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앞둔 28세 여 입니다. 어떻게 설명을 해야할지.. 참 난감합니다. 괜히 집안 안좋은 꼴을 공개하는 것은 아닌지.. 그냥 답답한 마음에 글을 남깁니다. 저희 아버지는 전형적인 시골 할아버지 같은 스타일입니다. 자기 말이 법이고, 옳고, 그대로 따라야 하고, 남의 말 안듣는. 일의 시작은 작년 말부터 거슬로 올라갑니다. 작년 말 결혼을 정한 남자친구를 데리고 집에 인사드리러 갔습니다. 아버지는 나이차나 사람됨됨이나 이런거 다 떠나서 제가 결혼하는 것 자체를 못마땅해 했습니다. 대학교육까지 시켜놨고(국립대에 매번 장학금받고 다녔습니다.) 이제껏 키워준 것이 얼만데 취업한지 1년되어 결혼을 한다는 것이 이유입니다. 이제껏 대학교육까지 시켜줬고, 출세한다는 마음으로 경기도까지 올라갔으니 출세하지 못할바엔 집에서 아버지나 좀 챙겨라... 그것이 효도다. 부모님은 10년 전에 이혼하셨고, 혼자서 힘들게 우리 남매를 키워왔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키웠고 이제 취업해서 집에 돈도 보내고 효도좀 할 때가 됐는데 결혼을 한다니 10년전 아버지를 버리고 나간 엄마처럼 취급합니다. 여튼 제 남자친구와 만나는 첫 자리에서 아버지는 결혼할 상대자에게 "이 결혼 말린다고 안할 것도 아니고, 결혼 마~음대로 해라. 그대신 아무것도 바라지 마라" 썩 마음에 들진 않지만 어쩔 수 없이라도 허락할 것인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결혼을 하든말든 마음대로 하고 나는 허락하지 않았다라는 것임을 한달 뒤에나 깨달았습니다. 고모와 큰어머니께서 절 말리고 집에 도로 데려가려고(시대가 어느 시댄데;;) 경기도까지 올라오셨던 것이죠. 큰 언쟁이 있었지만 그자리에서 분명하게 말씀드렸습니다. 아빠가 반대해도 난 결혼하겠다. 그리고 돌아가셨던 고모와 큰어머니는 제 마음을 돌릴 수 없다는 걸 알고 아버지를 설득했지만 도통 통하지 않았습니다. 본격적으로 결혼식을 준비에 앞서 결혼시기까지 미루며 아빠를 만나려고 했습니다. 아버지께 여러번 전화를 드렸습니다만 돌아오는 것은 욕설 뿐이었습니다. "내가 니를 어떻게 키웠는데. 앞으로 전화도 하지마라, 계속 자극하지 마라, 무슨일을 할지 모른다." 설날에도 집에서 쫓겨나다시키해서 나왔던 나, 현관문이 닫히는 등뒤로 "이제 다시는 오지마라"는 얘기가 메아리처럼 울려왔습니다. 일련의 사건들을 접하며 아빠를 포기하고 결혼식을 준비하기로 했습니다. 결혼 날짜를 정했을 때도 "알아서 해라. 난 더이상 상관하지 않겠다. 둘이 잘 살아라" 남자친구에게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히려 더이상 전화하고 찾아오지 말라고, 자꾸 신경 거슬리지 말라고 잘 살다 형편 좋아지만(어떤 형편을 말하는지 모르겠지만) 찾아오랍디다. 엄마에게 부탁하며 아빠가 이런상태라 도저히 힘들다, 엄마라도 결혼식에 참석해달라 만약에 그렇게 된다면 아빠에게 또 모진 말을 들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마음 단단히 먹고 도와달라 그렇게 착착 결혼식이 준비되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아빠에게 최소한 예의라도 하자는 마음에 여름 휴가 때에는 큰아버지에게 들려 아빠를 설득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고, 실제로 큰어머니는 아빠를 설득하려 했지만 만나지도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완강하던 아빠였습니다. 엄마랑 함께 결혼을 준비하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이제 결혼식 일주일을 앞두고 있습니다. 어제, 아빠가 엄마를 찾아가 한바탕 했다는군요. 무슨 자격으로 딸 결혼식에 참가하냐, 내가 가고 안가고를 떠나 너는 참가하지 마라. 키워준 것은 나다. 결혼 일주일 앞두고, 이제서야 마음이 급해진 모양입니다. 자기가 반대하면 안할 줄 알았던 결혼이 코앞에 닥치자 뭐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아빠를 설득하려 했던 큰어머니에게도 전화를 걸어 욕설을 퍼부었다고 합니다. 