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눈물!!! 첫 소개팅에 애기 데리고 간 사연!!!

끼얏호2010.08.26
조회2,225

나 서울 사는 25살 여자에요.

제 소개팅 얘길 들려드릴게요.

 

 

 

 

2년 전, 무지막지하게 아픈 실연을 당했죠.

2년 동안 그 남자만 생각하고 골골대며 약 10kg가 빠졌는데

이 몹쓸 바람둥이 새꺄! 덕분에 평생 못 입던 미니스커트가 다 맞아! 존트 고맙다!!

아 죄송해요, 잠시 욱했어요.

 

 

 

 

무튼! 긴 방황을 거치고 드뎌 맘의 문을 열고, 소개팅을 하게 됐죠.

소개팅이란 게 워낙 허수가 많아 기대는 없었어요....는 개뿔! 존트 기대됐어요.

 

 

 

 

꼭두새벽에 일어나 샤워하고, 고데기하고, 옷 다 헤집어서 코디하고~

저녁 약속까진 2시간이나 남았는데, 어머 벌써 준비가 다 됐네?

날씨도 좋아 여유롭게 가려고 그대로 나오려는 찰나!

 

 

 

 

엄마 말씀!

"너 한가하지? 철수(가명) 좀 돌봐라!"

철수는 내 친척동생이에요. 외갓집 한데 모여 사는 우리 집 막내. 6살짜리.

 

 

 

 

"엑? 엄마, 나 안돼! 지금 나가야 돼!"

"그럼 데꾸 나가!"

"나 진짜 중요한데 가~~!!!!!!"

"회사면접 아니면 당장 데꾸 나가!!!!!!!!!!!!!!!!!!!!!!!!"

 

 

 

 

나 인턴 끝난지 얼마 안된 백조.

외갓집 식구들끼리 고깃집을 함께 운영하는데 휴가철 주말이라 예약손님이 많은 모양.

엄마는 잔뜩 성을 내며 철수를 떠넘기고 바람처럼 사라졌어요.

 

 

 

 

하하하하하.

나 소개팅하는데 철수 얘 어떡해?

하하하하하.

나 2년 만에 겨우 맘잡고 하는 소개팅인데 철수 얘 어떡해?

 

 

 

 

사람 쳐 많았던 토요일 저녁 5시, 강남역 6번 출구.

 

 

 

 

그래요, 내 옆엔 철수가 있었어요.

예전에 찾아볼 수 없었던 슬림한 몸매에, 긴 머리를 휘날리며

쥐마켓에서 급하게 산 살랑살랑 원피스 입고, 갸날픈 여자의 모습을 하였는데

그래요, 철수가 내 손을 놓칠 않네요.

 

 

 

 

소개팅을 미룰까. 상대 남자에게 양해를 구할까.

별의별 생각이 나돌았지만 사실 그보단 그냥 멍했어요.

대안이 떠오르지 않았고, 시간에 이끌려 그냥 철수를 데리고 나왔지요.

 

 

 

 

=,,= 이런 표정으로 강남역에 멍하니 서 있는데(철수가 내 손을 놓칠 않네요.)

마침 상대남자에게 전화가 왔어요.

 

 

 

 

남자-  저 00은행 앞인데 도착하셨어요?

 

 

 

 

어라, 내 상대남자가 저기 서 있네요.

나랑 꽤 가까운 거리였어요.

어머나 나름 귀엽네?

근데 난 그에게 다가갈 수 없었어요. 철수를 도저히 보여줄 수가 없었어요.

 

 

 

 

나-  아;; 도착했는데요;; 음.. 저......

그-  어디세요? 제가 갈게요^^

나-  아.....

 

 

 

 

어차피 되돌릴 수 없는 거 약간의 망설임 끝에 그를 만나기로 했죠.

철수에겐 강남에 오는 1시간 전부터 신신당부를 했죠.

누나에겐 무척 중요한 일이니 무조건 조용히만 있어달라고.

원래 얌전한 성격인 철수는 고개만 연신 끄덕였죠.

그래요. 얜 사고칠 성격은 아니에요.

 

 

 

 

불과 50미터도 안되는 거리를 다가가는데 왜 이리 떨리던지..

아놔 내 인생의 첫 소개팅인데 왜 철수가 개입되어야 하는 건지..

 

 

 

 

전 최대한 현모양처 같은 미소로 그를 맞이했죠.

난 아직도 잊을 수 없어요.

철수와 나를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번갈아보던 그의 모습을.

그 침묵을, 그 어색함을.. 그리고 눈만 꿈뻑거리던 우리 철수를..

 

 

 

 

나름 그는 매너있는 사람이었죠.

나름 절 이해하려고 애썼어요.

