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서울 사는 25살 여자에요. 제 소개팅 얘길 들려드릴게요. 2년 전, 무지막지하게 아픈 실연을 당했죠. 2년 동안 그 남자만 생각하고 골골대며 약 10kg가 빠졌는데 이 몹쓸 바람둥이 새꺄! 덕분에 평생 못 입던 미니스커트가 다 맞아! 존트 고맙다!! 아 죄송해요, 잠시 욱했어요. 무튼! 긴 방황을 거치고 드뎌 맘의 문을 열고, 소개팅을 하게 됐죠. 소개팅이란 게 워낙 허수가 많아 기대는 없었어요....는 개뿔! 존트 기대됐어요. 꼭두새벽에 일어나 샤워하고, 고데기하고, 옷 다 헤집어서 코디하고~ 저녁 약속까진 2시간이나 남았는데, 어머 벌써 준비가 다 됐네? 날씨도 좋아 여유롭게 가려고 그대로 나오려는 찰나! 엄마 말씀! "너 한가하지? 철수(가명) 좀 돌봐라!" 철수는 내 친척동생이에요. 외갓집 한데 모여 사는 우리 집 막내. 6살짜리. "엑? 엄마, 나 안돼! 지금 나가야 돼!" "그럼 데꾸 나가!" "나 진짜 중요한데 가~~!!!!!!" "회사면접 아니면 당장 데꾸 나가!!!!!!!!!!!!!!!!!!!!!!!!" 나 인턴 끝난지 얼마 안된 백조. 외갓집 식구들끼리 고깃집을 함께 운영하는데 휴가철 주말이라 예약손님이 많은 모양. 엄마는 잔뜩 성을 내며 철수를 떠넘기고 바람처럼 사라졌어요. 하하하하하. 나 소개팅하는데 철수 얘 어떡해? 하하하하하. 나 2년 만에 겨우 맘잡고 하는 소개팅인데 철수 얘 어떡해? 사람 쳐 많았던 토요일 저녁 5시, 강남역 6번 출구. 그래요, 내 옆엔 철수가 있었어요. 예전에 찾아볼 수 없었던 슬림한 몸매에, 긴 머리를 휘날리며 쥐마켓에서 급하게 산 살랑살랑 원피스 입고, 갸날픈 여자의 모습을 하였는데 그래요, 철수가 내 손을 놓칠 않네요. 소개팅을 미룰까. 상대 남자에게 양해를 구할까. 별의별 생각이 나돌았지만 사실 그보단 그냥 멍했어요. 대안이 떠오르지 않았고, 시간에 이끌려 그냥 철수를 데리고 나왔지요. =,,= 이런 표정으로 강남역에 멍하니 서 있는데(철수가 내 손을 놓칠 않네요.) 마침 상대남자에게 전화가 왔어요. 남자- 저 00은행 앞인데 도착하셨어요? 어라, 내 상대남자가 저기 서 있네요. 나랑 꽤 가까운 거리였어요. 어머나 나름 귀엽네? 근데 난 그에게 다가갈 수 없었어요. 철수를 도저히 보여줄 수가 없었어요. 나- 아;; 도착했는데요;; 음.. 저...... 그- 어디세요? 제가 갈게요^^ 나- 아..... 어차피 되돌릴 수 없는 거 약간의 망설임 끝에 그를 만나기로 했죠. 철수에겐 강남에 오는 1시간 전부터 신신당부를 했죠. 누나에겐 무척 중요한 일이니 무조건 조용히만 있어달라고. 원래 얌전한 성격인 철수는 고개만 연신 끄덕였죠. 그래요. 얜 사고칠 성격은 아니에요. 불과 50미터도 안되는 거리를 다가가는데 왜 이리 떨리던지.. 아놔 내 인생의 첫 소개팅인데 왜 철수가 개입되어야 하는 건지.. 전 최대한 현모양처 같은 미소로 그를 맞이했죠. 난 아직도 잊을 수 없어요. 철수와 나를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번갈아보던 그의 모습을. 그 침묵을, 그 어색함을.. 그리고 눈만 꿈뻑거리던 우리 철수를.. 나름 그는 매너있는 사람이었죠. 나름 절 이해하려고 애썼어요. 그- 아.. 저녁..