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0m 경험자입니다. 오은선씨 말이 거짓일까요...

2010.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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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베인증]

 

ID 그래안다. 2013년1월18일 10시7분

 

 

 

이번 오은선대장의 칸첸중가 의혹을 보면서 참 산악인으로써 씁쓸한 마음입니다.

가슴이 너무 아프네요.  사실 거짓이 아니길 백번 빌어보았습니다.

 

백번 양보해서 올랐다 하더라도 증거가 불충분하니 객관적인 인증은 힘들거 같고

그냥 본인의 기억속 한편의 아쉬움으로 놔둘수 뿐이 없을거 같네요...쩝...

 

그마저도 거짓말이 되어 아주 추하게 변질 되어가는 중인거 같지만 말이죠..ㅜㅜ

 

제가 겪었던 8000미터의 산을 이야기 해보려고 합니다. 저한테야 잊을 수 없는 큰 추억

이지만 여러분들이 읽기엔 다소 길고 지루한 글일 될 수 도 있겠지만 한번 써보겠습니다.

 

 

 

 

 

 

저는 4년전 대학 재학중 아주 운좋게 원정대에 합류하게 되어  안나푸르나를 올라본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데 가끔 그때의 추억이 떠올라 아직도 잠 못이룰때가 많습니다.

 

 

제가 겪은 안나푸르나는 아주 끔찍했지만 저에게 큰 선물을 안겨준 산이였습니다.

오은선도 신은 알고 있다라고~ 말했는데.. 분명한건 저 산 높은곳에는 분명 특별한

기운이 있습니다. 그 기운을 신이라고 믿는 사람도 있겠죠... 저도 느꼈으니까요.

 

 (안나푸르나)

 

 

 

 

참고로 안나푸르나는 8000미터가 넘는 고봉입니다.

8000미터라고 하시면 감이 잘 안오시는데 국제선 여객기 운항 고도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국내선은 5000미터 정도...

 

헬기  최대 상승 고도가 4500미터에서 6000미터 입니다. 그것도 아주 날씨가

좋고 특수 헬기가 말이죠. 4000미터만 되도 헬기의 양력이 떨어져 매우 위험합니다. 

공기의 농도가 매우 낮아 헬기 엔진이 꺼지는 경우도 많구요.

 

 

오은선은 헬기를 타고 베이스 캠프를 이동하여 등반을 하였죠.. 보통 베켐이 5천미터

부근에 제일 많이 분포하니 고산에 적응된 몸을 가지고 이리저리 헬기로 움직이면

정말 빠르게 정상에 오를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보통 내려갔다 다시 올라가려면 1개월이상의 시간과 몸이 다시 고산에 적응해야하는

트래킹을 거쳐야 하는게 일반적이요 ~ 알파인등반인데~ 사실 오은선은 상업적인

변칙 등반으로 세계산악인들에게 그리 좋지 않은 이미지 입니다.

 

 

전 원정팀에 합류하고 나서 체력훈련을 4개월정도 하였는데 높은 고도에 적응하기 위해

방독면을 쓰고 산을 뛰어오르는 훈련도 했었습니다.  방독면을 쓰면 산소의 흡입량이

작아져 간접적으로나마 높은 고도에서의 체력저하를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혹시 8000미터의 고통을 간접적으로나마 느껴보실분들은 이 방법 강추합니다.

일단 100미터 달리기를 본인의 최고 기록으로 3번연속 뛰세요.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가슴이 터질거 같은 상황에서 그대로 방독면을 뒤집어 쓰고 ~ 체감온도 영하 20~30도

되는 가파른 산을 올라가기 시작하세요.  그 처음 겪는 1분이 8000미터 위쪽에서는 일상

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한걸음을 옮기기위해서 호흡을 몇번 반복해야 하는지 세어보세요.

한발짝을 위해 세네번은 깊은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 있고 이게

숨을 쉬는건지 아닌건지 헷갈린다면  제대로 체험하고 있는겁니다.