 

 

 

 

그-  아.. 저녁..은 드셔야죠..?

나-  아;; 네;;

그-  날도 더워서 맥주라도 하고 싶었는데, 애기 때매 안되겠네요^^;;

나-  아;; 죄송해요;;

 

 

 

 

아놔, 정말.

이게 소개팅에서 만난 남녀들의 대화란 말이야?!

 

 

 

 

나름 그 남자, 정말정말 배려가 있는 사람이었어요.

우리 철수에게 "애기야 뭐 먹고 싶어? 배고파?"라고 묻더군요.

나 정말 고마워서 눈물 날 것 같았어요.

 

 

 

 

"햄..버..거....."

 

 

 

 

우리 철수, 이럴 땐 말도 잘 하지요.

 

 

 

 

그래요.

우리 맥도날드 왔어요.

혹시 아시나요? 강남역 CGV 옆 사람 미워터지는 좁디 좁은 맥도날드.

 

 

 

 

잊으셨을까봐 다시 언급해요. 우린 지금 소개팅 중이에요.

아놔 잊지 못해, 우리 철수가 빅맥을 뜯어먹는 모습을.

 

 

 

 

아 그 남자 소개를 안 했네요.

동갑내기 대학생이였고, 귀여운 인상이라 내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우리 철수를 받아들였단 사실만으로도 전 이미 약 80%를 끼얏호 하고 있었어요.

 

 

 

 

그-  애기가 참 잘 먹네요^^

나-  아;; 죄송해요;;

그-  아니에요~ 뭐 그럴 수도 있죠.

나-  정말 그럴 수 있을까요?;;

그-  .........흔치는 않죠^^;;

 

 

 

 

난 연신 죄송하단 말밖에 못 했고, 정상적인 소개팅 대화를 할 수 없었어요.

다행히 철수는 빅맥 먹는 로봇이 되어 특별히 방해되진 않았어요.

 

 

 

 

문제는 맥도날드를 나와서였어요.

더 이상 갈 곳이 생각나질 않았죠.

카페에 가기도, 호프에 가기도.. 설상가상으로 부슬비까지 내리더군요.

 

 

 

 

속으로 생각했어요.

아 이대로 헤어지겠다.. 제대로 된 얘기도 못 나눴고;;

나한테 호감 따위가 생길 리가 없겠구나..

 

 

 

 

거의 포기를 하고, 집에나 갈 요량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그가 철수를 번쩍~ 들어올리더니

"애기가 다니기엔 사람이 많아 위험할 거 같은데.. 제가 안아도 되죠?"

 

 

 

 

어머.... 100% 끼얏호 충전....

 

 

 

 

그는 철수를 안았고, 난 그들에게 우산을 받쳐주며 길을 걸었죠.

어머 비가 안 와요, 존트 더워요.

그래도 행복했어요.

마치 아기를 가진 젊은 신혼부부 느낌? (물론 나 혼자만의 생각이에요)

여튼 이 남자의 폭풍배려가 눈물나게 미친듯이 고마워서

난 그가 사귀자고 하면 당장 폭풍고개를 끄덕일 기세였죠.

 

 

 

 

길을 걷는 5분 동안은 정말 행복했어요.

음 5분.. 단 5분이었지만 정말 행복했지요.

 

 

 

 

"누나.. 나 오줌..."

 

 

 

 

오줌.

오줌.

오줌.

 

 

 

 

그래요.

우리 철수는 착해서 절대로 말썽을 피우진 않아요.

생리현상은 철수의 죄가 아니잖아요?

 

 

 

 

건물 화장실에 다다렀을 때

폭풍매너남이 우리 철수를 데리고 남자화장실로 직행하는 모습에

전 그에게 제 인생을 바치고 싶은 맘이 솟구쳤어요.

 

 

 

 

세상에 이런 동갑내기 매너남이 있을 수 있는 걸까.

아님 저 남자도 너무 어이없는 상황에 잠시 미쳐서 저러는 걸까.

그들이 잠시 자리를 비운 틈에 전 주선자에게 문자를 날려주었어요.

남자만나면 [상,중,하]로 호감도 상태를 알려달라고 했었거든요.

상중하? 쳇, 우습지..

무한하트뿅뿅 천만개다!!!!!!!!!!!!!!!!!!!!!!!!!!!!!!!!!!!!!!!!

 

 

 

 

이윽고 화장실에서 그들이 손잡고 나오네요.

철수가 내 손을 잡으면 묻네요.

 

 

 

 

"누나, 이 형 누구야?"

 

 

 

 

우리 철수.

이제서야 궁금하니?