왜 저를 도와주냐는 것이지요. 아빠는 이제 결혼식에 한 번 "와보기로"결정했답니다. 엄마가 오는지 안오는지 감시하기 위해 부모님 자리에 앉는 것이 아니라 거슬리는 것이 없나 감시하러 오겠답니다. 뭔가 거슬리면 그 결혼식장에서 난동(!)이라도 피울 것이랍니다. 기어코 부모없는 결혼식을 만들려는 모양입니다. 오늘 다시 부산으로 내려갈 예정입니다. 또 절절히 빌면서 마음을 돌려달라 애원해야하는지, 정말 인연 끊고 싶냐며 협박이라도 해야하는지.... 정말 결혼식만 끝나면 다시 안만나고 싶습니다. 더이상 아빠라는 이유로 내 인생에 태클 좀 걸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뭐든지 마음에 안들었던 아빠. 아무리 노력해도 만족하지 못하고 인정해주지 않았던 아빠. 매번 다른 자식들과 비교하며 너는 왜 그렇냐고 다그치던 아빠. 시험 전날 새벽 3시까지 앉혀놓고 눈물콧물 다 빠지게 훈계하던 사람이 성적표 보면서 성적이 왜 그러냐고 또 혼내던 아빠. 공부 좀 하려고 하면 집안일 안한다고 혼내던 아빠. 지난 10년의 삶이 혼자만 힘들었다고 생각하는 아빠. 청년실업가가 100만이 넘는 세상에 26살 겨울 지역 신문기자로 첫 시작을 했고 지금까지 왔습니다. 부모님 이혼에, 아빠는 수시로 이혼의 원인을 엄마에게 돌리며 너희는 잘 해라고 머라하던 이혼의 무게를 자식에게 넘기던 아빠입니다. 아빠의 가시돋힌 말 속에서 우리는 엄마를 싫어해야 했고, 성적이 조금만 떨어져도 엄마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이 어린 나이에 얼마나 상처가 됐을지 아빠는 아직도 모릅니다. 공부를 잘하고 싶어도 도저히 더 잘할 수 없었던 환경에서 전 이만하면 꽤 잘 컸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도 아빠는 아직도 제가 모자란 딸입니다. 뭐 하나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는 딸입니다. 예비남편도 지역에서 꽤나 알려진 사람이라 결혼식에는 지역의 많은 인사들이 참석할 예정입니다. 하객만 해도 500명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아빠가 혹시라도 난동을 부린다고 생각하면 너무 아찔합니다. 151
더이상 부모라는 이유로 자식 가슴에 못박지 않았으면.
결혼을 앞둔 28세 여 입니다.
어떻게 설명을 해야할지.. 참 난감합니다. 괜히 집안 안좋은 꼴을 공개하는 것은 아닌지..
그냥 답답한 마음에 글을 남깁니다.
저희 아버지는 전형적인 시골 할아버지 같은 스타일입니다.
자기 말이 법이고, 옳고, 그대로 따라야 하고, 남의 말 안듣는.
일의 시작은 작년 말부터 거슬로 올라갑니다.
작년 말 결혼을 정한 남자친구를 데리고 집에 인사드리러 갔습니다.
아버지는 나이차나 사람됨됨이나 이런거 다 떠나서
제가 결혼하는 것 자체를 못마땅해 했습니다.
대학교육까지 시켜놨고(국립대에 매번 장학금받고 다녔습니다.)
이제껏 키워준 것이 얼만데
취업한지 1년되어 결혼을 한다는 것이 이유입니다.
이제껏 대학교육까지 시켜줬고,
출세한다는 마음으로 경기도까지 올라갔으니
출세하지 못할바엔 집에서 아버지나 좀 챙겨라... 그것이 효도다.
부모님은 10년 전에 이혼하셨고, 혼자서 힘들게 우리 남매를 키워왔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키웠고 이제 취업해서 집에 돈도 보내고 효도좀 할 때가 됐는데 결혼을 한다니
10년전 아버지를 버리고 나간 엄마처럼 취급합니다.
여튼 제 남자친구와 만나는 첫 자리에서 아버지는 결혼할 상대자에게
"이 결혼 말린다고 안할 것도 아니고, 결혼 마~음대로 해라. 그대신 아무것도 바라지 마라"
썩 마음에 들진 않지만 어쩔 수 없이라도 허락할 것인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결혼을 하든말든 마음대로 하고 나는 허락하지 않았다라는 것임을
한달 뒤에나 깨달았습니다.
고모와 큰어머니께서 절 말리고 집에 도로 데려가려고(시대가 어느 시댄데;;)
경기도까지 올라오셨던 것이죠.
큰 언쟁이 있었지만 그자리에서 분명하게 말씀드렸습니다.
아빠가 반대해도 난 결혼하겠다.
그리고 돌아가셨던 고모와 큰어머니는 제 마음을 돌릴 수 없다는 걸 알고 아버지를 설득했지만
도통 통하지 않았습니다.