은 드셔야죠..? 나- 아;; 네;; 그- 날도 더워서 맥주라도 하고 싶었는데, 애기 때매 안되겠네요^^;; 나- 아;; 죄송해요;; 아놔, 정말. 이게 소개팅에서 만난 남녀들의 대화란 말이야?! 나름 그 남자, 정말정말 배려가 있는 사람이었어요. 우리 철수에게 "애기야 뭐 먹고 싶어? 배고파?"라고 묻더군요. 나 정말 고마워서 눈물 날 것 같았어요. "햄..버..거....." 우리 철수, 이럴 땐 말도 잘 하지요. 그래요. 우리 맥도날드 왔어요. 혹시 아시나요? 강남역 CGV 옆 사람 미워터지는 좁디 좁은 맥도날드. 잊으셨을까봐 다시 언급해요. 우린 지금 소개팅 중이에요. 아놔 잊지 못해, 우리 철수가 빅맥을 뜯어먹는 모습을. 아 그 남자 소개를 안 했네요. 동갑내기 대학생이였고, 귀여운 인상이라 내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우리 철수를 받아들였단 사실만으로도 전 이미 약 80%를 끼얏호 하고 있었어요. 그- 애기가 참 잘 먹네요^^ 나- 아;; 죄송해요;; 그- 아니에요~ 뭐 그럴 수도 있죠. 나- 정말 그럴 수 있을까요?;; 그- .........흔치는 않죠^^;; 난 연신 죄송하단 말밖에 못 했고, 정상적인 소개팅 대화를 할 수 없었어요. 다행히 철수는 빅맥 먹는 로봇이 되어 특별히 방해되진 않았어요. 문제는 맥도날드를 나와서였어요. 더 이상 갈 곳이 생각나질 않았죠. 카페에 가기도, 호프에 가기도.. 설상가상으로 부슬비까지 내리더군요. 속으로 생각했어요. 아 이대로 헤어지겠다.. 제대로 된 얘기도 못 나눴고;; 나한테 호감 따위가 생길 리가 없겠구나.. 거의 포기를 하고, 집에나 갈 요량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그가 철수를 번쩍~ 들어올리더니 "애기가 다니기엔 사람이 많아 위험할 거 같은데.. 제가 안아도 되죠?" 어머.... 100% 끼얏호 충전.... 그는 철수를 안았고, 난 그들에게 우산을 받쳐주며 길을 걸었죠. 어머 비가 안 와요, 존트 더워요. 그래도 행복했어요. 마치 아기를 가진 젊은 신혼부부 느낌? (물론 나 혼자만의 생각이에요) 여튼 이 남자의 폭풍배려가 눈물나게 미친듯이 고마워서 난 그가 사귀자고 하면 당장 폭풍고개를 끄덕일 기세였죠. 길을 걷는 5분 동안은 정말 행복했어요. 음 5분.. 단 5분이었지만 정말 행복했지요. "누나.. 나 오줌..." 오줌. 오줌. 오줌. 그래요. 우리 철수는 착해서 절대로 말썽을 피우진 않아요. 생리현상은 철수의 죄가 아니잖아요? 건물 화장실에 다다렀을 때 폭풍매너남이 우리 철수를 데리고 남자화장실로 직행하는 모습에 전 그에게 제 인생을 바치고 싶은 맘이 솟구쳤어요. 세상에 이런 동갑내기 매너남이 있을 수 있는 걸까. 아님 저 남자도 너무 어이없는 상황에 잠시 미쳐서 저러는 걸까. 그들이 잠시 자리를 비운 틈에 전 주선자에게 문자를 날려주었어요. 남자만나면 [상,중,하]로 호감도 상태를 알려달라고 했었거든요. 상중하? 쳇, 우습지.. 무한하트뿅뿅 천만개다!!!!!!!!!!!!!!!!!!!!!!!!!!!!!!!!!!!!!!!! 이윽고 화장실에서 그들이 손잡고 나오네요. 철수가 내 손을 잡으면 묻네요. "누나, 이 형 누구야?" 우리 철수. 이제서야 궁금하니? 