 

물론 8000미터는 숨쉬기 힘들어 죽을거 같다고 방독면을 벗으면 제대로 숨을 쉴수 있는건 아니고 힘들다고 마냥 앉아서 쉴 수 도 없습니다. 히말라야 고산 시체들 중에는 앉은 자세누은 자세의 시체들이 가장 많습니다. 무슨뜻일까요. 앉는 순간 영원히 못일어날 각오를 해야 한다는 겁니다. 특히 지쳐서 앉았을때 말이죠. 8000미터 부근은 쉬면 체력이 회복되는게 아닙니다. 회복은 둘째치고 오히려 체류 시간이 길어질수록 체력은 말도 못하게 떨어지죠.

즉 목숨을 유지한채 내려올거란 보장도 없다는 전제가 깔려있다는겁니다.

 

 

 

 

부모님의 극구 만류속에 저는 뜻을 굽히지 않고 결국 26살의 나이에 안나푸르나

등반을 도전 하였습니다. 체력훈련 말미에 유서 쓸때쯤엔 정말 죽을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처음 들었습니다. 후원해 주신분들에게 깊은 감사의 말도 남겼죠.

 

 

 

안나푸르나는 아름다운 이름과는 다르게 많은 생명을 거두어간 산입니다. 오르다 생을 달리 하신분들은 수도 없이 많고 그중에는 한국인들고 다수 포함 되어 있었습니다.

 

 

두려움도 있었지만 저는 체력이라면 자신있었고 또한 원정대에서 제일 막내였습니다. 마라톤 3시간 이내 완주 도 4번 이상 경험 했었습니다. 

 

분명한건 히말라야 고산등반은 체력이 아니라 경험과 담력입니다.

막연한 두려움속에서 어느정도 죽음을 인정하고 받아 들일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합니다.

 

 

그 곳에서의 저는 나약하다못해 겁에 질린 그냥 어린 소년이 되어버리더군요.

 

 

 

 

안나푸르나 등반을 시작하고 처음 만난 난관은 해발 4300미터 정도  뚤루부긴 고개라고 있는데 이곳은 험하기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그곳은 한번 가 본 사람만이 험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른 봄이나 겨울 시즌이면 경사 80도에 이르는데 거의 수직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

눈과 얼음이 연속되는 구간은 빙벽 등반이라고 보셔도 됩니다..대롱 대롱 메달려서 이동.

 

 

 

짐을 들어주는 포터가 있는데 이 포터 한 명이 미리 설치한 로프를 잡고 겨우 발걸음을 옮길 수 있을 정도로 폭이 좁습니다.  매번 이곳을 집드나들듯 하는 포터들도 이곳에서는 엄청 긴장하더군요.

 

 

원정이후 저는 그곳에서 처음 후회했습니다. 단순히 객기로 시작할 일이 아니였구나.... 하면서 말이죠...다리가 후들거리다는거 거기서 알았습니다. 이런게 후들거리는거구나~~

 

 

 

 

레테라는 마을에서 베이스캠프까지 걸린시간은 열흘정도 였습니다.

 

 

걷고 또 걷고 ... 하지만 고소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하는 트래킹이였습니다.

 

 

 

 

베이스캠프에 도착하고 사흘 뒤에 저희 원정대는 첫 루트 정찰에 나섰습니다.

포터들은 이제 돌아가고 셰르파들과 저희 대원들만의 본격적인 등반이 시작했습니다.

 

날씨가 정말 변덕스럽다 못해 .. 사람 미치게 만들더군요. 맑았다가 돌풍에 눈보라에 서있지도 못할만큼 악천후였다가 언제 그랬냐는듯이 맑아지고...