 

 

 

 

난 뭐라고 답을 해야할지 몰라서 망설이는데

폭풍매너남이 다시 철수를 들어올리며

"누나 남자친구." 이러는 것이돠!!!!!!!!!!!!!!!!!!!!!!!!!!!!!!!!!!!!!!!!!!!!!!!!!!!!!!

 

 

 

 

나 놀란 얼굴로 그를 쳐다보니까 폭풍매너남이 배시시 웃으면서

"우리 동갑이니까 친구 맞잖아요^^."

"아;; 네;; 친구죠;;"

"저 남자 맞잖아요^^."

"네;; 남자죠;;"

 

 

 

 

나 이때 정말 제 정신 아니었어요.

겉으로 티가 났을 진 모르지만 얼굴 화끈거려서 죽는 줄 알았어요.

아 어떡해, 이 남자 매너 뿐만 아니라 사람 떠볼 줄도 아네요.

 

 

 

 

나이스.

 

 

 

 

그는 지하철까지 따라와 우릴 배웅해주었어요.

철수를 데리고, 강남 밤거리를 도저히 돌아다닐 수 없겠더라구요.

이모랑 엄마한테 오는 전화들을 계속 피하기도 무서웠고;;;

 

 

 

 

나-  저 오늘 정말 죄송하고 감사했어요;;;

그-  아니에요, 평생 못 잊을 것 같네요^^

나-  가..감사합니다^^;;;

그-  조심히 들어가세요~ 철수야, 잘가~

 

 

 

 

지하철 문이 닫히고 창 너머로 그가 손을 흔드는데, 아 진짜 눈물 날 거 같았어요.

예의를 차려준 것은 여기까지잖아요.

다음을 기약할 건더기가 없는 게 문득 겁이 났죠.

벌써 사랑에 빠졌는지;; 다신 못 본다는 생각이 드니까 가슴이 쓰렸어요.

소개팅에 철수 데리고 온 여자를 상대해준 남자는 그밖에 없을 것 같았어요.

 

 

 

 

집에 돌아오자마자 철수를 이모에게 던져두고

주선자와 전화하며 폭풍눈물을 쏟았죠.

아 왜 그렇게 눈물이 나던지;; 괜히 2년전 아픔이 떠오르면서 혼자 울컥했어요.

어렵게 찾아온 사람인데~ 긴 여운만 남긴 채 끝이라는게 왜 이리 슬프던지.

 

 

 

 

그 날 저녁, 잘 들어갔냐는 문자 하난 올 줄 알았는데..

안 왔어요..

젠장, 나 잠 못 잤어요..

 

 

 

 

다음 날..

연락 없었어요.

젠장, 나 철수 손 잡고 울었어요..

 

 

 

 

다음 날..

연락 없었어요.

젠장, 그를 잊기 위해 열심히 식당에서 고기를 날랐죠.. 철수 볼을 한대 꼬집었어요..

 

 

 

 

 

다음 날..

여전히 연락이 없어요.

포기했어요, 그의 번호를 지웠어요.

아 근데 번호를 금세 외웠네요. 이 망할 기억력!

 

 

 

 

다음 날..

 

 

 

 

"철수 잘 있어요~?"

 

 

 

 

꺄악!!!! 문자가 왔어요!!!!!!!!!!!!!!!!!!!!!!!!!!!!!!!!!!!!!!!!!!!!!!!!!!!!!!!!!!!!!!!!!!!!!

 

 

 

 

"안녕하세요^^ 철수 잘 있어요~"                                 -> 나 열라 태연한 척

"전화가 고장나서 지금 막 고치고 오는 길이에요~"       -> 폭풍감동!!!!!!!!!!!!!!!!!

"아 그러셨구나..ㅠㅠ"                                                ->ㅠㅠ 이 표시를 왜 했나 몰라

"제 연락 기다리셨어요?ㅋ"

"아.. 그냥 죄송해서;; 철수 때매 고생도 하셨고;;"

"내일은 철수 안 데리고 오시나요?"

"내일요?"

"내일은 우리 둘만 봐요ㅎㅎ"

 

 

 

 

우리 둘만

우리 둘만

우리 둘만

 

 

 

 

이거슨 애프터였어요!!!!!!!!!!!!

나 진짜 이 문자 받고 숨막혀서 질식사 할 뻔.

나 엄마한테 방금 내일 스케줄에 대해 강력히 말하고 왔어요.

이모에게도 단단히 일러두었지요.

 

 

 

 

철수야 안녕.

 

 

 

 

저 내일 그를 만나러 가요!!!!!!!!!!!!!!!!!!!!!!!!!!!!!!!!!!!!!!!!!!!

아 오늘 잠 못 잘 거 같아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추천 많이 받으면 후기라도 올려볼게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