난 뭐라고 답을 해야할지 몰라서 망설이는데 폭풍매너남이 다시 철수를 들어올리며 "누나 남자친구." 이러는 것이돠!!!!!!!!!!!!!!!!!!!!!!!!!!!!!!!!!!!!!!!!!!!!!!!!!!!!!! 나 놀란 얼굴로 그를 쳐다보니까 폭풍매너남이 배시시 웃으면서 "우리 동갑이니까 친구 맞잖아요^^." "아;; 네;; 친구죠;;" "저 남자 맞잖아요^^." "네;; 남자죠;;" 나 이때 정말 제 정신 아니었어요. 겉으로 티가 났을 진 모르지만 얼굴 화끈거려서 죽는 줄 알았어요. 아 어떡해, 이 남자 매너 뿐만 아니라 사람 떠볼 줄도 아네요. 나이스. 그는 지하철까지 따라와 우릴 배웅해주었어요. 철수를 데리고, 강남 밤거리를 도저히 돌아다닐 수 없겠더라구요. 이모랑 엄마한테 오는 전화들을 계속 피하기도 무서웠고;;; 나- 저 오늘 정말 죄송하고 감사했어요;;; 그- 아니에요, 평생 못 잊을 것 같네요^^ 나- 가..감사합니다^^;;; 그- 조심히 들어가세요~ 철수야, 잘가~ 지하철 문이 닫히고 창 너머로 그가 손을 흔드는데, 아 진짜 눈물 날 거 같았어요. 예의를 차려준 것은 여기까지잖아요. 다음을 기약할 건더기가 없는 게 문득 겁이 났죠. 벌써 사랑에 빠졌는지;; 다신 못 본다는 생각이 드니까 가슴이 쓰렸어요. 소개팅에 철수 데리고 온 여자를 상대해준 남자는 그밖에 없을 것 같았어요. 집에 돌아오자마자 철수를 이모에게 던져두고 주선자와 전화하며 폭풍눈물을 쏟았죠. 아 왜 그렇게 눈물이 나던지;; 괜히 2년전 아픔이 떠오르면서 혼자 울컥했어요. 어렵게 찾아온 사람인데~ 긴 여운만 남긴 채 끝이라는게 왜 이리 슬프던지. 그 날 저녁, 잘 들어갔냐는 문자 하난 올 줄 알았는데.. 안 왔어요.. 젠장, 나 잠 못 잤어요.. 다음 날.. 연락 없었어요. 젠장, 나 철수 손 잡고 울었어요.. 다음 날.. 연락 없었어요. 젠장, 그를 잊기 위해 열심히 식당에서 고기를 날랐죠.. 철수 볼을 한대 꼬집었어요.. 다음 날.. 여전히 연락이 없어요. 포기했어요, 그의 번호를 지웠어요. 아 근데 번호를 금세 외웠네요. 이 망할 기억력! 다음 날.. "철수 잘 있어요~?" 꺄악!!!! 문자가 왔어요!!!!!!!!!!!!!!!!!!!!!!!!!!!!!!!!!!!!!!!!!!!!!!!!!!!!!!!!!!!!!!!!!!!!! "안녕하세요^^ 철수 잘 있어요~" -> 나 열라 태연한 척 "전화가 고장나서 지금 막 고치고 오는 길이에요~" -> 폭풍감동!!!!!!!!!!!!!!!!! "아 그러셨구나..ㅠㅠ" ->ㅠㅠ 이 표시를 왜 했나 몰라 "제 연락 기다리셨어요?ㅋ" "아.. 그냥 죄송해서;; 철수 때매 고생도 하셨고;;" "내일은 철수 안 데리고 오시나요?" "내일요?" "내일은 우리 둘만 봐요ㅎㅎ" 우리 둘만 우리 둘만 우리 둘만 이거슨 애프터였어요!!!!!!!!!!!! 나 진짜 이 문자 받고 숨막혀서 질식사 할 뻔. 나 엄마한테 방금 내일 스케줄에 대해 강력히 말하고 왔어요. 이모에게도 단단히 일러두었지요. 철수야 안녕. 저 내일 그를 만나러 가요!!!!!!!!!!!!!!!!!!!!!!!!!!!!!!!!!!!!!!!!!!! 아 오늘 잠 못 잘 거 같아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추천 많이 받으면 후기라도 올려볼게요~ㅋㅋ 46
폭풍눈물!!! 첫 소개팅에 애기 데리고 간 사연!!!