 

천신만고 끝에 희는 전진 캠프를 5150m부근에 세웠고 이정도 되니까 제 고산증에 대한 적응도 어느정도 되어갔습니다.( 적응하느라 고생한거는 글로 다못씀 ㅜㅜ)

 

 

 

날씨가 쾌청하고 분위기가 좋았으나 그곳의 하늘이 멀쩡하다가도 금방 눈보라를 동반한 강풍이 몰아치고 눈사태가 일어납니다. 높게 올라갈 수록 그러한 일은 자주 일어난다고 하더군요.

 

 

저희 선발대가 해발 6000미터와 6900미터 지점에 각각 캠프 2와 캠프 3을 구축하고 고도를

800미터 더 올린 다음, 마지막 캠프인 7700미터 지점에서 정상 공격에 나서기로 했습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정상공격조는 총 3명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저는 그중에 못낌

그건 살고 죽고의 문제 였습니다..  캠프3에 식량과 장비를 옮기는 작업과 정상

공격조가 사용할 로프 설치에 참여했었는데

 

 

 

 

캠프2와 캠프3사이에는 거의 수직 빙벽이 있었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을정도 였습니다.

베이스 캠프에서 캠프1로 캠프2로 또 캠프3으로 식량과 장비를 옮기는 것이 마지막

임무였습니다.

 

 

 

 

한번의 실수는 죽음이였습니다. 일주일전에 정상공략한 오스트레이일아 원정팀 1명과

세르파1명이 낙사했던 이야기가 남일이 아니였습니다. 8천미터 부근에는 몇년전에

생을 달리한 터키인 산악인 2명이 바위에 기대에 누워 있다고 하더군요. 그대로 얼어서

말이죠..

 

(에베레스트에서 2년전 하산중 체력저하로 사망한 일본 산악인)

 

히말라야 고산의 정산 부근에는 이런 시체들이 많습니다. 체력저하나 고산증으로

그대로 얼어 죽어도 몇년동안 그자리 그대로 방치되고 있고. 시체들을 치우고 싶어도

그 지역에는 헬기가 올라오기에도 어림도 없고 거기까지 올라간 사람은 이미 자신도

죽음과 싸우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수습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도 됩니다.

 

그옆을 지나 정상으로 향하는 산악인들의 기분은 정말 참담합니다.

 

혹시 먼 미래에 외계인들이 이 시체들을 발견한다면 인간들은 정말 바보인가? 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누가 그랬죠 미친사람들이 세상을 변화시킨다고 인간은

도전없이 살 수 없습니다.

 

 

 

저는 캠프2에서 캠프3을 장비를 옮기는 도중에 결국 죽음이란걸 경험했습니다. 7000미터 부근이였는데 제 로프가 바람에 꼬여 더 이상의 전진도 후퇴도 불가능한 상황이 와버렸습니다. 엎친데 덮쳐 강풍이 엄청나게 불어오는데...

 

 

 

오직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다리에 쥐가날만큼 힘을 주고 아이젠으로 빙벽을 있는 힘껏 찍고 있는데도 제 몸은 낙엽처럼 데롱데롱 날라다녔습니다. 금방이라도 로프가 끊어질거 같았습니다.. 로프 닳아서 끊어지는듯한 소리도 나고 막 치이익 치이익 거리면서....

 

 

 

눈물이 나더군요.. 이렇게 죽는구나... 그렇게 설레발치고 오만했던 제 자신이 미웠습니다. 결국 바람에 빙벽에서 아이젠이 뽑히고 수백미터의 빙벽위에서 몸이 붕뜨는데 오줌을 지렸습니다. 지린게 아니라 아예 싸버린거죠..ㅜㅜ  근데 기저귀 비슷한걸 차고 있었습니다.

ㅡㅡ;; 고산에서는 용무를 보기 힘들수 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차고 다니죠 ㅡㅡ;;암튼

 

죽기직전 인생의 파노라마를 본다고 합니다. 저도 그게 촤라라락 하고 돌았습니다

어렸을때 엄마가 줬던 캬라멜 냄새까지 생각나더군요 ..