본격적으로 결혼식을 준비에 앞서 결혼시기까지 미루며 아빠를 만나려고 했습니다.
아버지께 여러번 전화를 드렸습니다만
돌아오는 것은 욕설 뿐이었습니다.
"내가 니를 어떻게 키웠는데. 앞으로 전화도 하지마라, 계속 자극하지 마라, 무슨일을 할지 모른다."
설날에도 집에서 쫓겨나다시키해서 나왔던 나,
현관문이 닫히는 등뒤로 "이제 다시는 오지마라"는 얘기가 메아리처럼 울려왔습니다.
일련의 사건들을 접하며 아빠를 포기하고 결혼식을 준비하기로 했습니다.
결혼 날짜를 정했을 때도
"알아서 해라. 난 더이상 상관하지 않겠다. 둘이 잘 살아라"
남자친구에게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히려 더이상 전화하고 찾아오지 말라고,
자꾸 신경 거슬리지 말라고 잘 살다 형편 좋아지만(어떤 형편을 말하는지 모르겠지만) 찾아오랍디다.
엄마에게 부탁하며 아빠가 이런상태라 도저히 힘들다,
엄마라도 결혼식에 참석해달라
만약에 그렇게 된다면 아빠에게 또 모진 말을 들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마음 단단히 먹고 도와달라
그렇게 착착 결혼식이 준비되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아빠에게 최소한 예의라도 하자는 마음에
여름 휴가 때에는 큰아버지에게 들려
아빠를 설득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고,
실제로 큰어머니는 아빠를 설득하려 했지만 만나지도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완강하던 아빠였습니다.
엄마랑 함께 결혼을 준비하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이제 결혼식 일주일을 앞두고 있습니다.
어제, 아빠가 엄마를 찾아가 한바탕 했다는군요.
무슨 자격으로 딸 결혼식에 참가하냐,
내가 가고 안가고를 떠나 너는 참가하지 마라.
키워준 것은 나다.
결혼 일주일 앞두고, 이제서야 마음이 급해진 모양입니다.
자기가 반대하면 안할 줄 알았던 결혼이 코앞에 닥치자
뭐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아빠를 설득하려 했던 큰어머니에게도 전화를 걸어 욕설을 퍼부었다고 합니다.
왜 저를 도와주냐는 것이지요.
아빠는 이제 결혼식에 한 번 "와보기로"결정했답니다.
엄마가 오는지 안오는지 감시하기 위해 부모님 자리에 앉는 것이 아니라
거슬리는 것이 없나 감시하러 오겠답니다.
뭔가 거슬리면 그 결혼식장에서 난동(!)이라도 피울 것이랍니다.
기어코 부모없는 결혼식을 만들려는 모양입니다.
오늘 다시 부산으로 내려갈 예정입니다.
또 절절히 빌면서 마음을 돌려달라 애원해야하는지,
정말 인연 끊고 싶냐며 협박이라도 해야하는지....
정말 결혼식만 끝나면 다시 안만나고 싶습니다.
더이상 아빠라는 이유로 내 인생에 태클 좀 걸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뭐든지 마음에 안들었던 아빠. 아무리 노력해도 만족하지 못하고 인정해주지 않았던 아빠.
매번 다른 자식들과 비교하며 너는 왜 그렇냐고 다그치던 아빠.
시험 전날 새벽 3시까지 앉혀놓고 눈물콧물 다 빠지게 훈계하던 사람이
성적표 보면서 성적이 왜 그러냐고 또 혼내던 아빠.
공부 좀 하려고 하면 집안일 안한다고 혼내던 아빠.
지난 10년의 삶이 혼자만 힘들었다고 생각하는 아빠.
청년실업가가 100만이 넘는 세상에
26살 겨울 지역 신문기자로 첫 시작을 했고 지금까지 왔습니다.
부모님 이혼에, 아빠는 수시로 이혼의 원인을 엄마에게 돌리며 너희는 잘 해라고 머라하던
이혼의 무게를 자식에게 넘기던 아빠입니다.
아빠의 가시돋힌 말 속에서
우리는 엄마를 싫어해야 했고, 성적이 조금만 떨어져도 엄마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이 어린 나이에 얼마나 상처가 됐을지 아빠는 아직도 모릅니다.
공부를 잘하고 싶어도 도저히 더 잘할 수 없었던 환경에서
전 이만하면 꽤 잘 컸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도 아빠는 아직도 제가 모자란 딸입니다.
뭐 하나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는 딸입니다.
예비남편도 지역에서 꽤나 알려진 사람이라
결혼식에는 지역의 많은 인사들이 참석할 예정입니다.
하객만 해도 500명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아빠가 혹시라도 난동을 부린다고 생각하면
너무 아찔합니다.