나 서울 사는 25살 여자에요.
제 소개팅 얘길 들려드릴게요.
2년 전, 무지막지하게 아픈 실연을 당했죠.
2년 동안 그 남자만 생각하고 골골대며 약 10kg가 빠졌는데
이 몹쓸 바람둥이 새꺄! 덕분에 평생 못 입던 미니스커트가 다 맞아! 존트 고맙다!!
아 죄송해요, 잠시 욱했어요.
무튼! 긴 방황을 거치고 드뎌 맘의 문을 열고, 소개팅을 하게 됐죠.
소개팅이란 게 워낙 허수가 많아 기대는 없었어요....는 개뿔! 존트 기대됐어요.
꼭두새벽에 일어나 샤워하고, 고데기하고, 옷 다 헤집어서 코디하고~
저녁 약속까진 2시간이나 남았는데, 어머 벌써 준비가 다 됐네?
날씨도 좋아 여유롭게 가려고 그대로 나오려는 찰나!
엄마 말씀!
"너 한가하지? 철수(가명) 좀 돌봐라!"
철수는 내 친척동생이에요. 외갓집 한데 모여 사는 우리 집 막내. 6살짜리.
"엑? 엄마, 나 안돼! 지금 나가야 돼!"
"그럼 데꾸 나가!"
"나 진짜 중요한데 가~~!!!!!!"
"회사면접 아니면 당장 데꾸 나가!!!!!!!!!!!!!!!!!!!!!!!!"
나 인턴 끝난지 얼마 안된 백조.
외갓집 식구들끼리 고깃집을 함께 운영하는데 휴가철 주말이라 예약손님이 많은 모양.
엄마는 잔뜩 성을 내며 철수를 떠넘기고 바람처럼 사라졌어요.
하하하하하.
나 소개팅하는데 철수 얘 어떡해?
하하하하하.
나 2년 만에 겨우 맘잡고 하는 소개팅인데 철수 얘 어떡해?
사람 쳐 많았던 토요일 저녁 5시, 강남역 6번 출구.
그래요, 내 옆엔 철수가 있었어요.
예전에 찾아볼 수 없었던 슬림한 몸매에, 긴 머리를 휘날리며
쥐마켓에서 급하게 산 살랑살랑 원피스 입고, 갸날픈 여자의 모습을 하였는데
그래요, 철수가 내 손을 놓칠 않네요.
소개팅을 미룰까. 상대 남자에게 양해를 구할까.
별의별 생각이 나돌았지만 사실 그보단 그냥 멍했어요.
대안이 떠오르지 않았고, 시간에 이끌려 그냥 철수를 데리고 나왔지요.
=,,= 이런 표정으로 강남역에 멍하니 서 있는데(철수가 내 손을 놓칠 않네요.)
마침 상대남자에게 전화가 왔어요.
남자- 저 00은행 앞인데 도착하셨어요?
어라, 내 상대남자가 저기 서 있네요.
나랑 꽤 가까운 거리였어요.
어머나 나름 귀엽네?
근데 난 그에게 다가갈 수 없었어요. 철수를 도저히 보여줄 수가 없었어요.
나- 아;; 도착했는데요;; 음.. 저......
그- 어디세요? 제가 갈게요^^
나- 아.....
어차피 되돌릴 수 없는 거 약간의 망설임 끝에 그를 만나기로 했죠.
철수에겐 강남에 오는 1시간 전부터 신신당부를 했죠.
누나에겐 무척 중요한 일이니 무조건 조용히만 있어달라고.
원래 얌전한 성격인 철수는 고개만 연신 끄덕였죠.
그래요. 얜 사고칠 성격은 아니에요.
불과 50미터도 안되는 거리를 다가가는데 왜 이리 떨리던지..
아놔 내 인생의 첫 소개팅인데 왜 철수가 개입되어야 하는 건지..
전 최대한 현모양처 같은 미소로 그를 맞이했죠.
난 아직도 잊을 수 없어요.
철수와 나를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번갈아보던 그의 모습을.
그 침묵을, 그 어색함을.. 그리고 눈만 꿈뻑거리던 우리 철수를..
나름 그는 매너있는 사람이었죠.