 

죽음의 공포는 너무 컷습니다. 요즘도 가끔 악몽을 꿀때 항상 이상황 비슷한 꿈을 꾸곤합니다... 일단 떨어지면 죽는건 둘째치고 시신조차 못찾습니다. 그냥 흔적없이 사라지는데..

 

 

 

정말 운이 좋았는지... 운좋게 붕떳다가 다시 빙벽쪽으로 붙는 과정에서 아이젠을 빙벽 깊숙히 꼽을 수 있었고(재수없으면 도끼로 찍어도 안찍힐만큼 꽁꽁 얼어있어 한번에 아이젠 을 박기란 정말 어렵습니다.) 전 살았습니다...

 

 

저는 다음날 정상공격조의 정상탈환일이라 일출 2시간전에 마지막 장비를 캠프3으로 옮기는 임무였는데 꼼짝없이 1시간을 넘게 빙벽에 메달려 일출을 맞았습니다..

 

그 1시간은 제 인생에서 어떤 시간이였을까요. '오직 살아야 겠다!!'  라는 생각은 점점

'내가 잘 살아왔나?' 로 바뀌었고 '죽기싫다 무섭다' 는 '죽는다는게 뭘까?' 로 바꼈습니다.

부모님께 사랑한다고 꼭 전하고 싶었고 살아왔던 나날들 뭘 그리 친구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싫은 소리하고 내 욕심만 챙기면서 살아왔는지 미안했습니다.

 

 

 

역시 죽음앞에 저는 그냥 어린아이였습니다.

너무 무섭고 추워서 온몸은 사시나무 떨리듯 덜덜덜 떨렸습니다..

어둠의 속의 공포가 컷는지 일출이시작되고 주변이 밝아오는거 같았습니다.

 

 

살수있을까? 를 몇번을 되뇌이고 웅크리고 있다 완전히 밝아짐을 느끼고 뒤를 돌아봤는데...와 잊을 수 없습니다.  

 

 

 

 

 

 

 

 

 

 

 

 

 뭐 이런 느낌이였습니다.

 

 

 

이사진 아래서 위로 찍은건데 저는 저 봉우리들보다 위에 저구름들보다 위에 있었습니다... 상대도 되지 않을 만큼 훨씬 더 웅장하고 아름다웠습니다. 많은 봉우리들이 내 눈밑으로 깔려졌고 해가 떠오름에따라 붉게 물드는데...산소가 많이 없는 지역이라 여명의 아름다움은

무엇을 상상하시던 그 이상이라고 확신합니다.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죽음 앞에서도 발끝에서부터 정수리까지 소름이 쫘악~~ 퍼져

오고 그 감동은 죽음도 잊게 해줍니다. 인간은 큰 감동앞에서는 눈물로 표현하죠.

두려움의 눈물이 아닌 희열의 눈물이 눈에서 펑펑 쏟아져 나왔습니다. 미친놈처럼ㅋ

 

보통 우스갯소리로 이런 말들을 합니다.

아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 라고 말이죠.

하지만 정말 죽음앞에서 살수 있는 확율보다 죽음의 확율이 더 큰상황속에서

 

'정말 죽어도 후회는 없겠다' 라는 생각 ~ 해본 저는 행운아 인가요???

 

 

 

아 드디어 내가 히말라야에 왔구나.. 그토록 바라던 히말라야에 와서 드디어 꿈을 이뤘구나 막 이런 생각이 들면서 빙벽에 메달려서 한참을 울었습니다. 

 

죽냐 사느냐 간당간당 하던때에 저도모르게 입에서는  멋있다.. 진짜 멋있다 를 중얼거렸죠 ㅋㅋㅋㅋ 지금 생각하면 뭔 생각으로 감탄을 했는지 죽기 직전인데 ㅡㅡ;;

 

 

 

그리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히말라야의 일출에 힘을 얻어 굳어 있는 몸으로 70~80도에 가까운 빙벽을 로프를 나이프로 끊고 기어 내려왔습니다.

