없이 주물럭 거리고
(영화를 보고나면 더듬다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다.)
형이 자리를 비울 때면 본능에 충실한 관능의 몸으로 그 빈자리를 대신한다.
복남에게만이 아니라 치마만 두르면 대놓고 그렇게 할 기세고 또 그렇게 한다.
짐승처럼 말 없이 묵묵하게 숨 쉬는 철종이 어쩌면 이 영화를 대변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죽음도 짐승처럼 맞이한다. 장렬하게.

 

복남의 남편 만종을 보자.
그는 복남이 마루에 앉아 양푼이 비빔밥을 게걸스럽게 입에 쑤셔넣고 있는 걸 뻔히 알면서도
마치 망을 세워놓기라도 한 듯 방문 하나만을 사이에 두고 물 건너 온 다방 레지와 대놓고 그 짓을 한다.
소리는 어찌나 요란한지 만종엄마가 빈정이 상할 정도다.
그는 또한 딸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옆에 있는대도 복남에게 거침없이 로우킥을 날린다.
복남을 걷어 차버린 추잡한 두 다리 위에 딸을 앉히고

그 자그마한 몸을 품에 안은 그의 손은 잠시 은근한 미끄럼을 타는 듯 하지만
종국엔 솜털 가득할 엉덩이에 떡하니 정착한다. 그것도 다방 레지 스타킹 찢듯 자연스럽게 말이다.
친딸은 아니니 상관없지 않은가...라고 할 사람 있나? 없길 바란다.
해원이 뭐라고 해도 복남은 그저 뭍 여자의(뭍에 사는) 간드러지는 신음소리가 딸의 귀에 들어갈까,
또 화장품에 손을 대는 어린 딸이 지 아비의 사랑을, 

남들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받을까봐 노심초사할 뿐이다.
결국엔 쓸데없는 걱정들이었지만 말이다. 아니, 뒷북이라고 해야하나.

 

자, 이제 복수의 정석을 만끽할 시간이다.
모든 걸 잃어버린, 사실은 단 하나를 잃어버린 복남이

신내린 듯한 감자캐기를 보여주다가 하던 일을 멈춘다.
햇빛이 작렬하는 대낮, 뜨겁게 달궈진 태양과 차갑게 식은 대화를 나눈 복남은 낫을 손에 쥔다.
그리고 평생을 해온 낫질은 단 한번의 오차도 없이 무도의 목을 겨냥한다.
그어 피를 뿜게 하고, 베어 나뭇가지에 걸어놓기도 한다.
숨어있다 튀어나와 베는 일도 없다. 대놓고 걸어 다니며 슥슥 잘도 벤다.
분노의 낫질은 경찰도, 또 경찰서 쇼파에 누워있던 해원도 피해갈 수 없다.

 

뭐 이쯤되면 막 가자는 거다.

 

하지만 중요한 건 지금부터다.

정체모를 수프를 잡수고 고이 잠든 해원의 치마 속을 헤집는 철종의 손길을 제외하고,
이 영화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에서 은근함을 맛볼 수 있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무도에서의 해원의 제한된 시선이다.

영화가 끝나고서야 알았지만 이토록 대놓고 숨김없는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은근했던 해원의 시선을 따라갔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속세를 벗어나 고향으로 휴가를 온 그녀가 섬의 모든 것을 대놓고 바라보며

마음의 안정을 찾아가는 듯 보이지만 무도 사람들의 텁텁한 기에 눌려

이내 그 어떤 것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심지어 본 것도 그녀에겐 본 것이 아니게 된다.

결국 제한된 시선이 제한된 진실의 묵인을 불러오고

이는 복남으로 하여금 화를 품게 하는 단초를 제공한다.
혼쭐이 나 서울로 돌라간 해원은 하지만, 경찰서에서 대놓고 '이태원 버거K' 브라더스에게

국민볼펜을 휘두르고, 당당히 집으로 걸어들어와 옷을 입고 샤워를 한다.

해원도 결국에는 대놓고 하는 여자가 되어버린거다.

(쓰다보니 이 영화에서는 경찰서라는 공간이 참으로 무기력하다.)

 

결국 이 모든 일은 '대놓고' 복남을 괴롭히던 자들이

'은근히' 존재하던 복남의 자아를 건드리면서 생겨난 것이다.

 

그렇다.

이 영화는 대놓고 말하면서도 은근히 은근함을 품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내 말은 왜 그 은근함이 은근하게만 존재하냐는 거다.

차라리 대놓고 은근함을 내비췄다면 좀 더 깊은 맛이 나지 않았을까?

 

칸에서는 대놓고 환영받았다지만 나는 은근 모르겠다.
칸의 후광을 대놓고 덮어버리면 '서영희'의 엄지를 치켜세울 만한 연기를 제하고는
은근히 볼 게 없는 영화다.

 

bb.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