나름 절 이해하려고 애썼어요.
그- 아.. 저녁..은 드셔야죠..?
나- 아;; 네;;
그- 날도 더워서 맥주라도 하고 싶었는데, 애기 때매 안되겠네요^^;;
나- 아;; 죄송해요;;
아놔, 정말.
이게 소개팅에서 만난 남녀들의 대화란 말이야?!
나름 그 남자, 정말정말 배려가 있는 사람이었어요.
우리 철수에게 "애기야 뭐 먹고 싶어? 배고파?"라고 묻더군요.
나 정말 고마워서 눈물 날 것 같았어요.
"햄..버..거....."
우리 철수, 이럴 땐 말도 잘 하지요.
그래요.
우리 맥도날드 왔어요.
혹시 아시나요? 강남역 CGV 옆 사람 미워터지는 좁디 좁은 맥도날드.
잊으셨을까봐 다시 언급해요. 우린 지금 소개팅 중이에요.
아놔 잊지 못해, 우리 철수가 빅맥을 뜯어먹는 모습을.
아 그 남자 소개를 안 했네요.
동갑내기 대학생이였고, 귀여운 인상이라 내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우리 철수를 받아들였단 사실만으로도 전 이미 약 80%를 끼얏호 하고 있었어요.
그- 애기가 참 잘 먹네요^^
나- 아;; 죄송해요;;
그- 아니에요~ 뭐 그럴 수도 있죠.
나- 정말 그럴 수 있을까요?;;
그- .........흔치는 않죠^^;;
난 연신 죄송하단 말밖에 못 했고, 정상적인 소개팅 대화를 할 수 없었어요.
다행히 철수는 빅맥 먹는 로봇이 되어 특별히 방해되진 않았어요.
문제는 맥도날드를 나와서였어요.
더 이상 갈 곳이 생각나질 않았죠.
카페에 가기도, 호프에 가기도.. 설상가상으로 부슬비까지 내리더군요.
속으로 생각했어요.
아 이대로 헤어지겠다.. 제대로 된 얘기도 못 나눴고;;
나한테 호감 따위가 생길 리가 없겠구나..
거의 포기를 하고, 집에나 갈 요량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그가 철수를 번쩍~ 들어올리더니
"애기가 다니기엔 사람이 많아 위험할 거 같은데.. 제가 안아도 되죠?"
어머.... 100% 끼얏호 충전....
그는 철수를 안았고, 난 그들에게 우산을 받쳐주며 길을 걸었죠.
어머 비가 안 와요, 존트 더워요.
그래도 행복했어요.
마치 아기를 가진 젊은 신혼부부 느낌? (물론 나 혼자만의 생각이에요)
여튼 이 남자의 폭풍배려가 눈물나게 미친듯이 고마워서
난 그가 사귀자고 하면 당장 폭풍고개를 끄덕일 기세였죠.
길을 걷는 5분 동안은 정말 행복했어요.
음 5분.. 단 5분이었지만 정말 행복했지요.
"누나.. 나 오줌..."
오줌.
오줌.
오줌.
그래요.
우리 철수는 착해서 절대로 말썽을 피우진 않아요.
생리현상은 철수의 죄가 아니잖아요?
건물 화장실에 다다렀을 때
폭풍매너남이 우리 철수를 데리고 남자화장실로 직행하는 모습에
전 그에게 제 인생을 바치고 싶은 맘이 솟구쳤어요.
세상에 이런 동갑내기 매너남이 있을 수 있는 걸까.
아님 저 남자도 너무 어이없는 상황에 잠시 미쳐서 저러는 걸까.
그들이 잠시 자리를 비운 틈에 전 주선자에게 문자를 날려주었어요.
남자만나면 [상,중,하]로 호감도 상태를 알려달라고 했었거든요.
상중하? 쳇, 우습지..
무한하트뿅뿅 천만개다!!!!!!!!!!!!!!!!!!!!!!!!!!!!!!!!!!!!!!!!
이윽고 화장실에서 그들이 손잡고 나오네요.
철수가 내 손을 잡으면 묻네요.
"누나, 이 형 누구야?"
우리 철수.
이제서야 궁금하니?