 

춥고 두려움에 굳어 고개를 돌리기 조차 힘들었던 내 몸에 히말라야의 일출의 장관은

아마 어마어마한 아드레날린을 만들어주지 않았나 싶습니다. 정말 초인적인 몸놀림으

로 내려왔으니까요..

 

 

나중에 이야기 하고 나니까 기적이라고 진짜 ... 그래서 나중에 제사도 지냈습니다. 고맙다고.. 결국은 정상공격조도 궂은 날씨에 정상 300미터 아래서 포기하고 실패로 끝났지만

원정팀 모두 살아 돌아갈 수 있다는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했습니다.

 

 

 

저는 마지막 전진캠프까지도 못가고 캠프3까지 가봤지만 그위로부터의 설사면을 걷는것은

상상도 못하겠습니다. 보통 마지막 전진캠프에서 5~10시간을 정상 공략 시간으로 보는데

500미터를 걷기위해서 사력을 다해 한발한발 내딛는것이였습니다.

 

숨이 안쉬어집니다. 진짜로... 아무리 들이마시고 내뱉었다 해도 숨을 쉬는거 같지 않는기분?? 이라고 해야 하나요? ,,ㅡㅡ;; 그런 곳을 14좌를 정복하신분들이 우리나라에 4명

있다는게 자랑스럽더군요.. 물론 오은선씨는 많이 실망스럽지만 말이죠 그래도 우리 민족의 은근 과 끈기 근성을 느낄 수 있는 기록이라고 생각됩니다.

 

 

 

죽다 살아났지만  죽기전에 다시 한번 가보고 싶은곳이 바로 히말라야입니다..

제 눈으로 다시 그때 그 빙벽위에서의 장관을 볼 수 있다면... 소원이 없을거 같습니다.

그만큼 아름다웠고 웅장했으며 그곳만의 특별한 매력과 기운이 있었습니다.

 

 

다시 한번만 죽기전에 한번만 더 갔으면 하는 그곳입니다.

하지만 오은선씨는 그런곳의 정상을 10회 이상 올랐음 에도 거짓말을 했다면 정말...

얼마나 많은 욕심을 가지고 사는지 상상조차 할 수 없네요.

참 씁쓸할 뿐입니다.

 

 

오은선씨가 앞서 말한것처럼 8000미터 그 이상에는 특별한 변수도 많고 섣불리 상황을

짐작하거나 추측하는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단언합니다. 인간의 영역이 아닙니다.

 

 인간이 버틸수 없는 곳에서 자신을 이겨내고 앞으로 정진하는 발걸음이라고

확신합니다.  올랐고 안올랐고가 사실 중요한게 아닙니다.

 

 

 

에베레스트를 처음 정복한 사람을 뉴질랜드 출신의 영국 원정대 '힐러리'라고 많이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와 함께 정상 정복에서 나선 세르파족 '텐징'은 정상을 20여미

터 앞에 두고 30분을 뒤쳐진 힐러리를 칼바람을 맞으며 기다렸다고 합니다.

 

에베레스트 정상 바로 전 10미터 이상 높이의 절벽이 있는데 이 절벽의 명칭은

'힐러리 스텝' 이라고 부릅니다. 처음 힐러리가 넘었다고 해서 말이죠.

8800미터 부근까지 올라가서 이절벽을 올라타 넘기란 .. 여러분의 상상의 맡기겠습니다.

 

 

하지만 사실 이 정상 바로 전에 있는 절벽은 힐러리가 처음 넘은거 아니라 바로 텐징이

먼저 넘어 로프 설치까지 마친상태였죠. 그래서 세르파족은 이 절벽을 '힐러리 스텝'이

아닌 '텐징의 등' 이라고 부릅니다. 저도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구요.

 

 

하지만 분명 정상은 '힐러리'가 먼저 밟았습니다.