난 뭐라고 답을 해야할지 몰라서 망설이는데
폭풍매너남이 다시 철수를 들어올리며
"누나 남자친구." 이러는 것이돠!!!!!!!!!!!!!!!!!!!!!!!!!!!!!!!!!!!!!!!!!!!!!!!!!!!!!!
나 놀란 얼굴로 그를 쳐다보니까 폭풍매너남이 배시시 웃으면서
"우리 동갑이니까 친구 맞잖아요^^."
"아;; 네;; 친구죠;;"
"저 남자 맞잖아요^^."
"네;; 남자죠;;"
나 이때 정말 제 정신 아니었어요.
겉으로 티가 났을 진 모르지만 얼굴 화끈거려서 죽는 줄 알았어요.
아 어떡해, 이 남자 매너 뿐만 아니라 사람 떠볼 줄도 아네요.
나이스.
그는 지하철까지 따라와 우릴 배웅해주었어요.
철수를 데리고, 강남 밤거리를 도저히 돌아다닐 수 없겠더라구요.
이모랑 엄마한테 오는 전화들을 계속 피하기도 무서웠고;;;
나- 저 오늘 정말 죄송하고 감사했어요;;;
그- 아니에요, 평생 못 잊을 것 같네요^^
나- 가..감사합니다^^;;;
그- 조심히 들어가세요~ 철수야, 잘가~
지하철 문이 닫히고 창 너머로 그가 손을 흔드는데, 아 진짜 눈물 날 거 같았어요.
예의를 차려준 것은 여기까지잖아요.
다음을 기약할 건더기가 없는 게 문득 겁이 났죠.
벌써 사랑에 빠졌는지;; 다신 못 본다는 생각이 드니까 가슴이 쓰렸어요.
소개팅에 철수 데리고 온 여자를 상대해준 남자는 그밖에 없을 것 같았어요.
집에 돌아오자마자 철수를 이모에게 던져두고
주선자와 전화하며 폭풍눈물을 쏟았죠.
아 왜 그렇게 눈물이 나던지;; 괜히 2년전 아픔이 떠오르면서 혼자 울컥했어요.
어렵게 찾아온 사람인데~ 긴 여운만 남긴 채 끝이라는게 왜 이리 슬프던지.
그 날 저녁, 잘 들어갔냐는 문자 하난 올 줄 알았는데..
안 왔어요..
젠장, 나 잠 못 잤어요..
다음 날..
연락 없었어요.
젠장, 나 철수 손 잡고 울었어요..
다음 날..
연락 없었어요.
젠장, 그를 잊기 위해 열심히 식당에서 고기를 날랐죠.. 철수 볼을 한대 꼬집었어요..
다음 날..
여전히 연락이 없어요.
포기했어요, 그의 번호를 지웠어요.
아 근데 번호를 금세 외웠네요. 이 망할 기억력!
다음 날..
"철수 잘 있어요~?"
꺄악!!!! 문자가 왔어요!!!!!!!!!!!!!!!!!!!!!!!!!!!!!!!!!!!!!!!!!!!!!!!!!!!!!!!!!!!!!!!!!!!!!
"안녕하세요^^ 철수 잘 있어요~" -> 나 열라 태연한 척
"전화가 고장나서 지금 막 고치고 오는 길이에요~" -> 폭풍감동!!!!!!!!!!!!!!!!!
"아 그러셨구나..ㅠㅠ" ->ㅠㅠ 이 표시를 왜 했나 몰라
"제 연락 기다리셨어요?ㅋ"
"아.. 그냥 죄송해서;; 철수 때매 고생도 하셨고;;"
"내일은 철수 안 데리고 오시나요?"
"내일요?"
"내일은 우리 둘만 봐요ㅎㅎ"
우리 둘만
우리 둘만
우리 둘만
이거슨 애프터였어요!!!!!!!!!!!!
나 진짜 이 문자 받고 숨막혀서 질식사 할 뻔.
나 엄마한테 방금 내일 스케줄에 대해 강력히 말하고 왔어요.
이모에게도 단단히 일러두었지요.
철수야 안녕.
저 내일 그를 만나러 가요!!!!!!!!!!!!!!!!!!!!!!!!!!!!!!!!!!!!!!!!!!!
아 오늘 잠 못 잘 거 같아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추천 많이 받으면 후기라도 올려볼게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