'텐징'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땅 에베레스트의 정상의 인류 첫걸음을 힐러리에게 양보

했고 '힐러리'는 역사속 가장 위대한 탐험가의 반열에 자신의 이름을 올릴수 있었습니다.

 

 

정상 정복 직전 힐러리가 텐징에게 말했다고 합니다.  자네가 먼저 올라왔으니 정상의

첫발은 자네가 밟아야하지 않겠냐고~ 텐징은 대답했습니다.

 

나는 세르파족이라고 나에게 산의 정상은 없다고 ~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고 ~

 

당시 최강대국 영국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인 에베레스트를 오르기위해

천문학적인 투자를 하며 수많은원정팀을 보내었고 많은 영국인 산악인들과 군인들이

오르다 세상을 떠난 상황이였습니다.

 

영국은 반듯이 영국인이 처음 정복해야 한다고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는 상황이였고

텐칭도 그 원정팀에 고용된 셀파였습니다. 

 

 

세르파족 텐징과 뉴질랜드인 힐러리가 정상 등정 기회를 얻은것도 영국원정팀 마지막 전진 캠프에서정상공격조로 떠난 영국인 2명이 정상등정에 실패하고 반죽음 상태로 돌아오자 철수하려다 힐러리가 우리가 해보겠다고 꼭 기회를 달라고 해서 얻은 기회였다고 합니다.

 

 

텐징은 첫 정상 등정이 어떤 영광과 부를 가져다 줄지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텐징의 양보로 정상의 첫발을 내딛은 힐러리는 영국에서 기사작위를 받고 엄청난

명예와 부를 껴안았죠. 물론 그것때문에 오른건 아니라고 확신 합니다만.

 

전진캠프를 떠나 정상으로 향하는 힐러리를 잡아 이끈것도 텐징이였습니다.

몇번이나 포기하고 돌아가려 했지만 텐징은 힐러리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왔다  정상에서 죽자' 라구요.

 

 

 

그 후에도 텐징과 힐러리는 절친으로 지내며 히말라야를 위해 많은 봉사와 지원을 하였죠.

 

텐징은 자신의 양보에 대해 한번도 후회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오은선씨는 텐징을 보며 산을 대하는 인간의 자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로써는 그 14좌를 오르면서 그런 욕심을 가질 수 있다는게 신기할 뿐입니다....

 

 

당시 열악한 장비와 개척되지 않은 루트속에서 ~ 에베레스트를 100명이가면 70명이 죽고

정상정복조는 10명이 도전하면 반듯이 10명이 다 죽는 상황이였습니다

지금이야 장비의 발달과 많은 경험으로 에베레스트 실족율이 2% 미만으로 떨어졌지만

말이죠.

 

 

자살과도 같은 목숨을 버리고 너무도 힘겹게 올라간 텐징이 정상을 눈앞에 두고

산을 대하는 태도야 말로 진정한 산악인의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오해가 있을지 몰라 덧붙이지만 텐징의 양보로 정상에 오른 힐러리는 명예와 부를 얻은 후에도 평생을 모험가로 활약하며 언제나 어려운 사람을 먼저 생각하며 돕고 베푸는 삶을 살다 얼마전에 작은 집 한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뉴질랜드 지폐에 얼굴이 들어갈만큼 아주 남자 답고 멋진 삶을 살았던 존경받을 만한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에베레스트가 처음 품어준 남자다운 삶이였죠?

오은선씨도 14좌가 품어준 여자다운 삶을 살아나가시길 다시한번 바래봅니다.

 

 

 

 

또한 여러분께는 자신의 열정을 이런 극단적인 방법으로 표현하라고 강요하고 싶진

않습니다.

 

다만 본인들의 삶 속에서 열정으로 문제를 극복하고 노력하는 모습이야 말로

빛나는 삶을 만들어 나가는게 아닐까. 생각해봄니다.

 

 

 (인류 최초의 에베레스트 정상 사진.(노르가이 텐징) )

 

 

 

 (세계에서 가장 높은땅의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